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악과 함께하는 그랜드 피날레

‘문화가 있는 날’ 무료로 즐기는 마티네 콘서트
2019년 6월 10일
이 계절만큼이나 뜨거운 고양예술인들의 열정
2019년 6월 24일
112019년 6월 11일
2019 디토 페스티벌 in 고양
디토 콘체르토 콘서트 ‘디토 meets 고양시교향악단’

앙상블 디토의 마지막 시즌인 올해, ‘그랜드 피날레’가 될 마지막 공연은 6월 29일(토)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고양시교향악단(지휘 카를로 팔레스키)과의 협연으로 펼쳐진다. 멤버들의 비르투오시티(virtuosita, 뛰어난 연주 기교나 기술)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로, 앙상블 디토의 리더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2015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유치엔 쳉, 그리고 2015 윤이상 콩쿠르 우승자인 첼리스트 제임스 김이 협연에 나선다. 박제성 음악평론가의 프로그램 노트를 통해 왁스만의 「카르멘 환상곡」, 생상의 첼로 협주곡 1번, 베를리오즈의 「이탈리아의 해롤드」 등 ‘그랜드 피날레’ 협연곡들의 감상 포인트를 미리 살펴보자. [편집자주]

왼쪽부터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첼리스트 제임스 김, 바이올리니스트 유치엔 쳉
지휘자 카를로 팔레스키와 고양시교향악단

앙상블 디토의 ‘그랜드 피날레’를 축하하는 서곡

차이콥스키 : 1812년 서곡, 작품번호 49

1880년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는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격퇴(일명, 조국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모스크바 서쪽에 지은 구세주 성당으로부터 오케스트라용 서곡 작곡을 위촉받았다. 이는 예상치 못한 일로서 그는 평소 어떤 기념일을 위해 작곡을 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고, 당시 작곡가로서 발표했던 작품들이 큰 호평을 받지 못해 정신적으로 위축되었던 시기였다. 더 나아가 마감일도 촉박했다. 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 이를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는 교향악적 창작력이 고갈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에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나 슬라브 행진곡과 같은 훌륭한 위촉곡을 작곡한 바 있는 노련한 경험자로서 다시 한 번 예술적인 창조력을 발동시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1812년 서곡」은 20세기 이후 시각적인 효과가 뛰어난 축전용 오케스트라 서곡으로, 프랑스를 제외한 전 세계 청중으로부터 사랑받게 되었다.

축제용 서곡인 만큼 차이콥스키는 순수하게 자신의 창작 멜로디만을 사용하기보다는 다양한 음악적 인용을 솜씨 있게 프로그래밍 하여 대중적인 인지도와 호소력을 높이고자 했다. 이 곡은 크게 세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부분에 등장하는 첼로와 비올라의 신성한 멜로디는 러시아 정교회의 성가 「주여, 당신의 백성을 구하소서」를 차용한 것으로서 승리를 기원하는 러시아의 염원을 표현했다. 이후 그의 초기 오페라인 <보예보다>에 등장했던 서정적인 멜로디와 작곡가의 창작 주제로서 고통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오보에 선율이 이어진다.

두 번째 부분은 프랑스군의 침공을 묘사한 빠른 전쟁 묘사 부분으로서 행진곡풍의 「라 마르세예즈」와 서정적인 선율, 플루트가 연주하는 구슬픈 춤곡 풍의 멜로디인 러시아 민요 「문 앞에서」가 등장하여 서로 음악적 대결을 이룬다. 이후 격렬한 전쟁이 벌어지면서 「라 마르세예즈」와 러시아 민요 및 성가들이 다양하게 등장, 패배의 대포 소리와 승리의 정교회 종소리를 시작으로 러시아의 개선 장면이 펼쳐진다. 대포의 연발(콘서트홀에서는 보통 큰북)과 함께 금관이 연주하는 장중한 주제(제정 러시아 국가인 「신이여 차르를 보호하소서」)를 거친 뒤 성대한 종소리와 함께 마무리된다.

 

차이콥스키 「1812년 서곡」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 연주)

바이올린이 이끄는 걸작 오페라의 주제

왁스만 : 카르멘 환상곡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주요 멜로디들을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곡으로 편곡한 왁스만(Franz Waxman, 1906~1967)의 「카르멘 환상곡」은 순수 콘서트용 작품으로 의도된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몸담고 있던 영화음악(1946년 영화 <유모레스크>)용으로 제작된 것이다. 우리에게는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가 이 곡을 연주, 녹음하며 잘 알려지게 되었다. 카르멘 주제를 사용한 보다 유명하고 고전적인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 1844~1908)의 「카르멘 환상곡」이 드라마적이고 교향악적이라면, 왁스만의 「카르멘 환상곡」은 독주자의 비르투오시티에 한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왁스만 「카르멘 환상곡」 (김봄소리 연주)

첼로의 명인기가 전하는 프랑스의 특유의 낭만

생상 : 첼로 협주곡 1번 a단조, 작품번호 33

모든 장르를 통틀어 다양한 작품을 남긴 바 있는 프랑스 작곡가 생상(Camille Saint-Saëns, 1835~1921)는 “동시대에 가장 뛰어난 음악적 조직력을 가진 작곡가”라는 샤를 구노의 평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음악적으로 완벽한 구성과 표현력, 색채의 팔레트를 구사했다. 고전적인 음악어법에 통달했던 그는 피아노의 명수이기도 했던 탓에 기악곡에서 화려한 비르투오시티를 발산하는 법에도 능숙했다. 어떻게 보면 20세기 프랑스 작곡계의 새로운 경향인 신고전주의(라벨이나 풀랑크로 대변되는 6인조)를 태동케 한 선구자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하늘이 내린 천재의 전형으로서 당시 유럽 음악계를 뒤흔든 바그너나 베르디와 같은 작곡가들과는 또 다른 길을 걸었다.

생상의 「첼로 협주곡 1번」은 1873년 1월 19일, 에두아르드 델데베즈의 지휘로 파리음악원 오케스트라와 이 곡을 헌정 받은 첼리스트 오귀스트 톨베크의 협연으로 초연이 이루어졌다. 1872년 11월 37세의 나이에 작곡한 것으로 프랑스 첼로악파의 상징과도 같은 곡이자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고전적 첼로 협주곡의 전형으로 여겨지고 있다.

생상의 첫 오페라인 <노란 공주>의 초연 직후 작곡했는데, 이후 1877년 그의 대표 오페라인 <삼손과 데릴라>가 초연되기 전까지 약 5년간은 교향곡들과 교향시, 바이올린을 위한 유명 소품들을 비롯한 많은 교향악적 작품들이 탄생한 시기에 해당한다. 생상의 모든 협주곡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이 첼로 협주곡 1번은 파블로 카잘스가 1905년 영국 데뷔 무대를 가질 때 연주했을 정도로 명곡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세 부분(Allegro non troppo – Allegretto con moto – Tempo primo)으로 구분되지만, 슈만의 경우처럼 하나의 악장인 듯 이어서 연주되는 순환적 형식으로 작곡되었다. 오케스트라의 도입부 없이 강렬한 오케스트라 총주 화음 뒤에 곧바로 첼로의 하강 스케일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시작한다. 전례가 없을 정도로 풍부한 화성과 넘치는 셋잇단음표의 향연, 쉽게 예상하기 힘든 드라마틱한 전개가 돋보이고, 이와 대조되는 서정적이되 댄디한 멜로디가 화려한 첫 주제와 대화를 하듯 활기차게 전개된다.

미뉴엣에 해당하는 두 번째 부분에 접어들어서는 약음기를 낀 현악기들을 배경으로 첼로가 일말의 전원적인 색채를 머금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오케스트라 반주 하에 첼로의 짧고 간결한 솔로 카덴차가 등장한 뒤 곧바로 시작부의 B♭ 셋잇단음표 하강 스케일의 알레그로 첫 주제가 제시되며 마지막 부분이 시작한다. 여기서 생상은 앞선 주제들을 다양하게 변형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재료들과 명료한 대비를 사용해 1악장보다 더 변화무쌍하고 풍부한 내용을 만들어 나간다. 특히 첼로의 명인기와 오케스트라의 극적인 효과가 돋보이며 화려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피날레로 끝을 맺는다.

 

생상 첼로 협주곡 1번 a단조 (솔 가베타, 덴마크 방송 교향악단 연주)

우울한 몽상가, 해롤드의 유랑을 그리는 비올라

베를리오즈 : 이탈리아의 해롤드, 작품번호 16

1830년 「환상 교향곡」을, 1832년 속편인 「렐리오, 생활로의 복귀」를 발표하여 일약 스타덤에 오른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1869)는 사람들로부터 음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좌충우돌의 공상가로 비춰졌는데, 그의 시선은 현실에 대한 투쟁이라기보다는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자연을 동경하는 시인에 가까웠다. 그는 로마대상(Prix de Rome)을 받은 이후 로마의 메디치 빌라에 머물면서 바이런의 시집을 즐겨 읽었다고 기록을 남긴 바 있는데, 항상 새로운 세계와 자연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었기에 바이런의 시 <차일드 해롤드의 편력>의 주요한 모티브를 소재로 보다 낭만적이고 관찰자적인 작품을 작곡하고 싶어 했다.

비르투오소적이고 광적인 작품 세계에서 떠나 일종의 휴식과 여행을 원했던 작곡가의 마음이 반영된 것일까? 이 「이탈리아의 해롤드」 곳곳에서는 도시에서 탈출한 개인의 ‘전원에 대한 동경’이 연상되는 수채화적인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무엇보다 솔로로 등장하는 비올라는 일체의 화려한 개인기 없이 교향악적인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배경으로 여행자이자 관찰자인 작곡가 자신으로서의 모티브를 제시하는 동시에 전체를 조망의 역할 정도만을 하는데, 그 모습이 더욱 감상적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이 작품이 구체화된 것은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인 파가니니의 요청 덕분이다. 1833년 12월 22일 두 사람이 처음 만난 한 연주회에서 파가니니는 베를리오즈에게 자신이 최근에 구한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 비올라를 위해 비올라 협주곡을 작곡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베를리오즈는 당시로서는 좀처럼 생각하기 힘든 비올라 협주곡이라는 음악을 어떻게 쓸지 고심했다.

진행은 순조로워 1834년 1월부터 베를리오즈는 곧바로 작곡을 시작했고 6월경 마무리가 되었지만, 파가니니가 요청한 의도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 탄생했다. 왜냐하면 작곡가의 의도대로 비르투오시티를 배제한, 어디까지나 상상력 풍부하고 회화적 이미지가 분명하며 작곡가 본연의 드라마트루기에 충실한, ‘협주곡’이 아닌 ‘교향곡’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해 11월 23일 파리음악원 오케스트라와 크레티엥 위앙의 비올라 연주로 초연되었고 이내 대성공을 거둔다. 리스트는 이를 비올라가 수반하는 피아노 편곡으로 작곡하기도 했다. 결국 파가니니는 이 작품을 한 번도 연주하지 않았지만 1838년 12월 이 작품을 처음 들은 뒤 감동하여 작곡가의 손에 키스를 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1악장은 ‘산속의 해롤드: 우수, 행복과 환희의 장면’로서 우수에 찬 오케스트라 도입부로 시작한 뒤 꿈을 꾸는 듯한 멜로디가 비올라에 의해 제시되며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후 비올라는 수시로 오케스트라와 통일된 사운드를 이루며 교향악적인 충만함으로 점점 고조된다. 젊은 해롤드의 고뇌와 여정, 새로운 희망이 엿보이는 첫 악장으로서, 작곡가가 설명한 바대로 저녁 무렵 해롤드가 순례자 일행이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두 번째 악장과 절묘한 연속성을 이룬다.

바그너가 극찬한 바 있는 2악장 ‘저녁 기도를 찬양하는 순례자의 행진’은 강한 리듬의 행진곡이라기보다는 약음기를 낀 비올라가 조용하면서도 경건하게 길을 걷는 느낌을 자아내는 신비로운 장면으로, 피아니시시시모(pppp)까지의 초약음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특히 중간부부터 등장하는 비올라의 기민한 아르페지오가 불러일으키는 배음과 운동감이 최면적인 효과를 자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3악장은 ‘아브루치산 사람이 애인에게 보내는 세레나데’로서 A-B-A 형식을 갖춘 일종의 스케르초 악장이다. 작곡가가 이탈리아에 머물 때 들었던 떠돌이 악사의 피리 리듬을 비올라 및 피콜로가 연주하며, 감미롭다기보다는 소박한 느낌을 자아내는 전원적인 세레나데라고 할 수 있다.

비올라 솔로의 역할이 가장 적은 마지막 4악장은 ‘산적의 향연, 전경의 회상’으로서 앞선 악장들의 일련의 모티브들을 통해 1831년 막 로마에 도착한 작곡가가 품었던 일탈에의 욕망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온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환상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에 버금가는 베를리오즈 특유의 막강한 금관/타악기 화력이 총동원되고, 매혹적인 악기와 목관악기들이 합세하며 주인공의 대범한 모험에 대한 일말의 도취적인 승리감이 드러난다.

 

베를리오즈 「이탈리아의 해롤드」 (앙투안 타메스티,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연주)

글. 박제성(음악평론가)
사진제공. 크레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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