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

창작에 협력하는 색다른 예술교육
2019년 10월 27일
음악을 놓고 가정의 안식을 누리다
2019년 10월 27일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신작 연극 <템플> 리뷰

자폐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동물학자가 된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을 다룬 연극 <템플>이 지난 10월 11(금)부터 13일(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공연되었다. 무릇 ‘사회적 약자’에 대한 메시지란 식상하기 마련이고, ‘자폐’라는 증상을 무대 위에 표현하는 일이란 걱정부터 앞서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 <템플>은 템플 그랜딘 박사의 ‘색다른 자서전’으로 관객들에게 의미 있는 한걸음을 내딛었다. 연극평론가 김태희의 리뷰를 통해 연극 <템플>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방식,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나누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다수는 종종 폭력적이다. 어떤 무리에서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대개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경우에 따라서는 비정상적이거나 혹은 기준치에 모자란 존재로 치부되기도 한다. 우리는 다수에 포함되지 못한 이들을 ‘사회적 약자’라고 부르는데 이때의 ‘약자’라는 어휘에는 이미 그들과 우리가 다르다는, 차별과 배제의 의미가 담겨 있다. 누구나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들과 우리를 기꺼이 동일선 상에 놓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 자폐아 진단을 받았지만 결국 촉망받는 학자로 성장한 템플 그랜딘의 실화를 다루고 있는 연극 <템플>(심새인 안무·연출, 민준호 작·공동연출,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제작)도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사회적 약자에 관한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던 템플. 그녀의 성장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0월 11일(금)부터 13일(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템플>.
고양아람누리 상주단체인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2019년 신작이다.

편견 없는 시선에서부터

연극 <템플>은 템플 그랜딘의 성장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세 살이 되던 해 자폐를 진단 받은 템플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학교에서는 바보라고 놀림을 받았고 템플을 문제아로 여긴 간호사가 캠프 기간 내내 수면제를 투약해 잠을 재우는 일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템플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엄마는 그녀의 유일한 편이 되어 준다.

사실 이 작품에서 템플만큼이나 중요한 인물이 그녀의 엄마다. 처음 템플이 자폐아 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들은 그 원인이 ‘냉장고 엄마’에게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냉장고 엄마란 엄마가 비정상적으로 아이에 대한 애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모성에도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기준이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템플의 엄마는 누구보다 템플을 사랑했지만 이미 ‘냉장고 엄마’로 명명된 이상 사람들은 그녀를 비난하기 바빴고 의사들은 그녀와 템플의 상태를 논하길 거부했다. 그녀가 여성이라는 것, 심지어 정상적이지 않은 모성애를 가진 엄마라는 것이 차별의 원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템플을 ‘치료’하려고 들 때 템플의 엄마는 템플의 편이 되어 그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그녀가 템플의 엄마여서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녀가 자폐증 때문에 차별을 받는 템플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템플을 사랑하지만 비정상적인 모성애를 가진 것으로 오해 받는 템플의 엄마(왼쪽)와 친구들로부터 바보라고 놀림 받는 템플(오른쪽). 연극 <템플>은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는 템플의 이야기이자 템플 엄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편 템플이 마운틴 컨트리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만난 칼록 선생님 역시 그녀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 준다. 칼록은 템플이 기존에 만났던 선생님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다. 템플이 이전 학교에서 겪었던 선생님들은 템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존재들로, 템플을 바보라고 놀리는 아이들을 나무라기보다 템플의 퇴학이라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했던 이들이었다. 반면 칼록은 괴짜처럼 보이지만 템플이 하는 이야기라면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인물이다.

타인과 제대로 된 사회적 관계를 맺어본 적 없는 템플은 칼록과 친해지기 위해 수많은 질문을 쏟아냈지만 칼록은 다른 사람들처럼 템플의 질문들을 귀찮아하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칼록이 엉뚱해 보이기만 했던 템플의 질문들에 귀를 기울이자, 템플만의 장점이 드러났다. 템플이 칼록 선생님의 신발을 빼놓지 않고 전부 기억하고 있는 것, 학교에 있는 말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곧 그녀가 남다른 기억력을 가지고 있으며 독특한 방식으로 글자를 익힌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칼록이 템플의 세계를 이해하자 템플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드디어 그녀도 누군가와 진정한 소통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템플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엄마와 칼록 선생님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템플에게 대단한 배려와 헌신을 베푼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템플을 차별하거나 치료하려 들지 않았고 템플 그 자체를 보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첫 걸음은 어쩌면 이렇게 편견 없는 시선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템플이 알파벳 M을 이해하는 방법을 표현하는 칼록 선생님. 템플이 언어가 아닌 그림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된 칼록 선생님은 그러한 방식을 이해하고 거기서 장점을 발견해낸다. 그녀의 사고체계는 다수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지만, 칼록 선생님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자 한다.

다름을 표현하는 방식

일반적으로 연극에서 자폐아를 다룬다고 하면, 무대 위에서 인물이 어떻게 형상화가 될지 걱정부터 앞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창작자들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우리는 종종 미디어에서 약자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거나 혹은 그들을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 그리는 경우들을 목격해왔다. 이런 경우 어느 쪽이 되었든 결과는 최악이다. 그건 전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우위를 전제로 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템플>은 배우들의 움직임과 코러스의 활용을 통해 이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 주었다.

먼저 배우들의 움직임은 우리가 템플의 낯선 증상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템플이 남들과 다르게 말하고 조금 어색하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관객이 템플의 신체적인 고통을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의사들의 진단과 템플 주변인들의 설명도 관객들에게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템플과 코러스 배우들의 움직임이 관객들에게는 템플의 상태에 대한 더 정확한 정보들을 제공한다.

가령 템플이 엄마와 포옹하는 장면을 보자. 남들에게는 애정과 위로를 의미하는 포옹이 신경계에 문제를 겪고 있는 템플에게는 온몸을 굳게 만드는 이질적인 감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템플은 포옹하는 엄마를 늘 밀어내기만 한다. 이때 템플이 느끼는 감각은 그녀의 주춤거리는 발걸음, 뻣뻣해진 손동작으로도 시각화되지만 코러스를 맡은 배우들과 템플이 보여주는 앙상블로 훨씬 선명하게 시각화된다. 온몸에서 뻗어 나온 신경처럼 코러스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벽이 되어 그녀의 움직임을 부자연스럽게 만든다. 덕분에 그녀가 느끼는 감각과 인지의 부조화는 더욱 격렬하게 무대 위에 펼쳐진다.

연극 <템플>은 템플의 낯선 증상들을 표현하기 위해 대사 대신 배우들의 움직임을 활용한다. 코러스를 맡은 배우들은 템플의 신경계 문제를 시각화(왼쪽)하거나 템플의 신경 발작(오른쪽)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런 표현 방식이 가장 빛났던 장면 중 하나는 사춘기에 접어든 템플이 신경 발작을 일으키는 대목이었다. 푸른 조명 아래에 서 있는 템플을 붉은 끈들이 휘감았다 풀어지길 반복하고 그때마다 템플은 뜨거운 것에 덴 것처럼 고통을 호소하는 식이었다. 자서전에서는 간단하게 한 줄로 넘어갔을 내용을 배우들의 움직임을 통해 자세히 시각화해준 덕분에 관객들은 템플의 고통에 대해 훨씬 생생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코러스 배우들에게 희극적 역할을 부여하여 극적 이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코러스 배우들은 자폐증을 진단한 의사에서부터 캠프의 책임자, 템플의 같은 반 친구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들을 연기하는데, 이들은 대개 템플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존재들이다. 템플이 자신을 바보라고 놀리는 친구들에게 역사책을 던지는 장면에서, 책 역할을 맡은 배우가 날아가는 책이 되어 친구들을 때리고 가는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구현한다. 이 장면은 충분히 희극적이어서 바보라고 놀림을 받는 템플보다 템플을 바보라고 놀리는 아이들이 더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이런 면에서 <템플>은 약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때, 창작자들이 얼마나 섬세한 시각을 가져야 하는지, 어느 편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템플의 엄마가 템플을 포기했거나 칼록이 다른 선생님들처럼 템플을 혼내기만 했다면 템플은 결코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해주고 약자의 편에 서는 일은 사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변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템플에게서처럼 말이다. 다수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누구든 템플처럼 약자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곧 나를 지키고 나아가 우리를 지키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니 말이다.

남들과 다른 딸이지만 결코 템플을 포기하지 않았던 템플의 엄마. 연극 <템플>은 약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때 창작자들이 얼마나 섬세한 시각을 가져야 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연극 <템플>의 안무와 연출을 맡은 심새인 인터뷰

글. 김태희(연극평론가)

사진. 하경준(캐치라이트)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