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깔스러운 입담, 풍부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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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책 읽기 프로젝트 4기
손철주 <흥,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 함께 읽기

어느 날 내가 일하는 도서관 옆 미술관의 ‘흥’나는 전시 기획자가 찾아왔다. 그녀는 책의 해를 기념하여 ‘예술책 읽기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는 근사한 제안을 했다. 오는 연말 미술관에서 개최할 ‘2018 책의 해 특별기획전 – 예술가의 책장’ 연계 프로그램이었다. 통 큰 기획자답게 일정도 길고, 내용물도 풍성하고, 짜임새도 탄탄해서 기꺼이 응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미술관의 ‘흥’ 많은 기획자 덕분에 ‘예술책 읽기 프로젝트’ 4기의 가장 어려운 숙제(?)인 후기를 쓰게 되었다.

음악은 소리가 있는 그림, 그림은 붓이 퉁기는 음악

고양문화재단이 기획하고 아람누리도서관이 함께하는 ‘예술책 읽기 프로젝트’의 네 번째 책 <흥,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는 미술평론가 손철주의 강연집이다. 저자가 나를 위해 단독 강의를 해주는 기분을 느끼며 앉은 자리에서 완독했다. 작가의 맛깔스러운 입담과 풍부한 그림들이 시선을 끌어당기고 몰입하게 만들었다.

《흥,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는 2015년 여름 두 달 동안 재계 CEO들과 함께 옛 그림과 옛 음악을 공부하는 자리에서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그는 책에서 옛 그림과 국악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옛 그림과 옛 소리가 어떻게 만나서 얼마만큼 잘 어우러지는지를 이야기한다. “음악은 ‘소리가 있는 그림’이요, 그림은 ‘붓이 퉁기는 음악’”이라고 말하며 그림과 음악이 어우러져 만든 조화와 상생의 시너지를 짚어낸다.

우리 옛 그림 속에 음악이 들어와 앉은 양식

왼쪽부터 이경윤의 「월하탄금」, 김홍도의 「생황 부는 소년」, 한선국의 「허유와 소부」

책은 우리 옛 그림 속에 음악이 들어와 앉은 양식을 ‘은일’(隱逸)과 ‘아집’(雅集)과 ‘풍류’(風流)의 세 가지 갈래로 구분해서 이야기한다.

첫 번째 주제 ‘은일’은 숨어 사는 옛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은일에 관한 그림에는 이경윤(李慶胤) 「월하탄금」(月下彈琴)의 주인공인 도연명처럼 홀로 음악을 즐기는 은사들이 등장한다. 산수를 거닐며 음악을 듣고 연주하기도 하고, 속세의 번다함을 떠나 자기만의 세계에 탐닉하는 장면들도 있다. 세상 사람과의 절교, 생황을 불면서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된 주나라의 왕자 진처럼 세상 시비와의 절연 등이 소재가 되기도 하며, 수양과 명상 그리고 자연과 독대하는 깊은 성찰의 순간 등이 묘사된 그림들을 소개한다.

두 번째 주제 ‘아집’은 아름다운 모임을 일컫는 말인 동시에 그 모임에 들 수 있는 고아한 선비의 풍경을 뜻한다. 마음이 맞는 친구 혹은 선후배들이 서로를 방문하거나, 초대하거나 하면서 시(詩), 서(書), 화(畵)를 즐기고 술과 음악을 곁들여 교유하는 장면들이 주로 등장한다. 사사로운 교제와는 달리 공식화된 연회도 나온다. 관리나 양반 계층의 나라 또는 집안 행사에는 춤과 노래와 연주가 반드시 동반된다.

세 번째 주제 ‘풍류’는 여러 갈래의 뜻으로 확장되었는데, 음악 자체를 지칭하는 말이 되기도 하고, 이른바 ‘농탕한 놀음놀이’를 풍류의 다른 얼굴로 이해하는 부류까지 있다. 풍류의 의미는 세월이 갈수록 변질되었지만 진정한 의미는 ‘잘 놀자’이다. ‘풍류’에서는 남녀상열지사나 유흥을 위한 곁들이로 동원된 그림과 음악을 다룬다.

2018 책의 해 기념 프로젝트를 응원하며…

<흥,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의 저자 손철주가 ‘예술책읽기 프로젝트’ 4기에서 강의 중이다.

이 책에는 「월하탄금」 외에도 한선국의 「허유와 소부」, 김홍도의 「생황 부는 소년」 등 60여 점의 옛 그림과 「백설양춘」(白雪陽春), 「영산회상」(靈山會相), 거문고, 생황, 비파 등의 음악이 서로 스며들어 조화를 이루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손철주 평론가만의 맛깔스런 해설을 듣다 보면 어느새 그림을 보는 눈이 뜨이고, 음악을 듣는 귀가 열리는 것 같은 ‘흥’이 생긴다.

올해는 책의 해다. 도서관 옆 미술관의 ‘흥’나는 전시기획자가 책의 해를 기념해 마련한 ‘예술책 읽기 프로젝트’가 이제 마지막 5기[10월 20일~11월 10일 / 채효영의 <악의 이미지>(출간예정) 함께 읽기]를 남겨두고 있다. 미술관의 ‘흥’ 많은 기획자 덕분에 쓰게 된 ‘예술책 읽기 프로젝트’ 4기에 관한 후기를 이제 갈무리해도 되는 신나는 지점에 도착했다. 미술관 옆 도서관, 도서관 옆 미술관이 함께하는 2018 책의 해 기념 ‘예술책 읽기 프로젝트’가 끝까지 신명나게 진행되기를 바란다.

 

이선화(아람누리도서관 사서)

미술관 옆 도서관도 가보자!

아람누리도서관 문화예술 프로그램 소식

옛 그림과 옛 음악의 시공간을 훌쩍 뛰어 넘어 미술관 옆 도서관으로 가보자! 그곳에도 ‘은일(隱逸)’과 ‘아집(雅集)’과 ‘풍류(風流)’가 있다.
미술관 옆 도서관에 예술자료실이 생기자 악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찾아온 악기는 만돌린이었다. 경쾌하게 솟은 뒤태가 아름다워 절로 손이 가게 만드는 만돌린은 20여 년 전 일본에서 유학했던 한 사람의 청춘을 기억하고 있다. 두 번째로 들어온 악기는 바이올린이다. 악기 케이스를 연 순간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어머나’ 하고 감탄할 정도로 손때가 제대로 묻은 바이올린은 지금은 대학생이 된 한 아이의 유년 시절을 품고 있다. 이탈리아, 러시아, 미국을 여행한 여행자의 가방 속에서 나온 네 개의 오카리나도 들어왔다.

배우려고 구입했다가 엄두를 못 냈다는 새 기타까지 선물을 받고 나니 악기들의 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각각의 소리가 궁금했고, 네 악기의 앙상블도 궁금했다. 무엇보다 귀한 악기를 선뜻 내어준 네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악기가 품은 이야기’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옳거니! 네 명의 악기 주인과 네 명의 연주자를 모시고 이야기가 있는 콘서트를 진행하면 되겠구나. 연주자는 누구를 모실까? 소소한 자리지만 네 사람의 인생이 담긴 악기를 정성스럽게 연주해 줄 사람이면 좋겠는데. 도서관으로 이사 온 만돌린, 바이올린, 오카리나, 기타를 위한 집들이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오랜 기간 ‘은일’했던 악기들이 ‘아집’한 곳에서 ‘풍류’의 원류가 되는 ‘흥’ 나는 상상을 하고 있다.

예술자료실에서는 책으로도 말을 건넨다. 자료실 정중앙에 자리 잡은 거대한 화보대 위에는 조선의 풍속화부터 유럽의 인상파까지 다양한 화집과 사진집을 전시하여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우리 도서관 예술 디렉터는 매월 주제가 있는 북 큐레이션도 제공한다. 이번 달에는 ‘월간 미술’이 뽑은 예술책 50선을 전시하고 있으며, 곧 개봉할 영화 중에는 예술과 문화의 세계를 담은 영화 <타샤 튜터>, <파이널 포트레이트>,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맥퀸>, <호밀밭의 반항아> 등 다섯 편도 함께 추천하고 있다.

예술을 매개로 밀도 있는 토론을 위한 예술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 6월에 시작한 첫 번째 북클럽에서는 ‘예술의 문 앞에서’라는 주제로 너머학교의 <관찰한다는 것>, <탐구한다는 것>, <본다는 것>, <그린다는 것>을 함께 읽으며 예술의 기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예술을 전문가의 관점에 기대어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을 위해 나만의 관점으로 관찰하고, 탐구하고, 보고, 그리는 것의 의미를 다시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첫 번째 북클럽에 참여한 사람들은 ‘예술의 길목’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책을 읽고 있다. 올해 안으로 세 개의 북클럽을 더 만들려고 한다. 예술철학, 디자인, 예술 테라피 관련 북클럽을 진행해줄 클럽장을 찾기 위해 서가 사이를 맴돌다가 드디어 원하는 책을 발견했다. 역시 답은 책 속에 있다. 젊은 예술 책 저자 두 명을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쳤다. <예술은 어떻게 거짓이자 진실인가>의 작가 조경진과 <어쩌다 디자인>의 작가 장영진이 곧 우리 도서관에서 ‘아집(我執)’이 아닌 ‘아집(雅集)’을 만들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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