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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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란 막상 그 시절엔 그것이 얼마나 찬란한 빛과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지 잘 알지 못한 채 흘려보낸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그 시절이 얼마나 뜨겁고 아름다웠는지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일까, 청춘은 언제나 돌이켜볼 때 가장 뜨거운 시절로 기억된다. 연극 <뜨거운 여름>은 고양문화재단이 긴 겨울의 끝자락에 마련한 화끈한 추억여행이자, 10여 년 전 풋풋한 열정을 무대 위에 펼쳐내던 한 극단의 ‘말도 못하게 젊고 뜨겁고 유쾌했던 시절’에 대한 재연이다.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이하, ‘간다’). 이 길고도 특이한 이름의 극단이 처음 대학로에 등장한 것은 2004년도 창작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를 통해서였다. 작가 겸 연출가 민준호를 중심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연극인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이 젊은 극단은 자신들의 이름처럼,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참신함과 관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직접 찾아가겠다는 유연함, 그리고 20대 특유의 밝고 유쾌한 에너지로 똘똘 뭉친 집단이었다.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의 성공적인 데뷔 이후, 이들은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그 자식 사랑했네> <더 마스크> <유도소년> 등 기발하면서도 젊은 세대의 감수성을 담아낸 작품들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면서 공연계에 ‘간다스럽다’는 신조어를 유행시켰고, 젊은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받아왔다. 확실히 창단 이후 오래도록, ‘간다’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유쾌하고 기발한 작품들은 ‘젊은 연극’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이들의 이름은 늘 ‘젊은’이란 수식어와 함께 언급되곤 했다.

젊음의 꼬리표 대신 삶의 성숙함으로

하지만 어느덧 이들이 연극을 시작한 지도 15년이 흘렀다. 20대의 뜨거운 열정과 패기로 똘똘 뭉쳤던 단원들 대부분은 이제 불혹의 나이가 되어 뮤지컬, 영화, TV 드라마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을 넓혀가고 있다. 십여 년 전, ‘간다’의 무대를 뜨거운 에너지로 가득 채웠던 진선규, 이희준, 김지현, 박민정, 박보경 등의 배우들은 이제 TV 드라마와 광고에서, 대형 뮤지컬 공연에서, 또 천만 관객을 끌어 모은 스크린 등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얼굴들이 되었다. 하지만 초창기 ‘간다’의 무대를 기억하는 관객으로서 텔레비전이나 스크린에서 이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면, 언제나 이들 모두가 함께 있었던, 그 말도 못하게 젊고 뜨겁고 유쾌했던 무대가 아련하게 떠오르곤 한다.

한편 극단 ‘간다’를 대표하는 공연 레퍼토리 역시 근래 들어서는 재기발랄하고 통통 튀는 전작들과는 달리, 인생에 대한 한층 진지하고 따뜻한 시선을 담은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유도소년(박경찬, 이재준 작/이재준 연출)> <뜨거운 여름(민준호 작/연출)> <나와 할아버지(민준호 작/연출)> 등 ‘간다’의 최근작들은 주로 과거로의 추억 여행을 통해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전국체전을 준비하는 유도부 학생들을 소재로, 무대 전체를 배우의 땀과 열정으로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유도소년>이 ‘유도소년 신드롬’을 만들어내며 연극계에 복고연극 유행을 가져왔다면, 비교적 최근작인 <나와 할아버지>는 작가 민준호가 실제 자신과 자기 할아버지 사이에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마치 한 편의 수필처럼 담담하고 솔직하게 풀어낸 자전적 이야기이다. 그리고 ‘간다’ 창단 10주년을 기념해 초연되었던 민준호 작, 연출의 <뜨거운 여름>은 그 자체로 자신들의 젊은 시절, 그리고 ‘간다’의 지난 세월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간다’ 창단 10주년 기념 퍼레이드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이 작품은 초연 당시 ‘간다’의 오랜 마니아층과 새로운 관객층 모두의 뜨거운 호응을 불러일으켰고, 그 열기에 힘입어 여러 차례 성공적인 재공연 무대를 가진 바 있다.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간다스러운’ 작품들은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받아 왔다.

치열하고 찬란했던 여름의 기억

<뜨거운 여름>의 주인공 재희는 연극배우다. 공연을 앞두고 학창 시절 첫사랑의 부음을 듣게 된 그는 문득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옛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그 추억 여행을 통해 그 시절 자신을 가슴 뛰게 했던 꿈과 사랑, 뜨거웠던 열정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극중 재희는 비록 젊지 않은 나이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식지 않는 열정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무심히 흘러가는 일상과 무언의 압력으로 가득 찬 현실 속에서, 그 열정을 차마 다 펼치지 못한 채 시간이 떠미는 대로 하루하루 흘러가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첫사랑의 부고를 듣고 자신의 추억 속으로 떠난 짧은 여행 속에서, 재희는 자신이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던 첫사랑과 언제든 자신의 열정을 응원해주던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이를 통해 뜨겁고 치열했던 그 여름의 기억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현실 앞에 주눅 들지 않은 채, 느리지만 힘찬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무심한 세월 속에 희미해진 열정을 찾아 떠나는 극중 재희의 시간여행은 지난 10여 년 간의 ‘간다’의 행보를 떠올리게 하며, 이 작품을 쓴 민준호 작가의 작업과 비슷한 데가 있다. 또, 어릴 적 기억을 찾아가는 무대 위 주인공 역시 10년 전 연극을 막 시작했던 시절의 풋풋한 열정을 무대 위에 펼쳐내는 ‘간다’ 배우들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은 비교적 최근작임에도 초창기 ‘간다’의 작품 같은 인상을 물씬 풍긴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이를 구현해내는 배우들의 몸과 움직임은 유연하고, 매 장면 기발한 발상과 톡톡 튀는 재치가 넘쳐 난다. 어떤 부분은 허술하고 때로는 과도한 욕심을 부린 부분도 있지만, 그마저도 치기어린 청춘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는 그런 작품이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추억의 노래들과 이제는 아련하게 느껴지는 유행댄스 역시 관객의 향수를 자극하며 이 추억여행에 동참시킨다. 특히 19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관객이라면 ‘스트리트 파이터’ 와 닌텐도 등 당대를 풍미했던 게임과 게임기 장면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기 어려울 것이다.

주인공 재희는 공연을 앞두고 학창 시절 첫사랑의 부음을 듣게 된다. 이 일로 잊고 있던 옛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된 재희는,
자신을 응원해주었던 첫사랑과 친구들을 떠올리며 뜨겁고 치열했던 그 여름의 기억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뒤돌아 볼 때 더욱 아름다운 그 이름

추억의 노래들과 게임, 그리고 유행댄스를 소화해내며 쉬지 않고 무대 위를 날아다니는 배우들은 그 자체로 뜨거운 청춘의 기억을 온몸으로 그려낸다. 극중 재희를 비롯해 그의 첫사랑과 친구 모두는 누구에게나 가장 뜨거웠을 그 시절, ‘여름’으로 상징되는 청춘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막연한 꿈을 품고 가슴 설레고, 갑자기 찾아온 사랑에 수줍어하고, 때론 인생의 방향을 찾지 못해 헤매며, 때론 쓰라린 이별 앞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빛나는 순도 100퍼센트의 청춘을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처럼 뜨겁고, 그들처럼 순수했을 우리 모두의 청춘을 떠올리게 만든다.

사실 청춘이란 막상 그 시절엔 그것이 얼마나 찬란한 빛과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지 잘 알지 못한 채 흘려보낸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뒤돌아볼 때, 그때서야 그 시절이 얼마나 뜨겁고 아름다웠는지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일까, 청춘은 언제나 돌이켜볼 때 가장 뜨거운 시절로 기억된다. 연극 <뜨거운 여름>이 과거로 떠나는 추억여행의 콘셉트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단순히 복고풍의 노래나 댄스를 선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청춘의 본질, 뒤돌아 볼 때 아름다운 그 시절을 더욱 강조하기 위함이다.

2015년에 공연된 연극 <뜨거운 여름>의 하이라이트

가장 단순하고 심플한 무대 위에서 오로지 배우의 몸과 다양한 연극적 장치를 통해 무한한 상상력과 연극성을 끌어내는 ‘간다’의 공연 방식은 자유로운 변형이 가능한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의 공간 특성에 매우 잘 부합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간 고양문화재단의 상주단체로서 <올모스트 메인>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나와 할아버지> 등 극단의 대표작들을 차례차례 선보여온 ‘간다’가 긴 겨울의 끝자락에 마련한 화끈한 추억여행, 연극 <뜨거운 여름>에는 유연, 심새인, 김설진, 차용학, 오의식, 도진언, 홍지희, 김하진 등이 출연할 예정이다. 4월 6일부터 14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

 

글. 김주연(연극칼럼니스트)

연극 <뜨거운 여름>

기 간  4.6.(토)~4.14.(일), 월화수 공연 없음

시 간   목·금 8:00pm, 토·일 4:00pm (**4.6.(토)은 6:00pm)

장 소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

관람요   전석 2만원

대 상   중학생 이상

문 의  1577-7766 / www.artg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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