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화 배우의 짧게 빡빡 민 뒤통수에서 땀이 주르륵 뒷목을 타고 흐른다. 극중 배경은 한반도 북동쪽에 위치한 인공저수지 장진호, 1950년 11월, 장진호 전투를 앞둔 어느 날이다. 그해 겨울 장진호는 미군 역사상 영하 30도를 밑도는 지독하게 추운 가장 추운 전장이라는 설정이다. 김정화 배우는 제주 출신 15살 미군 카투사 소년병 나선호 역을 맡아 제주도 사투리를 익히고 동시에 어수룩한 영어를 구사했다. 제주도에서 동생 명이를 잃고 장진호 전투에 오기까지 많은 장면을 짧은 시간 안에 소화하기 위해 빠르고 정확하게 호흡을 맞췄다.
배우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직한 몸은 서늘한 극장에서도 마치 3라운드 권투 스파링을 뛴 듯 땀을 흘린다. 객석 200석 가운데 80석가량을 덜어내고 중앙으로 길게 뽑은 무대라, 패션쇼가 그렇듯 정면 외에도 전체를 볼 수 있다. 종종 배우의 뒷모습만 봐야하는 마주보는 객석 구조는 연기를 대하는 배우의 자세가, 뒷모습에서도 얼굴 표정을 짐작할 수 있는 연기력이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등퇴장을 하기에 좁은 무대를 대신해 객석 뒤로 오가는 공간을 내어 앞, 뒤, 좌, 우 어디에서 배우가 등장할지 몰라 긴장감을 더한다. 소극장치고 크고 넓은 새라새극장의 양 옆으로 난 출입구마저 배우가 자유롭게 활용한다. 무대에 설치하지 않은 문을 대신해 극장 출입구를 열고 닫는 설정은 단순한 등장과 다르게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이처럼 제약이 없다시피 한 공간 확보는 연출과 배우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지만 객석에 따라 시야 제한이 커지기 마련이다. 특히 객석 2층에서 사각이 심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를 감안하여 1층보다 훨씬 저렴하게 가격을 낮추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배우 13명이 등장하는 연극은 무대 크기를 고려하기 전에 200~300석 내외의 관객을 수용하는 소극장 수익으로는 순익은커녕 제작비를 감당할 수 없어 민간 기획사가 할 수 있는 기획이 아니다. 중간에 휴식을 두지만 160분이라는 긴 공연시간도 중극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고 낮아 관객이 답답함을 느끼는 소극장에는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젊은 연극인 시리즈는 수많은 소극장용 연극 가운데 가장 길고 배역이 많이 등장하는 두 편(시리즈 1은 <소설가 구보氏와 경성 사람들>)을 고른 셈이다. 대학로와 달리 관객 유치가 고민이겠지만 손에 꼽는 좋은 연극을 지역주민에게 선보이고, 이후 서울 공연과 연계해 작품의 재공연에 이바지 한다는 의미에서 공공 문화재단이 극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좋은 방향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