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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썬샤인의 전사들>

시대와 사회를 바라보는 젊은 연극인들의 시선에 주목하고자 하는 2018 새라새 스테이지가 <소설가 구보氏와 경성사람들>에 이어 두 번째로 선택한 작품은 김은성 작, 부새롬 연출의 연극 <썬샤인의 전사들>이다. 2016년 두산아트센터에서 초연된 <썬샤인의 전사들>은 우리 근현대사의 아프고 쓰라린 순간들을 관통하면서 ‘거대 관점’으로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한 광활한 스케일의 서사물이다. 초연 당시 관객과 평단의 뜨거운 호평을 받으며 차범석 희곡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두 명의 메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시대를 관통하며 수많은 인물들을 공동의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작품이다 보니, 연출적으로 다채로운 공간 활용, 허를 찌르는 인물의 등장과 동선 등 무대성과 연극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기억과 양심을 일깨우는 노크 소리

작가 승우는 사고로 잃었던 딸 봄이를 꿈에서 만난 뒤, 작은 수첩에 얽힌 여러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게 된다.

<썬샤인의 전사들>에서 시간의 흐름은 극중 내레이터 역할을 맡고 있는 작가 승우의 현실, 동시대 대한민국에서부터 시작한다. 소설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승우는 뜻밖의 사고로 아내와 어린 딸을 잃고 깊은 슬픔에 잠겨 절필한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서 딸 봄이를 만난 뒤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3년 만에 다시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썬샤인의 전사들>은 작가 승우를 찾아온 ‘갇혀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이고, 동시에 우리가 잊고 있던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똑, 똑, 똑똑…. 막이 오르면 암전으로 사방이 캄캄한 가운데 어디서부터인가 또렷한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암호 같기도 하고 모스 부호 같기도 한 이 노크 소리는 극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끊임없이 되풀이되며 극중 인물들을 불러내고, 극중 화자이자 작가인 한승우에게 과거를 환기시키며, 관객들에게도 각성의 기호로 작용한다. 사실 <썬샤인의 전사들>은 그 자체로 이 노크 소리와 같은 연극이다. 때로는 부끄럽고, 때로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파서 어둠 한 구석에 묻어놓았던 역사와 현실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길어 올리면서, 관객의 기억과 양심을 일깨운다.

<썬샤인의 전사들>의 이야기는 소년병 나선호의 작은 수첩으로부터 시작한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제주 소년 나선호는 4.3사건을 거치며 가족을 잃은 뒤, 카투사 병사가 되어 한국전쟁에 투입된다. 그는 짬이 날 때마다 수첩 속에 이야기를 적으면서 작가의 꿈을 키우지만, 결국 폭격 속에 죽음을 맞이하고 그의 피 묻은 수첩은 화가를 꿈꾸던 조선인 중공군 강호룡의 손을 거쳐 문학소녀 출신의 인민군 군의관 송시자에게 이른다.

그 과정 속에서 나무상자에 갇혀 있는 전쟁고아 순이, 제주도 동굴 속에서 잠든 어린 해녀 명이, 만주 위안소의 식모 막이, 작가가 꿈이던 카투사 소년병 선호와 화가가 되고 싶던 조선족 중공군 호룡, 시를 쓰는 인민군 군의관 시자 등 여러 아이들의 이야기가 승우의 소설로 펼쳐진다. 이처럼 <썬샤인의 전사들>은 작은 수첩이 사람들의 손을 돌고 돌아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는 과정을 그리면서, 동시에 일본군 위안부와 제주 4.3사건, 6.25전쟁과 공산당 색출운동, 군부독재 시대, 그리고 세월호(극중에서는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건물 붕괴 사고로 그려지고 있다)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가슴 아픈 순간들을 파노라마처럼 무대 위에 펼쳐 보인다.

작은 수첩이 환기시키는 예술의 임무

작은 수첩은 사람들의 손을 돌고 돌아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시킨다.

특히 극 초반에 등장하는 작가 지망생 선호 이야기와 화가 지망생 호룡의 그림, 그리고 시자의 시가 적힌 낡은 수첩은 시자의 동생 시춘에게 이르러 하나의 이야기를 위한 ‘모티브’가 되고, 결국 시춘의 제자이자 작품의 화자인 한승우의 손을 거치며 비로소 완결된 이야기로 완성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역사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지, 또 예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선호와 호룡, 시자와 시춘, 그리고 승우는 모두 이 굴곡진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내면서 시대의 흔적을 자신만의 언어(시, 소설, 그림)로 기록하고자 했던 인물들이다. 이들 모두가 작가나 화가를 꿈꾸던 아이들이었다는 점은 무언가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방식으로서 ‘예술’의 임무와 가치를 은유적으로 드러내준다. 또한 파란만장한 곡절 속에서도 결국 승우의 손에까지 이어진 ‘낡은 수첩’은 한 세대에서 다시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결코 끊기거나 사라지지 않는 예술의 생명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공연은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의 돌출무대를 사용해, 다양한 역사적 시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건과 인물의 풍경들을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이와 함께 객석을 무대공간으로 확장하는 새라새극장의 공간적 특성을 살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그들’의 역사가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의 역사임을 관객에게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한다.

우리말의 연극성에 대한 탐구

또 한편으로 <썬샤인의 전사들>은 작가 김은성과 연출가 부새롬을 중심으로 한 극단 달나라동백꽃이 그동안 걸어온 행보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2011년 김은성과 부새롬, 그리고 이들과 뜻을 같이 하는 젊은 배우들을 중심으로 결성한 극단 달나라동백꽃은 새롭고도 신선한 연극적 시도들과 다채로운 채널을 이용한 연극 활동으로 연극계의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는 극단이다. 초기 대표작인 <달나라연속극>을 비롯해 <뻘>, <로풍찬유랑극장>, <파인땡큐앤드유>, <아이엠파인투> 등 많은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고, 2012년 팟캐스트 최초의 희곡낭독방송 ‘희곡을 들려줘!’를 개시, 무대를 넘어 관객과 만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기도 했다.

극단 달나라동백꽃은 그간 꾸준히 ‘우리말’에 대한 연구와 애정을 쏟아오면서 우리말 고유의 음색과 정서를 무대언어로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들은 특히 역사와 지역을 아우르며 우리말의 시대성과 지역성을 되살리는 데 관심을 가져왔으며, 이러한 관심은 체홉의 <갈매기>를 1980년대 전남 벌교를 배경으로 풀어낸 <뻘>, 류보미르 시모비치의 <쇼팔로비치 유랑극단>을 1950년대 전남 보성의 한 마을로 가져온 <로풍찬유랑극장> 등의 작품에서 각기 맛깔스런 사투리와 정감 있는 언어로 뚜렷한 성과를 보여준 바 있다.

이들이 한동안 꾸준히 했던 팟캐스트 방송 ‘희곡을 들려줘!’ 역시 희곡 언어와 말에 대한 이들의 관심을 보다 적극적인 형태로 실천한 활동이라 할 수 있다.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흘러나오는 배우들의 희곡 낭독은 ‘보이는’ 연극이 아닌 ‘들리는’ 연극으로서 관극의 재미를 새삼 일깨워주었으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연극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이렇듯 우리말, 특히 무대 위의 우리말에 대한 극단 달나라동백꽃의 관심은 이 작품 <썬샤인의 전사들>에 이르러서는 제주소년 나선호와 조선족 소년 강호룡, 그리고 부산소녀 송시자 등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을 배경으로 살다간 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시대와 지역의 우리말을 다채롭게 담아내는 노력으로 드러나고 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근현대사

제주 4.3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소년, 조선인 중공군이 된 소년, 인민군 군의관이 된 소년, 전쟁고아 순이, 제주도 해녀 명이, 만주 위안소 식모 막이 등 우리 근현대사의 아픈 순간을 겪어낸 아이들이 승우를 바라보고 있다.

또한 주제적인 측면에서도 <썬샤인의 전사들>은 이들의 전작 <뺑뺑뺑>에서 보여주었던 반복되는 역사에 대한 반성적인 시각과 <뻘>에서 드러났던 죄책감과 부채 의식(이는 극중 <침묵>이라는 승우의 소설을 낭독하는 장면을 통해 직접적으로 인용되기도 한다) 등 그동안 작가 김은성이 꾸준히 천착해온 문제의식을 종합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흥미롭다. 특히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거시적인 관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썬샤인의 전사들>은 <뺑뺑뺑>과 상당히 비슷한 맥락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2014년 서울로부터 출발한 <뺑뺑뺑>은 1937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는 조선인들의 기차, 월남파병선, 뉴타운 철거촌, 한국전쟁 직후의 환도열차, 구한말 왕궁 등 한국사 이면의 다양한 공간을 무대 위에 펼쳐내었고, 등장인물 역시 10개가 넘는 역할을 수시로 바꾸며 반복되는 악연을 보여주었다. ‘뺑뺑뺑’이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돌고 도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우리 민족의 비극을 되풀이되는 이미지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전작의 주제인 동시에 형식이었다면, 3년 뒤에 완성된 <썬샤인의 전사들>은 단순히 반복되는 역사의 비극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 속에 우리에게 남겨진 책임과 트라우마, 그리고 그 속에서 예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작가의 비전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썬샤인의 전사들>에는 홀로 돋보이는 주인공이 없다. 대신 여러 시대를 관통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장면과 장면이 동시에 맞물리는 등 시공간의 교차가 잦은 작품인 만큼, 배우들의 호흡과 앙상블, 그리고 각자의 존재감이 무엇보다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새라새 스테이지에서는 유성주, 성여진, 권태건, 곽지숙, 전석찬, 이지혜, 조재영, 노기용, 박주영, 신정원, 김정화, 한기장, 박세인 등의 배우가 출연해 씨줄과 날줄처럼 이어진 우리 근현대사의 아픈 순간들을 생생하게 구현한다.

 

글. 김주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 두산아트센터

썬샤인의 전사들

일 시  11.28(수)~12.1(토), 평일 7:30pm 토요일 3:00pm

장 소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

대 상  중학생 이상 (중학생 미만 입장불가)

관람료  전석 3만원

문 의  1577-7766 / www.artg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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