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학들에 귀감을, 원로들에 희망을

겨울밤을 밝히는 낭만의 빛
2019년 12월 9일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신비한 알사탕
2019년 12월 9일
202019년 12월 9일
고양원로작가초대전 ‘은빛나래’

고양시에는 국내외 미술계에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펼쳐 온 명성 있는 화가들이 많이 살고 있다. 고양문화재단은 창립 15주년을 맞이해 고양시에 거주 중인 65세 이상의 원로 미술가 30인을 응원하는 고양원로작가초대전 ‘은빛나래’를 12월 13일(금)부터 내년 2월 2일(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에서 개최한다. 이 가운데 하종현, 이숙자, 전래식, 심정수, 이경수 작가의 작품세계를 미리 만나본다.

하종현_ 「Conjunction 17-96」, 259×194cm, 마포에 유채, 2017

화면 뒤에서 안료를 밀어내는 화법

작가 하종현

하종현(1935년 출생)은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50여 년에 걸쳐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펼쳐왔다. 초기에 즉흥적인 앵포르멜 추상 작업을 하다가 전위 미술가 그룹인 한국아방가르드협회를 결성한 그는, 1969년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석고, 신문지, 각목, 로프, 나무상자 등 오브제를 중심으로 물성을 탐구하기도 했다. 이때 마대자루를 비롯해 밀가루, 신문, 철조망 등 비미술적 매체를 활용한 실험적인 작업방식을 시도했으며, 이에 대해 하종현은 “무엇이 그려지고 있는지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묘사하는 행위보다 물체의 물리적 특성을 강조했다.

「Conjunction」(접합) 시리즈는 마대자루를 활용한 이때의 경험에서 시작한 작가 고유의 기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그림의 표면에 물감을 칠한다는 기존의 회화적 고정관념을 깨고, 화면 뒤에서 안료를 밀어내는 독창적인 방법으로 추상회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올이 굵은 마포 뒷면에 물감을 바르고 이를 통해 나온 걸쭉한 물감 알갱이를 나이프나 붓, 나무주걱을 사용해 자유롭게 변주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마대 자체의 색에서 벗어나 적색과 청색, 다홍색의 작품을 선보이며 세계 미술시장에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예술은 말이야. 뭐 있겠지, 하며 속으면서 걷는 길 같아.”
작가 하종현

이숙자_ 「황맥-훈민정음」, 162×130.3cm, 순지에 암채, 1994

보리 그리는 화가

작가 이숙자

이숙자(1942년 출생)는 40여 년 이상 석채(石彩)를 이용한 채색 작업만을 고집하며 전통 채색화의 명맥을 유지해 온 작가다.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다양한 실험을 통해 현대적으로 재창조된 그림을 그린다. 그는 ‘보리 그리는 화가’라는 애칭이 이름 보다 먼저 통용될 만큼 보리밭에 대한 강한 인상을 대중들에게 남겼는데, 이는 그가 하나의 평범한 소재를 가지고 얼마나 수많은 시도와 노력을 해왔는지를 말해준다.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대상들을 조형화한 초기의 작업 방식은 80년대를 지나면서 보리밭이라는 일관된 주제 안에서 한국적 아름다움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형태로 이어졌다. 그리고 전통과 한국적인 것에 대한 끊임없는 고뇌의 흔적을 보여주는 다양한 표현을 시도해오고 있다.

“내 마음 속에 깃든 고향의 내음, 그리고 먼 유년기의 기억 속으로 나를 이끌어주는 듯한 보리밭, 그 보리밭을 태어나게 하기 위해 지금까지 보리밭을 그려 왔다.”
작가 이숙자

전래식_ 「산들의 합창」, 152.5×144cm, 천에 먹과 아크릴, 2010

존재의 근원을 나타내는 산

작가 전래식

전래식(1942년 출생)은 전통적인 산수화를 그렸지만, 실경산수에서 오는 진부함과 안일함에서 벗어나고자 비구상 작업을 하였고, 다시 ‘신조형 산수’라는 자신만의 현대 산수화 전형을 보여주었다. 재료 역시 먹과 붓을 쓰지만 현대적 안료도 병행하여 사용한다. 작가가 어떤 고정관념에 머물러 있으면 창의적인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래식은 동양의 전통 산수화를 소재로 삼아 통상적인 자연의 ‘산’ 묘사에서 벗어난 새로운 느낌의 ‘산’을 보여주고자 한다. 눈에 보이는 ‘산’의 모습이 아닌, 존재의 근원을 나타내는 ‘산’을 담고자 하는 것이다. 미술을 통해 구도의 길을 걷는다고도 할 수 있겠다. ‘작가란 무엇이고,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그는, 한국화의 현대화를 위해 늘 신인 작가처럼 연구하고 실험하며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심정수_ 「호랑이를 탄 사나이」, 170×40×70cm, 나무, 2008

인간 내면의 고통에 집중하다

작가 심정수

한국적 조형의 본질을 조각으로 구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심정수(1942년 출생)는 젊은 시절부터 탈, 장승, 솟대, 목어 등 전통유산을 현대적으로 조형화하였고, 1980년대에는 ‘현실과 발언’ 창립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격동의 시대를 증언하는 인간상을 제작했다. 그는 시대와 인간 정신, 생명과 풍요 등을 주제로 한 한국적 조각 작업들로 높이 평가 받고 있지만, 그의 이전 작품들을 보면 암담한 정치 현실을 비판하는 듯한 강렬한 느낌과 역동성이 강조된 것이 많다. 작가가 보다 근본적인 것을 추구하고, 독재와 분단으로 인해 발생되는 인간 내면의 고통에 더 집중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심정수가 평생을 지켜온 미학은 “예술가는 예술로서 자신의 주의와 주장을 해야 하고, 그 예술품은 개념에 앞서 예술로서의 완성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시대정신이 아무리 투철했다 해도 작품 자체가 완성도를 지니고 있지 못하면 후대에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없다고 그는 믿는다.

이경수_ 「붉은 소나무」, 130×162cm, 한지에 채색, 2003

씩씩하지만 상처투성이인 소나무

작가 이경수

도침장지(여러 장의 장지를 나무방망이로 말아 다듬질하는 장지(壯紙))와 같은 전통 종이에 수간채색과 먹으로 물들인 작가 이경수(1940년 출생)의 어린 소나무는 고고하고 씩씩해 보이기도 하지만 여기저기 상처 어린 모습이 작가에게는 한국의 아픈 역사와 같다. 이는 작가가 20년 넘게 소나무를 그려온 이유이기도 하다.

“소나무가 특별히 가슴을 울려오는 경우가 참 많았어요. 소나무가 한국 사람들의 마음과 닮았구나, 그런 생각을 했고요. 어쩌면 우리 역사와 너무 닮았다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 이경수

글. 이지윤(고양문화재단 전시교육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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