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 그리고 조성진 – 실내악의 환상적인 묘미를 선보일 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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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화 & 조성진 듀오 리사이틀

2005년 9월 24일 게르기예프 지휘,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준비하다가 정경화는 극심한 손가락 통증을 겪었고 당일 공연 취소의 변을 세종문화회관 무대에서 직접 발표했다. 2010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내한 협연으로 복귀하기 까지, 정경화는 물론이고 음악 관계자들도 5년의 세월이 걸릴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필하모니아 공연차 뉴욕발 항공기로 온 정경화를 영접했을 때, 필자는 차 안에서 그에게 컨디션을 물었다. “내가 진짜로 올지 몰랐죠?” 정경화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주최측에선 간담이 서늘해지는 유머였다. 정경화는 기자회견에서 “몸 여기저기가 삐걱거리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 깊이 있는 음악을 들려드릴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현 위의 인생 70, 바이올린 여제(女帝) 정경화

2005년 손가락 부상과 5년의 공백, 그리고 기적 같은 재기

정경화의 음악은 2010년대와 그 이전이 완전히 다르다. 2010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부터 예민함을 대신해 부드러움이 새로운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기교의 쇠퇴를 염려하는 팬들에 자신의 그대로를 보이려는 순수함이 공연에 그대로 드러났다. 1948년생, 당시 육순에 접어든 정경화는 은퇴 대신 변화를 모색했다. 필하모니아와 협연 이후 공식 무대를 갖지 않은 정경화는 2011년 7월 대관령국제음악제의 공동 예술감독을 맡아 후진을 양성하면서, 본인 역시 서울을 벗어난 무대에서 서서히 재기의 칼을 갈았다.

바로 이 무대, 브람스 피아노 트리오 1번의 파트너가 언니 정명화,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였다. 정경화의 연주에선 부상의 악령을 떨쳐내고픈 의지가 역력했고, 슬슬 회복의 조짐이 보였다. 젊은 시절의 날카로운 보잉은 사라졌지만 천천히 숨을 고르고 활을 지긋이 현에 가져다 대는 순간부터 주위를 압도했다. 차분했던 분위기에서 급격하게 도약하는 패시지에선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한 단계씩 올라가는 현자의 지혜가 선했다. 정경화는 이 무대를 통해 무한한 자신감을 안고 평창 알펜시아를 떠났다. 자신감의 원천은, 이제는 지음(知音)으로 칭할 만한 케너와의 만남이다.

케너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에서 건반의 역할이 소극적 반주가 아니라, 적극적 2중주여야 하는 당위를 일깨운 방식으로 정경화와 조응했다. 바이올린이 돋보여야 할 때 케너는 풀을 죽였고 박진감 넘치는 어택으로 열정을 표출할 땐 기름에 불을 끼얹은 듯, 같이 타올랐다. 케너는 단순히 정경화 사운드의 여백을 채우는 역할이 아니다. 케너와 점점 더 어우러지면서 정경화는 젊은 시절, 본인이 원하는 소리와 색채를 위해 스스로의 몸을 짜내던 야무졌던 매무새를 느슨하게 풀었다. 공연을 보면 기교가 쇠잔한 대신 연륜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고 따스한 내면의 성숙이 얼굴에서 나왔다.

2012년 1월 서울시향 신년음악회도 마찬가지였다. 복귀 때부터 “(정)명훈이랑, 서울시향과 연주하고 싶다”고 거의 노래를 부른 그는, 브루흐 ‘스코틀랜드 환상곡’으로 그 바람이 이뤄졌다. 눈부신 기교의 향연이 사라진 대신, 아르투르 그뤼미오의 해석처럼 리듬감을 부각하고 열정으로 노래하는 모습은 오래전 정경화의 자태 그대로였다. 세세한 소리에 집중하기보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연주하는 자세는 악장이 거듭될수록 뚜렷해졌다. 자의적으로 템포를 조절하려는 희망이 명백했고, 작곡가가 남긴 풍부한 정서를 천변만화의 표정으로 시각화하는 걸 특히 국내 올드팬들이 좋아했다.

2014년 12월 런던 로열 페스티벌 무대. 정경화는 44년전 자신의 세계 데뷔 무대에 케너와 함께 돌아왔다. “1970년 5월 13일”. 그녀의 영국 매니지먼트가 촬영한 카메라에 이곳에 섰던 날짜도 정확히 구술할 만큼 이곳은 정경화에게 특별한 장소다. 세계 최대의 음악 시장 런던에서 정경화는 실력으로 정면 승부해 비로소 세계 정상에 올랐다. 일정 수준에 오른 연주자가 런던에서 버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정경화 만큼 잘 아는 아시아 연주자는 없다. 젊은 시절 런던에 살았고 이곳에서 결혼했으며 런던 주재 오케스트라와 레이블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서울을 제외하면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청중은 런던 관객”이라고 애정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런던 관객들은 정경화의 공백이 궁금했고 정경화는 케너의 손을 잡고 무대에 섰다. 모차르트 소나타 K.379,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1번, 바흐 샤콘느, 프랑크 소나타로 이어지는 공연이 끝난 후 런던 정론지의 반응은 중립적이었다. 대개의 신문들이 무난한 연주를 의미하는 별 셋을 줬고, 공연 중 기침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 걸 주목한 ’더 타임즈‘는 별 둘을 줬다. 정경화는 ’가디언‘에 어린 관객을 언제나 환영한다는 실명 기고를 보냈다.

필자는 정경화의 적극적 대응에서 희망을 봤다. 청중과 미디어의 반응에 이렇게 예민하다는 점은 정경화가 여전히 완벽을 추구한다는 증명이다. 마치 2011년 예술의전당 독주회에서 본인의 기침 때문에 공연을 스스로 중단했을 때, 이를 응원하는 관객의 박수를 거부한 것처럼 정경화는 본인의 음악에 외부 요소가 불순물처럼 개입되는 걸 지금도 허용하지 않는다. 본인의 해석으로 결국 관객의 마음을 흔들고 싶은 욕심이 여전하다는 증거다.

그리고 런던 비평계의 냉담한 반응이 오히려 정경화의 파이팅을 불렀다. 열광하는 관객에 취하지 않고 청중의 리액션을 믿기보다 여전히 그날 자신의 감을 믿고 있다. 특히 바이올린을 바꾸고 난 다음, 정경화는 황혼녘을 더욱 붉게 물들이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에게 궁합이 맞는 악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정경화의 70대가 기대되는 근거이다.

2015년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 이후,

독보적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조성진

2015년 쇼팽 콩쿠르를 우승한 조성진이 처음 방문한 곳이 영국이고 협연 악단도 필하모니아, 지휘자도 아쉬케나지였다. 아쉬케나지-필하모니아 조합이 서울에서 정경화를 대하듯, 새로운 인재를 포용하고 솔로 소리를 경청하는 개방적인 자세는 조성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조성진이 쇼팽 경연 후 3년 동안 걸은 발자취와 함께한 음악인들의 수준을 보면, 이에 비견할 만한 전례는 한국인 연주자 가운데 정경화 뿐이다.

조성진은 2017년 사이먼 래틀,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하면서 연주자의 명성 면에서 한 단계 더 성장했다. 카네기홀의 정기적 기획 공연, 베를린 필하모닉 재초청처럼 본인이 자신의 기존 연주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조성진은 부단한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세계 정상급 바리톤으로 꼽히는 마티아스 괴르네와의 리트(독일가곡) 협업에선 성악 반주의 이득과 독일어 함양의 두 마리 토끼가 눈앞에 선하다. 2015년 쇼팽 콩쿠르 당시 크리스티안 지메르만과 정경화가 나눈 조성진 담론은 결국, 2012년 정경화가 과천 공연에서 지켜본 영재의 가능성에서 싹이 움텄다.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와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를 극심히 차별 대우하는 한국 음악시장의 속성이 무엇인지, 조성진은 정확히 명찰할 것이다.

음반 판매고의 흐름이나 내한공연의 매진 사례가 조성진을 둘러싼 레코딩 산업과 공연 기획사를 살찌운다면, 음악가 조성진의 연주 인생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건 결국 실내악과 그를 같이하는 음악가일 것이다. 바야흐로 실내악에 손을 댈 시점이 무르익었다. 정경화와 조성진의 이번 무대가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훗날 전기나 자서전이 쓰여질 두 인물이 서로를 어떻게 기억할지, 9월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열릴 정경화-조성진 듀오 무대의 현장 관객이 그 사관(史官)이 되리라.

슈만 바이올린 소나타 1

단 세 개 악장이지만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품은 표현력과 서법, 열정과 이성이 맹렬히 균형을 이루는 작품이다. 간결한 필치에도 강력함이 꿈틀대는 슈만 특유의 방식이 악장 곳곳에 아로새겨졌다. 3악장 코다에선 1악장 1주제를 회상하면서 통일감을 부여했지만, 3악장 주제 동기는 교향곡 3번 2악장의 중간 주제가 반복되는 등 작곡가의 혼란한 마음도 그대로 반영됐다. 결과적으로 슈만은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아 40여일 만에 2번 작곡에 착수했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7

바이올리니스트에게 10개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는 하나하나가 정복이 어려운 히말라야 14좌처럼 해석과 표현이 쉽지 않은 난곡들이다. 1802년경 6․8번과 세트로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고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1세에 헌정된 것을 기려, 일각에선 ‘알렉산더’ 소나타로 칭하지만 보편적인 표현은 아니다.

베토벤 음악 전체를 놓고 보면 모차르트의 영향에서 벗어나 작법에서 독자적인 경지를 구축하던 시기의 작품으로, 앞뒤 번호의 소나타와 달리 명랑함을 자제하고 완고한 분위기가 주조를 띤다. 1악장에서 특징적인 테마를 피아노가 주도하고 바이올린이 반음계를 하강하면서 자아내는 극적인 분위기가 그대로 4악장까지 이어진다. 가요풍의 멜로디가 이어지거나, 건반이 아르페지오나 페달로 음향효과를 기도하고, 바이올린은 소나타 형식의 전개부와 재현부에서 주제를 능동적으로 리드하는 구조를 보면 관객이 지루한 틈을 메우기 위한 작곡가의 노력이 뚜렷하다.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벨기에 출신의 오르간 연주자 세자르 프랑크의 1886년작으로 정경화가 즐겨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나타다. 몇 개 동기를 기본으로 전곡의 톤과 기조를 통일하는, 순환 형식이 네 악장 그대로 이어진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비중과 퍼포먼스가 실질적으로 대등한 이중주로 봐야 한다. 동서고금의 명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녹음을 남겼고, 정경화는 라두 루푸와 데카(1977)에서 녹음했다.

글. 한정호(음악 칼럼니스트, 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정경화 & 조성진 듀오 리사이틀

일 시 9.1(토) 5:00pm

장 소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하이든홀)

관람료  VIP석 12만원, R석 9만원, S석 7만원, A석 5만원, B석 3만원

대    상  초등학생 이상

문 의  1577-7766 / www.artg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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