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라는 거울로 세상을 비추다

영원한 청년의 시를 기리다
2019년 10월 13일
The Art of Possible : 가능성의 기술
2019년 10월 13일
명작으로 읽는 세계 연극 ⑪ 프랑스
몰리에르의 <타르튀프>
몰리에르의 연극 <타르튀프>가 1664년 초연된 장소인 베르사유 궁전. 본래 왕이 사냥할 때 머무는 여름 별장이었으나, 1682년 절대왕권의 상징인 ‘태양왕’ 루이 14세가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왕족과 귀족들이 전부 따라와 화려한 생활을 이어갔다. 한편, <타르튀프>는 그 내용이 종교인의 위선을 비판하는 것이었기에 성직자들의 강한 반발에 부닥쳤고 공연 금지와 개작, 또 다시 공연 금지가 반복된 끝에 1669년에야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이 유구한 역사와 전통 속에서 빚어낸 자신들의 문화와 예술에 크나큰 자부심을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와 예술의 나라’라는 명칭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나라는 역시 프랑스일 것이다. 미술, 문학, 음악, 오페라, 발레, 건축, 음식, 와인, 패션, 향수에 이르기까지 오감을 자극하는 모든 문화와 예술 장르에 있어 프랑스는 언제나 최고의 수준을 자랑해왔고, 또한 세계의 흐름을 주도해왔다. 연극 역시 빠지지 않는 그들의 자랑 중 하나인데, 그 중에서도 몰리에르(Moliere)는 위대한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극작가 중 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프랑스 연극의 긍지라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연극상 중 하나가 ‘몰리에르 상’이라는 점, 또 프랑스를 대표하는 국립극장인 코미디 프랑세즈(Comédie-Française)의 애칭이 ‘몰리에르의 집’(La Maison de Molière)이라는 점만 보아도 이 나라가 얼마나 몰리에르의 연극을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학술기관인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 내부, 몰리에르의 흉상에 새겨진 문구는 한 나라가 한 사람의 예술가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이자 명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영광을 위해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의 영광을 위해 그가 필요할 뿐이다.”

연극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

프랑스 고전희극, 나아가 서양 희극의 완성자 혹은 종결자로 칭송받으며 수많은 드라마를 써낸 몰리에르는 그 자신의 생애 역시 그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극적인 요소가 많았다. 몰리에르(본명은 장 밥티스트 포클랭, Jean-Baptiste Poquelin)는 1622년, 부유한 실내 장식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서 자란 그가 언제, 어떻게 연극을 접했는지는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대략 스무 살 무렵 그는 돌연 부르주아의 안락한 삶을 포기한 채 유랑극단의 무명배우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이후 10여 년 간 프랑스 방방곡곡을 떠돌며 유랑극단 생활을 이어가던 몰리에르는 1658년 다시 파리에 입성, 우연한 기회에 루이 14세의 호감을 얻게 되고 이후 승승장구하며 명성을 떨치게 된다. 유랑극단의 무명배우로 시작해 절대 권력인 태양왕의 비호 아래 ‘왕의 극단’이란 칭호를 얻는 등 연극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를 얻기까지 그의 인생은 실로 한 편의 드라마처럼 숨 가쁘게 이어졌다.

이후에도 귀족 및 성직자, 궁정의 다른 예술가 등 수많은 적들로부터 받은 비난과 박해, 이에 대항하기 위한 끝없는 투쟁, 루이 14세의 총애를 잃고 난 뒤 겪은 극단 운영 문제와 불행한 결혼 생활, 고독한 말년에 이르기까지 몰리에르는 인생의 후반부 또한 파란만장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다. 그리하여, 자신의 마지막 작품인 <상상병 환자>(Le Malade imaginaire)를 공연하던 중 무대 위에서 쓰러져 몇 시간 뒤 생을 마감한 그의 최후는 평생 무대 위에서, 무대를 위해 살다간 예술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연극적 죽음’이었다.

몰리에르는 처음 연극을 시작할 때부터 배우, 작가, 연출가, 극단대표라는 4가지 역할을 도맡아 수행했다. 그는 왕과 귀족들을 설득해 공연을 올릴 재원을 마련했고, 극단 공연 중 3분의 1 가량의 작품을 직접 쓰고 연출했으며 종종 무대에 올라 연기를 펼쳤다. 그 와중에 수많은 적들로부터 자기 작품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단원들의 불만과 아내의 바람기를 달래야 했다. 많은 연구자들은 몰리에르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급작스레 죽게 된 데는 이러한 지나친 업무, 그리고 평생에 걸친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이 되었으리라 짐작하고 있다.

프랑스의 국립극장인 코메디 프랑세즈는 1680년 태양왕 루이 14세에 의해 설립되었다. 몰리에르가 죽은 지 7년이 지난 뒤였지만, 몰리에르의 극단과 다른 극단이 합쳐져 탄생한 것이었기에 ‘몰리에르의 집’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현재 코메디 프랑세즈는 파리에 3개의 극장을 보유하고 있는데, 사진은 그 중 대표적인 살 히슐리유(Salle Richelieu)다. 건축가 빅토르 루이의 설계에 따라 1790년 완공된 건물로, 1799년부터 지금까지 코메디 프랑세즈가 사용하고 있다. (출처 : WIKIMEDIA COMMONS)

영광과 박해를 동시에 선사한 작품

이처럼 엄청난 영광과 크나큰 고난을 동시에 감수해야 했던 몰리에르의 생애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타르튀프>(Tartuffe)라 할 수 있다. <타르튀프>는 매번 비판과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몰리에르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끈질기고 격렬한 탄압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몰리에르는 주인공 타르튀프를 통해 당대 프랑스 사회에서 귀족보다도 더 큰 특권을 누리며 권력을 행사하던 성직자 계층을 유쾌하고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그 덕분에 고위 성직자들과 신앙심 깊은 귀족들의 격분을 샀다.

1664년 베르사유 궁전에서의 초연 직후, 몰리에르는 “육체를 뒤집어쓰고 인간의 옷을 입은 악마”로 불리며 교회로부터 파면 당했고, 몇 년 동안 공연이 금지되다가 1669년에 이르러서야 왕의 허락 아래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막상 공연이 이루어진 후에는 당대 관객들로부터 엄청난 찬사를 받는 등 성공을 거두었으나, 그 사이 몰리에르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는 <타르튀프>의 서문에 실린 작가의 구구절절한 하소연을 통해 지금도 생생하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말도 많았고 오랫동안 박해받았던 희극이다. 이 희극이 다루는 사람들은 내가 지금껏 다루었던 그 모든 사람들보다 프랑스에서 힘 있는 자들임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후작들, 귀부인들, 오쟁이 진 남편들, 의사들은 자신들이 극화된 사실을 그럭저럭 받아들였고, 자신들의 희화적인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처럼 재미있어하는 척 했다. 하지만 그 위선자들은 조금도 농담을 받아 넘기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격분하여 내 희극에 맞서 무장했다.

몰리에르, <타르튀프> 중 서문, 백선희 역, 동문선, 2000.

위선자의 대명사, 타르튀프

파리의 부유한 상인인 오르공은 위선적인 성직자 타르튀프의 사탕발린 말과 행동에 넘어가 그를 성자처럼 받들면서 살아가고 있다. 가족들은 그에게 타르튀프의 위선을 고발하려 들지만, 오르공은 듣는 척도 안 할뿐더러 타르튀프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증여하고, 이미 약혼자가 있는 자기 딸까지 시집 보낼 계획을 세운다. 이 장면에서 오르공의 무지와 고집은 주인공 타르튀프의 교묘한 악행을 넘어설 만큼 답답하고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타르튀프 : 어서 저를 여기서 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저들이 이렇게 저를 공격할 이유가 없어질 것 아닙니까.

오르공 : 아닙니다. 계셔야 합니다. 이건 제 생사가 걸린 문제입니다.

타르튀프 : 할 수 없죠! 제가 괴롭겠지만 정말로 그렇게 원하신다면….

오르공 : 아!

타르튀프 : 좋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맙시다. 이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압니다. 명예는 상처받기 쉬운 것입니다. 당신과의 우정을 생각해서 저는 쑥덕공론과 말이 나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부인을 피해 다니겠습니다. 그러면….

오르공 아닙니다. 누가 뭐라 하든 아내와는 가깝게 지내 주십시오. 모두를 화나게 하는 게 내겐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항시 아내와 함께 있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십시오. 그뿐이 아닙니다. 모두를 더욱 골탕 먹이기 위해서라도 저는 당신을 상속인으로 삼을 작정입니다. 이 길로 달려가 정당한 절차를 밟아, 내 재산 전부를 당신에게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내 제의를 받아주시겠습니까?

타르튀프 :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바랄 따름입니다.

오르공 : 청렴하기도 하지! 얼른 서면 서류를 작성하러 갑시다. 시샘 부리는 자들은 원통해 죽으라지요!

몰리에르, <타르튀프> 중, 백선희 역, 동문선, 2000.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한 오르공의 아내 엘미르는 남편의 무지를 일깨우기 위해 계략을 꾸민다. 남편을 테이블 밑에 숨어 있게 한 상태에서 자신에게 흑심을 품고 있는 타르튀프를 불러 그가 자신을 농락하려 드는 광경을 직접 목격하게 한 것이다. 그제야 오르공은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타르튀프를 내쫓으려 하지만, 타르튀프는 적반하장으로 오르공의 재산 증여 문서를 들이대며 오르공을 내쫓으려 한다.

위기의 순간, 궁정에서 파견한 집행관이 등장해 타르튀프의 죄를 낱낱이 고발한 뒤 체포한다. 일찌감치 타르튀프를 수상히 여긴 국왕이 그의 행적을 추적해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왕의 은혜로 위기를 넘긴 오르공 가족이 국왕의 혜안과 현명한 처사에 감사하는 사이, 막이 내린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조금 허무한 결말이지만, 이후 타르튀프의 이름이 프랑스어에서 ‘위선자’를 뜻하는 일반명사가 되었을 정도라고 하니, 당시에 이 작품이 얼마나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사랑받았을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일러스트레이션·정유나

희극의 ‘완성자’이자 ‘종결자’

프랑스 연극의 흔들리지 않는 자부심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서양연극사에 있어 몰리에르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하다. 무엇보다도 그는 당시까지만 해도 우스꽝스러운 소품, 휴식과 여흥거리를 위한 프로그램에 불과했던 희극을 비극과 동등한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몰리에르의 작품에는 고대 그리스 희극으로부터 로마 희극, 중세의 소극과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로 이어지는 전통 서양 희극의 주제와 인물의 영향이 고스란히 보이는데, 이를 단순히 계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만의 비판적인 시선과 생생한 인물 묘사를 더해 희극의 품격을 높인 것으로 평가 받는다. 그를 서양 희극의 ‘완성자’이자 ‘종결자’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 할 것이다.

몰리에르는 희극을 단순히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웃음을 주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로 보았다. 웃음이라는 거울을 사용해 인간과 사회의 진실을 비추어내는 것이 희극의 임무라고 생각한 몰리에르의 희극 작품들은 기존의 희극에 대한 인식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해주었다. 이러한 작가의 사회의식은 <타르튀프>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는 <타르튀프>의 서문에서 “희극의 임무란 인간들의 악덕을 고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 어떤 이유로 특권자들이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불평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몰리에르는 작품 속에서 당대 프랑스 사회를 살아가는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을 섬세하고도 생생하게 그려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귀족, 부르주아, 평민과 하인, 의사, 약사, 귀부인, 종교인 등 다양한 계급의 인물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려낼 수 있었던 데는 아마 13년간의 유랑극단 생활과 궁정극장에서의 삶이라는 극단적인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확실히 몰리에르처럼 궁정과 도시, 그리고 지방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전역에 걸쳐 다양한 경험을 가진 작가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렇듯 희극의 임무에 대한 강력한 소명의식과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인간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이를 생생한 언어로 그려내는 작가로서의 역량에 힘입어 몰리에르는 17세기 프랑스에 한정되지 않는,보편성을 지닌 희극 작품을 수없이 많이 남겼다. 그리고 그의 희극들은 지금도 수많은 나라에서 되풀이되어 상연되면서 ‘웃음’을 통해 우리 자신을 비춰주고 있다.

프랑스 화가 피에르 미냐르(Pierre Mignard)가 1658년에 완성한 몰리에르의 초상화(출처 : WIKIMEDIA COMMONS)

글. 김주연(연극평론가)

필자 김주연은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고, 월간 <객석>에서 연극 담당 기자로 활동하면서 『우리 시대의 극작가』(공저)를 출간했다. 연극학으로 박사 학위를 마친 뒤 현재 연극평론가와 드라마터그, 그리고 연극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명작으로 읽는 세계연극’ 시리즈는 세계 연극사에서 손꼽히는 희곡들을 국가별로 한 편씩 골라
그 나라의 역사와 사회,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고 작가가 희곡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생각해보는 칼럼입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