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에 대한 몰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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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음반을 처음 들었을 때의 기묘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모든 곡들은 공통적으로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들이 선명하게 각인되듯이 들린다. 목소리도 하나의 악기처럼 사용한 마냥 그 위에 얹어졌다 살며시 떼었다, 마치 나비의 미세한 날갯짓 소리처럼 호흡과 적막도 하나의 소리로 들릴 정도였다. 각각 하나하나의 소리가 너무 선명한데도 또 한데 어우러질 수 있구나. 이것이 몰입의 의도일까. 올 초 10집 앨범 「Immersion」(몰입)으로 돌아온 나윤선의 공연을 크리스마스에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만나게 된다. 그녀의 목소리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몰입시킬 것인지, 그녀가 몰입했던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난 3월 발매된 10집 앨범 제목을 「Immersion」(몰입)이라고 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몰입’. 무대에 오르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감정이 드는 단어입니다. 이번 열 번째 음반 작업은 사실 기존의 작업과는 조금 다른 스타일로 진행되었습니다. 보통은 제가 무대에서 라이브 하듯 원-테이크 형식으로 진행을 해왔기에, 스튜디오에서는 짧게 작업을 했었는데요, 이번 음반은 파리에 있는 한 스튜디오에서 2주간 진행되었습니다. 프로듀서인 클레망 뒤콜(Clément Ducol), 그리고 연주자 피에르 프랑소와 티티 뒤푸르(Pierre-François “Titi” Dufour)와 함께 다양한 사운드적인 경험을 하며 실험하듯 작업했는데 저에게는 비교적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스튜디오에서의 작업뿐만 아니라 이번 음반에 수록된 여섯 편의 자작곡 등을 준비해온 그 여정을 돌이켜보면 오로지 한 가지에 ‘집중’했던 시간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몰입’이란 타이틀을 떠올리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 음반은 목소리에 힘을 주기보다 악기와 사운드에 집중된 듯합니다. 가장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다양한 사운드를 표현해내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스튜디오 공간 안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소리, 녹음 중 생기는 다양한 노이즈들까지 음악의 일부로 녹아든다면 어떨까, 하고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모두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새로운 음반을 선보이면, 많은 분들께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떤 것들을 늘 기대하시는데, 이번 10집은 사실 무언가 명확한 의도를 갖고 시작했다기보다는 긴 음악 여행을 해오고 있는 중 어딘가에 도착한, 지금의 현재의 ‘나윤선’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앨범에 자작곡이 다수 수록되었는데, 어떤 영감을 받고 만들었는지요?

여타의 음반들과는 달리 음악 작업을 위한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곡을 썼습니다. 프랑스 서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 브르타뉴 지방에 머물며 2주 정도 작업했습니다. 그동안 그곳에서 많은 공연을 했기에 친숙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곳입니다. 매일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 속 모든 풍경이 신비롭고 또 독특한 기운을 느끼게 해줍니다. 저는 보통 장기간 투어를 하는 편이기에 평소에는 이동하면서, 또 호텔에서 곡을 많이 쓰곤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브르타뉴에 머무르며 오로지 저를 위한 시간을 갖고 곡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그렇게 총 열다섯 곡을 썼고, 10집에는 그 중 여섯 곡을 수록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독일, 미국, 캐나다 등 올해 해외 투어의 빡빡한 공연 일정을 보고 놀랐습니다. 건강과 목 컨디션이 괜찮을지 걱정도 되는데 이렇게 많은 공연을 하는 이유도 있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공연할 때 가장 중요하게 몰입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실 매우 바쁜 일정은 맞습니다. 특히나 올해는 미국의 워너뮤직과 계약을 하게 되어 미국과 캐나다에서의 일정까지 늘어났습니다. 유럽에서 그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면, 미국은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이었기에 더 긴장되기도 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저의 음악 여정에 함께 해주는 관객분들이 있어서 여행 같은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무대에서의 시간이 쉽지만은 않지만, 매순간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공연으로 표현되는 음악은, 음반 속 저의 음악에 즉흥성이 가해져 매일매일 다르게 표현됩니다. 제 음악의 에너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더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에 다양한 무대에서의 시간들을 언제나 기대하고 있습니다.

12월부터 시작될 한국 투어에 유럽·미주에서 다른 내용이 있나요? 크리스마스 공연을 기다리는 고양아람누리 관객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지난 3월에 유럽에서 10집이 발매되었고, 그 투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번 고양아람누리에서의 공연 역시 그 일환으로, 10집의 새로운 음악들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2017년에 「She moves On」으로 고양아람누리 관객 분들을 뵈었었는데, 2년 만에 국내 관객들을 뵙는 만큼 많은 기대가 됩니다. 크리스마스 공연인 만큼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곡도 선곡할 예정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공연하느라 개인적인 시간이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짧은 시간이 생길 때 몰두하는 것이 있나요?
해외 투어 중에는 대부분 이동을 하거나 공연 준비 등에 보내는 시간이 많기에, 개인적인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무조건 ‘쉼’에 몰두하는 편입니다. 많은 것들을 하고 있고 그것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감사함도 있지만 때로는 모든 긴장 풀고 아무것도 안 하려고 노력하며 에너지를 얻곤 합니다. 가끔 제가 무슨 음악을 즐겨 듣는지 묻고는 하시는데, 비슷한 맥락에서 고요함 속에 머무는 것을 즐기기도 합니다.

 

프랑스의 재즈 페스티벌 ‘Jazz à Vienne 2013’에 참가한 나윤선의 공연 실황

 

각국 매체와 평론가들에게서 최고의 보컬리스트라는 극찬을 많이 받는데,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나 평가를 꼽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혹 직접 자신을 수식하여도 좋습니다.

늦게 시작한 음악이라 아직도 배울 것들이 많습니다. 최고의 보컬리스트라는 표현은 솔직히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스스로 자신에 대한 평가를 말씀 드리는 건 늘 쑥스럽고 어려운 일입니다. 저를 잘 아는 지인분들은 성실한 아티스트라고도 많이 이야기 해주십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들에 감사하며 매일매일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봐주신 분들께서 그저 좋게 봐주시는 것 같습니다.

올 초 한 매체 인터뷰 중에서 ‘나는 꿈이 없다. 꿈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꿈이 없지만 앞으로 더 하고 싶은 것은 있지 않을까요? 당장 2020년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10년 후의 나윤선은 어떤 것에 몰입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질문하신 그대로입니다. 사실 미래에 대해 크게 계획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저 오늘 저에게 맡겨진 시간과 공연을 위해, 세계 여러 나라들을 다니며 만나게 되는 관객들과 함께 행복을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만 내년에도, 10년 이후에도 계속해서 즐겁게 무대 위에 오르고 싶다고 말씀드린다면 답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실 멈춰버리는 것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편입니다. 그래서 어딘가를 향해 계속 움직일 때 마음의 안정을 느끼게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늘 제게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방향성을 주고, 꿈꿀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10년 이후에도 그렇게 몰입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올해 고양문화재단이 1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더불어 잠시 휴간하고 있던 재단 문화예술 전문 매거진 <누리>가 2019년 겨울호로 복간됩니다. 이러한 지역의 문화재단이나 문화예술 전문 매거진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문화예술 전문 매거진 <누리>를 앞으로 계간지로 다시 접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티스트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것이 문화예술 전문 매거진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는 제가 무대에서 다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글로 전하는 기분이 듭니다. 한편, 무대에서의 라이브가 주는 고유한 가치나 매력과는 별개로 이 순간을 담아내고 ‘기록’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리> 안에 그러한 시간들이 잘 스며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읽는 즐거움을 간직한 매거진이 되길 바랍니다.

epilogue
길 위, 성실한 몰입과 쉼이 빚어낸 소리에 관하여

기사 작성 중에 그녀의 두 번째 훈장 수여 소식이 전해졌다. 프랑스 정부가 세계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수여하는 문화예술공로훈장의 두 번째 등급인 ‘오피시에장’을 받게 된 것. 문화예술공로훈장은 모두 세 가지 등급이 있는데, 나윤선은 지난 2009년에 세 번째 등급인 ‘슈발리에장’을 받은 바 있다. 이번에 상위 등급인 ‘오피시에장’을 받게 되어 이로써 두 번째 훈장이다. 재즈를 부르는 동양인 나윤선의 목소리는 그렇게 프랑스를 딛고 유럽의 담을 넘어 재즈의 고향 미국으로, 그리고 전 세계로 흘러가고 있다.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나윤선의 음반을 듣기 가장 좋은 시간이지 않은가. 한국의 동이 터올 무렵 그녀는 유럽의 어디쯤 있을 것이다. 지금쯤 어느 길 위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몰입 아니면 쉼, 그 어느 지점에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성실하게 임하고 있을 그 시간이 또 켜켜이 쌓이고 있을 터. 그녀의 남은 여정에서의 시간들은 그녀의 소리에 켜켜이 덧입혀져 또 다른 소리를 낳아 우리의 몰입하게 할 것이다. 올 크리스마스에는 길 위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깊어진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글과 질의. 황시원(파란소나기 에디터)
답글. 나윤선
사진. 나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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