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지나간 것은 그리워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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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읽는 세계 연극 ⑦ 미국 편
손톤 와일더 <우리 읍내>
미국 어느 마을의 조용한 풍경. 연극 <우리 읍내>는 이렇게 작고 평범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다루고 있다.
특이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소소한 이야기가 어떻게 세계적인 명작 연극으로 손꼽히게 되었을까.

미국 북동부 위쪽에 자리한 뉴햄프셔 주의 작은 마을 그로버즈 코너즈. 작은 거리를 사이에 두고 아담한 집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고, 마을 구석구석에는 학교와 교회, 우체국과 읍사무소, 텃밭과 공동묘지가 자리 잡고 있다. 이윽고 저 멀리 동이 트면 죽은 듯이 조용했던 마을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아침나절 내내 신문과 우유를 배달하는 소리, 아침식사 준비하는 소리로 분주했던 마을은 오후가 되면 울타리 너머로 이웃의 안부를 물을 수 있을 만큼 조용하고 평화롭다. 그리고 해가 지면 하나둘 불이 꺼지며 모두가 고요한 잠에 빠져든다.

한 마디로 그로버즈 코너즈의 하루는 미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조용하고 평범한 마을 풍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특이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미국 마을의 풍경을 전 세계 사람들이 수십 년간 끊임없이 연극 무대 위에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매번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면서. 연극의 이름은 바로 <우리 읍내>(Our Town)다.

퓰리처상 전문 작가, 손톤 와일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시작하는 푸슈킨의 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애호하는 ‘국민 시’ 중 하나다. 달력이나 편지지, 엽서 등의 문구로 널리 쓰였고, 요즘은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의 배경 시로도 애용되고 있는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끝난다.

“현재는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모든 것은 한 순간 지나가 버리고, 지나간 것은 그리워지리니.”

덧없이 흘러가는 삶의 무상함과 이미 지나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푸슈킨이 이 한 구절의 시에 담아냈다면, 손톤 와일더(Thornton Wilder)는 이를 자신의 대표작 <우리 읍내>를 통해 무대 위에 그려냈다.

1897년 위스콘신 주 매디슨에서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난 손톤 와일더는 예일과 프린스턴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엘리트 작가로, 연극으로 유명해지기 전에 소설가로 먼저 두각을 드러내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란 작품으로 1927년 첫 번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와일더는 유난히 퓰리처상과 인연이 깊은 작가이기도 한데, 이후 희곡인 <우리 읍내>와 <위기일발>로 1938년, 1942년에 다시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퓰리처상 3회 수상’이란 기록을 세웠다.

1920년 예일대학 졸업 당시의 손톤 와일더. 엘리트 소설가이자 작가로 퓰리처상을 3회나 수상한 손톤 와일더는,
지극히 평범한 미국의 보통 마을을 그린 <우리 읍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인지 깨닫게 해준다.
(출처 : Beinecke Rare Book & Manuscript Library, Yale University)

손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는 1938년 초연 이후 전 세계 연극무대에서 꾸준히 공연되고 있는 ‘현대의 고전’ 중 하나다.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와 매우 연극적인 형식을 통해 소박한 삶의 진실을 끄집어내는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아워 타운> <우리 동네> <우리 마을> 등의 제목 하에 연극, 뮤지컬, 번안극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연된 바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연극학과 학생들의 졸업 작품이나 워크숍, 시민연극 등 아마추어 연극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레퍼토리이기도 한데, 이는 비교적 많은 인물이 비슷한 비중으로 등장해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소박하게 그려내는 작품의 특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지나간 것은 그리워지리니

<우리 읍내>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특별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 없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과 일상을 그리고 있다. 극의 배경은 1900년대 뉴햄프셔 주의 작은 마을 그로버즈 코너즈. 등장인물은 이 마을 의사 깁스네 가족과 신문사 편집장인 웹 씨의 가족, 그리고 그 외 마을 사람들로 다들 어떤 특별한 점도 없는 ‘보통’ 사람들이다.

막이 오르면 아침이 밝아오고,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이 펼쳐진다. 우유 배달부가 우유를 배달하면서 하루가 시작되고, 소란스런 분위기 속에서 아침식사를 마친 깁스와 웹 씨네 가족들은 각기 직장과 학교를 향해 떠난다. 아이와 남편을 배웅하고 난 부인들이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덧 해가 지고,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저물면 이들은 다시 집으로 모여 저녁을 먹으며 이웃의 험담을 하고, 자기 방에서 숙제를 하거나 교회 성가대 연습을 하다가 잠이 든다.

이어 2막에서는 이처럼 평범한 일상 속에 자란 두 남녀, 깁스 집안의 아들 조지와 웹 부부의 딸 에밀리가 서로 사랑을 느끼고 결혼에 이르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여기엔 어떤 극적인 로맨스나 사랑의 장애물도 없다. 그저 어린 시절부터 친했던 두 집안의 아이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정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인생의 통과의례처럼 그려질 뿐이다.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 찬 신랑 신부와 이들을 대견하면서도 서운한 눈길로 바라보는 양가의 부모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이들을 지켜봐온 마을 사람들의 흐뭇한 시선 속에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마지막 3막의 배경은 2막으로부터 9년의 시간이 흐른 뒤, 마을 뒤편의 공동묘지이다. 조지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던 중 아이를 낳다 죽은 에밀리의 장례식이 막 끝났다. 슬픔에 찬 가족들이 떠나고 나면 무덤가에는 이미 세상을 떠나 묻힌 사람들이 초연하게 에밀리를 맞이한다. 아직 자신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 에밀리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대감독에게 시간을 되돌려달라고 부탁한다. 그녀는 과거의 평범하고 행복했던 일상 중 하루를 택해 돌아가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를 아무렇지도 않게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고는 다시 무덤으로 돌아온다.

이 장면에서 일상의 풍경을 뒤로 한 채 다시 무덤으로 되돌아오면서 에밀리가 남기는 대사는 <우리 읍내> 작품 전체에서 가장 강렬하고 깊은 울림을 주는 대사이자, 몇 번을 봐도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명대사라 할 수 있다.

에밀리 : 난… 미처 몰랐어요. 모든 게 지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결코 몰랐어요. 언덕 위의 제 무덤으로 데려가 주세요. 그렇지만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다시 한 번만 보고요. 안녕, 세상이여. 안녕, 안녕. 그로버즈 코너즈… 엄마, 아빠, 시계소리. 그리고 엄마의 해바라기도 안녕. 그리고 음식과 커피도. 또 새로 다린 옷과 뜨거운 물에 목욕하는 것, 그리고 자고 일어나는 것도. 오, 세상이여, 너는 모든 사람들이 깨닫기에는 너무 멋진 곳이야.
(그녀는 무대감독 쪽을 쳐다보다가 눈물을 흘리며 갑자기 질문을 던진다)
살고 있는 동안 인생에 대해서 깨닫는 사람도 있나요? 매 순간, 순간마다요?

무대감독 : 없죠. (잠시 사이) 아마도 성자나 시인들, 그들은 약간은 알 거요.

에밀리 : 이제 돌아갈 준비가 됐어요.

손톤 와일더, <우리 읍내>, 김계숙 역, 상명대학교 출판부, 1999.

아무렇지도 않게, 그저 매일의 일과처럼 흘러갔던 1막의 일상들이 3막에서 똑같이 반복되지만 이것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임을 깨닫는 순간, 그 사소한 일상들은 그 어떤 극적이고 가슴 벅찬 순간보다도 더 애틋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이렇듯 <우리 읍내>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일상을 그리는 동시에 그 아무것도 아닌 하루하루가 실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일러스트레이션·정유나

가장 연극적인 형식의 연극

<우리 읍내>는 가장 일상적인 삶을 그리면서도 매우 연극적인 기법들을 사용함으로써 ‘연극주의’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먼저 와일더는 이 작품의 무대에 배경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대를 사실적으로 꾸미다 보면 이야기가 특정한 시공간 속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일상의 보편성을 강조하고 싶었던 와일더는 이 작품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서만 제시하고 무대는 빈 상자 같은 상태로 비워지기를 희망했다.

또 와일더는 무대 위에 몇 개의 의자와 테이블 정도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소품도 사용하지 않고자 했다. 등장인물들은 신문을 던지고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난로에 불을 지피고 세수를 하지만 어떤 소품도 쓰지 않은 채 오로지 마임으로 연기한다. 이러한 마임은 관객으로 하여금 배우의 연기에 집중하게 하는가 하면,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좀 더 보편적인 것으로 만드는 효과를 자아낸다. 이 역시 보편적인 삶의 진리를 전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와 관련이 깊다 할 수 있다.

무대 위의 모든 배경과 소품을 제거한 채, 오로지 배우들의 연기와 약속만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우리 읍내>는 그만큼 배우들의 조화와 앙상블이 중요한 작품이다. 어느 한 사람도 튀지 않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한 명 한 명 개성 있고 의미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내야 하기에 의외로 배우들에게는 까다로운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

한편 이 작품에는 ‘무대감독’이란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여기서 무대감독은 전지전능한 관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극을 이끌어가는 해설자 역할을 맡고 있으며, 때로는 등장인물들의 대화 사이에 끼어들어 대화를 중단시키기도 한다. 또 현재 대사를 하고 있는 등장인물의 운명에 대해 언급하거나 마을의 역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현재와 과거, 현재와 미래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현재 무대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행위가 실제가 아닌 연극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관객에게 주지시킨다.

무대 위를 한 번도 떠나지 않으면서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관찰, 정리해주는 무대감독은 가끔씩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기도 하고 때로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즉, 이러한 액션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단순히 극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관찰자의 자세로 무대 위의 삶을 바라보게 하고, 나아가 자기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게 만드는 인물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무대감독은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가 서사극을 통해 소개했던 ‘소외 효과’ 혹은 ‘낯설게 하기’와 비슷한 작용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무대감독은 <우리 읍내>가 공연될 때마다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인물이다. 그간 무대감독 역할을 거쳐 간 배우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명배우 폴 뉴먼이 무대감독 역을 맡아 토니상 베스트 리바이벌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고, 1938년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는 작가인 손톤 와일더가 직접 무대감독을 연기하기도 했다. 그는 이후 미국배우협회증을 얻을 정도로 이 무대감독이란 배역에 큰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 1971년에는 제럴딘 피츠제럴드가 미국의 첫 여성 무대감독으로 무대에 섰고 이후 헬렌 헌트 등 쟁쟁한 여배우들이 이 역할을 맡기도 했다.

 

2003년 TV용 영화로 만들어진 <우리 읍내> 중 에밀리의 마지막 인사 장면.
2002년 브로드웨이 부스 씨어터에서 공연된 연극을 영화화한 것으로, 명배우 폴 뉴먼이 무대감독 역할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폴 뉴먼은 이 작품에서 보여준 뛰어난 연기로 토니상, 에미상, 영화배우조합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손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는 어떤 특별한 시대의 특별한 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가장 보편적인 진실을 보여주는 소박한 작품이다. 무대를 비우고 소품을 없애고 무대감독을 등장시키는 등 이 작품에서 사용되고 있는 모든 방식들은 이러한 소박한 진실의 보편성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작가가 고안해낸 장치들이다. 와일더는 이러한 시도를 통해 미국 연극사에 ‘연극주의’라는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또한 일상적인 삶의 가치라는 소박하고도 보편적인 진리에 대해 오랜 시간 폭넓은 공감을 받아낼 수 있었다.

글. 김주연(연극평론가)

필자 김주연은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고, 월간 <객석>에서 연극 담당 기자로 활동하면서 『우리 시대의 극작가』(공저)를 출간했다. 연극학으로 박사 학위를 마친 뒤 현재 연극평론가와 드라마터그, 그리고 연극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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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의 역사와 사회,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고 작가가 희곡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생각해보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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