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바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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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비에노 「마리 뒤플레시스의 초상」

초상화 전문 화가 에두아르 비에노가 그린 「마리 뒤플레시스의 초상화」는 미술사에 남을 명작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림 속 주인공이 왠지 눈길을 끈다. 마치 실재하지 않았던 여인처럼 신비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가 쓴 소설 <동백꽃의 여인>(La Dame aux Camélias, 1848)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마리 뒤플레시스(Marie Duplessis, 1824~1847)다. 당시 파리의 유명 코르티잔이었던 그녀는 23세의 꽃다운 나이에 요절했지만 베스트셀러 소설의 주인공이 되었고, 훗날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1853)에서 비올레타로 부활했으며, 20세기 이후에는 몇 편의 영화와 발레로 재창조된다.

하얀 동백꽃을 사랑한 사교계의 여인

19세기 프랑스의 초상화 전문화가 에두아르 비에노(Édouard Viénot, 1804~1872)는 초상화의 의뢰인들을 아주 정교하게 그린 사람이다. 실물보다 더 멋지거나 예쁘게 치장하지 않고, 다양한 포즈 속에 주인공의 성격까지 드러날 듯 정교하게 그려낸다. 그렇다면 이 초상화 역시 그림 속 주인공의 실제 모습과 거의 닮았으리라고 단정해도 좋을 것 같다. 실로 대단한 미인 아닌가.

새까만 머리카락이 인상적인데, 전문 미용사의 손을 빌어 정성스레 다듬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까만 눈동자와 부드러운 눈썹, 살짝 미소 지었지만 다문 입술은 그녀의 이지적 면모를 나타내는 듯하다. 긴 목과 창백한 피부는 병약하지만 아름다운 여인의 낭만주의적 상징처럼 보인다. 머리장식과 어깨에 두른 겉옷은 경제적으로도 무척 부유해 보인다. 특이한 점은 성적 상징성이 농후한 가슴골 사이에 하얀 동백꽃을 꽂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그림의 주인공 마리 뒤플레시스가 사랑했던, 그리고 그녀를 상징했던 꽃이기도 하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알퐁신 플레시였다. 1824년 1월 노르망디의 시골에서 태어난 소녀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 폭력적인 아버지는 가출해 버렸고, 어머니는 가난을 견디지 못해 집시에게 딸을 팔아버렸다. 집시는 열다섯 살의 소녀를 파리로 데려가 한 양장점에 맡기는데, 양장점은 공공연한 매춘의 접점이기도 했다. 이국적인 아름다움의 플레시는 곧 부유한 상인의 첩이 되었고 사교계에 알려지면서이 상인 대신 귀족을 선택하게 된다. 좋게 말해 사교계의 여인 즉, ‘코르티잔’(courtesan)이 된 것이다.

2017년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공연된 국립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 중 한 장면. 당대 상류사회 남성들과 코르티잔의 화려한 사교파티를 그리고 있다.  © 고양문화재단

‘코르티잔’의 사전적 뜻은 ‘부유한 남자나 귀족과 관계를 맺는 정부 혹은 창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9세기 파리에서 유행한 새로운 유형의 코르티잔은 창녀와는 구별해야 할 개념이다. 귀족 계층이나 산업혁명으로 대두한 부유한 신흥 부르주아 남자들이 부와 지위를 자랑하기 위해 젊고 예쁜 여성을 공개적인 애인으로 두고자 했기 때문이다. 싫증이 나면 언제든지 관계를 중단할 수 있으니 남자들에게 코르티잔은 꽤나 매력적인 존재였다.

남자의 아내 입장에서도 코르티잔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배다른 자식이 생겨 자기 자식에게 돌아갈 유산이 줄어들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원칙인 코르티잔의 존재를 인정하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또 코르티잔은 더 나은 후원자를 찾으면 남자에게 이별을 요구할 수 있고, 그때는 군말 없이 물러나야 한다는 에티켓이 있었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는 코르티잔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명곡이 들어 있는데 유명한 이중창 <축배의 노래>(Libiamo, libiamo), 그리고 <아, 그이였던가>(Ah fors’e lui)부터 <언제나 자유롭게>(Sempre libera)에 이르는 비올레타의 긴 아리아가 대표적이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가운데 비올레타의 아리아 (노래 :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

코르티잔이 된 플레시는 이름도 고쳤다. 고상해 보이는 ‘뒤(du)’를 삽입하여 우아한 뉘앙스를 풍긴 ‘마리 뒤플레시스’가 파리에서 통용된 새 이름이었다. 키가 큰 편이고 말랐으며 길고 가느다란 목을 지닌 뒤플레시스는 최고 코르티잔의 반열에 올랐다. 그녀는 비싼 의상과 보석을 두른 채 나타났고 세련된 매너가 몸에 배었으며, 책을 읽어 교양이 넘쳤고 피아노도 곧잘 쳤다. 특히 꽃에 대한 취향이 유명했다. 누구나 좋아하는 장미 대신 동백꽃(카멜리아)을 사랑했기에 그녀를 숭배하는 남자들은 이 꽃을 바쳐야 했다.

교양을 갖춘 코르티잔으로서 뒤플레시스는 오페라와 연극 관람을 즐겼는데, 화가 카밀 로크플랑(Camille Roqueplan, 1803~1855)은 객석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을 남겼다. 풍경화, 풍속화, 초상화 등 다양한 그림에 능했던 로크플랑은 주로 유화를 그렸다. 때문에 수채화인 「객석의 마리 뒤플레시스」는 정식 의뢰를 받고 그려졌을 비에노의 초상화와는 달리 스케치에 가깝다. 로크플랑은 뒤플레시스를 눈에 띄게 마른 여인으로 그리지 않았지만, 온화한 표정과 가느다란 목, 단정한 몸가짐은 비에노의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인상과 닮았다.

카밀 로크플랑_ 「객석의 마리 뒤플레시스」, 1840년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와의 짧은 사랑

한편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대문호 알렉상드르 뒤마(1802~1870, 같은 이름의 아들과 구분하기 위해 뒤마 페레라고도 한다)의 사생아로 태어난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Alexandre Dumas fils, 1824~1895)는 문인 지망생이자 명사의 자식답게 멋쟁이 한량이었다. 1844년 가을, 뒤마는 친구와 함께 바리에테 극장에 갔다. 그곳에서 동갑내기 뒤플레시스를 보자마자 반해버렸다.

공연이 끝난 후 뒤마 피스는 친구와 함께 마리를 쫓아갔고, 마리는 오랜만에 후원자가 아닌 젊은 남자들과 유쾌한 대화를 나눴다. 그러던 중 뒤마 피스는 기침하며 방을 나간 뒤플레시스가 각혈하는 것을 발견했다. 폐결핵이었던 것이다. 그녀를 보호하고 싶었던 뒤마는 결국 뒤플레시스의 마음을 얻어냈다. 하지만 뒤마에겐 ‘낭비벽이 심한’ 뒤플레시스를 뒷받침할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 따라서 뒤플레시스가 여전히 다른 남자의 후원을 받는 것을 방치해야 했다.

뒤플레시스는 오랜 후원자인 늙은 백작 귀스타브 에른스트 폰 스타켈베르크, 부유한 은행가 집안의 청년 백작 에두아르 드 페레고까지 동시에 상대하면서 원하는 것을 모두 챙기고 싶어 했다. 결국 손을 들어버린 쪽은 뒤마 피스였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다 해줄 수 있는 부자도 아니고, 당신이 줄 수 있는 만큼의 사랑에 만족하는 가난뱅이도 아닙니다. 좋은 추억으로 남기를!”이라는 편지를 남기고 관계를 끝냈다. 그 이후로 뒤마가 뒤플레시스를 만난 적은 없었다.

쓸쓸하게 마감한 생, 예술이 다시 잉태한 그녀

뒤플레시스는 뒤마와 헤어진 후 위대한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의 연인이 된 적도 있었다. 뒤플레시스는 리스트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었지만 리스트에게 그녀는 잠깐의 상대였을 뿐이다. 실망한 뒤플레시스는 젊은 백작 페레고의 청혼을 받아들여 런던에서 결혼했다. 파리에서는 누구나 그녀를 알아보았기 때문에 ‘백작부인이 된 코르티잔’이라는 빈정거림을 견딜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그녀의 삶은 금세 처량해졌다. 폐결핵이 악화되었고, 페레고의 가족들이 백방으로 설친 결과 ‘서류 미비’를 이유로 결혼은 무효화되고 말았다. 파리로 돌아온 뒤플레시스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자 페레고 백작과의 만남조차 피하면서 죽음을 맞이했다. 1847년 2월 3일, 만 23세를 갓 넘긴 꽃다운 나이였다. 다행히 죽는 순간에는 페레고 백작은 물론 한때 그녀의 후원자였던 스타켈베르크 백작도 곁을 지켰다고 한다.

한편 뒤마 피스는 뒤플레시스와 헤어진 후 아버지와 긴 여행을 다녔다. 그런 가운데에도 그녀의 소식에 귀를 기울였지만 파리로 돌아온 후에야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뒤마 피스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848년 <동백꽃의 여인>을 발표한다. 뒤플레시스는 ‘마르그리트 고티에’로, 뒤마는 ‘아르망 뒤발’로 등장하지만 자신의 경험에 기초한 자전적 소설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소설은 두 주인공이 사랑하게 되는 장면까지만 사실에 가깝다. 소설에서 뒤플레시스는 사랑을 위해 자기 재산을 팔아치우는 헌신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실제 뒤플레시스는 뒤마를 위해 아무런 희생도 하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는 <동백꽃의 여인>에 나오는 ‘마르그리트 고티에’가 자신이 사랑한 소프라노 가수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와 닮았다고 생각하여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1853)를 작곡했다. 하지만, 여주인공의 이름은 비올레타로 바꾸었는데, 사별한 첫 아내의 이름이 소설 속 마르그리트의 이탈리아식 이름인 마르게리타였기 때문이다.

<동백꽃의 여인>을 다룬 20세기 공연예술의 산물로는 발레 두 편이 특히 유명하다. 존 노이마이어(John Neumeier, 1939~ )의 <카멜리아의 여인>(1978)은 제목으로 알 수 있듯이 원작에 더 충실하다. 음악은 극의 배경인 1840년대 프랑스 파리의 분위기에 맞도록 프레데릭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소나타, 전주곡, 마주르카 등을 다양하게 편집했다. 이보다 먼저 나온 프레데릭 애슈턴(Frederick Ashton, 1904~1988)의 <마르그리트와 아르망>(1963)은 프란츠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를 관현악을 곁들인 편곡으로 사용했다. 마리 뒤플레시스가 한때 리스트의 후원을 받았다는 점을 떠올리면 흥미가 배가될 것이다.

 

발레 <카멜리아의 여인> 중 1막 파드되 (덴마크 왕립 발레단의 구드룬 보예센, 울리크 비르키에르)

 

발레 <마르그리트와 아르망> 중 파드되 (영국 왕립 발레단의 제나이다 야노프스키, 로베르토 볼레)

올랭피아가 <동백꽃의 여인> 속 코르티잔?

 

코르티잔을 묘사한 그림으로는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의 「올랭피아」(Olympia, 1863)가 가장 유명하다. 벌거벗은 한 여인이 침대에 누워 당당하게 전면을 응시하는 태도와 발밑에 꼬리를 치켜든 검은 고양이가 있는 것은 육체적 유혹을 상징하며, 흑인 하녀의 존재도 이 여인이 단순한 창녀는 아님을 보여준다. 특히 올랭피아(혹은 올랭프)라는 이름은 뒤마 피스의 <동백꽃의 여인>에서 주인공의 동료 코르티잔으로 등장한다. 이 그림이 바로 그 올랭피아를 그린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맞지 않고, 올랭피아는 코르티잔에게는 흔한 별칭이었으며, 이 그림의 모델도 실제 코르티잔이 아니라 마네의 뮤즈였던 빅토린 뫼랑(Victorine Louise Meurent)으로 알려져 있다.

글. 유형종(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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