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갖는 의미로 말할 것 같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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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책장’ 展 특별전 ‘내 인생의 책’

아람미술관의 ‘예술가의 책장’ 展에서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세 가지 테마의 특별전. 그 중 마지막으로 소개할 프로그램은 예술 특성화 도서관인 고양시립아람누리도서관과 협력한 ‘내 인생의 책’이다. 책을 쓰는 작가, 책을 만드는 출판인, 책을 사랑하는 소시민 등이 자신의 ‘인생 책’을 소개하며 자신에게 책이 갖는 의미를 풀어낸 공간이다. 저마다의 주옥같은 책들을 선보이며 이들이 꺼내놓은 책에 대한 소회를 ‘웹진 누리’에 옮긴다. [편집자주]

오창준에게 책이란…

어설픈 낮잠에서 깨어나니 나는 책이 되어 있었다. 100여 년 전 카프카 소설 <변신>의 주인공이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 보니 ‘흉측한 해충’이 되었고, 바로 얼마 전에 소설가 한강의 <작별> 속 여주인공이 벤치에 앉아 깜박 잠들었다가 깨어났는데, ‘눈사람’이 된 것처럼 말이다. 어이쿠, 하필 이 스마트한 세상에 책이 뭐람? 나는 이렇게 투덜대며 어깨를 움찔해 본다. 이건 분명 개꿈이야! 내가 무슨 책이 되겠어? 그러다 나는 두려움으로 소스라쳤다. 어깨는 물론이고 온몸이 점점 뻣뻣해지니 내가 정말 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벌을 받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전생에 책에 지은 죄를 낱낱이 고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두리번거린다.

위대한 예술가의 책장인가? 아니면 심미한 대안목을 지닌 미학자의 책장인가? 책들이 하나같이 근엄한 표정이거나 초탈한 몸짓으로 보인다. 전생에서 예술책을 주로 만든 나는 잔뜩 주눅이 들어 내 죄를 따져보기로 한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고해성사로 마음만이라도 편하자는 심보이다. 책에도 인격과 영혼이 있는데 홀대하지 않았는지? 집을 짓는 정성으로 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부실시공을 하지는 않았는지? 작가와 작품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에 합당한 편집을 했는지? 내실 없이 겉포장만 화려하게 해 독자를 기만하지는 않았는지? 책으로 독자들을 교화하려는 자만을 부리지는 않았는지.

세상도 변했고, 독자들은 더 멀리 앞서가는데, 고루한 기획과 편집으로 인생을 낭비하지는 않았는지? 가진 것도 없으면서, 책만 만들겠다는 똥고집으로 가족들을 희생시키지 않았는지? 책을 만드는 직업을 탓하며, 오히려 책읽기를 멀리하지는 않았는지? 교정교열 직업병으로 다른 이들의 말과 표현을 지적질 하며 꼬투리를 잡지는 않았는지? 아니, 정말 더 나쁜 건 ‘나만 아닌 척’ 했다는 것! 끝없이 이어지는 자기반성과 자책으로 몸부림치던 나는 갑자기 뒤통수에 쿵 하는 충격으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두툼한 책 몇 권을 쌓은 베개가 너무 높았던 것이다. 휴… 정말 다행이네! 그나저나 ‘너 왜 그러니’ 정말 구제불능이고… 속수무책이야!

오창준의 자기소개 책을 좋아하다가 책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잡지사와 출판사를 다니며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만들다가, 출판사를 세우고는 주로 문화예술 분야의 책을 펴냈습니다. 오랜 시간 책을 만들었지만, 뒤돌아보니 어쩌다 책이고, 아직도 책입니다. 책을 만드는 보람과 책을 읽는 행복을 여전히 찾고 있는 중입니다.

이권우에게 이란

길은 앞에 열려 있지 않다. 그래서 삶은 모험이고 방황인 법이다. 하나, 누군가 걸어가 닦은 길은 있게 마련이다. 내가 처음부터 걸어 그 길을 닦을 수 있으나, 오랜 시간이 걸리고 숱한 착오를 겪어야만 한다. 그러니, 걸은 길을 걸어가는 수밖에. 그러면 가야 할 길에 남겨 놓은 소중한 걸음을 어찌 확인할 수 있을꼬? 책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어지러운 발걸음을 지우고 오롯이 걸어야 할 길이 무엇인지 새겨놓았다. 그것을 읽고 따르면 뜻한 바에 제대로 이르게 되어 있다. 그러니, 읽을 수밖에.

별을 보고 가야 할 길을 찾는 이는 얼마나 행복했겠는가. 칠흑 같은 어두운 밤에도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에 이를 수 있었나니. 내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옳은지 헤맬 때 나는 고개 들어 하늘의 별을 보았다. 그 별은 나에게는 당연히 책이었다. 아무리 암담하더라도 거기에서 헤쳐 나와 가야 할 길을 일러준 것은 오로지 책뿐이었다. 비록 에돌아가고 굼뜨게 움직였지만, 여기까지 온 것은 책이라는 별 덕분이다. 이제는 길 잃어도 겁나지 않는다. 그 별을 좇으면 되니까.

어느 별도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다. 태양의 빛을 받아야 비로소 빛나는 법. 내가 볼품없는 별이 되어 희미하나마 세상에 빛을 던지고 있다면, 그것은 태양이 있기 때문이다. 그 태양은 마땅히 책이다. 그것이 빛을 주었기에 내가 겨우 빛날뿐. 그러니, 아직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할 수밖에. 더 읽으면 더 환해질 터, 책 읽는 사람으로서 바라는 마지막 꿈일레라!

이권우의 자기소개 주로 책과 관련한 일을 하며 입에 풀칠하다 서평 전문 잡지 출판저널편집장을 끝으로 직장생활을 정리했습니다. 본디 직함은 남이 붙여 주어야 하거늘, 스스로 도서평론가라 칭하며 삽니다. 책 읽어 홀로 우주와 삶의 비의를 알아챈 사람으로 남기보다는, 그 앎을 이웃과 함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입니다. 그동안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등을 펴냈습니다. 오래 전부터 고양시 일산동구 풍동에서 삽니다.

이종현에게 이란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려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우리 함께 일해 봅시다.

  멕시코 치아파스 원주민 –

책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위로의 책.
앎의 책.
사유의 책.
깨달음의 책.
성찰의 책.
오랜 세월 함께 걸어 온 나의 책들.
나는 오늘도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나의 행복이 당신의 슬픔을 가리지 않길,
당신의 눈물이 나에게 머뭇거리지 않고 쉬이 오길
바라면서.

이종현의 자기소개 아람미술관에서 도슨트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작가들에 대한 애정이 많고 전시 보기를 즐깁니다. 저의 책 읽기는 한 저자의 접근하기 쉬운 책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저자의 책을 계속 읽어나가는 방식입니다. 책이 가득한 서점과 도서관, 그리고 미술관을 사랑하는, 살펴보는 일을 잘하고 싶은 고양시민입니다.

임영근에게 이란

느릿느릿 읽는 즐거움.

대학에 들어와서야 만화가게에 들락거리게 되었습니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할 때였는데 근처에 ‘집현전’이라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집현전’은 아늑한 안식처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깨끗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만화에 빨려 들어갈 때면 힘겨운 대학 생활의 시름쯤은 금세 사라져 버렸습니다. 게다가 주인 아주머니의 따뜻하고 친절한 미소도 좋았구요.

한 가지 두고두고 아쉬운 일은 한동안 라면을 먹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가게에 들어가 새로 나온 만화책을 고르고 조금 읽다 보면 어느새 아주머니가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학생, 라면 끓여 줄까” 나는 당연히 “괜찮습니다” 하고 거절하였지요. 아주머니의 오랜 노하우인지 만화책을 읽다가 출출한 느낌이 들 때에 딱 맞춰 다가오셨는데, 속마음으로는 그 맛있는 라면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가난한 자취생이 만화를 볼 수있는 것만도 감지덕지한 일인 걸요.

한참이 지난 뒤에야 라면이 공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공짜인 줄 알았다고 해도 라면을 마음껏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는 이미 라면을 안 좋아하는 학생으로 아주머니에게 인식이 박힌 터라 선뜻 라면을 끓여 달라 하기도 민망한 노릇이었습니다.

그 즈음에 아주머니가 친구들에게 나를 지칭하는 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 만화책 천천히 읽는 학생.” 아주머니가 보기에 내가 그 가게에서 가장 느림보 학생으로 보였나 봅니다. 그 말을 듣고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만화책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를. 만화책의 그림과 스토리가 재미있어서 끌렸겠지만, 읽는 속도를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가장 밑바탕에 깔린 이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죠.

매체에 나를 내맡기지 않고, 나에게 매체를 맞추는 것. 그렇게 천천히 책에 빠져듭니다.

한참 세월이 지난 오늘날, 인터넷이든 SNS든 기계에 맞춰 살라고 알고리듬에 조종 받으며 살라고 끊임없이 압박받는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아직도 책을 즐겨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한 가지만 꼽으라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느리게 읽는 즐거움.”

임영근의 자기소개 어린 시절을 성산포와 제주시에서 지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대학 철학과에 다니며 이십대를 보냈습니다. 졸업한 뒤 출판 편집 일을 주로 했습니다. 지금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며 고양시인문학모임 귀가쫑끗에서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즐겁게 지내고 있는 고양시민입니다.

2018 책의 해 특별전 예술가의 책장

기 간  ~2019.3.24.(일), 월요일 휴관

시 간  10:00am~6:00pm

장 소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관람료   일반 5천원, 24세 이하 청소년 및 어린이 3천원

문 의  1577-7766, (031)960-0180 / www.artgy.or.kr

참여작가   노순택, 박지나, 서용선, 원성원, 유창창, 이혜승, 정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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