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부조리극
말하자면, <24/24>는 일종의 부조리극이다. 원하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잠을 줄이다가 결국 잠이 아예 없어진 사람의 이야기. 초고는 그렇게 잠을 없애는 데 성공하기까지의 이야기다.
14. 2인1역
원래 초고는 주인공 한 사람의 서사로 구성했었다. 그걸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내면과 외면을 분리했다. 원래의 자아(내면)와 사람들의 시선 등 세상의 압박에 원하는 걸 포기하는 자아(외면)로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2인 1역의 작품이 나오게 됐다.
15. 걸어서 세계 속으로
<24/24> 주인공이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이다. 즐겨 읽는 책으로는 여행가이드북인 ‘JUST GO’가 있다. 무역회사원인 주인공의 내면의 자아는 항상 여행을 꿈꾼다. 샹젤리제 거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이루기 어려운 꿈이다.
16. 에너지 드링크
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에 선정되어 2017년에 <24/24> 첫 쇼케이스를 했을 때, 주인공이 생활밀착형 마약으로 에너지 드링크를 계속 들이키는 설정을 했다. 원래 잠을 쫓기 위해 커피나 초콜릿, 에너지 드링크 같은 걸 많이 먹지 않나?
17. 주사기
지난 공연과의 가장 큰 차이로, 먼저 주사기를 들고 싶다. 주사기는 이 작품의 주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거대한 오브제다. 주사기로 뭔가를 집어넣기도 하고 뽑기도 하지 않나? 주사기로 세상이 인간에게 뭔가를 주입하고 뽑아내는 아이러니를 함축적으로 보여줄 생각이다.
18. 착취
인간에게 세 가지 본능적 욕망이 있다. 식욕, 성욕, 수면욕. 그런데 요즘 세상은 인간으로부터 성욕과 수면욕을 포기하게끔 만드는 것 같다. 세상이 인간을 착취하면서 사람들이 결혼도 포기하고 잠도 포기하게 되는 것 같다.
19. 강지희
처음 이 작품을 써 내려갔을때, 드라마라는 가는 뼈대에 이미지를 붙이는 형식을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연습이 진행될수록 작품 속 드라마에 대한 부재가 크게 느껴졌고, 나와는 전혀 다른 색의 글을 쓰는 강지희 작가에게 프러포즈했다. 무겁고 진지하고 관념적인 나의 글들이 강지희 작가를 통해 위트 넘치는 인물로 형상화됐고, 가느다란 드라마가 선명해졌다.
20. 황찬용
이 작품에 대해 ‘연극이야? 무용이야?’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안무의 비중이 높다. 안무는 스트리트 댄스로 시작해 현대무용을 전공한 황찬용 안무가가 했다. 동갑내기 친구로, 성향은 극과 극인데, 서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작품이 보완되는 지점이 있다. 극단 학전에서 리뉴얼한 <지하철 1호선> 안무를 맡는 등 굵직굵직한 작업을 많이 하는 안무가다.
21. 수평적 관계
한스-티스 레만(Hans-Thies Lehmann)이 포스트드라마에 대해 정의하면서 종래의 연극이 수직적이었다면, 포스트드라마는 수평적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작품, 연출, 배우, 디자이너 등이 수평적으로 작업한다는 이야기인데, 나는 우리의 제작 방식이 포스트드라마적이라 생각한다.
22. 극단 청년단
주로 청년단에서 그러한 포스트드라마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 청년단은 내가 연극을 하는 데 있어 상당히 중요하다. 민새롬 대표는 내가 연극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 연극에 대한, 예술에 대한 관점을 만들어 준 사람이고, 청년단은 내가 연극을 계속하게 하는 이유이다.
23. 고양
8살 때부터 고양에 살았다. 원당초, 원당중, 백신고등학교를 나왔고, 고양아람누리는 공연장이 생긴 후부터 친구들이랑 많이 놀러왔던 곳이다. 어떻게 하면 여기(고양아람누리)서 연극을 할 수 있을까 상상했었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공연하게 됐다. 고향에서 작업을 하니 편하고, 또 즐겁다.
24. 24/24
24/24는 1이다. 이 작품은 24시간을 자지 않고 일해야만 1인분의 몫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야만 겨우 평균치의 삶을 살 수 있는 거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사회구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본질은,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왜 1인분의 몫을 해야 하는가’ 하는 구조보다는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로 봐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