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영혼을 쏘아올린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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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3ㆍ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었던 2019년.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는 12월 21일(토)과 22일(일)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를 통해 독립운동 정신을 다시금 되새긴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총 대신 연필을 든 자신을 끊임없이 부끄러워하면서도 시를 통해 끝까지 시대의 비극에 맞서 저항했던 청년 윤동주. 그의 순결한 시심(詩心)과 티 없는 애국심, 그리고 윤동주와 함께한 가슴 뜨거웠던 청년들의 이야기가 1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늘의 우리를 밝혀준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작품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인 <윤동주, 달을 쏘다.>는 문학, 음악, 춤, 그리고 극이 어우러진 한 편의 종합예술로, 서울예술단이 ‘가무극’이라는 타이틀로 내놓은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2012년 초연 이래 매 공연 100%에 육박하는 높은 객석점유율을 기록하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다섯 번째 시즌인 올해는 음악적인 업그레이드를 시도한 것은 물론, 윤동주의 생각과 호흡에 더욱 집중함으로써 보다 완성도 높은 공연을 예고하고 있다.

누구보다 조국을 사랑했지만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짧은 생을 마감한 윤동주 역은 초연을 비롯해 지난 네 시즌의 공연 모두 윤동주를 맡아 ‘윤동주 장인’으로 불리는 배우 박영수가 다시 한 번 연기한다. 다섯 번째 공연인 만큼 한층 깊어진 연기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청년 윤동주가 연상되는 외모와 미성이 돋보이는 서울예술단의 신예 신상언 배우가 새로운 윤동주로 무대에 올라 관객들을 만난다.

윤동주와 청춘을 함께한 친구들 송몽규 역과 강처중 역에는 박영수와 함께 ‘슈또풍’ 삼총사로 불리며 큰 사랑을 받은 김도빈, 조풍래가 나란히 캐스팅되어 작품에 에너지를 더한다. 또한 서울예술단의 기대주 강상준과 김용한이 각각 송몽규 역과 강처중 역을 맡아 새로운 감성의 청춘을 연기할 예정이다.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출연 배우들. 왼쪽부터 김용한, 신상언, 강상준, 조풍래, 박영수, 김도빈

한 편의 서정시 같은 무대

아픈 시대의 한가운데서 거친 말들을 쏟아낼 수 없어 부끄러워 했던 윤동주는 아름다운 시어 뒤에 저항과 분노의 마음을 담아냈다.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반성하고, 시대의 고뇌를 나누었던 그의 시는, 서정적인 아름다움 속에 그의 시린 인생과 아픔을 품고 있기에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준다.

이에 <윤동주, 달을 쏘다.>는 ‘팔복’ ‘십자가’ ‘참회록’ ‘서시’ ‘별 헤는 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 윤동주의 대표작을 노래 가사가 아닌 대사로 엮어 고유의 서정성을 지키고자 한다. 고뇌하는 윤동주의 독백 속에,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는 대사 속에 녹아든 윤동주의 시는 그렇게 긴 여운을 남긴다. 이 작품의 백미로 꼽히는 마지막 감옥 장면에서 윤동주가 절규하며 쏟아내는 ‘서시’와 ‘별 헤는 밤’은 처절한 반성문처럼 그가 겪어내야 했던 절망과 고통을 고스란히 안겨준다.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는 윤동주의 시를 노래로 만드는 대신 배우의 독백 등 대사에 녹아들도록 했다. 시 고유의 서정성을 최대한 살리고자 한 이러한 시도로 인해 관객들은 보다 깊은 여운을 느끼게 된다.

총 대신 연필로 저항했던 시인

일본이 국가총동원법으로 한민족 전체를 전시 총동원 체제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던 1938년. 북간도에서 사촌 송몽규와 함께 경성으로 온 청년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에서 강처중, 정병욱 등과 함께 외솔 최현배 선생의 조선어 강의를 들으며 우리 민족 문화의 소중함을 배워간다. 달빛 아래서 시를 쓰며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하던 윤동주. 하지만 역사는 윤동주에게서 스승과 친구들, 우리말과 글, 그의 이름과 종교 등 많은 것을 빼앗아간다.

참담한 현실에 몸부림치며 절필과 시 쓰기를 반복하던 윤동주는 어느 날, 교회 앞 십자가에서 자신의 시를 사랑한 이선화(가상인물)를 만난다. 그리고 “시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그녀의 말에 용기를 얻어 시 쓰기를 이어간다. 졸업을 앞두고 마침내 윤동주는 자신의 시 18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의 시집을 엮지만, 일제 치하에서 ‘시’는 사치이자 위험한 일이었기에 첫 시집 출판은 이뤄지지 않는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1942년 3월, 문학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자 한 일본으로 건너간 윤동주는 ‘재쿄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사건’으로 경찰에 붙잡히고 1944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사촌 송몽규와 함께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감된다. 일제에 의해 반복적으로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으며 생체실험을 당하던 윤동주는 잦은 혼수상태 속에서 어머니와 친구들 그리고 이선화를 그리워하다 1945년 2월 16일, 29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20일 후, 송몽규 또한 윤동주와 같은 사인으로 옥중 순국한다.

총 대신 연필로 저항했던 시인 윤동주는 사촌 송몽규와 함께 후쿠오카 형무소에 이감되어 생체실험을 당하다가, 광복을 겨우 6개월 앞둔 1945년 2월 생을 마감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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