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처럼 흐르는 진실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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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읽는 세계 연극 ② 칠레 편
아리엘 도르프만의 <과부들>

‘명작으로 읽는 세계 연극’ 시리즈는 세계 연극사에서 손꼽히는 희곡들을 국가별로 한 편씩 골라 그 나라의 역사와 사회,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고 작가가 희곡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생각해보는 칼럼이다. [편집자주]

지구상에서 가장 긴 나라 칠레는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눈부신 문명을 꽃피웠지만
여느 라틴 아메리카의 나라들처럼 굴곡과 아픔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서쪽, 위 아래로 길게 이어져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긴 나라 칠레. 좁다랗게 뻗어 있는 칠레의 국토는 전체 길이가 약 4,300km로, 남북 간 위도 차이가 워낙 크다 보니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한다. 페루와 맞닿아 있는 북쪽은 건조한 산악지방이고, 수도 산티아고가 있는 중부는 온화한 날씨를 보여주며, 남쪽은 지구상에서 남극에 가장 가까운 지역이다. 즉, 칠레에서는 덥고 따뜻하고 시원하고 추운 날씨를 한 번에 다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고대(古代)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눈부신 문명을 꽃피웠으나 이후 칠레의 역사는 다른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굴곡과 아픔의 연속이었다. 스페인에 의한 원주민 정복, 긴 독립투쟁, 군사정권에 의한 독재와 압박 등 국내외적으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17년간 이어진 피노체트 독재정권의 무자비한 공포정치는 이 시기 수많은 칠레의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거나 해외로 망명하게 만들었다. 이 시기에 살해된 사람은 정부 공식통계만 3,000명이 넘으며, 고문 피해자가 1만여 명, 아직 시신도 발견되지 않은 행방불명자도 1,000여 명에 이른다. 칠레 출신으로 현재 미국에 거주하며 활동 중인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Ariel Dorfman)의 작품은 이 시기의 쓰라린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하는 진솔한 목소리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1942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아리엘 도르프만은 두 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가 열두 살에 부모를 따라 칠레로 돌아온 뒤, 칠레 시민권을 획득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3년 도르프만으로 하여금 더 이상 조국 칠레에 머무를 수 없게 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1970년 라틴아메리카 최초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사회주의 개혁가 살바도르 아옌데가 죽고,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성공하면서 칠레가 피노체트의 독재정권 아래 들어가게 된 것이다. 아옌데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도르프만은 극적으로 칠레를 탈출하는 데 성공한 뒤 유럽 여러 곳을 떠돌다 1985년 미국에 정착했다.

스스로는 안전한 곳으로 이주했지만, 그 대가로 도르프만은 칠레의 정치경제적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인생을 바쳤던 수많은 동지와 친구들이 사라지고,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고, 처형당하는 모습을 내내 지켜봐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도르프만의 작품들에는 언제나 조국의 아픔을 함께 하지 못한 죄책감과 살아남은 자의 슬픔, 누군가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책임감 등이 공존한다. 특히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희곡 <과부들>(Viudas)은 칠레 현대사의 정치적 아픔과 고통에 대한 그의 생생한 증언이자 진솔한 기록과도 같은 작품이다. 대사 한 줄 한 줄 상징과 은유가 가득한 문학적인 힘으로나, 작품이 담고 있는 묵직한 윤리적 울림으로나 어느 하나 부족한 점이 없는 대작이라 할 수 있다.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왼쪽)과 아리엘 도르프만 희곡선 《죽음과 소녀》(창작과비평사)의 표지(오른쪽)

진실을 기다리는 여인들

<과부들>에는 구체적인 시, 공간적 배경이 제시되지 않는다. 전쟁이 끝난 직후의 한 마을. 이 마을의 모든 남자들은 군부에 끌려간 뒤 실종되었고 마을에는 그들을 기다리는 과부들만 남아 있다. 어느 날 강을 따라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 한 구가 떠내려 오고, 고문의 흔적으로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는 그 시체를 두고 과부들은 모두 자신의 남자(아버지, 남편 혹은 자식)라고 주장한다.

가족의 죽음을 믿고 싶지 않으면서도,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고통스런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시체를 자기 가족이라고 주장하는 여인들의 몸부림은 과거 청산이라는 과제가 상처받은 자들의 복수가 아니라, 더 이상의 고통을 거부하는 최소한의 인간적 요구임을 상기시킨다.

일러스트레이션 정유나

한편 이 마을에 새로 부임한 대위는 이제 과거의 아픈 역사는 덮어두고 새로운 번영을 향해 가자고 과부들을 설득하고, 이를 위해 회유와 협박 등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지만 그녀들은 이에 굴하지 않는다. 맨 처음 강가에 나와 하염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소피아를 미친 노파 취급했던 과부들은 점차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깨닫게 되고, 하나 둘 의자를 갖고 나와 소피아의 기다림에 동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것에 우선해 먼저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자신들의 아버지, 남편, 아들들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면서 다 함께 강가에 모여 남자들을 기다린다.

결국 대위는 과부들의 우두머리 격인 소피아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그녀가 가장 아끼는 손자 알렉시스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 채 협박한다. 그러나 권총 앞에 떨고 있는 어린 손자를 두고도 자신의 의지를 꺾기보다는 손자에게 역사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할머니 소피아의 마지막 대사는 이 작품의 의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쏘피아  내가 들려줄 얘기가 있다.

이 세상에는 이승과 저승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단다.

벽에 가까이 가보거라. 네 뒤에. 벽돌 안에 손이 있을 게다. 찾아서 잡아라.

알렉시스  무서워요, ……

쏘피아  그렇지, 그렇지, 손이 있지. 느껴지니?

알렉시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쏘피아  네 아버지란다. 넌 아버지 손을 알잖니.

알렉시스  .

소피아  강한 손이지. 너한테는 부드러운 손이고. 그러니 너도 강해질 수 있다.

네 다음으로 올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을 위해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

우리는 벽의 돌 안에 살아 있지, 너와 나, 그리고 다른 이들, 우리는 함께 있을 거야, 우리 강아지, 내 새끼,

벽이 무너져 내릴 때까지.

 

아리엘 도르프만 희곡선 《죽음과 소녀》(김명환/김엘리사 옮김, 창작과비평사, 2007)에 수록된 <과부들> 중에서

역사는 강물처럼 스스로 흐른다

<과부들>에서 공간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미지는 ‘강’이다. 여기서 강은 과부들이 빨래를 하고 밥을 짓는 삶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도도히 흐르는 역사, 그리고 끊임없이 흐르고 흘러 결국 밝혀지고야 말 진실을 상징한다. 극중 소피아를 비롯한 과부들이 강가에 앉아 하염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행위는 역사를 망각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지켜보겠다는 신념, 그럼으로써 언젠가 밝혀질 진실을 기다리는 적극적인 의지를 상징한다. 이 때문에 대위를 비롯한 군부가 그녀들의 고요한 시위를 그토록 무서워했던 것이다.

도르프만은 <과부들>에서 ‘군부 독재하의 실종된 사람들’이란 민감한 현대사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이를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제의적이고 신화적인 상상력을 보태 보편적이고 문학적인 울림을 갖도록 만들었다. 이름도 시대도 알 수 없는 마을, 시체가 떠내려 오는 강, 강가에 앉아 남자들을 기다리는 서른여섯 명의 과부는 그 자체로 상징성을 가지면서 이 작품을 1970년대 피노체트 군부 치하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람들과 망각을 강요하는 시대,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아픔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역사적 여정을 거쳐 온 우리에게도 많은 공감을 주는 작품이다.

도르프만의 <과부들>은 2012년과 2014년, 이성열 연출이 이끄는 극단 백수광부에 의해 국내에서도 두 차례 공연된 바 있다. 당시 <과부들> 공연은 작품의 묵직한 메시지가 주는 감동과 더불어 예수정, 오현경, 이지하, 박완규, 박윤정 등 그동안 백수광부의 대표작을 함께했던 명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점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또한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넓어져 나중에는 무대 전체를 차지하게 되는 ‘강’의 이미지를 통해 아무도 진실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2012년 우리나라에서 극단 백수광부에 의해 공연된 연극 <과부들>의 한 장면. 소피아와 과부들이 강을 따라 떠내려온 시체를 발견했다.
뛰어난 작품성으로 그해 크게 주목 받은 이 연극은 2년 뒤인 2014년 재공연되었다. (사진제공 극단 백수광부)

한국과의 각별한 인연

아리엘 도르프만은 한국과도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 작가다. 작가 스스로도 한국과 칠레 모두 식민 지배와 전쟁, 독재 등 비슷한 아픔의 역사를 겪은 나라이기에 관심이 많이 간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으며,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디 아더 사이드>는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의 상황에 착안해서 쓴 작품이다. 인위적인 휴전선 설정으로 인해 생이별을 겪게 되는 노부부의 사연을 블랙코미디 풍으로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여러 경계선을 넘나들었던 그의 인생 역정과 우리의 분단 상황을 묘하게 겹쳐 그리고 있는 수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손진책 연출에 의해 무대화된 바 있다.

또한 2007년에는 차범석의 희곡 <산불>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댄싱 섀도우>의 각색을 맡아 직접 내한하기도 했다. 도르프만의 손길을 거치며 <산불>은 우화적인 성격을 띤 새로운 작품으로 탈바꿈되었다. 독특한 지명과 인명, 그리고 태양군, 달군 등의 등장으로 한국적인 색채보다는 보편적인 이미지가 강조되었고, 나무와 숲의 의미가 강화되었다. 도르프만은 원작 <산불>의 주요 배경인 숲을 죽은 군사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혼들이 머무는 정신적인 안식처로 그려냈다. 때문에 극중 숲이 불타는 것은 영혼과 인간성의 파괴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전쟁의 무자비함이 드러나게 한 것이다. <디 아더 사이드> <죽음과 소녀> 등 전쟁과 독재의 직접적인 피해보다도 그로 인한 후유증이나 주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가져온 작가의 주제의식이 이 작품에서도 비슷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07년 공연된 뮤지컬 <댄싱 섀도우>의 한 장면. 아리엘 도르프만이 차범석의 희곡 <산불>을 각색한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사진제공 신시컴퍼니)

피노체트 군사 독재의 압박과 망명 등으로 험난한 삶의 여정을 거쳤지만, 생명조차 보장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아리엘 도르프만은 늘 쉬지 않고 글을 써왔다. 어쩌면 그에게 글을 쓰는 것은 죽음을 이겨내는, 그리고 망각에 대항하는 유일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부들>의 과부들이 강가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과 작가 도르프만이 쉬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은 결국 ‘무언가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하는’, 같은 맥락의 행위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는 항상 죽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글을 쓰는 것은 그것에 대항하기 위한 몸부림이지요. 슬픔과 공포 속에서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 것은 괴로우면서도 놀라운 일입니다. 내게 글을 쓰는 것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과정이자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알리기 위한 수단입니다. 나는 항상 삶의 어두운 면에 대해 쓰지만 결국은 누군가를 믿고 싶다는 의지를 전달하고자 글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리엘 도르프만

글. 김주연(연극칼럼니스트)

필자 김주연은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고, 월간 <객석>에서 연극 담당 기자로 활동하면서 『우리 시대의 극작가』(공저)를 출간했다. 연극학으로 박사 학위를 마친 뒤 현재 연극 칼럼니스트와 드라마터그, 그리고 연극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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