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 조선의 왕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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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바보 리어>

리어왕이 조선시대의 왕이었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는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말을 했을까? 셰익스피어의 작품 <리어왕>을 한국적으로 재탄생시킨 연극 <바보 리어>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리어(李御)가 모든 것을 다 잃게 되는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선사한다.

방방곡곡 문화공감우수공연 선정작 <바보 리어>

고양문화재단은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와 함께 복권기금 문화나눔의 일환으로 시민들에게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방방곡곡 문화공감’은 지역의 문화 양극화를 해소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자생적 공연을 창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데 기여하고자 기획된 사업이다. 고양문화재단은 지난 6월 문화공작소 ‘상상마루’의 뮤지컬 <캣 조르바>를 민간예술단체 우수공연으로 시민들에게 선보인 바 있으며, 10월에는 역시 민간예술단체 우수공연으로 선정된 극단 ‘진.선.미’의 연극 <바보 리어>를 고양어울림누리 별모래극장 무대에 올린다.

연극 <바보 리어>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번안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히는 <리어왕>은 허울만 믿고 경솔한 판단을 했다가 모든 것을 잃고 끔찍한 파국을 맞는 늙은 왕의 이야기로, 진실의 가치와 인간 삶을 냉혹하게 성찰했다고 평가되며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무대에 오르고 있는 명작이다. 연극 <바보 리어>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원작의 배경을 우리나라 조선 시대로 바꾸어 각색했다는 것이다. 주인공 ‘리어왕’의 이름은 한자로 ‘李御’다.

낯선 듯 친밀하게 관객에게 다가간다

원작 <리어왕>의 배경은 1600년대 초의 영국으로, 봉건주의 시대에서 신흥자본주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의 절대왕조시대 정도. 봉건주의 시대와 절대왕조시대가 모든 면에서 일치하진 않지만, 한 명에게 절대 권력이 부여되었던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 오랫동안 절대 권력을 쥐고 있는 두 시대 왕의 정서에는 분명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게 연극 <바보 리어>의 출발점이라고 연출을 맡은 최영환 교수(동국대학교 공연예술학과)는 설명한다.

“서양의 재료 즉, 텍스트를 한국 전통의 방법으로 요리해서 색다른 맛을 구현해보고자 하는 연출적 욕구에서 각색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전통의 화법, 움직임, 소리, 무대, 의상 등을 활용해 관객에게 ‘낯선 듯 친밀한’ 연극으로 느껴지게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무대 의상은 극적인 전개를 돋보이게 하도록 강렬한 원색을 사용해 제작됐으며, 배경음악과 무대전환 음악으로 사용된 열네 곡의 음악은 한국 전통악기와 선율을 활용한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극을 위해 새롭게 창작되었다.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산다는 것은 진정 무슨 의미인가?
What does it really mean that a human being lives?”

이 연극은 모든 것을 다 가진 한 인간이 그 모든 것을 다 잃게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리어는 갖고 있던 권력, 영토, 집, 가족, 친구(충신), 심지어는 영혼까지도 빼앗겨 파멸하고 만다. 작품 <바보 리어>는 ‘왕’의 비극이 아니라 ‘인간’ 리어의 비극적인 모습을 현미경으로 조명한다는 것이 연출자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인간 리어의 비극은 무엇일까? 신과 같은 절대 권력의 자리에 있다가 두 딸에게 배신당하고 모든 권력과 영토를 잃어버린 것이 그의 비극일까? 그것보다도 마지막 순간까지 두 딸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 그로 인한 고통과 광기, 그리고 고독 속에서 살다가 죽는 것이 더 큰 비극일 것이라고 최영환 교수는 이야기한다.

“단지 숨을 쉬고 있다고 해서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영혼을 죽이는 죽음의 세력에 지배된 삶 역시 살아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죽음의 세력이란, 독선과 아집, 성마름, 권력욕, 탐욕, 증오, 분노, 질투, 고독 등을 꼽을 수 있죠. 반대로 진정한 삶이란 ‘생명’에 지배를 받는 삶입니다. 그러니 리어는 살아 있어도 산 게 아니었다고 할 수 있죠.”

진짜바보와 가짜바보, 우리는 과연 어떤 바보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리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진정한 삶으로 살고자 자신의 모든 권력과 영토를 두 딸에게 내어 주었으나 자신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고통을 받으며 파멸하고 만다. 결국 리어는 분노와 증오, 저주와 광기, 고통과 고독의 노예가 되어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였기에 비극의 주인공인 것이다.

“작품에는 두 가지 유형의 바보가 등장합니다. 진짜 바보인 바보광대(원작 이름: Fool), 그리고 가짜 바보인 리어(李御)와 고지식 대감(원작 이름: 글로스터)이죠. 진짜 바보인 바보광대는 역설적이게도 세상 이치를 꿰뚫어 보는 안목이 있어요. 그래서 리어의 어리석음을 꾸짖기도 하고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때론 그의 슬픔을 위로하고 조언을 해주기도 합니다. 가짜 바보인 리어와 고지식 대감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리어는 독선과 아집으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결국 자신을 비극으로 내몰았기 때문에 작품 제목을 <바보 리어>로 붙였습니다. 우리도 이 둘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불행히도 대부분이 가짜 바보이지 않을까요? 진짜 바보가 되는 순간이 잠깐 있을 수도 있겠지만요.”

 

글. 김도란(객원기자)

연극 <바보 리어>

기 간 10.5(금) 7:30pm, 10.6(토) 5:00pm

장 소 고양어울림누리 별모래극장

관람료  전석 3만원

대    상  만 7세 이상

문 의  1577-7766 / www.artg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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