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가을과 강의실은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닙니다. 가을은 강의실 벽과 담장너머 깊고 화려한 색의 향연으로부터 눈을 돌리기 힘든 계절이기 때문이죠. 네모난 공간에 머물러 있기엔 가을은 너무나 유혹적인 시간입니다. 그렇게 주말마다 가을의 속살을 만나러 산과 바다로 다니던 중이었습니다. 지인으로부터 미술사 관련한 좋은 강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고양문화재단에서 시민을 위해 준비한 ‘예술책읽기 프로젝트’라며 함께 수강하자는 지인의 권유에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나들이로 가을의 외연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숙성과 결실’이라는 가을 내면의 속성을 제대로 향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토요일 아침 10시 꽤 이른 시간임에도 고양아람누리 아람마슬의 음악감상실에는 50여 명의 참가자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악의 이미지> 함께 읽기’라는 주제로 채효영 선생님이 풀어주시는 미술사 강좌였는데, 작품에 얽힌 서양문화의 광기와 욕망, 악의 이미지를 살펴보는 강의였습니다. 인간의 삶을 제한하는 관습과 규제, 그것을 반영하거나 혹은 그에 저항하여 자유정신을 보여주는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를 살펴봄으로써 왜 자연과 여성이 악의 원천으로 간주되었는지를 고찰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다른 공부 모임에서 그리스로마 신화, <일리아스> <오딧세이아> <변신이야기>를 거쳐 현재 단테의 <신곡> 수업을 듣고 있는 중이었기에, 내용이 연계되어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서양문화가 보여주는 세계관은 이분법적 세계관입니다. 인간과 자연, 정신과 육체, 남성과 여성을 분리하는 이분법의 세계에서 인간은 자연(여성)을 정복 또는 배척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예측 불가한 자연은 통제가 불가능하므로 타자이고 공포의 대상인 것처럼 남성 중심 문화 속 여성도 그러한 존재인 것이었죠. 여성을 통해 가능했던 섹스와 생식은 인간이 자연에 속해 있다는 결정적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10월 20일부터 11월 10일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펼쳐진 총 4회의 강좌를 들으면서 저는 인간 심연에 잠재된 본성과 모순, 그것에서 기인된 비극의 원형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인류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외국인·여성 혐오, 전쟁과 학살의 근원적 공포에 대해 생각해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서양예술에서 자연과 여성은 왜 악의 이미지로 여겨졌을까? ‘예술책읽기 프로젝트 5기’ 의 수업 모습(좌)과 에두아르 마네의 「올림피아」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