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불행한 천재에게 열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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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예술가 열전 ①
빈센트 반 고흐 : <러빙 빈센트>(2017)

영화 <러빙 빈센트>(2017)는 ‘고흐 타살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3D 컴퓨터 애니메이션이 대세인 오늘날, 사람이 직접 손으로 그린 고전적 2D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화가 125명이 유화 물감으로 캔버스에 직접 그림들을 그려 이어 붙인 것이다. 게다가 고흐의 화풍과 스타일을 그대로 화폭에 옮긴 덕분에 영화를 보면 마치 95분간 고흐의 그림을 쉴 새 없이 감상한 기분이 든다.

19세의 빈센트 반 고흐. 1873년 1월 촬영된 사진이다.
현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지만, 아쉽게도 생전에는 인기가 없었다.

불행 배틀에서 마지막 브라우니를 먹을 예술가는 누구인가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가 나왔던 로맨틱 코미디 영화 <노팅힐>(1999)을 보면 저녁 식사를 마친 친구들이 디저트를 먹다가 이른바 ‘불행 배틀’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요컨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불행한 사람이 마지막 남은 브라우니를 차지하는 게임인데, 톱스타이자 영화배우인 안나(줄리아 로버츠 분)가 예상을 깨고 비참한 자신의 신세를 토로해 모두가 놀라워한다. 농담과 진실을 통해 가까운 절친들끼리 자신의 치부를 보여주며 오히려 고통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역사 속 위대한 예술가들이 저녁 테이블에 둘러 앉아 이러한 ‘불행 배틀’을 벌인다면? 치열한 경합이 벌어지겠지만 아무래도 마지막 브라우니는 네덜란드의 후기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에게 돌아갈 공산이 클 듯싶다. 고흐가 근현대미술에 끼친 엄청난 영향과 대중성을 고려해볼 때 그의 실제 인생은 의아할 정도로 빈곤하고 비참했으니 말이다. 고흐를 떠올리면 마치 맛있는 요리를 잔뜩 만들어놓고 정작 자신은 굶어 죽은 요리사 같은 생각이 들곤 한다.

반 고흐는 명실공히 현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다. 그의 그림은 아름답고 깊이 있으며 신비하기까지 해서 ‘흥행성과 작품성’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데 이견이 별로 없다.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과 더불어 근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비싼 화가’ 빅3로 평가받기도 한다. 지금이야 반 고흐의 그림 한 점이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장에 나오면 100억 원은 훌쩍 넘는 가격에 팔리겠지만 피카소나 워홀과는 달리 그의 그림은 살아생전에 별달리 인기가 없었다. 인기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림은 단 한 점만이 팔렸을 뿐이다. 게다가 혼자 외롭고 가난하게 살았으며 우울증과 망상으로 정신병원에 격리되어 생활하다가 결국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1890년 37세의 고흐는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쏘아 자살했다는 것이 통설이었는데 최근엔 동네 10대들이 사고로 쏜 총에 맞았다는 설이 새롭게 등장하기도 했다.

영화 <러빙 빈센트> 가운데 한 장면
ⓒ Breakthru Films

애니메이션과 실사, 미술 작품을 오가는 〈러빙 빈센트〉

영화 <러빙 빈센트>(도로타 코비엘라·휴 웰치맨 감독)는 이러한 ‘고흐 타살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2017년 애니메이션 영화다. 이 영화는 3D 컴퓨터 애니메이션이 대세인 오늘날, 사람이 직접 손으로 그린 고전적 2D방식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제작 과정이 실로 어마어마하다. 무려 20여 개국의 화가 125명이 유화 물감으로 캔버스에 직접 65,000여 장의 그림을 그려 이어 붙인 것이다. 게다가 고흐의 화풍과 스타일을 그대로 화폭에 옮겼으니 영화를 보면 마치 95분간 고흐의 그림을 쉴 새 없이 감상한 기분이 든다는 게 관객들의 공통된 관람평이었다. 아울러 <러빙 빈센트>는 실제 배우가 미리 연기를 하고 그 영상을 밑그림으로 채색한 이른바 ‘모캡’(mocap, Motion Capture)기술까지 응용한 것이어서 애니메이션과 실사, 미술 작품을 오가는 매우 독특한 장르를 개척하기도 했다.

영화는 고흐가 죽고 1년 후, 한 장의 편지를 들고 화가의 마지막 날들을 쫓는 우체부의 아들 아르망 롤랭(더글러스 부스 분)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르망은 고흐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가 남긴 삶과 죽음의 퍼즐들을 하나 둘 끼워 맞추게 되는데, 이야기 전개가 살짝 ‘미스터리-스릴러’스럽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어떤 평론가들은 영화의 수려한 그림들이 영화의 플롯과 썩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평하기도 했지만 <러빙 빈센트>는 그 제작 방식만큼은 여타 ‘고흐 영화’들과는 확 실히 다른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애니메이션 영화 <러빙 빈센트>의 트레일러

 

 

<러빙 빈센트>의 메이킹 영상. 화가가 캔버스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천재를 사랑하는 대중, 천재의 불행에 열광하는 취향에 관하여

대중은 천재를 사랑하고 그 천재가 불행해질수록 더욱 열광하는 가학적인 취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미술가보다 음악가를 선호하는 영화계의 관행에도 불구하고 고흐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드라마가 심심찮게 많이 나왔다.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2018) 역시 고흐의 죽음을 자살이 아닌 사고로 묘사 하고 있는데 60대의 베테랑 배우 윌렘 대포가 30대의 반 고흐를 연기해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조금만 과장해보자면, 고흐의 죽음을 자살이냐 타살이냐 사고냐 왈가왈부하는 것도 대중의 이러한 가학적 취향의 발로일지 모른다. 작가들은, 영화 제작자들은, 대중들은 이미 죽은 지 100년이 훌쩍 지난 불행한 예술가를 다시 살려내 이렇게도 죽여 보고 저렇게도 죽여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지 않은가? 고흐가 동시대에 활동했던 인상파 화가들인 폴 세잔(67세)이나 폴 고갱(55세), 앙리 루소(66세)처럼 비교적 별 탈 없이 오래 살았다 해도 이렇게 많은 ‘리메이크’들이 나왔을까?

<러빙 빈센트>는 2018년에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유럽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장편 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오른다. 물론 수상은 픽사와 디즈니가 제작한 <코코>(2017)가 했지만 제작비 550만 불로 고흐의 아름다운 그림들을 소환해 전 세계 극장들을 갤러리로 만든 <러빙 빈센트>는 영화 팬들에게 큰 갈채를 받았다(참고로 <코코>의 제작비는 125명의 전문 화가가 참여한 <러빙 빈센트>의 30배가 넘는 1억 7천만 불이었다).

<러빙 빈센트>의 엔딩 크레디트. 싱어 송 라이터 돈 맥클린이 1971년 만든 노래 「빈센트」가 리앤 라 하바스의 목소리에 실려 나오고 화면엔 고흐가 남긴 말이 슬프게 떠 있다.

I want to touch people with my art.
나는 내 그림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

I want them to say : he feels deeply, he feels tenderly.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며 ‘그는 마음이 깊고 따뜻한 사람이구나’ 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 Vincent Van Gogh

“빈센트 님. 당신의 바람은 확실히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좋은 그림 많이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러스트레이션 · 권오섭

·그림. 권오섭(영화 칼럼니스트)

필자 권오섭은 그룹 ‘웬즈데이’로 데뷔하였으며, 다수의 뮤지컬과 TV 드라마 음악의 작사·작곡을 맡았다. 현재 영화를 주제로 한 팟캐스트 방송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를 7년째 진행하며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영화 속 예술가 열전’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예술가들의 삶을 권오섭 작가의 독특한 시선으로 풀어내,
그가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보여주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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