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없이 달려와 찍는 슈베르트적 마침표

‘우리의 집, 지구’ 전시를 열며
2018년 6월 21일
우리 모두가 지켜 나가야할 집, 지구
2018년 7월 5일
82018년 7월 5일
김정원 피아노 리사이틀

2014년 8월은 김정원이 슈베르트(1797~1828)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21곡)을 연주하는 대장정의 막을 연 시간이었다. 이로써 그는 자신이 ‘슈베르티안’임을 선언했다. 김정원은 소나타 5번 D.557, 13번 D.664, 19번 D.958을 연주했다. 첫 곡인 소나타 5번은 소나타 형식에 가장 충실한 작품. 그는 슈베르트 특유의 ‘형식미’를 잘 보여주었다. 소나타 13번은 슈베르트가 사모한 피아니스트 요제피네 폰 콜러를 위해 지은 작품. 김정원은 건반으로 그 연가(戀歌)를 불렀다. 그러면서 슈베르트가 왜 가곡의 왕인지, 김정원은 건반으로 그 해답을 들려주었다. 슈베르트가 사망하던 해에 남긴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는 이른바 유작 시리즈로 통용된다. 그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소나타 19번을 통해 김정원은 작곡가가 바라보고 있는 ‘삶 너머 피안의 세계’를 그려냈다. 음악에 담긴 형식미와 사랑(요제피네폰 콜러), 삶 너머의 세계를 통해 슈베르트의 삶과 인생이 다가온 시간이었다. 관객은 ‘그’를 통해 ‘그’를 만났다. 슈베르트를 통해 김정원을, 김정원을 통해 슈베르트를.

슈베르트의 예술과 인생을 살았던 김정원

김정원이 슈베르티안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꾸며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한 열다섯 살의 소년. 연습만으로 하루를 꼬박 채우던 그는 어느 날 빈 시내 근처에서 슈베르트가 살던 집을 발견했다. 자신의 자취방에서 몇 걸음이면 닿을 거리였다. 청년이 된 그는 빈 국립음대와 프랑스 파리고등국립음악원에서 수학했다. 슈베르트의 도시 빈에서 이방인으로 음악가로 살던 그는 2010년에 귀국했다. 빈 심포니와 런던 심포니, 지휘자 정명훈과 블라디미르 페도셰예프 등과 함께 했고, 내로라하는 솔리스트들과 실내악을 함께 해온 그가 마음 깊숙이 간직하고 있던 악성을 꺼내놓는 일은 힘든 일이었다. 이른바 ‘전곡 연주’에서 ‘전곡(全曲)’이란 모든 곡을 아우른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음악가에게는 곡과 싸우는 전쟁일지도···. 그래서 그것은 ‘전곡(戰曲)’일지도 모른다.

그의 슈베르트 소나타 전곡 시리즈는 두 번째 무대로 이어져 2015년 3월과 9월에 전곡 시리즈의 두 번째, 세 번째 무대를 가졌다. 세 번째 무대에 이르자 그의 연주에 대한 ‘기대감’은 ‘믿음’으로 바뀌었다. 두 무대 사이의 공백 기간에도 그는 슈베르트를 놓지 않았다. 슈베르트의 소나타를 담을 음반녹음은 두 번째 공연을 마친 다음 날부터 진행되었다.

그러고 나서 음반(도이치그라모폰)이 나왔다. 세 장의 CD에는 소나타 1번·18번·7번·13번·5번·19번이 차례로 담겨 있었다. 묵직한 CD뭉치에서 어떤 깊이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CD라는 납작한 물건에 음악의 깊이를 담기 위해 그가 밑으로 뚫고 간 ‘깊이 있는 높이’라고 해야 할까. 그가 라흐마니노프와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을 담았던 2012년의 음반(도이치그라모폰)이 잠시 스쳐가기도 했다.

2016년 네 번째 시리즈에서 만난 그는 더욱더 성숙해져 있었다. 소나타 4번 D.537, 14번 D.784, 20번 D.959를 선보였다. 이중 소나타 4번은 세 번째 공연에서 연주한 곡이기도 했다. 이 곡의 2악장이 20번의 4악장의 선율과 같기에 고심 끝에 한 무대에서 두 곡을 만나게 한 것이었다.

이제 김정원에게는 슈베르트는 피아니스트로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호흡’과도 같다. 경희대 교수직에서 내려와 다시 본격적인 연주자로 돌아온 그는 롯데콘서트홀에서 슈베르트의 소나타·가곡·실내악 등 다양한 장르를 여러 음악인과 함께 연주하는 ‘슈베르티아데’라는 시리즈도 진행했다. 피아노가 있는 곳에서 그는 슈베르트를 연주했고, 슈베르트를 연주하기 위해 피아노에 앉았다.

피아노에 담긴 젊은 날의 초상과 죽음 앞의 초연함

4년간 이어온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을 준비를 하고 있는 김정원은 올해 가을에 슈베르트 소나타를 전국 투어로 선보인다. 그중 9월 16일에는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연주회를 갖는다. 소나타 6번 D.566과 17번 D.850, 그리고 21번 D.960을 선보이는 시간이다. 설령 김정원의 지난 여정을 함께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21곡 중 대곡(大曲)인 소나타 21번으로부터 배어나올 김정원의 ‘슈베르티즘’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소나타 6번·17번·21번은 각각 1817년, 1825년, 1828년에 작곡되었다. 소나타 6번을 작곡하던 슈베르트는 스무 살 청년이었다. 혈기왕성한 그는 그해 3월부터 8월까지 7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했다. 6월에 작곡한 곡만 5번·6번·7번. 한마디로 슈베르트가 피아노 소나타를 향한 열정과 그로부터 시달린 젊은 날의 방황이 6번에 담겨 있다. 흔들리는 고뇌는 아름다운 법이지 않던가. 그래서 소나타 6번은 슈베르트의 시적 아름다움, 그 자체다.

1815년부터 작곡하기 시작한 피아노 소나타는 걸작과 대가의 모방으로 시작되었지만, 그로부터의 이탈과 모색의 몸부림으로 낸 길이기도 했다.

특히 빈의 음악가들에게 베토벤(1770~1827)의 존재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들은 베토벤처럼 되고 싶어 했고, 그를 뛰어넘고 싶어 했다. 소나타 17번은 슈베르트가 이 망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한발 크게 내디딜 때 내놓은 작품이다. 수개월동안 소나타와 교향곡의 대곡을 완성시킨 자신감이 큰 역할을 했다. 4악장 중 느리게 흐르는 2악장(콘 모토)는 음악이 비현세적인 높이로 올라가 사라져버리는 듯한 아련함을 담고 있다. 3악장(스케르초. 알레그로 비바체)은 슈베르트의 독자적인 화성 감각에 의해 놀라움 울림을 선사하고, 4악장(론도. 알레그로 모데라토)은 귀여운 남성과 진지한 여성이 함께 맞추는 보폭을 연상케 한다.

소나타 21번은 1828년에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슈베르트가 쓴 유작 시리즈(19·20·21번) 중 한 곡이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던 것인지 21번은 슈베르트적인, 슈베르트만의 색채로 다져진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슈베르트적 양식을 남기고 죽었다. 작품을 남긴 자는 작품과 함께 사라지지만, 양식을 남긴 자는 영원히 기억되지 않던가. 그래서 소나타 21번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작곡가의 일생과 사유 전체를 호흡하는 것이다. 김정원을 비롯하여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이 슈베르트와 호흡하던 긴 시간을 이 작품으로 마침표로 찍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그-슈베르트 혹은 김정원-의 음악에 빠져들 시간이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김정원 피아노 리사이틀

일 시 9.16(일) 5:00pm

장 소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하이든홀)

관람료  R석 4만원, S석 3만원, A석 2만원

대    상  초등학생 이상

문 의  1577-7766 / www.artgy.or.kr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