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래로부터 바라본 인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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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톨레도의 전경. 자유와 정열의 나라로 유명한 스페인은 오랫동안 유럽과 아프리카, 기독교와 이슬람교,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문화 교차로의 역할을 한 덕분에 지역마다 다양하고 화려한 문화예술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유럽 대륙의 남서쪽,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스페인은 남국의 뜨거운 태양과 그만큼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을 지닌 사람들의 나라이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대항해 시대의 황금기를 이끌고, 유럽과 이슬람 문명의 교차로가 되기도 했던 스페인의 도시 곳곳에는 지금도 다채롭고 화려한 문화와 예술의 흔적이 오롯이 아로새겨져 있다.

스페인 예술을 이야기하자면 가우디의 건축과 플라멩코, 피카소와 고야의 그림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스페인은 미겔 드 세르반테스, 로페 데 베가, 페드로 칼데론 데 라 바르카,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등 시대를 앞서가는 고민과 남다른 스케일의 사유를 담아낸 위대한 극작가들을 꾸준히 배출한 나라이기도 하다. 1965년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현재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는 바로 이 위대한 스페인 극작의 계보를 이으며 동시대에 가장 주목받고 있는 극작가 중 한 사람이다.

후안 마요르가는 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며, 1997년에 발터 벤야민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졸업 후에는 마드리드 근교의 중·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전공 덕분인지 마요르가는 수학처럼 정확한 극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묵직한 철학적 질문을 담은 희곡을 쓰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1998년부터는 마드리드 드라마 예술 왕립학교에서 극작과 철학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마요르가의 대표작으로는 <일곱 명의 선한 사람들> <스탈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천국으로 가는 길> <하멜른> <맨 끝줄 소년> <다윈의 거북이> <영원한 평화> 등이 있다. 이중 <맨 끝줄 소년>은 프랑수아 오종 감독에 의해 <인 더 하우스>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널리 알려졌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故) 김동현 연출이 <다윈의 거북이> <영원한 평화> <천국으로 가는 길> <맨 끝줄 소년> 등 그의 작품을 여러 편 소개한 바 있다.

동물의 눈으로 바라본 진화의 결정체, 인간

<다윈의 거북이>(La tortuga de Darwin)는 인간으로 진화한 거북이를 통해 유럽 현대사를 패러디하고 현대 문명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블랙코미디이다. 이 작품은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이 1835년 갈라파고스 섬을 떠나면서 데리고 나온 거북이 해리엇(처음에는 수컷 거북이인 줄 알고 ‘해리’라고 불렀으나 이후 암컷임이 밝혀져 ‘해리엇’이라고 이름이 바뀐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이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인간으로 진화하여, 유럽 현대사를 연구하는 교수를 찾아오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작가 마요르가는 실제로 존재했던 다윈의 거북이 해리엇이 2006년 호주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기사를 접한 뒤, 여기에 연극적 상상력을 보태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무려 200년의 세월을 지내온 거북이 해리엇은 교수가 저술한 유럽 현대사의 주요 대목들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자신이 그것을 고쳐줄 테니 고향 갈라파고스 섬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로 인해 교수와 거북이 해리엇 간의 은밀한 거래가 성립하고, 이후 작품은 주로 자신이 지켜본 유럽 현대사의 몇몇 중요한 대목에 대한 해리엇의 증언과, 기존의 역사 관점에 어긋나는 그녀의 증언에 이의를 제기하는 교수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바로 이 대화 속에서 인간과 역사를 역설적인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가 마요르가의 관점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일러스트레이션·정유나

무엇이 진화이고 무엇이 퇴보인가

<다윈의 거북이>는 ‘지구가 자전을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진화론’에 대해 역설적인 비판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200년간 살면서 자연스레 인간으로 진화한 거북이 해리엇인데, ‘인간으로 진화한 거북이’라는 것은 ‘인간이 원숭이(유인원)로부터 진화한 존재’라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하나의 패러디로 보인다. 물론 과학적으로는 성립될 수 없는 이론이지만, 적어도 문학적으로는 원숭이가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다면 거북이도 진화할 수 있다는 은유를 가정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무엇’이 인간으로 진화되었는가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진화하였는가, 그리고 그것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진화’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화(進化)’의 사전적 의미가 ‘더 나은 상태로 점점 더 발전해가는 것’이라 할 때, 이 작품에서 진화는 분명 역설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북이 해리엇은 처음 갈라파고스 섬에서 나와 세상을 두루 구경하면서 인간이 이루어낸 눈부신 문명에 감탄하고, 인간이 진화의 마지막 단계라는 것을 확신한다. 하지만 이후 200년간 그 ‘진화의 결정체’인 인간이 저지르는 수많은 전쟁과 폭력, 테러와 학살 등을 목격하고, 또한 그것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을 지켜본 뒤에는 인간이 진화한다는 생각에 회의를 품게 된다.

“200년을 통틀어 난 인류가 뭔가를 배우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라는 해리엇의 단정은 인류가 진화의 가장 마지막 단계라는 이론에 대해 명백한 이의를 제기한다. 진화의 초기 단계인 파충류(거북이)가 진화의 최종 단계인 인간에게 가하는 따끔한 일침은 이 작품의 역설적 비판 의식을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말을 진화론을 처음 주창한 ‘다윈’의 거북이가 한다는 점은 그러한 아이러니를 더욱 코믹하게 강조한다.

인간보다 현명한 거북이의 복수

진화에 대한 작가 마요르가의 역설적인 비판은 인간 역사에 대한 해리엇의 시각뿐 아니라,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세 인물과 해리엇의 관계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여기 등장하는 세 인물, 교수와 의사, 교수 부인은 해리엇보다 우위의 시점에서 (인간이 동물을 다루듯이) 그녀를 대하지만, 자신을 도와줄 것처럼 속인 채 결국은 각자의 이익만 챙기기에 급급한 그들 앞에서 해리엇은 일부러 ‘퇴화’한 것처럼 연기한 뒤 그들을 독살한다.

독을 먹고 죽어가는 그들 앞에서 해리엇이 마지막으로 하는 말은 이 작품 속 인간과 거북이의 전복적 관계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부분이다.

“당신들을 통해 많이 배웠어요. 당신들을 지켜보면서 찰리(다윈)의 이론을 완성시켰죠. 퇴화 이론. 어느 순간이 되면 인간은 짐승 수준으로 퇴화한다는 그 이론. 당신들은 날 이용해 먹으면서 날 완전히 삼켜버리고 싶어 했지. 하지만 거북이를 먹으려면 뒤집어야 하는데, 내가 당신들을 뒤집었어.”

한편 세 사람이 죽은 뒤, 해리엇이 그동안 호시탐탐 노리던 ‘먹이’였던 햄스터 헤로도토스의 우리를 열고 먹을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놔주는 마지막 행위는 인간보다 나은 거북이의 면모를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난 2009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 서울시극단의 연극 <다윈의 거북이>(연출 故 김동현).
배우 강애심이 늙은 거북 해리엇을 연기하며 능청스러우면서도 신랄하게 인간 역사와 진화론을 비판했다. (사진제공 서울시극단)

인간은, 그리고 역사는 결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다윈의 거북이>는 다윈의 ‘진화론’ 뿐만 아니라 ‘역사는 발전한다’는 역사관에 대해서도 역설적인 비판의식을 보여준다. 이는 주로 해리엇이 200년간 지켜본 유럽 현대사를 교수에게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해리엇이 무엇을 보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시점에서 그것을 보았는가, 즉 관점의 문제다.

“가장 중요한 건 관점이지. 해리엇 부인은 아래로부터 역사를 봐왔어. 땅과 같은 높이로 말이야”란 교수의 말은 이러한 부분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교수가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은 역사를 움직이는 지배 권력의 거대 담론에 의한 것이지만, 해리엇의 증언은 하위 주체의 관점에서 기억하는 ‘망각된 역사’이며 역사의 현장에서 체험한 민중의 역사이다. 해리엇이 기억하는 200년의 유럽 현대사는 교수가 대표하는 교과서적 역사가 아니라 거대담론의 역사에서 배제된 민중의 역사, 아래로부터의 역사인 것이다.

그녀는 드레퓌스 사건과 러시아 혁명, 제1, 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 아우슈비츠 학살 등을 ‘아래로부터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인간은, 그리고 역사는 결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이후의 역사에 대해 해리엇은 교수에게 더 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침묵)

교수 : 무슨 일입니까, 해리엇?

해리엇 : 끝났어요, 교수 양반.

교수 : 뭐라고요?

해리엇 : 더 이상은 없어요. 그 이상 얘기할 게 없어요. 난 갈라파고스 섬에 언제 가죠?.

교수 : 자, 해리엇, 역사가 1989년에 끝나지는 않죠.

해리엇 : 난 그때부터 새로운 걸 본 게 없어요. 보스니아, 르완다, 쌍둥이 빌딩, 이라크, 레바논… 다 똑같이 무시무시해요. 진화는 인간 폭탄에서 절정을 이루죠. … 난 당신들한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살 거에요. 모든 동물 중에 인간이 가장 어리석고 해롭죠.

– 후안 마요르가, <다윈의 거북이>, 김재선 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거북이가 말을 하고 두 발로 서게 된 순간

‘문명과 역사는 발전한다’는 진보적인 역사관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선은 이렇게 거북이 해리엇을 통해 역설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해리엇이 갑작스레 인간으로 진화하게 된 과정 역시 이러한 작가의 비판적 시각을 뒷받침해준다. 처음엔 그저 호기심 많은 거북이에 불과했던 해리엇은 두 개의 커다란 단계를 거쳐 인간으로 ‘진화’하는데, 바로 ‘걷기’ 시작한 것과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언어와 직립보행은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변별시키고 우위에 서게 한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극중 해리엇이 그렇게 인간으로 진화하게 된 계기는 또 한 번 작가의 역설적 비판의식을 강조한다. 거북이였던 해리엇이 처음 직립하게 된 것은 스페인 내전 당시였다. 게르니카에서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폭격할 때 너무 무서워서 자신의 느림을 저주하며 도망치다가 갑자기 서게 된 것이다.

또한 해리엇이 말을 시작하게 된 것은 바르샤바의 유태인 거주 지역인 게토에서, 독일 병사들이 유태인 아이에게 다가가는 것을 발견하고는 온 힘을 다해 “안 돼!”라고 외치면서였다. 즉, 진화의 가장 위대한 단계인 ‘직립’과 ‘언어의 사용’을 인류 역사의 가장 끔찍한 순간들에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작가는 다시 한 번 인간과 역사의 ‘진화’에 대한 역설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은 유럽 현대사뿐만 아니라 동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끝없이 빨라지는 인터넷과 날로 높이를 더해가는 고층 빌딩들, 숨 쉴 틈 없이 하루하루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마요르가의 <다윈의 거북이>는 과연 무엇이 진화이고, 무엇이 퇴보인가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2008년 2월 스페인 마드리드의 아바디아 극장(Teatro de la Abadía)에서 초연된 연극 <다윈의 거북이> 하이라이트.
스페인의 유명 여배우 카르멘 마치(Carmen Machi)가 거북이 헤리엇을 연기했다.

글. 김주연(연극칼럼니스트)

필자 김주연은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고, 월간 <객석>에서 연극 담당 기자로 활동하면서 『우리 시대의 극작가』(공저)를 출간했다. 연극학으로 박사 학위를 마친 뒤 현재 연극 칼럼니스트와 드라마터그, 그리고 연극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명작으로 읽는 세계연극’ 시리즈는 세계 연극사에서 손꼽히는 희곡들을 국가별로 한 편씩 골라 그 나라의 역사와 사회,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고 작가가 희곡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생각해보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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