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가 등장하다

6월에 만나는 고양미술인 – 정은희, 장성복
2018년 5월 24일
고양시교향악단 : 다이나믹 클래식
2018년 6월 7일
22018년 6월 7일
아람문예아카데미 여름특강
<영화 완전 정복 – 6개의 테마로 본 영화> 미리보기②

경험이 어떻게 병을 치유하는 하나의 과정이 될 수 있을까? 앞서 우리는 영화가 관객에게 실재 세상이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경험시키는 ‘도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리보기① 포스트 바로가기) 그리고 그러한 능력으로 인해 장-뤽 고다르라는 프랑스의 감독은 영화가 인류의 병을 치유하는 도구라고 말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렇게 말한 것은 어쩌면 단지 멋지게 포장한 듯이 들린다. 그러나 결코 잘못된 진술은 아니다. 이번에는 그러니 이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영화가 치유의 도구라니…… 이건 어쩐지 조금 지나친……!

1960년대 누벨바그의 선두주자로 나타난 감독으로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 중의 한명 인 장-뤽 고다르

영화는 어떻든 ‘세상을 세상답게’ 보여주는 도구이다. 앞서 글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한 사실인데, 다시한번 강조하면 여기에서 ‘세상답게’란 우리의 눈앞에서 움직이는 그 모습 그대로라는 말이다. 최초의 영화들처럼 단순히 실재 그대로의 세상이든, 이야기이든 간에 영화는 따라서 그것을 우리가 살고 경험한 세상의 모습 그대로 재현한다. 앞의 것에서 다큐멘터리가 나왔다면, 후자로부터는 극영화가 나타났다. 그리고 극영화는 오늘날 지극히 일반적인 영화 형식이 되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로 영화와 이야기는 이점에서 볼 때, 별개의 문제이다. 영화는 이야기를 하는 도구가 아니라 이야기를 실재 세상처럼 펼치는 도구니까 말이다. 이야기는 영화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서 가장 강력한 무기로써, 영화가 탄생하고도 제법 시간이 걸린 후에 영화에게 발견된 것이다.

카메라를 전면에 놓고 이야기를 담은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필름다르(Film d’Art)로, 기존의 예술 중에서도 특히 연극을 찍은 영화를 말했다. 연극의 유명한 장면을 그대로 촬영했는데, 당시엔 불분명했던 영화의 용도를 규정하는 하나의 시도였다. 이 시기 영화는 카메라를 위한 연출도, 편집도 없었다.

오늘날 우리가 영화로 보고 있는 이야기들을 생각해보자. 어떤 영화도 이야기를 단지 ‘찍지’는 않는다. ‘이야기’는 구성되는데, 다르게 말하면, 관객인 우리에게 경험적일 수 있도록 ‘꾸며진다.’. 심지어, 오늘날의 다큐멘터리조차 초창기처럼 렌즈 앞에 있는 것을 고스란히 담지 않으며, 담을 것과 숨길 것, 그럼으로써 떠오르게 할 것을 고려해 ‘편집’하고, ‘이미지’라는 개념에 어울리도록 ‘선택’한다. 당연히 이 ‘이미지라는 개념에 어울린다.’라는 말은 회화나 사진의 오랜 역사를 통해서 인간에게 구축되어온 ‘미적’이라는 개념/정서에 어울리도록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단지 영화 안에 ‘기록’되었다고 해서 그때부터 영화가 이야기를 지니고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

영화가 실제로 이야기를 다루는 도구로써 자리 잡은 것은 태어난 지 한 십 오년 여가 지난 후로, 1910년대에 이루어졌다. 이 시기, 편집과 미장센(연출) 등의 영화가 이미지를 풀어내는 방식들이 나타났고, 그에 의해서 관객들에게 오늘날과 같은 영화가 되어간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세상을 우리는 결코 영화와 같은 방식으로는 ‘경험’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편집도 없으며, 미장센도 없다. 더군다나 세상은 ‘이야기’가 아니어서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도 없다. 교통사고는 우리 눈앞에서 벌어질 뿐이며, 사건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사건, 사고를 목격하는 순간에 그것을 일으킨, 혹은 당한 자의 사정은 결코 알 수가 없다.반면, 영화에서 우리는 언제나 그 사정을 알고 있으며, 그것이 영화를 보게 만드는 사실상의 동력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실재 세상에서는 그러한 전후 사정은 추후에 드러날 뿐이다.
이를테면 연인들이 우리 눈앞을 지나가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아마도 ‘대단한 사랑’을 하고 있을지 모르나 우리는 그 대단함을 알 수가 없다. 손을 맞잡은 그들의 모습은 그저 평범하게 연애하는 이들의 모습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영화 속에 등장한 인물처럼 그들의 감정을 우리에게로 내면화시키지도 않으며, 그럴 수도 없다. 이미 그들을 알고 있는 가까운 친지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들은 세상 천지에 어디나 널려있는 평범한 연인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들의 모습을 ‘이미지의 상태로 보고 있다’는 사실은 실재나 영화에서나 꼭 같지만, 내용의 측면에서는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다. 진짜 세계는 한 마디로 순간적이며 언제나 스쳐지나가고 만다. 반면, 영화는 언제나 특별하며 의미화 되어 있다. 일단 평범하고 이름도 모르는 익명의 ‘사람들’이 아니라 ‘인물’이지 않은가? 즉, 그것은 미장센(연출)된 것이고, 편집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영화의 기법, 즉, 연출과 편집은 가공, 즉 허구를 진짜인 것처럼 가장하는 방법인 듯이 여겨진다. 그러나 기술적인 측면만 빼면, 사실 이는 착각이다. 이 방법들은 가장을 위한 장치가 아닌데, 오히려 반대로, 세상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붙잡아 우리에게 주지시키려고 나타난 방법이다.

히치콕의 독특한 스타일과 완성도로 잘 알려진 영화 <이창>은 줌인/아웃의 효과처럼 단순한 보기, 혹은 보여짐과 바라보기(주시)의 차이를 직접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이를테면 줌렌즈는 가장 현저한 예일 것이다. 일상적으로야 원거리에서 대상을 가까이 당겨쓸 때 사용하고 있지만, 이것은 ‘대상에 대한 시선+관심 따위의 의식의 작용’을 보여주는 데 한때 가장 효과적인 장치였다. 종종,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한 인물이 다른 인물을 ‘주시함/주목함’을 드러내는 표현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시선은 단지 보여짐이 아니고 바라봄이 될 때, 의식과 결합한다. 그래서 그 시선은 그때부터 의식의 문제가 되며, 생각의 대상이 된다. 결국, 이 경우 줌인은 심리적 거리감의 문제 안에 놓이며, 당연히 줌아웃도 마찬가지가 된다. 이처럼 영화는 진짜 세계의 어떤 단면들을 붙잡아 우리에게 다시 생각하게 하며, 판단하게 하고, 오락이라면 즐기게 한다.

이야기에 대한 영화적인 경험이 우리의 병을 치유하는 도구가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지닌 문제,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말하자면 콕 찍어서 우리 앞에 펼쳐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우리는 영화가 지닌 가치를 다시한번 새롭게 느껴볼 수 있다. 왜냐하면 영화 이전까지 이미 ‘이야기’가 이러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란 그 자체로 허구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무니없는 가짜는 아니다. 있음직하며, 더구나 있음직한 사건들을 통해 실재하는 세계 속에서 우리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거나 깨닫지 못했던 의미들을 전달한다.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허구인 이야기를 통해 진단할 수 있고, 그래서 이야기는 진실을 다룬다고 말해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이 일을 하는 것은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영화라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지.

맞다. 영화는 그가 나타나기 이전에도 ‘이야기’가 이미 하고 있었던 일을 이제 그의 방식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진짜 가치는 여기부터 나타난다. 왜냐하면 영화는 그것을 진짜 ‘세상답게’ 꾸밈으로써 보는 동안에 완벽하게 사실로서 체험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우리는 상상하고 연상해야 했다. 그러나 영화는 송강호의 몸으로, 하정우의 몸으로 실제로 그것을 체험하게 한다. 글로 읽고 지적으로 더듬는 것이 아니라, 내 몸으로 직접 느끼는 것이다. 인물의 불행은 판단되기 전에, 체험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슬픔을 느낀다. 우리가 그와 함께 눈물을 흘리고 속으로 소리 없는 절규를 지르는 이유이다. 반대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낄 수도 있다. 영화 이전까지는 ‘그는 기뻐했다’라는 식으로, 하나의 사실이 우리에게 전해졌을 뿐이다. 하지만 영화와 함께 이제는 우리도 기쁘다. 경이롭고 신나며, 벅차다.

영화는 이렇기에 잘 만든 것이든, 못 만든 것이든 상관없이 그 자체로 인류에게 각별한 도구가 된 것이다. 이러한 각별함이 없었다면 인류는 아마도 발명품 영화를 얼마 지나지 않아 창고 속에 넣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영화는 인류를 흥분하게 했고, 그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상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었으며, 한편으로는 우리 자신을 난생처음 그 세상 안에 놓이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글. 김성태(영화연구가)

<영화 완전 정복 – 6개의 테마로 본 영화>

6.19~7.24│15:30~17:30│매주 화요일

영화 역사를 반드시 길고 무수한 지식들과 함께 봐야 할까라는 물음에 본 강좌는 속 시원한 답을 내어 놓는다. 발명품으로, 20세기를 겨우 5년 앞둔 19세기 끝에 세상에 나타난 이 ‘영화’를 우리가 이미 가진 충분한 상식 위에 상상을 얻어 보자고. ‘영화’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6개의 테마 – 이야기, 스펙터클, 액션, 블록버스터, 장르, 예술로 영화의 모든 것을 정리해보는 본 강좌를 따라, 오늘날 우리 앞에 있는 영화의 묘미를 더 즐기고 느낄 수 있도록 상상의 여행을 함께 떠나보자.

▪ 강사 김성태
– 영화연구가, 서강대학교 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강의
– 프랑스 리용 2대학 영화학 석사, 파리 3대학 영화학 박사
– 영화 <이리>, <검은 갈매기> 각본
– 저서 <영화, 존재의 이해를 위하여>
공저 <네 정신에 새로운 창을 열어라>, <세계 영화사 강의>, <필름 컬쳐 5> 등

2018 아람문예아카데미 여름특강

기 간  6.18(월) ~ 7.31(화)

장 소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감상실

문 의  1577-7766 / www.artgy.or.kr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