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소년, 조선인 중공군이 된 소년, 인민군 군의관이 된 소년, 전쟁고아 순이, 제주도 해녀 명이, 만주 위안소 식모 막이 등 우리 근현대사의 아픈 순간을 겪어낸 아이들이 승우를 바라보고 있다.
또한 주제적인 측면에서도 <썬샤인의 전사들>은 이들의 전작 <뺑뺑뺑>에서 보여주었던 반복되는 역사에 대한 반성적인 시각과 <뻘>에서 드러났던 죄책감과 부채 의식(이는 극중 <침묵>이라는 승우의 소설을 낭독하는 장면을 통해 직접적으로 인용되기도 한다) 등 그동안 작가 김은성이 꾸준히 천착해온 문제의식을 종합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흥미롭다. 특히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거시적인 관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썬샤인의 전사들>은 <뺑뺑뺑>과 상당히 비슷한 맥락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2014년 서울로부터 출발한 <뺑뺑뺑>은 1937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는 조선인들의 기차, 월남파병선, 뉴타운 철거촌, 한국전쟁 직후의 환도열차, 구한말 왕궁 등 한국사 이면의 다양한 공간을 무대 위에 펼쳐내었고, 등장인물 역시 10개가 넘는 역할을 수시로 바꾸며 반복되는 악연을 보여주었다. ‘뺑뺑뺑’이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돌고 도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우리 민족의 비극을 되풀이되는 이미지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전작의 주제인 동시에 형식이었다면, 3년 뒤에 완성된 <썬샤인의 전사들>은 단순히 반복되는 역사의 비극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 속에 우리에게 남겨진 책임과 트라우마, 그리고 그 속에서 예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작가의 비전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썬샤인의 전사들>에는 홀로 돋보이는 주인공이 없다. 대신 여러 시대를 관통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장면과 장면이 동시에 맞물리는 등 시공간의 교차가 잦은 작품인 만큼, 배우들의 호흡과 앙상블, 그리고 각자의 존재감이 무엇보다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새라새 스테이지에서는 유성주, 성여진, 권태건, 곽지숙, 전석찬, 이지혜, 조재영, 노기용, 박주영, 신정원, 김정화, 한기장, 박세인 등의 배우가 출연해 씨줄과 날줄처럼 이어진 우리 근현대사의 아픈 순간들을 생생하게 구현한다.
글. 김주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 두산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