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날들 훌훌 털고 애써 웃어 보이는 얼굴, 바로 그 소리
장사익을 잘 모른다면 그가 부르는 시의 영역을 판소리 정도로 한정하여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의 노래를 한 번이라도 들어봤다면 국악 뿐 아니라 재즈, 클래식, 대중가요까지 음악의 장르와 요소를 경계 없이 오고 가며 자신의 목소리로 엮어내는 장사익에 놀랄 것이다. 장르가 무엇이든 간에 음과 가사에 영혼을 자유로이 실은 까닭이다. 장벽 없이 대중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동시에 곡의 정서를 배가시키는 놀라운 편곡은 장사익이 부르는 대중가요의 품격을 더욱 높인다. 「대전블루스」에서 ‘잘 있거라, 나는 간다’는 그의 절절한 목소리와 함께 이별의 쓰라림을 풀어내는 건, 쓸쓸한 발걸음 같은 기타와 더블베이스의 뚱땅거림이다. 아련한 피아노 선율은 적적히 돌아서는 이별자의 그림자를 토닥인다.
대중가요 뿐 아니라 그는 평소 시집을 가까이 두며 시에 운율을 붙여 자신만의 노래로 만드는데 이번 새 앨범에서도 윤동주의 「자화상」 뿐만 아니라 허영자의 「감」, 기형도의 「엄마 걱정」, 곽재구의 「꽃길」이 노래로 탄생했다. 앨범 수록곡 대부분을 장사익이 작곡하는데, 1집에 실린 「찔레꽃」 등에서는 자신의 인생을 노랫말과 음에 실어 내며 작사와 작곡에도 탁월한 창작자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장사익의 소리를 ‘한(恨)’이라 칭하는 이들이 많다. 장사익 스스로도 젊은 날의 말할 수 없는 고생이 지금의 노래를 만들었다 말한다. 하지만, 장사익의 소리는 원망 가득한 ‘한’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지만 그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힘겨웠던 날들의 자신과 이웃을 토닥이며 훌훌 털고 애써 웃어 보이는 얼굴이 바로 장사익의 소리다. 한국의 정서와 통할 수밖에 없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이며 감정의 정화(淨化)다. 그의 노래 가운데 위로에 관한 노래가 특히 많은 것도 그 까닭이겠다. 실제로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나 유명인사들의 장례식장에서 노래로서 떠나는 고인을 안으며 슬픔을 달랬다. 얼마 전에는 친동생이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동생만을 위한 작은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삶과 노래가 다르지 않은 장사익의 모습이겠다.
이번 고양아람누리 공연은 새 앨범의 수록곡은 물론 「찔레꽃」 「대전 블루스」 「봄날은 간다」 「님은 먼곳에」 등 장사익의 대표곡으로 가득 채워져 더욱 기대가 된다. 올해 새 앨범 『자화상』과 함께 자신의 인생을, 우리 모두의 인생을 돌아보는 ‘자화상 七’ 전국 투어 공연 중인 장사익이 고양에서 나눠줄 ‘희망 한 단’에는 어떤 힘이 실려 있을까. 오랜 시간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음악감독 정재열을 비롯해 트럼펫, 베이스, 피아노, 드럼 등으로 구성된 밴드는 젊은 관객들의 마음도 사로잡아 왔으니 한 해를 떠나보내는 12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위로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이번 소리판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글. 황선아(공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