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자네가 저녁을 만든 거야.”
“내일은 자네가 저녁을 만들어봐.”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에요.
저녁이 올 때마다 허겁지겁 불을 켜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의 불빛으로 저녁을 만들어내는 사람.
아직 분명 점심인데, 그 사람이 작은 손짓을 하면
저녁이 왔다고 믿을 수 있는 사람.
그건 속임수가 아닐거예요.
그 사람은 평생 그 자리에서 저녁을 만들어낸 사람이니까요.
우리의 저녁을 지켜준 그 사람이 보여주는 딱 한 번의 이른 저녁을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즐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창작집단 혜윰’은 2015년에 만들었어요.
처음에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몰랐어요.
어느 날 인터넷에 글을 올렸어요.
당신이 누구라도 좋고 어디 살아도 좋다.
당신이 만약 연극이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함께 했으면 좋겠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놀라우면서도 행복했어요.
아직도 세상에는 밤마다
연극의 꿈을 꾸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구나.
저도 밤마다 꿈을 꾸는 사람이었거든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이 일을 재밌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일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나만의 재미와 의미를 찾고 싶었어요.
다시 소설을 전공했어요.
과제로 연극을 보러 갔는데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배우라는 존재는 화면 속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바로 눈앞에서 생생하게 움직이는 배우가 보였어요.
영상은 보여주는 화면만 볼 수 있는데
연극은 여러 면을 동시에 볼 수 있었어요.
무대 위의, 여러 면으로 펼쳐지는, 인간의 여러 면.
저는 자주 힘이 들어요.
근데 희곡은 밤을 새서 써도 안 힘들어요.
다른 일로 밤을 새다가 해 뜨는 광경을 보면 화가 나는데
희곡으로 밤을 새다가 해 뜨는 광경을 보면, 아름다워요.
아직 제 연극이, 혜윰의 연극이
얼마만큼 빛을 낼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계속 꿈을 꿔요.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우리의 연극이, 객석에 앉은 누군가에게
아주 미약한 한 줌의 빛이라도 줄 수 있기를.
그 빛을 통해서, 나의 얼굴을, 옆 사람의 마음을,
단 1초라도 비출 수 있기를.
앞으로 언제까지 연극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오래 마음에 남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만한
엄청난 연극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작더라도, 소소하더라도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도, 일상을 바꿀 수 있는.
아,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창작집단 혜윰’의 작가, 그리고 연출가
연지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