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블 디토 특유의 바이올린 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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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정 리사이틀

앙상블 디토를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정이 6월 27일(목) 리사이틀을 개최한다. 한국계 최초로 그래미상을 수상한 파커 콰르텟의 리더이기도 한 다니엘 정은 뉴욕 카네기홀, 미국 국회도서관, 빈 무지크 페라인, 런던 위그모어홀 등 세계 곳곳에서 힘차고 다재다능한 연주로 그 실력을 인정받아 왔다. 스테판 피 재키브와 함께 앙상블 디토 특유의 실내악 사운드를 구축한 주요 멤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와 함께하는 이번 리사이틀에서는 진지하고 깊이 있는 연주로 자신의 새로운 음악적 지평을 펼쳐 보일 예정. 메시앙의 「주제와 변주」,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페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 , 슈베르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판타지아」 등 다니엘 정 리사이틀의 프로그램을 유형종 음악평론가의 해설과 함께 소개한다. [편집자주]

왼쪽부터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정과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메시앙 : 주제와 변주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은 20세기 프랑스 최고의 작곡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대단히 신앙심이 깊었고, 파리음악원 교수로서 프랑스 고유의 현대음악 운동을 제창한 큰 스승이었으며, 서구와는 음악 체계 자체가 상이한 인도와 인도네시아 음악에 관심을 갖는가 하면, 만년에는 새를 깊이 관찰하여 음악적 소재로 삼았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주제와 변주」(1932)는 메시앙이 약관 24세의 나이에 작곡한 초기작이다. 메시앙의 가장 듣기 편안한 곡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1931년 파리 음악원을 졸업하고, 트리니테 성당에 파리에서 가장 나이 어린 주임 오르가니스트로 부임한 메시앙은 그 이듬해 바이올리니스트 클레어 델보와 결혼한다. 그 결혼 선물로 작곡하여 두 사람이 함께 초연한 곡이 「주제와 변주」다. 추가적인 정보를 전하자면 안타깝게도 델보는 결혼 10년쯤 지난 후부터 뇌가 수축되는 병에 걸렸고, 긴 투병 끝에 1959년에 숨을 거둔다. 메시앙의 음악적 동반자로 더 널리 알려진 이본 로리오는 그 다음에 결혼한 두 번째 부인이다.

곡은 주제와 5개의 변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약 10분 정도 소요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변주곡 중에서도 다양성보다 유기적인 연계성과 통일감이 더 강조된 듯 보인다. 메시앙은 변주에 카논, 스트레토, 이중대위법 등을 다양하게 투사했고, 그 결과 주제는 엄격하고 학구적인 분위기로 전개되어 나간다.

 

메시앙 「주제와 변주」 (재닌 얀센 연주)

프로코피예프 :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f단조, 작품번호 80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1891~1953)는 제정 러시아와 소비에트 시대에 걸쳐 활동한 작곡가다. 러시아 혁명 후 사회적으로 혼란한 와중에 연주여행을 나왔다가 국경이 막혀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그는 향수병을 이기지 못하고 1935년 영구 귀국했다. 그의 두 곡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그 후인 1938년부터 1946년 사이에 작곡되었다. 이 중 훨씬 먼저 착상된 것은 1번이요, 먼저 완성된 것은 플루트 소나타를 개작한 2번이다. 출판도 2번이 조금 먼저 이루어졌다. 오늘날 더 자주 연주되는 곡은 2번인 듯 싶지만 곡의 완성도와 깊이에 있어서는 1번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프로코피예프는 현악기를 위해 제법 많은 곡을 썼는데 본질적으로는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였다. 따라서 바이올린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악기 고유의 소리와 새로운 표현 방식을 탐구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 중 소나타 1번의 경우는 바로크 시대 작곡가인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다. 1938년 말에 몇 개의 선율을 스케치하였다가 방치해 두었는데, 1944년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을 완성하고 그 2년 후인 1946년 초에 작곡을 재개하여 6개월 만에 완성했다.

당시 프로코피예프는 건강이 좋지 않아 1년도 넘게 요양 중이었다고 한다. 또 그 전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따르지 않았다는 비판과 숙청의 공포, 2차 세계대전 중에는 포연 속에 죽음의 공포에 시달린 바 있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여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대체로 유머와 위트가 빛나는 작곡가였던 프로코피예프로서는 이례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작품이 되었다. 그럼에도 1947년에 프로코피예프는 이 곡으로 스탈린상을 받게 된다.

프로코피예프는 1악장과 4악장의 말미에 미끄러지는 듯한 바이올린 음계를 ‘묘지를 통과하는 바람’이라고 표현했는데, 1953년 그의 장례식에서는 이 곡의 초연자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바이올린으로 1악장과 3악장이 연주되었다.

곡의 모델이 헨델의 바이올린 소나타라고 했는데, 그 곡은 바로크 시대의 이른바 ‘교회 소나타’, 즉 춤곡 악장이 아니라 그냥 느리고-빠르고-느리고-빠른 악장이 교대하는 진지한 분위기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프로코피예프도 그 구성을 따른다. 단순한 몇 개의 주제가 단단한 형식으로 전개되면서 풍부한 시정, 그리고 프로코피예프 또는 20세기 러시아 음악 특유의 차갑고 날카로운 면모를 드러낸다.

1악장은 안단테 아사이. 무거운 분위기의 피아노에 이어 바이올린이 어두운 주제 선율을 제시한다. 말미에 약음기를 낀 바이올린이 빠른 악구를 연주하는 부분은 앞에 언급했듯이 프로코피예프가 오이스트라흐에게 “묘지에 부는 산들바람처럼” 연주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2악장은 알레그로 부르스코. 우직한 힘이 넘치는 악장이다. 소나타 형식에 가까운데 전개부에서 다조(多調)적인 부분이 특별한 인상을 남긴다.

3악장은 안단테. 다시 약음기를 낀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조용한 주제를 피아노가 섬세하게 뒷받침하면서 몽환적인 악상이 펼쳐진다. 가슴 깊이 신비로움이 새겨지는 악장이다. 마지막 4악장은 알레그리시모. 피날레 악장에 어울리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힘찬 합주로 악장을 열고 세밀하고 화려한 악구가 펼쳐진다. 3부 형식인데, 트리오 부분에서는 풍부한 감정과 열정이 돋보였다가 회고적인 분위기 속에 곡을 마무리한다.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정경화 연주)

페르트 : 거울 속의 거울

아르보 페르트(1935~)는 1980년 이후 서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에스토니아 출신의 작곡가다. 현대음악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인 ‘미니멀리즘’과 닮은 면이 있는 자신만의 ‘틴틴나불리’라는 스타일로 쉽고 명상적인 곡을 써서 현대음악계에서는 이례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평론가 그룹보다 일반 청중이 더 좋아하는 작곡가인 것이다. 틴틴나불리 스타일의 가장 유명한 곡이 에스토니아에서의 마지막 시기에 작곡한 「거울 속의 거울」(1978)이다. 원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곡인데, 요즘은 연주 기회가 많아 바이올린 대신 첼로 혹은 다른 멜로디 악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클래식 애호가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온음계 속에서 단순하게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선율 성부와 그 온음계의 삼화음 안에서만 움직이는 반주부의 틴틴나불리 성부가 이 곡을 구성한다. 그 단순성은 페르트가 옛 성가를 깊이 연구하면서 확립한 방식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랍다. 무척 느리고 명상적이며, 그 곡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온 듯한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바이올린은 명상을 하듯이 천천히, 그러나 반복적으로 선율의 오름과 내림을 계속한다. 피아노는 아르페지오로 느긋하게 화음을 연주한다. 가끔은 피아노가 저음을 울리거나 높은 음역에서 종소리 같은 소리를 울려서 특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틴틴나불리가 바로 ‘종’(bell)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10분이 넘지 않는 짧은 곡이지만 ‘거울 속의 거울’은 우리에게 영원한 시간을 경험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거울 속의 거울’이야말로 계속 반대편을 비치면서 무한성을 상징하는 장치 아닌가?

 

페르트 「거울 속의 거울」 (앤 아키코 메이어즈 연주)

슈베르트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판타지아 C장조, D.934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는 살아 생전에 빈에서조차도 알아주는 음악가가 아니었다. 리트(독일어 가곡) 작곡가로는 당시에도 최고라고 인정받을 만 했지만 그때는 소수의 애호가만이 좋아하는 장르여서 슈베르트의 이름을 알리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진력했던 분야가 오페라다. 그러나 로시니의 오페라가 빈의 오페라 극장가를 장악한 시절인데다가 노래를 그렇게 아름답게 만드는 슈베르트가 이걸 극에 어울리도록 ‘풀었다 놨다’ 하는 재능은 부족해서 몇 번이나 참담한 실패를 겪고 만다. 결국 슈베르트는 뒤늦게 오페라를 포기하고 만년에는 실내악과 피아노의 큰 작품들을 쓰게 된다. 그리고 슈베르트의 그 ‘위대한 슬픔’이 여기에 가장 감동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해인 1828년이 막 시작되었을 때, 그는 베토벤과도 친분이 있었던 보헤미아의 피아니스트 칼 마리아 폰 보클레트, 그를 통해 알게 된 역시 보헤미아의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슬라비크와 교유하게 되었다. 두 사람을 위해 작곡한 곡이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판타지아 C장조다. 빈은 동유럽과 서유럽을 잇는 통로요, 슈베르트의 부친은 체코의 모라비아에서 온 사람이었으며, 슈베르트 자신도 대귀족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딸들을 위한 음악 가정교사를 하느라 긴 여름을 슬로바키아 지역의 즈셀리크에서 보낸 적이 두 해나 있었다. 따라서 이 곡에 동유럽적인 색채가 가미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슈베르트는 20세 이전에 4곡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썼다. 그로부터 11년 만에 완성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다악장제의 이중주곡은 분명히 바이올린 소나타 5번에 해당하지만, 슈베르트는 그저 ‘판타지아’(환상곡)라고 했다. 전체가 중단 없이 연주되는 등 전통으로부터 자유스러우며, 슈베르트 고유의 독자적인 아름다움이 넘쳐흐르는 점은 판타지아로 불리기에 별 어색함이 없다. 이미 슈베르트에게는 명백한 피아노 소나타(13번과 14번 사이)에 해당하는 D.760을 별도의 ‘방랑자 환상곡’이라고 했던 전례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2월에 있었던 초연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중도에 퇴장한 비평가가 있는가 하면, 연주가 끝난 후에도 박수조차 나오지 않았고, “비상식적으로 길다”는 등의 혹평을 받았다. 지금은 슈베르트의 가장 감동적인 실내악의 하나로 사랑받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중간에 끊어지지는 않아도 이 곡은 ‘방랑자 환상곡’과 마찬가지로 사실상의 악장인 몇 개의 부분으로 구분된다. 느리게 시작하는 서주부에서는 피아노의 트레몰로 연주 위에 바이올린이 조용히 선율을 얹는다. 이어서 알레그레토, 동유럽 스타일의 리드미컬한 1주제 선율과 경쾌한 2주제 선율이 비교적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으로 전개된다. 여기까지가 1악장에 해당한다.

다음의 안단티노 부분이 2악장에 해당한다. 슈베르트가 1822년 작곡한 뤼케르트 시에 의한 「그대에게 입맞춤을 보내리」(Sei mir gegrüsst)라는 리트의 선율을 사용한 변주곡으로, 이 곡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4개의 인상적인 변주가 펼쳐진 후에 바이올린의 카덴차 풍의 악구가 등장하고 마무리된다. 3악장에 해당하는 마지막 부분은 다시금 서주의 트레몰로 선율이 등장하면서 연결된다. 알레그로 비바체의 변주곡의 주제 선율을 다시금 활기차게 변형시킨 행진곡 풍 주제로 시작되어 자유로운 형태로 펼쳐진다.

 

슈베르트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판타지아」 (클라라 주미 강, 손열음 연주)

글. 유형종(음악평론가)
사진제공. 크레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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