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어떻게 병을 치유하는 하나의 과정이 될 수 있을까? 앞서 우리는 영화가 관객에게 실재 세상이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경험시키는 ‘도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리보기① 포스트 바로가기) 그리고 그러한 능력으로 인해 장-뤽 고다르라는 프랑스의 감독은 영화가 인류의 병을 치유하는 도구라고 말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렇게 말한 것은 어쩌면 단지 멋지게 포장한 듯이 들린다. 그러나 결코 잘못된 진술은 아니다. 이번에는 그러니 이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영화가 치유의 도구라니…… 이건 어쩐지 조금 지나친……!
1960년대 누벨바그의 선두주자로 나타난 감독으로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 중의 한명 인 장-뤽 고다르
영화는 어떻든 ‘세상을 세상답게’ 보여주는 도구이다. 앞서 글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한 사실인데, 다시한번 강조하면 여기에서 ‘세상답게’란 우리의 눈앞에서 움직이는 그 모습 그대로라는 말이다. 최초의 영화들처럼 단순히 실재 그대로의 세상이든, 이야기이든 간에 영화는 따라서 그것을 우리가 살고 경험한 세상의 모습 그대로 재현한다. 앞의 것에서 다큐멘터리가 나왔다면, 후자로부터는 극영화가 나타났다. 그리고 극영화는 오늘날 지극히 일반적인 영화 형식이 되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로 영화와 이야기는 이점에서 볼 때, 별개의 문제이다. 영화는 이야기를 하는 도구가 아니라 이야기를 실재 세상처럼 펼치는 도구니까 말이다. 이야기는 영화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서 가장 강력한 무기로써, 영화가 탄생하고도 제법 시간이 걸린 후에 영화에게 발견된 것이다.
카메라를 전면에 놓고 이야기를 담은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필름다르(Film d’Art)로, 기존의 예술 중에서도 특히 연극을 찍은 영화를 말했다. 연극의 유명한 장면을 그대로 촬영했는데, 당시엔 불분명했던 영화의 용도를 규정하는 하나의 시도였다. 이 시기 영화는 카메라를 위한 연출도, 편집도 없었다.
오늘날 우리가 영화로 보고 있는 이야기들을 생각해보자. 어떤 영화도 이야기를 단지 ‘찍지’는 않는다. ‘이야기’는 구성되는데, 다르게 말하면, 관객인 우리에게 경험적일 수 있도록 ‘꾸며진다.’. 심지어, 오늘날의 다큐멘터리조차 초창기처럼 렌즈 앞에 있는 것을 고스란히 담지 않으며, 담을 것과 숨길 것, 그럼으로써 떠오르게 할 것을 고려해 ‘편집’하고, ‘이미지’라는 개념에 어울리도록 ‘선택’한다. 당연히 이 ‘이미지라는 개념에 어울린다.’라는 말은 회화나 사진의 오랜 역사를 통해서 인간에게 구축되어온 ‘미적’이라는 개념/정서에 어울리도록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단지 영화 안에 ‘기록’되었다고 해서 그때부터 영화가 이야기를 지니고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
영화가 실제로 이야기를 다루는 도구로써 자리 잡은 것은 태어난 지 한 십 오년 여가 지난 후로, 1910년대에 이루어졌다. 이 시기, 편집과 미장센(연출) 등의 영화가 이미지를 풀어내는 방식들이 나타났고, 그에 의해서 관객들에게 오늘날과 같은 영화가 되어간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세상을 우리는 결코 영화와 같은 방식으로는 ‘경험’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편집도 없으며, 미장센도 없다. 더군다나 세상은 ‘이야기’가 아니어서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도 없다. 교통사고는 우리 눈앞에서 벌어질 뿐이며, 사건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사건, 사고를 목격하는 순간에 그것을 일으킨, 혹은 당한 자의 사정은 결코 알 수가 없다.반면, 영화에서 우리는 언제나 그 사정을 알고 있으며, 그것이 영화를 보게 만드는 사실상의 동력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실재 세상에서는 그러한 전후 사정은 추후에 드러날 뿐이다.
이를테면 연인들이 우리 눈앞을 지나가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아마도 ‘대단한 사랑’을 하고 있을지 모르나 우리는 그 대단함을 알 수가 없다. 손을 맞잡은 그들의 모습은 그저 평범하게 연애하는 이들의 모습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영화 속에 등장한 인물처럼 그들의 감정을 우리에게로 내면화시키지도 않으며, 그럴 수도 없다. 이미 그들을 알고 있는 가까운 친지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들은 세상 천지에 어디나 널려있는 평범한 연인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들의 모습을 ‘이미지의 상태로 보고 있다’는 사실은 실재나 영화에서나 꼭 같지만, 내용의 측면에서는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다. 진짜 세계는 한 마디로 순간적이며 언제나 스쳐지나가고 만다. 반면, 영화는 언제나 특별하며 의미화 되어 있다. 일단 평범하고 이름도 모르는 익명의 ‘사람들’이 아니라 ‘인물’이지 않은가? 즉, 그것은 미장센(연출)된 것이고, 편집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영화의 기법, 즉, 연출과 편집은 가공, 즉 허구를 진짜인 것처럼 가장하는 방법인 듯이 여겨진다. 그러나 기술적인 측면만 빼면, 사실 이는 착각이다. 이 방법들은 가장을 위한 장치가 아닌데, 오히려 반대로, 세상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붙잡아 우리에게 주지시키려고 나타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