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의 여러 면, 인간의 여러 면

물속에서 일어난 가장 속물적인 이야기
2019년 11월 11일
수준 높은 특강과 함께 뜻깊은 겨울을
2019년 11월 25일
작가‧연출가 연지아 인터뷰

밝은 불로 캄캄한 저녁의 시작을 알리는 가로등처럼, 따뜻한 감동으로 추운 겨울의 시작을 알릴 연극 한 편이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 무대에 오른다. 나날이 쌀쌀해지는 11월의 마지막, 11월 29일(금)부터 12월 1일(일)까지 3일간 새라새극장에서 연극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이 관객들의 마음에 따뜻함을 켜줄 것이다. 신진 아티스트 연지아가 쓰고 연출한 연극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은 지난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제21회 신작희곡페스티벌 당선작으로, 대학로 공연에서 “시대의 아픔, 인간의 선택이 얽힌 드라마로 기대 이상의 감동을 전하는 작품”이라는 평을 얻은 바 있다. ‘새롭고 새롭다’라는 뜻의 극장 이름처럼 신선한 인물, 신선한 문제의식, 신선한 공연양식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새라새극장이 다시 한 번 주목한 연극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을 이 작품의 작가 겸 연출가 연지아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리 만나본다. [편집자주]

연극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 중 한 장면. 가로등을 켜고 끄는 사람은 새벽과 저녁이라는 판단과 선택을 매일매일 어떻게 하는 걸까.

가로등이 꺼지는 순간을 본 적이 있어요.

새벽이었어요. 아니,
밤인지 새벽인지 모를 애매한 시간이었어요.
가로등이 꺼지는 순간, 사람들은 새벽이 왔다고 생각하겠죠.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 사람들은 저녁이 왔다고 생각하겠죠.
정말로 새벽과 저녁이 왔는지는 모르지만
가로등의 불빛이 우리에게 새벽과 저녁의 믿음을 줘요.
누가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 걸까요.
누가 가로등을 켜고 끄는 걸까요.
그 사람은 새벽과 저녁이라는 판단과 선택을
매일매일 어떻게 하는 걸까요.

 

아파트 경비원 해고 투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요.

비밀투표가 아니었어요. 투표함이 두 개였어요. 찬성과 반대.
그 경비원은 주민들이 어떤 상자에 투표를 하는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어요.
투표가 민주주의는 맞아요. 선택도 맞아요.
하지만 그 민주주의는, 그 선택은, 잔인했어요. 처절했어요.
그 민주주의의 현장에는 인간이 없었어요.

연극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은 ‘아파트 경비원 인원감축’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인간의 선택과 그 선택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미술심리 공부를 한 적이 있어요.

상담을 받는 입장일 때는 뭐든 털어놓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다 이해해주겠지.
근데 상담을 하는 입장이 되니까 복잡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꾸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되는 거예요. 그 사람이 그림을 그리면
아, 여기를 크게 그렸으니까 이 사람은 이런 트라우마가 있구나.
아, 여기를 작게 그렸으니까 이 사람은 이런 콤플렉스가 있구나.
어쩌면 그 사람은 매일매일 다르게 그리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오늘은 여기를 크게 그렸으니까 내일은 작게 그리고 싶을 수도 있죠.
연극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은 그렇게 시작되었어요.

 

마음은 심장 모양이 아닐 거예요.

사람의 마음은 하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공들여 깎은 조각처럼 수많은 면들로 이루어져 있을 거예요.
그 수많은 마음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요.
그 사람의 그 선택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해요.
언제나 웃는 얼굴이던 사람이
어느 날 속상하다고 말을 해요. 눈물 흘려요.
깜짝 놀라요. 그리고 깨달아요.
이 사람도 슬픈 얼굴을 가지고 있었구나.

 

미안해져요. 그 사람의 얼굴을 더 소중하게 들여다봤어야 하는데.

그럼 분명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사람의 웃는 얼굴 뒤에 숨겨진 슬픈 얼굴을.
사회에 갑과 을이 존재하듯
감정에도 갑과 을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어쩌면 나는 저 사람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저 사람의 감정을 다 맞춰주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저 사람의 감정을 너무 함부로 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감정과 감정이 동등해지기 위해, 사람과 사람이 평등해지기 위해
우리는 어떤 한 걸음을 내딛어야 할까요.

제21회 신작희곡페스티벌 당선작인 연극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은 인간 본성을 날카롭게 탐구하는 작품으로, 연지아 작가의 예리한 문제의식과 탄탄한 구성력이 돋보인다.

“오늘은 자네가 저녁을 만든 거야.”
“내일은 자네가 저녁을 만들어봐.”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에요.
저녁이 올 때마다 허겁지겁 불을 켜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의 불빛으로 저녁을 만들어내는 사람.
아직 분명 점심인데, 그 사람이 작은 손짓을 하면
저녁이 왔다고 믿을 수 있는 사람.
그건 속임수가 아닐거예요.
그 사람은 평생 그 자리에서 저녁을 만들어낸 사람이니까요.
우리의 저녁을 지켜준 그 사람이 보여주는 딱 한 번의 이른 저녁을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즐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창작집단 혜윰’은 2015년에 만들었어요.

처음에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몰랐어요.
어느 날 인터넷에 글을 올렸어요.
당신이 누구라도 좋고 어디 살아도 좋다.
당신이 만약 연극이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함께 했으면 좋겠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놀라우면서도 행복했어요.
아직도 세상에는 밤마다
연극의 꿈을 꾸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구나.

 

저도 밤마다 꿈을 꾸는 사람이었거든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이 일을 재밌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일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나만의 재미와 의미를 찾고 싶었어요.
다시 소설을 전공했어요.
과제로 연극을 보러 갔는데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배우라는 존재는 화면 속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바로 눈앞에서 생생하게 움직이는 배우가 보였어요.
영상은 보여주는 화면만 볼 수 있는데
연극은 여러 면을 동시에 볼 수 있었어요.

 

무대 위의, 여러 면으로 펼쳐지는, 인간의 여러 면.

저는 자주 힘이 들어요.
근데 희곡은 밤을 새서 써도 안 힘들어요.
다른 일로 밤을 새다가 해 뜨는 광경을 보면 화가 나는데
희곡으로 밤을 새다가 해 뜨는 광경을 보면, 아름다워요.
아직 제 연극이, 혜윰의 연극이
얼마만큼 빛을 낼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계속 꿈을 꿔요.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우리의 연극이, 객석에 앉은 누군가에게
아주 미약한 한 줌의 빛이라도 줄 수 있기를.
그 빛을 통해서, 나의 얼굴을, 옆 사람의 마음을,
단 1초라도 비출 수 있기를.
앞으로 언제까지 연극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오래 마음에 남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만한
엄청난 연극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작더라도, 소소하더라도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도, 일상을 바꿀 수 있는.

아,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창작집단 혜윰’의 작가, 그리고 연출가

 

연지아입니다.

인터뷰 중인 작가 겸 연출가 연지아 (왼쪽)

글. 오세혁(극작가‧연출가)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