아픈 싸움은 멈추고, 천천히 대화할 수 있기를

꿈의 악기로 빚어내는 환상의 앙상블
2018년 3월 16일
봄이 오는 소리를 닮은 우쿨렐레
2018년 3월 16일
32018년 3월 16일
 “마음은 수천 개의 채널이 있는 텔레비전과 같다.
우리가 선택하는 채널대로 순간순간의 우리가 존재한다.
분노를 켜면 우리 자신이 분노가 되고, 평화와 기쁨을 켜면 우리 자신이 평화와 기쁨이 된다.”


틱낫한 Thich Nhat Hanh, 베트남 출신의 승려, 명상가, 평화운동가이자 시인

특별히 나에게 해를 준 것은 아닐지라도, 언제고 타인은 철천지원수가 될 수 있다. 관념과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그렇게 만든다. 무협지의 주인공도, 황야의 총잡이도 아닌데 철천지원수를 갖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극한의 분노 상태에 들어가면 평소엔 하지도 않는 생각과 말들을 무기 삼아 원수 같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모든 분노를 아낌없이 쏟아낸 탓일까. 머릿속을 가득 채운 뜨거운 화기가 내려가고 나면 일순간에 자신이 내뱉은 말과 행동에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사실 웃어 넘길 수도, 외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인터넷에서 채팅과 댓글로 첨예하게 대립하던 개인들간의 독립된 갈등이, 때론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진 집단이 되어 양 극단으로 갈린 사람들은 서로를 상처 주는 말들과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불편한 생각들을 표현하고 주고 받는다. 아수라장과 같은 싸움터에서 사람들은 여지없이 분노를 폭발시키며, 적이 된 상대방을 몰아붙이고 상처 주기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말로써 구현해낸다. 그렇게 한다고 해봐야 상처뿐인 승리 외에 얻을 것은 없는데도 말이다. 상대가 천인공노할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면, 이야기를 듣고 갈등의 단초가 되는 오해를 풀어나가는 방법으로 천천히 오해의 실타래를 풀어나갈 수 있음에도 우리는 기어코 현명하지 못한 사람이 되고야 만다.

대립과 갈등 보다는 이해와 타협의 마음가짐이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평화롭고 건설적인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다.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려는 의지를 갖춤으로써 말이다. 누구도 완전한 승자가 될 수 없는 상처뿐인 싸움을 이어나가는 것은 분명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나의 말로 상처받은 누군가가 생기기는 것 보다는, 나의 배려와 말 한마디에 작은 희망을 얻는 사람들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싸움과 다툼은 자신과 상대방 모두가 마음의 병을 만드는 일이니까. 이젠 서로를 공격하기 위한 날 선 대화는 하지 말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세상을 위한 부드러운 대화를 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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