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상상력으로 비튼 기발한 평강공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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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이름이 곧 신뢰의 브랜드로 자리 잡은 집단이 있다. 14년의 역사를 가졌지만 여전히 젊고 에너지가 넘치며 기발하고 또 짜임이 탄탄하다. 실컷 같이 웃다가 눈시울이 붉어지고, 그러다 다시 흥겨운 발걸음으로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게 만드는 이들. 고양문화재단 상주단체이자 대한민국의 대표 젊은 창작집단인 ‘공연배달서비스 간다’가 공연계에 돌풍을 일으키며 자신들을 세상에 알렸던 대표작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를 다시 펼친다.

아름다운 거울로 자신을 비추며 공주가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연이. 그 뒤로 네 발로 기어 다니는 정체불명의 한 소년이 보인다.

조연에 포커스를 맞춘 고전 비틀기?

12월 15일(토)부터 22일(토)까지 새라새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고구려의 설화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 이야기를 기막히게 뒤집는다. 울보 아이에서 강단 있는 여자로 성장해 볼품없던 한 남자를 장군으로 탈바꿈시킨 평강공주도, 고구려 대표 바보에서 의연한 장수로 변신에 성공한 온달도 이 작품 주인공에서는 탈락. 평강공주 옆에서 그녀가 지닌 값비싼 옷과 아름다운 장신구들에 넋이 빠져 시시때때로 슬쩍 훔치는 허영심 많고 손버릇 안 좋은 가상의 시녀 ‘연이’에게로 시선을 옮겨 본다.

그날도 연이는 평강공주의 예쁜 거울을 훔쳐 숲 속 자신만의 아지트로 도망쳐 나왔다. 아름다운 거울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자신을 비춰보며 어느덧 자기도 평강공주가 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는 거울공주 연이. 이미 훔쳐 둔 공주의 옷을 입고 한껏 ‘거울 속 내 모습’에 빠져 있다가 스르르 잠이 들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네 발로 기어 다니는 정체불명의 한 소년이 그녀를 발견한다. 잠에서 깨어나 이 소년을 보고 깜짝 놀라는 연이와, 사람 없는 숲에서 자라나 동물처럼 소리 내는 야생소년의 만남. 둘의 앞날은 어떻게 펼쳐질까.

주연이 아닌 조연에 포커스를 맞춘 고전 비틀기는 여러 작품에서 흥미로운 시도로 행해져 왔다. <춘향전> 속 성춘향과 이몽룡의 충실한 ‘사랑의 작대기’였던 방자를 야망 넘치는 멋진 사내로 탈바꿈한 영화 <방자전>도 있고, 효녀 심청의 아비로 앞을 보지 못하는 심학규 곁에서 온갖 요사스런 악행을 통해 사리사욕을 채웠던 뺑덕어멈을 사랑에 목마른 팜파탈로 등장시킨 영화 <마담 뺑덕>도 있다. 원작에서는 못된 변학도가 허망한 인생 속 애잔한 사랑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뮤지컬 <인당수사랑가> 역시 큰 사랑을 받았고, 동화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는 조조조연 쯤으로 등장할 뿐 오히려 원작에선 잠깐 등장하는 마녀를 내세워 판타지물로 풀어낸 뮤지컬 <위키드>는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메가 히트를 기록한 웰메이드 뮤지컬로 손꼽히기도 한다.

그 가운데서도 <거울공주 평강이야기>가 오랜 시간 사랑을 받는 이유는, 주연으로 나선 조연들의 면면이 슈퍼 히어로처럼 초인적이지도 않고 치명적인 매력을 소유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과 너무나 닮아 절로 마음이 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극 중 사회자도 너무나 평범하고 어쩌면 평균 이하일 수도 있는 계급의 시녀가 주인공으로 나선 것에 대해 “주인공이 특이하다, 그런데 재미있지 않냐”고 할 정도인데 그 말을 기꺼이 믿어도 좋다. 놀랍게도 그 점이 이 작품의 첫 번째 매력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곧 음악, 몸짓이 곧 무대

두 번째 매력은 ‘휑한’ 무대를 가득 채우는 배우들의 아크로바틱과 아카펠라다.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아무 것도 없는 무대에 배우들이 등장하면, 순식간에 나무가 서고 숲이 펼쳐지며 동굴이 생겨나고 덫이 놓인다. 이 작품을 쓰고 직접 연출까지 한 민준호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시절 수업과제로 만든, 배우들이 직접 환경을 만드는 20분짜리 단막극에서 <거울공주 평강이야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배경을 그들의 몸으로 직접 만들어내는 것에서 나아가 각종 음향효과, 노래도 아카펠라의 아름다운 하모니로 만들어낸다. 아무것도 없지만 그 무엇도 나타날 수 있는 무한한 상상력의 실현 무대, 어린 아이부터 어르신 관객들까지 남녀노소에게 장벽 없이 다가가 사랑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공연장에 처음 들어서면 ‘대체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무대에서 뭘 보여주겠다는 건지’ 의아할 수도 있다.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은 오롯이 배우들의 신체를 이용해 배경과 소품을 만들고 소리를 빚어내며 무대를 가득 채운다.

간결하고 다양한’ 매력을 지닌 극단 ‘간다’

극단명 치고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이하 ‘간다’)라는 이름은 참으로 특이하다. 하지만 이들처럼 자신들이 모인 목적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그 뜻을 잘 이뤄내고 있는 단체도 없다. 하나의 학교 과제에서 성장해 화제작으로 떠오른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의 본격 대학로 입성을 위해 2004년 극단이 만들어진 이후 현재까지 이 작품을 전국 방방곡곡 다양한 관객들에게 배달해주고 있는데, 그 횟수가 무려 200여 회에 달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를 향한 러브콜은 해외에서도 이어져 중국, 미국의 뉴욕과 LA에서도 박수를 받았고 2017년 여름에는 세계 최대의 공연예술축제인 에딘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무대에도 서서 한국 창작극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고 왔다.

‘간다’가 지닌 또 다른 뜻인 ‘간결하고 다양한’ 다른 작품들, <나와 할아버지> <유도소년>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등이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아온 이유는 다양한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탄탄한 구조로 풀어냈다는 점과 동시에 그 이야기를 전하는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력이 있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간다’의 배우들이 유독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을 누비는 대중스타로 부각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범죄도시>에서 주인공 장첸의 부하 위성락으로 등장, 소름 돋는 악역으로 제28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진선규는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의 초대 야생소년으로 무려 4년 동안 전국 각지 공연을 다녔고, 이후에도 꾸준히 야생소년이 되기를 멀리하지 않고 있다. 다년간의 노하우로 더벅머리에 네 발로 기어 다니는 야생소년 분장을 직접 할 정도라고.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는 배우 이희준 역시 야생소년 역으로 분해 관객들을 만난 적이 있으니, 눈썰미 좋은 관객이라면 이번에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를 보며 미래의 스타를 점찍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대학생들의 학교 과제로 시작된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는 대학로에서 본격적으로 공연되면서 작품성과 재미를 동시에 인정 받았다. 국내에서는 물론, 중국과 미국 뉴욕, LA에 이어 2017년 여름에는 세계 최대의 공연예술축제인 에딘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무대에서 그 매력을 선보였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구는 오랜 시간 마주했을 때 발견하는 대상의 아름다움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리라. 한눈에 시선을 앗아가는 도드라진 매력이 없다 해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편견 없는 시선으로 정성껏 바라본다면 누구라도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라는 삶의 메시지를 함께 내포한 것이 아닐까. 아름다운 거울의 틀 안에 자신을 억지로 가두었던 연이가 야생소년의 조건 없는 사랑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찾아가게 될지, 이 작품 속에, 우리들 마음속에 이미 담겨 있는 그 방법을 ‘오래 보아’ 찾아보자.

 

글. 황선아(공연칼럼니스트)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일 시  12.15(토)~12.22(토), 수목금토일

시 간  평일 8:00pm, 토 3:00pm 7:00pm, 일 3:00pm

장 소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

대 상  초등학생 이상 (미취학아동 입장불가)

관람료  전석 2만원

문 의  1577-7766 / www.artg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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