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이란 없어 보이는 만능의 ‘황금 손’, 임동혁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임동혁을 가르쳤던 레프 나우모프 교수는 그의 손을 가리켜 ‘황금 손’ 이라고 평했는데, 이보다 임동혁을 정확히 표현한 단어는 찾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제 30대 중반에 살짝 들어섰지만 임동혁의 입지는 이미 세계 탑 클래스에서 확고하다. 부조니, 롱 티보, 퀸 엘리자베스, 차이콥스키, 쇼팽… 이 세계적인 콩쿠르들 중 하나에만 입상해도 공인받는 실력의 피아니스트가 되는 바, 그는 이 모든 대회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이 새긴 음악가다.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절대적인 신뢰 아래 유럽 최고의 페스티벌 무대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올렸고, 내놓는 음반들마다 디아파종 상, 쇼크 상 등을 받으며 깔끔한 서정성과 테크닉으로 완성도 높은 21세기 피아니스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입상 경력과 지금껏 이어 온 그의 활동은 분명 불가능이 없는 만능의 연주자로서의 면모를 나타내지만,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교류, 스스로 얻은 인생 경험과 연륜으로 성숙기를 맞은 그의 최근 모습은 스스로 가장 편안히 느끼고 자연스러운 표현을 하기에 적합한 레퍼토리를 재탐색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30대를 맞이하며 내놓은 쇼팽의 전주곡집 앨범이 그랬고, 올해 이루어진 슈베르트의 독주회가 또 그러했다. 늘 자신 있고 가까운 존재로 신뢰하는 슈베르트와 쇼팽, 두 작곡가를 거울삼아 자신의 입지를 꼼꼼히 다지는 그의 노력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집중’ 이 보인다.
다른 듯, 닮은 듯 걸어온 두 사람의 특별한 듀오 무대
‘확대’ 와 ‘집중’.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다 맞닥뜨린 것 같은 6월의 만남은 그래서 더 소중하다. 음악회의 시작은 요즘 슈베르트가 화두인 임동혁의 즉흥곡이다. 화사한 꽃망울이 가득 담겨진 새초롬한 꽃다발 같았던 그의 슈베르트 리사이틀의 연장선상으로, 특별히 이번에 무대에 올릴 즉흥곡 작품 90의 1은 임동혁의 데뷔 음반에도 실렸던 시그너쳐 레퍼토리이기도 해 더욱 기대가 크다. 이어지는 브람스의 비올라 소나타 작품 120-2는 용재 오닐 뿐만 아니라 모든 비올리스트에게 거대한 산이자 연주 인생의 현주소를 확인받을 수 있는 리트머스 용지 같은 난곡이다. 노년의 브람스가 넉넉히 담아 낸 정열과 서정성, 달관을 용재 오닐의 부드러운 에너지가 어떤 모습으로 풀어낼지가 관심사다.
후반부의 프로그램은 원래 첼로를 위한 베토벤의 작품들로서, 원곡을 비올라로 바꿔 해석해야 하는 용재 오닐에게도, 피아노가 주도권을 지닌 고전파 앙상블을 책임져야 하는 임동혁에게도 큰 도전이 될 듯하다. 베토벤이 남긴 첼로 변주곡 세 곡 중 하나인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중 ‘사랑을 느끼는 남자들은’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일곱 개의 변주를 통해 절제된 앙상블과 낙천적이고 즐거운 감성을 그리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창작 중기의 원숙함과 두 악기의 이상적인 조합을 보여주는 첼로 소나타 3번 A장조는 베토벤의 실내악 중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날의 메인 이벤트다. 한 치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는 긴밀한 호흡과 섬세한 뉘앙스 조절, 노련한 다이내믹의 표출이 필요한 대곡에 빠져들 두 젊은 대가를 상상하니 벌써부터 흥분되는 마음이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