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그, 위로받는 나. (인생곡에 대해)

오랜 세월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요
2018년 12월 7일
2018 문화가 있는 날
2018년 12월 7일
42018년 12월 7일

한동안 뭔가 모르게 자꾸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을 때에요.
그, 뭐, 정말, 그만 살까? 뭐 이런 생각도 하고… 그럴 때
어차피 그래도 살아가는 거 좀 재밋거리 찾고 살아봐야 되지 않겠는가,
뭐 이런 생각하면서 만든 노래가 「일어나」입니다.


김광석, 1995년 6월 슈퍼콘서트에서

김광석, 일어나

지금으로부터 한 두 해 정도 전쯤, 겨울날이었다. 백수생활을 하면서 신세한탄이나 하고 있던 내가 딱했던지 친구 한 명이 저녁을 먹자며 휴대폰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서로 사는 집이 멀었던지라 평소 같았으면 중간 위치쯤 되는 논현이나 종로 같은 곳에서 보자며 티격태격했을 것이지만, 그날은 어쩐 일인지 기특하게도 쿨하게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쯤 걸리는 우리 동네까지 찾아온다고 하는 것이었다. 기특한 것은 기특한 것이지만, 너무 추워서 나가기 귀찮은 마음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평소에나 좀 싹싹하게 굴지, 하면서 대충 두터운 점퍼를 걸쳤다. 입으로는 투덜거리며 볼멘 혼잣말을 하면서도 얼굴만큼은 오랜만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집을 나섰다.

조금 일찍 나온 탓인가, 친구는 아직 나타나기 전이었다. 할 일이 없어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다가 추운 날씨에 손도 꺼내기 귀찮아진 나는, 시간이나 때울 겸 동네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다녔다. 그렇게 한참을 배회하다가 대형TV가 가게 외부를 향해 설치된 어느 민속주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TV에서는 김광석의 생전 공연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제법 유명했던 ‘김광석의 슈퍼콘서트’ 영상이었다. 나타나지 않는 친구 놈을 속으로 욕하면서 TV에 시선을 집중했다. 마침 나오던 것이 「일어나」를 부르기 전 김광석의 멘트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김광석의 팬이었던 나는 수없이 반복해서 봤던 장면이지만, 그 순간 마치 생전 처음 보는 영상인 것처럼 그의 말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렇게 김광석의 멘트를 듣고 서 있다가, 어느 순간 울컥해버리는 지점이 있었다. “그, 뭐, 정말 그만 살까…”하고 말하는 음성이 귓가에 들렸을 때였다. 스스로 나는 지금 괜찮다고, 잠시 쉬고 있을 뿐이라고 수 없이 마음을 다잡아왔는데, 그 한 마디에 감정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이어지는 노래 「일어나」는 마치 김광석이 나에게 들려주는 노래처럼 여겨졌다. 북받치는 감정에 못 이겨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힐끔거리며 한심하게 쳐다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가 너무 우울하고 슬프다는 걸, 그제야 진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에 후련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하면서 말이다. 짧은 순간, 그 누구의 어떤 말이나 행동보다도 위로가 되었다.

겨울이 되면, 조금은 창피했던 그 순간이 떠오르고 김광석의 노래가 생각난다. 마치 조건반사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1년의 마지막인 12월의 겨울이 되면 가장 그러하다. 또 한 해의 마지막을 이렇게 맞이하게 되었다는 안도감도 있고, 그간 누적된 스트레스와 마음의 피로도 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12월에 듣는 김광석의 노래는 나에게는 또 한 해를 지나 보내고, 덤덤히 다음 해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나만의 복음이자 성가가 되었다. 조금은 우울한 톤의 노래일지 몰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덤덤하게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가사가 나에게는 더 없는 위로가 되어주고 있다. “다시 한 번 일어나. 봄에 새싹들처럼” 하고 전하는 가사처럼 그래, 다시 또 살아가보자 하는 마음이다.

글. 김승훈(TA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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