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눈, 예술 보는 눈

앉아서 세계 4대 미술관을 관람하자
2018년 8월 17일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프랑스를 품고 있다
2018년 8월 31일
52018년 8월 17일
예술책 읽기 프로젝트 3기
하이데거 <예술작품의 근원> 함께 읽기

아람미술관은 ‘2018 책의 해 특별기획전 – 예술가의 책장’(2018.12.19~2019.03.24) 연계 프로그램으로 ‘예술책 읽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예술과 관련된 주요 도서를 선정해 함께 읽고, 해당 도서의 저자나 전문가를 초대해 강의를 듣는 것이다. 지난 7월 21일부터 8월 18일까지 이어진 3기 ‘하이데거 <예술작품의 근원> 함께 읽기’에는 철학자 이봉호 교수가 초빙되었다. ‘예술책 읽기 프로젝트’ 3기에 참여했던 파라북스 김태화 대표로부터 참여 후기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하이데거의 <예술작품의 근원>을 향한 도전

독일의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평소 아람누리 인문교양 강좌에 자주 참석하였는데, 우연히 아람누리 기획전 ‘예술가의 책장’ 연계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팸플릿을 보게 되었다. 2018년 ‘책의 해’를 맞이해 예술에 관련된 주요 서적을 함께 읽고, 관련 전문가의 강의를 들으며 토론도 하는 자리였다. 어떤 책들이 선정되었는지 살펴보다가, 하이데거의 <예술작품의 근원>이 있어서 망설임 없이 강의를 신청했다.

과거 대학 시절 하이데거의 대표작인 <존재와 시간>을 5개월에 걸쳐 끙끙대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철학과를 다닐 때 ‘함’이라는 스터디 그룹에 3년간 참여했다. ‘함’은 철학함의 약자로, 서양철학사의 중요한 명저를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었다. 그때 힘들게 읽은 기억이 있어, 이번 기회에 하이데거를 알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과를 졸업하고 30여 년 동안 책을 만드는 일을 해왔고, 요즘도 이러저러한 철학책을 읽고 있어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자신감도 없지는 않았다. 게다가 예술철학이기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아람누리에 마련된 강의실에서 ‘예술책 읽기 프로젝트 3기 – 하이데거 <예술작품의 근원> 함께 읽기’에 참여 중인 수강생들. 칠판 앞에서 이봉호 교수가 강의 중이다.

하이데거 이전의 서양철학사

첫 강의시간을 맞이하여 토요일 아침을 서둘러 아람누리 강의실을 찾았다. 깜짝 놀랐다. 큰 강의실이 빈 자라기가 없을 정도로 꽉 찼다. 하이데거 철학이 쉽지 않기에 소수의 인원이 참여할 것이라는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수강생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도 예사롭지 않았다. 강의에 참여한 수강생들이 하이데거의 예술철학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소정의 성과는 거둘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봉호 교수님(경기대학교)은 첫 번째 강의 시간을 하이데거가 바라본 서양철학사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하이데거의 철학과 그의 용어를 알기 위한 정지작업이었다. 하이데거는 자기 이전의 철학을 한마디로 ‘존재망각의 역사’라고 규정했다. 형이상학이 시작되기 이전, 존재 역사적 차원에서 존재의 진리는 존재 자체로 드러났는데, 플라톤 이후 형이상학의 역사가 시작되고 나서는 존재의 진리는 존재자성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존재 자체로 드러나는 것을 ‘알레테이아’(Aletheia)라고 하고, 존재자성으로 드러난 것은 플라톤의 ‘이데아’(Idea)로부터 비롯된 서양철학사의 모든 철학이라고 구분한 것이다.

두 번째 시간은 하이데거가 파악한 존재진리의 양식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서양의 철학사가 플라톤 철학의 각주에 불과하다는 화이트헤드(A.N. Whitehead)의 주장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증이나 데카르트의 명석판명한 관념, 그리고 칸트의 초월론적 통각이 모두 존재자성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를 ‘위에서 잡음’(플라톤의 이데아, 데카르트의 생득관념), ‘앞에서 잡음’(로크 등의 영국경험론자들의 경험과 인상), ‘덮쳐잡음’(언어구조) 등으로 표현하면서 서양철학사를 정리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존재자성을 중심으로 전개된 형이상학은 개념역학을 마음대로 휘두른 것이라고 정리한다.

“예술은 진리를 발원하게 하는 것”

세 번째 강의 시간에서는 하이데거가 생각한 존재 자체를 드러내거나 숨기는 알레테이아는 무엇인가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다. 하이데거는 그리스의 시원적 사유에서 검토되지 못한 것이 바로 알레테이아이고, 알레테이아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예술이라고 보았다. 이는 존재자의 진리를 인간의 이성 안으로 가져온 서양철학의 역사에서 존재자를 열린 터로 내어 놓는 방식이 예술의 형태로 나타나고, 예술이 알레테이아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며 예술작품이 하나의 진리로 정립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예술작품은 숨겨져 있는 진리를 드러내는 ‘탈은폐’(알레테이아)의 과정이며,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로 고흐의 「농부의 구두」라는 작품과 그리스 신전의 석상, C.F. 마이어의 「로마의 분수」라는 시를 예로 들어 보인다. 이러한 과정에서 하이데거는 예술작품 속에 존재자 진리가 스스로를 작품 속으로 정립함으로 보여준다.

고흐의 「농부의 구두」. 고흐는 더 이상 신을 수 없을 것 같은 낡은 구두 그림을 여러 점 그렸다. 무심히 벗어놓은 듯한 신발은, 신발 주인의 존재를 전달해준다.

네 번째 강의 시간에는 작품과 진리를 주제로 강의가 이어졌다. 세 번째 시간에서는 하이데거가 ‘테크네’(Techne)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포이에시스’(Poiesis), 알레테이아 등의 개념이 동근원적인 개념임을 해명했다. 그리고 창작자는 아직 존재하지 않은 진리를 밖으로 끄집어내어 앞으로 가져오는 자이고, 이들은 그러한 창작의 과정에서 시인의 시적 솟아오름의 상태임으로 해명해냈다. 화가이든 시인이든 창작자는 창작활동 속에서 시인에게 시적 영감이 솟아오르듯 동일하게 존재 진리가 솟아오르는 경험을 하고 이를 통해 창작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이 ‘시적 솟아오름’(Poiesis)으로부터 ‘밖으로 끄집어 앞으로 가져옴’(Techne)이 바로 알레테이아임을 해명해 낸다. 이러한 해명으로부터 하이데거는 예술이 진리를 발원하게 하는 것이자, 예술이 바로 진리론임을 주장한다.

기존 예술철학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시각

이봉호 교수는 강의의 말미에, 하이데거의 <예술작품의 근원>은 예술에 대한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말했다. 즉, 하이데거는 이 책을 통해 서구 철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류를 구원할 새로운 철학적 시각을 제공하고자 했다고 한다. 예술을 진리론으로 본 시각과 예술작품을 진리가 정립되어 있는 것으로 본 시각에서, 기존의 미학과 예술이론들과 달리 예술작품을 전혀 새롭게 해석한 이론을 본 것 같았다. 작가와 작품, 감상자를 진리발생의 사건에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될 것 같았다.

이봉호 교수님의 하이데거의 예술철학 강의 내용은 간단하게 이 정도로 정리된다. 하지만 강의 내용을 정리한 나 자신도 문맥에 맞추어 글을 썼음을 자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이데거의 철학적 사유의 깊이와 독특한 용어에 완전히 접근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감상문을 쓰는 이유는 하이데거 철학의 문턱을 넘어 한 발자국 다가갔다는 자부심과 그가 사용한 철학 용어에 대한 낯설음이 상당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성과도 교수님의 훌륭한 지도의 결과일 것이다.

철학의 힘으로 더욱 더 풍부해지는 ‘예술 향유’

첫째, 둘째 시간에는 같이 수강한 분들도 상당한 교양과 예술적인 소양을 갖춘 분임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읽히지 않는 책”이라는 볼멘소리를 하는 분이 많았다. 하지만 셋째, 넷째 시간에 이르러서는 “이제 읽힌다”고 말하는 수강생도 있었다. 교수님은 매 강의시간에 읽어야 할 분량을 정해주고, 다음 수업시간은 그 부분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수업의 마지막에는 수강생들의 질문으로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기도 했다.

4주간의 짧지만 결코 녹록치 않은 강의였다. 하지만 수강생들은 빠짐없이 출석하였고, 질문들도 다양했다. 아마도 하이데거가 사용하는 독특한 개념들에 대한 이해가 쌓이면서 강의의 내용을 따라갈 수 있었고, 책의 내용도 읽혔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분들이 나의 경우와 비슷하게 이 강의를 기반으로 현대의 다양한 예술철학과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 역량이 배가되었음을 느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려 애를 쓴 이봉호 교수님과 끝까지 수업에 참석하여 수준 높은 질문을 하는 40여 명의 수강생들을 보면서, 철학이 대학 강의실에 갇혀 있지 않고 대중 속으로 들어와 있음을 느끼는 소중한 기회였다. 또 철학에 목말라하고 예술을 향유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그런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간과 강좌가 주변에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 반갑고 고마웠다.

 

글. 김태화(파라북스 대표)

+

예술책 읽기 프로젝트’ 참여자 모집 공고 보기

지금 ‘예술책 읽기 프로젝트’ 4기와 5기에 참여해보세요!

2018 책의 해 특별기획전 – 예술가의 책장

기 간  2018.12.19(수)~2019.03.24(일), 월요일 휴관

시 간  10:00am~6:00pm

장    소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관람료   일반 5천원, 청소년 3천원

참여작가   노순택, 박지나, 서용선, 원성원, 유창창, 이혜승, 정희승

문 의  아람미술관 (031)960-0180 / www.artgy.or.kr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