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서 혁신까지 프렌치 모던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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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미술관 명작초대전
‘프렌치 모던 : 모네에서 마티스까지, 1850-1950’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유파인 인상주의의 대표 화가 모네와 르누아르를 비롯해 세잔, 드가, 마티스, 밀레 등 작가 45인의 회화와 조각 59점이 오는 6월 14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에서 전시된다. 미국 최초의 인상주의 전시 개최로 이름 높은 뉴욕 브루클린미술관의 컬렉션 중에서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가장 화려했던 모더니즘 예술의 핵심만 엄선한 것이다. 브루클린미술관 명작초대전 ‘프렌치모던 : 모네에서 마티스까지, 1850-1950’ 이야기이다.

미국인들은 왜 프랑스 인상주의 작품에 주목했나

‘프렌치’(French)와 ‘모던’(Modern)은 각각의 단어 그 자체만으로도 낭만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한 세기 전만 해도 그 어감은 달랐다. 아니, 반대였다. 한 발 앞서 산업시대에 진입한 프랑스의 파리는 가장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도시로서 ‘첨단’을 상했다. 자유주의적인 정치·사회적 개혁의 시대를 거름 삼아 싹튼 모던과 모더니즘은 획기적이고 새로운 ‘혁신’ 그 자체였고 현대미술의 서막을 열어 젖혔다.

그 같은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1921년, 미국 뉴욕시의 브루클린미술관이 ‘현대 프랑스 거장 회화전 : 후기 인상주의자들과 그 이전’(Paintings by Modern French Masters : Representing The Post Impressionists and Their Predecessors)을 개막하자 당대 문화예술계의 거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몰려들었다. 미국의 미술관에서 프랑스 인상주의 전시가 기획되기는 처음이었다. 에드가 드가, 폴 세잔을 비롯해 파블로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 또한 이들보다 앞선 세대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와 테오도르 제리코의 작품이 한 자리에 모인 장면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 역사적인 전시에 기반한 의미 있는 특별전이 한국에서 열린다.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이 2월 21일 개막해 6월 14일까지 100일간 여는 브루클린미술관 명작초대전 ‘프렌치모던 : 모네에서 마티스까지, 1850-1950’이다.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유파인 인상주의의 대표 화가 클로드 모네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를 비롯해 세잔, 드가, 마티스, 밀레 등 45명 작가의 회화와 조각 59점을 모아 선보인다. 미국 최초의 인상주의 전시 개최로 이름 높은 브루클린미술관의 컬렉션 중에서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가장 화려했던 모더니즘 예술의 핵심만 엄선했다.

1921년 브루클린미술관이 기획한 ‘현대 프랑스 거장 회화전 : 후기 인상주의자들과 그 이전’의 카탈로그

1895년 뉴욕시 브루클린에서 개관한 브루클린미술관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약 150만 점의 유물과 예술품을 종합적으로 소장한 곳이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과 모마(MoMA·뉴욕현대미술관)가 있는 뉴욕에서 세 번째로 큰 미술관이다. 찰스 폴른 맥킴(1847~1909)과 윌리엄 러더퍼드 미드(1846~1928)와 스탠퍼드 화이트(1853~1906)가 결성해 그 시절 뉴욕에서 가장 잘 나가던 ‘맥킴 미드 화이트 건축사무소’(McKim, Mead & White)가 설계를 맡아 보자르풍의 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미술관을 설계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미술관을 만들리라 계획했던 만큼, 브루클린미술관의 이사회 위원들은 개관 직후부터 높은 안목과 남다른 민첩함으로 거장의 작품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인상주의 미술품이 지금처럼 수백억 원대를 호가하기 이전의 일이다. 17세기부터 20세기 회화까지 다채롭게 확보했을 뿐 아니라 고대 유물도 상당하다.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이 2년간 장기 임대로 현재 상설전시관에 선보이고 있는 이집트의 미라도 이곳에서 빌려온 유물이다. 뉴욕시 전역에서 발견된 오래된 건축물들을 부분적으로 수습해 조성한 ‘기억의 조각공원’도 자랑거리다.

자, 이 정도면 ‘프렌치 모던’ 전시로 들어가 모네부터 마티스까지 만날 준비가 됐으려나. 약 100년 전 뉴욕에서 처음 선보인 이들 프랑스 인상주의 작품들은 미국 현대미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데 의미심장한 자극이 됐다. 딱 그 100년의 시간 동안 세계 예술의 중심은 파리에서 뉴욕으로 이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진입해 창의성이 가장 큰 경쟁력이 된 지금, 우리는 어떤 자극과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1895년 개관한 브루클린미술관의 전경. 약 100년 전, 미국에서 최초로 프랑스 인상주의 작품들을 선보인 곳이다.
이 전시는 미국 현대미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의 표현은 그렇게 시작됐다

인상주의의 정수는 풍경화로 시작한다. 17세기만 해도 그림의 역할은 기록이 중요했기에 인물화가 으뜸이었고 풍경화는 저급한 쪽으로 내몰렸었다. 그러던 것이 19세기에 이르러 기존 체제·학문에 대한 반발과 함께 감각과 감성이 중시됐고 풍경화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대중적 인기도 치솟은 데다, 휴대가 가능한 튜브형 물감의 발명은 화가들을 야외로 끌어내 생동감 있는 자연 묘사를 가능하게 했다. 분위기 있는 색감, 느슨함과 긴박함이 공존하는 붓놀림,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의 표현은 그렇게 시작됐다.

1882년 노르망디를 방문한 클로드 모네의 눈에 해안가에 버려진 세관 건물이 들어왔다. 나폴레옹 전쟁 중에는 밀수업자를 감시하기 위한 시설이었고, 나중에는 어부들의 창고이기도 했던 곳이다. 모네는 화판을 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화가는 밀려온 파도가 절벽에 부딪힌 횟수만큼이나 반복적으로 물결을 그어댔다. 파르스름한 물결이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지점에서 자연의 힘이 느껴진다. 모네는 이 풍경을 17점이나 그렸다. 바로 「밀물」이다. 하나의 장소를 각기 다른 시간대에 관찰해 고유의 빛과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었다. 여기서 시작된 모네의 ‘연구’ 같은 시리즈 작업은 그 유명한 1890년대의 「건초더미」, 「루앙 대성당」, 「포플러 나무」 연작으로 이어졌다.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French, 1840–1926)
밀물 Rising Tide at Pourville
1882년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26 x 32 in. (66 x 81.3 cm)

Brooklyn Museum, Gift of Mrs. Horace O. Havemeyer, 41.1260

알프레드 시슬레가 1879년에 그린 「모레의 홍수」는 자연의 생동감이 고운 색조와 아름답게 어우러져 한참을 들여다보게 한다. 홍수가 지나간 루앙 강의 가을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맑은 하늘이 얇은 유리를 씌운 듯 투명하고 섬세한 느낌이다. 멀리 펼쳐진 마을의 붉은 지붕과 조화를 이뤄 유약한 듯 하지만 생기 넘친다. 정작 시선을 끄는 것은 그림 앞쪽을 지키고 선 나무들이다. 이파리 떨어진 나무라 가지를 세세하게 드러내는데, 어느 것 하나 같은 색이 없다. 갈색에 노랑, 빨강, 파랑 등의 색을 섞어가며 달리 표현한 나뭇가지는 마치 숨을 쉬고 있는 듯 그 자체로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멀리 강 저편의 나무들은 갈색의 선을 수직적으로 그은 뒤 희뿌옇게 뭉개듯 처리했지만 그 희미함마저도 지극히 자연스럽다.

알프레드 시슬레 Alfred Sisley (British, active France, 1839–1899)
모레의 홍수 Flood at Moret
1879년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21 1/4 x 28 1/4 in. (54 x 71.8 cm)

Brooklyn Museum, Bequest of A. Augustus Healy, 21.54

폴 세잔이 1885년 무렵에 그린 「가르단 마을」 풍경은 이와 달리 견고한 조형미가 이루는 경쾌함과 경건함의 공존이 참신하다. 인상주의 화풍이 자연을 즉흥적으로, 때로 단순하게 묘사했지만 세잔은 “인상주의를 미술관의 예술품처럼 견고하고 오래 지속되게 만드는 것”이 예술적 목표라고 한 화가답게 철저하게 구조적으로 도시를 그렸다. 사각형과 삼각형으로 맞물린 누런 벽과 붉은 지붕의 기하학적 형태는 청색과 녹색으로 표현된 언덕과 나무의 유기적인 모양과 대조를 이룬다. 오른쪽 아래 부분은 흑연으로 그린 스케치가 드러난 채 미완성으로 남았다. 덕분에 작가가 어떻게 자연을 관찰했고 묘사하려 했는지 숨은 의도를 엿볼 수 있다.

폴 세잔 Paul Cézanne (French, 1839–1906)
가르단 마을 The Village of Gardanne
1885~86년
캔버스에 유채, 콘테, 크레용 Oil and conté crayon on canvas
36 1/4 x 28 13/16 in. (92.1 x 73.2 cm)
Brooklyn Museum, Ella C. Woodward Memorial Fund and the A. T. White Memorial Fund, 23.105

인상주의 화풍은 입체파와 야수파에 영향을 주었고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가 등장하는 기반이 됐다. 앙리 마티스는 파리 교외에 있는 샤트네 말라브리 숲의 어두운 흙색에 집중했다. 1916년 쯤에 그린 「말라브리의 십자로」는 울창한 나무 때문에 빛이 듬성듬성 들어오는 그 어둑한 분위기에서 갈색을 주조로 숲 속의 각진 나무들을 묘사했다. 갈색과 흙빛이 혼재된 나무가 유령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파란색과 흰색을 혼합해 과감하게 그린 가지와 잎사귀 덕분에 활력을 얻는다. 「붉은 방」 등 대담한 색상으로 유명한 마티스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6년에서 1917년 사이에 갑작스런 변화를 보여주는데 이를 확인시키는 작품이다.

눈에 보이는 빛과 색을 새로이 해석하고 표현하다

이어, 전시는 정물과 인물, 그리고 누드로 장르를 바꿔가며 펼쳐진다. 마티스의 1906년작 「꽃」은 눈도 채 뜨지 않은 봄을 먼저 깨워 온 것처럼 화사하다. 툭툭 무심하게 찍은 듯한 붓질로 보이지만 빨강·주황·노랑 등 색의 조각들이 종류도 다양한 꽃을 이룬다. ‘인상주의’ 미술에 이름을 붙여준 초기 평론가들의 시선으로 볼 때는 ‘못 그린 그림’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보색에 가까운 상반된 색이 나란히 놓여 이루는 묘한 긴장감과 단단한 꽃병의 물질감이 주변의 비물질적 분위기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음미한다면 달리 보인다.

뭐든 부드럽고 둥글둥글하게 그려내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도자기와 과일들까지도 솜사탕처럼 사랑스럽게 그려놓았다. 1900년경에 그린 「파란 컵이 있는 정물」은 흰색 식탁보 위에 놓인 푸른색의 중국식 도자기 컵과 복숭아, 무화과를 그린 작품이다. 시원한 파란색의 컵과 따뜻한 느낌의 붉은 복숭아, 초록색 무화과가 이루는 색의 조합, 식탁보 주름을 이루는 회색과 보라색 등 형태보다 색을 따라가며 감상하면 매력이 더 커진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 (French, 1841–1919)
파란 컵이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Blue Cup
1900년경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6 x 13 1/8 in. (15.2 x 33.3 cm)
Brooklyn Museum, Bequest of Laura L. Barnes, 67.24.19

‘인물’은 윌리암 부게로가 전통적인 기법과 구도에 충실하게 그린 1864년작 「누나」부터 장 프랑수아 밀레가 노동의 신성함을 종교적 분위기로 그려낸 「양 떼를 치는 남자」(1860년대), 오귀스트 로댕이 소설가 발자크를 주인공으로 한 대표작 「발자크」(1893년, 주조 1971년), 야파와 입체파의 영향을 절묘하게 버무린 마르크 샤갈의 「음악가」(1912~1914년)까지 다채롭고 풍성하다.

장 프랑수아 밀레 Jean-François Millet (French, 1814–1875)
양 떼를 치는 남자 Shepherd Tending His Flock
1860년대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32 3/16 x 39 9/16 in. (81.8 x 100.5 cm)
Brooklyn Museum, Bequest of William H. Herriman, 21.31

‘누드’는 나르시스 비르질 디아즈 드라페냐가 전통적인 신화적 구도로 그린 「숲 속 개울에서 목욕하는 사람들」(1859년)로 시작해 대리석 돌덩이에서 사람이 태어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로댕의 「다나이드」(1903년경)에서 절정을 이룬다. 인체를 그린 것이지만 팔다리가 해체되고 추상적인 단계에 도달한 페르낭 레제의 「잠수하는 사람들」(1941~1942년경)에 이르면 화가들의 관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감지할 수 있다.

글. 조상인(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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