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24/24>를 설명하는 24개의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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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24/24> 작·연출 양정현 인터뷰

잠을 자지 않아도 살 수 있다면?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무언가에 바칠 수 있다면? 그래서 더욱 완벽한 내가 될 수 있다면? 연극 <24/24>는 급변하는 세상 한가운데에서 나만 혼자 뒤처진 것 같을 때, 누구나 한번쯤 해봤음직한 상상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작가이자 연출가인 양정현이 실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때 이러한 상상을 하고, 작품으로까지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과연, 잠을 포기한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는, 시대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11월 2일부터 10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공연되는 <24/24> 연습이 한창이던 가을날, 양정현과의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편집자주]

지난해 공연된 <24/24>의 한 장면. 2017년 쇼케이스, 2018년 신작초연, 올해 초청공연까지 3년간 3단계에 걸친 이 작품의 발전상이 궁금하다.

처음엔 제목 따라 24시간을 1시간씩 쪼개 인터뷰를 구성해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8시간의 수면시간을 메꿀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양정현이 연극 <24/24>를 설명할 수 있는 24개의 키워드를 뽑아보았다.

1. 나, 양정현
극단 청년 연출부이자 연극 <24/24>의 작가 겸 연출가. 2014년 연극 <소년과 새>(프린지페스티벌)로 데뷔. 2018년 ‘산울림 소극장 젊은 예술가 초청 시리즈’의 일환으로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연출. 그 외에도 여러 신진 예술단체에서 연출을 하고 여러 극단의 작품에 조연출로 참여했다.

2. 극작가
2014년 <소년과 새>라는 작품을 쓰고 연출하면서 연출가로 데뷔했다. 다시는 작·연출을 동시에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작가와 연출가 중에서 정체성을 고르라면, 연출가에 가깝다.

3. 연출가
배우가 되려고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는데, 이미지연극에 매료돼서 연출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모든 예술은 각각의 미학을 가지고 있는데, 무대예술의 미학은 무대에서 보이는 데(연출)에 있다고 생각한다.

4. 이미지연극
대학 시절 로버트 윌슨의 <바다의 여인>을 보고 이미지연극에 매료되었다. 등장인물 간의 드라마가 주가 되지 않고, 이미지를 구조적으로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작품이 되는구나 싶었다. 그때부터 ‘나도 저런 무대를, 장면을, 미학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고 연출을 하게 되었다.

5. ROBERTS
처음엔 미국의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프랑스계 캐나다인 로베르 르파주(Robert Lepage)에 가깝다. 윌슨이 드라마보다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극을 구성한다면, 르파주는 드라마에서 출발해 이미지로 확장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6. 프랑스
대학 시절 은사님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 은사님이 프랑스 유학파였다. 가끔 프랑코포니라는 극단의 조연출로도 참여하는데, 그 팀의 연출가가 프랑스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연극에 대한 동경과 궁금증이 있다. 제일 좋아하는 작가도 프랑스 작가고. 실제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이기도 하다.

7.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제일 좋아하는 작가. 역시 프랑스인이다. 그의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라는 작품을 연출하기도 했다. 작가가 욕망하는 바가 내 욕망과 비슷한 것 같다. <24/24>에 등장하는 내레이션은 콜테스(Bernard-Marie Koltès)의 영향을 받은 거다. 내년 3월에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을 공연할 예정이다.

8. 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
연극 <24/24>는 2016년 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에 선정되어 지원받은 작품으로, 창작단계인 1단계(2017년)와 초연단계인 2단계(2018년)를 거쳐 이번에 유통단계로 관객들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9. 톱니, 잠들지 않는 인간
<24/24>의 초고 제목이다. 2014년에 작·연출로 데뷔하고, 대학원 다니며 토익학원도 다니고, 돈도 벌면서 정신없이 살았다. 잠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그러다 문득 인간이 잠을 안자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며 ‘톱니, 잠들지 않는 인간’이라는 작품의 초안을 쓰게 됐다.

10. 24/7
휴일 없이 일하는 사람을 가리켜 ‘24/7’이라고 한다. 조너선 크레리(Jonathan Crary)의 <24/7 잠의 종말>에서 비롯된 용어인데,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큰 영향을 받았다. 공연 중에 직접 언급하기도 하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흰정수리북미멧새’ 이야기가 흥미롭다.

11. 흰정수리북미멧새
흰정수리북미멧새는 북미 지역 철새의 일종인데, 낮엔 먹이를 찾고 밤엔 비행을 하며 열흘에서 보름 정도 잠을 자지 않고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한다고 한다. 현재 미 국방부에서는 ‘불면병사’를 만들기 위해 이 새를 연구 중이라고 한다.

12. 리처드 도킨스
<24/7 잠의 종말>과 더불어 이번 작품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을 꼽으라면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을 들고 싶다. 유발 하라리(Yuval Harari)의 <사피엔스>도 도움이 됐다.

연극 <24/24>를 쓰고 연출한 양정현

13. 부조리극
말하자면, <24/24>는 일종의 부조리극이다. 원하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잠을 줄이다가 결국 잠이 아예 없어진 사람의 이야기. 초고는 그렇게 잠을 없애는 데 성공하기까지의 이야기다.

14. 2인1역
원래 초고는 주인공 한 사람의 서사로 구성했었다. 그걸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내면과 외면을 분리했다. 원래의 자아(내면)와 사람들의 시선 등 세상의 압박에 원하는 걸 포기하는 자아(외면)로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2인 1역의 작품이 나오게 됐다.

15. 걸어서 세계 속으로
<24/24> 주인공이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이다. 즐겨 읽는 책으로는 여행가이드북인 ‘JUST GO’가 있다. 무역회사원인 주인공의 내면의 자아는 항상 여행을 꿈꾼다. 샹젤리제 거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이루기 어려운 꿈이다.

16. 에너지 드링크
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에 선정되어 2017년에 <24/24> 첫 쇼케이스를 했을 때, 주인공이 생활밀착형 마약으로 에너지 드링크를 계속 들이키는 설정을 했다. 원래 잠을 쫓기 위해 커피나 초콜릿, 에너지 드링크 같은 걸 많이 먹지 않나?

17. 주사기
지난 공연과의 가장 큰 차이로, 먼저 주사기를 들고 싶다. 주사기는 이 작품의 주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거대한 오브제다. 주사기로 뭔가를 집어넣기도 하고 뽑기도 하지 않나? 주사기로 세상이 인간에게 뭔가를 주입하고 뽑아내는 아이러니를 함축적으로 보여줄 생각이다.

18. 착취
인간에게 세 가지 본능적 욕망이 있다. 식욕, 성욕, 수면욕. 그런데 요즘 세상은 인간으로부터 성욕과 수면욕을 포기하게끔 만드는 것 같다. 세상이 인간을 착취하면서 사람들이 결혼도 포기하고 잠도 포기하게 되는 것 같다.

19. 강지희
처음 이 작품을 써 내려갔을때, 드라마라는 가는 뼈대에 이미지를 붙이는 형식을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연습이 진행될수록 작품 속 드라마에 대한 부재가 크게 느껴졌고, 나와는 전혀 다른 색의 글을 쓰는 강지희 작가에게 프러포즈했다. 무겁고 진지하고 관념적인 나의 글들이 강지희 작가를 통해 위트 넘치는 인물로 형상화됐고, 가느다란 드라마가 선명해졌다.

20. 황찬용
이 작품에 대해 ‘연극이야? 무용이야?’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안무의 비중이 높다. 안무는 스트리트 댄스로 시작해 현대무용을 전공한 황찬용 안무가가 했다. 동갑내기 친구로, 성향은 극과 극인데, 서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작품이 보완되는 지점이 있다. 극단 학전에서 리뉴얼한 <지하철 1호선> 안무를 맡는 등 굵직굵직한 작업을 많이 하는 안무가다.

21. 수평적 관계
한스-티스 레만(Hans-Thies Lehmann)이 포스트드라마에 대해 정의하면서 종래의 연극이 수직적이었다면, 포스트드라마는 수평적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작품, 연출, 배우, 디자이너 등이 수평적으로 작업한다는 이야기인데, 나는 우리의 제작 방식이 포스트드라마적이라 생각한다.

22. 극단 청년단
주로 청년단에서 그러한 포스트드라마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 청년단은 내가 연극을 하는 데 있어 상당히 중요하다. 민새롬 대표는 내가 연극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 연극에 대한, 예술에 대한 관점을 만들어 준 사람이고, 청년단은 내가 연극을 계속하게 하는 이유이다.

23. 고양
8살 때부터 고양에 살았다. 원당초, 원당중, 백신고등학교를 나왔고, 고양아람누리는 공연장이 생긴 후부터 친구들이랑 많이 놀러왔던 곳이다. 어떻게 하면 여기(고양아람누리)서 연극을 할 수 있을까 상상했었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공연하게 됐다. 고향에서 작업을 하니 편하고, 또 즐겁다.

24. 24/24
24/24는 1이다. 이 작품은 24시간을 자지 않고 일해야만 1인분의 몫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야만 겨우 평균치의 삶을 살 수 있는 거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사회구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본질은,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왜 1인분의 몫을 해야 하는가’ 하는 구조보다는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로 봐주시면 좋겠다.

연극 <24/24>의 한 장면. 원래의 자아(내면)와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자아(외면)가 보인다.

글. 김일송(공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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