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슬쩍 현대무용을 하고 있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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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예술감독 김보람 인터뷰

여러 음악을 한 자리에서 펼쳐내며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음악 콘서트. 여기에 다양한 몸짓과 이야기가 더해지면 어떨까?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대표작 <바디콘서트>는 프랑스의 전자음악 듀오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곡부터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진도 아리랑」까지 경계 없이 넘나드는 10곡의 음악에 맞춰 표현의 틀을 깬, 치열한 몸짓을 펼쳐낸다. ‘현대무용의 한류를 자극할 수 있는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10년간 국내외 크고 작은 무대에서 환호를 이끌어낸 <바디콘서트>(Body Concert)가 5월 29일과 30일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을 찾는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예술감독이자 안무가인 김보람은 “내가 좋아하는 걸 열심히 잘 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싱거운 말로 자신들이 걸어온 13년의 시간, 아낌없는 박수를 받아온 레퍼토리들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상상을 뛰어넘는 땀과 열정은 쉬이 숨겨지지 않는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바디콘서트>는 ‘2010 크리틱스 초이스’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며 주목 받기 시작해 ‘2012 MODAFE’ 국내초청작, ‘2016 서울아트마켓’ 팜스 초이스에 선정되었다. 또한 동유럽을 대표하는 공연예술페스티벌 루마니아 ‘시비우 국제 연극제’, 독일 최대 현대무용 페스티벌 ‘탄츠 임 아우구스트(Tanz im August)’에 초청되는 등 세계적으로도 호평 받아 왔다.

애매모호함 속에서 터져 나오는 치열함

2007년 창단이니 올해로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이하, 앰비규어스)의 역사가 13년이 된다. 젊은 현대 무용 단체로서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예이다.
‘앰비규어스’라는 이름으로는 2007년부터 시작했다. 그 전에는 공연 때마다 모였다가 다시 흩어져서 각자 작업을 하는 식이었다.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상주단체가 되면서 좀 더 전문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는데, 13년이나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웃음)

이름을 걸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2007년 서울예술대학교 교수님께서 갑자기 대학무용제 안무를 맡기신 적이 있다. 가수들 백업댄서로 방송활동을 하던 때라 ‘왜 내게 이 일을 맡기실까’ 의아했지만, ‘현대무용’이라는 걸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학생들과 ‘우리가 하고 싶은 걸 뭐든 열심히 해보자’ 하고 만들었다. 이후 그 학생들의 졸업 작품 안무를 한 번 더 해주었는데, 그 작품이 바로 <볼레로>(2007)다. 당시 ‘CJ 영페스티벌’에 작품 영상을 보냈다가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아, 내가 한 작업이 현대무용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후로 계속 안무 의뢰가 들어오면서 은근슬쩍 현대무용 안무가가 된 셈이다. 지금도 내가 하는 게 정확하게 현대무용이라는 생각을 안 한다. 그래서 단체 이름도 ‘앰비규어스’(ambiguous, 애매모호한)라고 지은 것이다.

그간의 무대를 보면 안무, 음악, 의상, 소품 등 여러 요소들이 현대무용 공연들에서 보아온 모습과 다른 경우가 많아서 ‘앰비규어스’라는 단체명이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이다. 모호하다는 건 그만큼 열린 가능성을 가졌다는 것 아닌가.
우연히 영어사전에서 찾은 단어가 ‘앰비규어스’다. a니까 사전 앞쪽에 나와 있기도 했고, 멋지기도 했고. (웃음) 작업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게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좋아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이다.
음악을 좋아하니까 누구보다 음악을 잘 맞추고 싶고, 옷을 좋아하니까 무대 위에서 더 멋지게 입고 싶은 거다. 그런데 그 ‘잘, 멋지게’라는 개념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멋진 옷, 좋은 음악의 개념은 아니다. 그 기준은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특별하다는 게 아니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 관심 있어 하는 것을 더 잘 하려고 노력하면 한 명 한 명이 남다른 거다.

 

전라남도 완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보람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이주해 2000년부터 백업댄서로 활동하였다. 스트리트댄스, 발레, 현대무용, 힙합 등 다양한 춤의 장르를 배경으로 동시대 현대무용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그는 ‘음악 이전의 소리’, ‘춤 이전의 몸’으로 돌아감으로써 관객들과 보다 진실하게 소통하고자 한다.

 

창작 과정이 궁금하다.
가장 먼저 단어(주제)를 찾고, 그 다음에 음악을 찾는다. 음악은 운명처럼 다가온다. 그건 하루에 4시간 이상씩 음악을 듣기 때문에 오는 운명이지, 가만히 있는데 갑자기 오는 운명이 아니다. ‘아, 이 음악에 춤추고 싶다’ 하는 마음이 들 때 그 음악을 선택해서 분석하는데, 작품을 짜다 보면 이 음악이 왜 내게 왔는지 알게 된다.
의상이나 소품도 다 직접 준비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만든다. 거만한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웃음) 춤을 오래 추다 보니 내 머릿속에 있는 것보다 내 몸이 가지고 있는 게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언가를 만들려고 한다기보다는 연습실에서 매 순간 나오는 것들을 치열하게 해석한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무용수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 또한 중요한 부분이겠다.
그게 굉장히 어렵다. 한국 교육 시스템은 대부분 주입식이고, 내 생각엔 현대무용도 주입식 교육을 통해 배워온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무용수들은 ‘여기서 이렇게, 저기서 이렇게’라고 주문해주는 걸 훨씬 편하게 여긴다. 하지만 우리는 무용수들 자신의 느낌까지 다 넣으라고 하니까 무용수들이 조금 힘들어한다.
지금 컴퍼니에 7명 정도의 무용수들이 고정으로 있는데 반 이상이 3~4년간 합을 맞춰왔고, 장경민 (앰비규어스) 대표와는 10년 가까이 됐다. 기본적으로 작업은 공부, ‘배우는 것’이라는 점을 공유하고 있다. 나를 포함해 매 순간 배울 생각이 없어 보이면 함께 작업하지 못한다. 자기 삶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총 몇 편의 레퍼토리가 있는지 헤아려 보았나?
창단 후 6년 정도까지는 세어 봤는데 그때 16편 정도 됐던 것 같다. 이후부터는 안 센다. 우리가 극장에서만 공연하는 게 아니라 거리에서도 하고, 장소가 다양하다. 작품이 매번 그 환경에 맞게 변해서 공연할 때마다 신작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지난해 9월 네이버 [온스테이지2.0]을 통해 공개되어 유튜브에서만 조회수 128만을 넘긴 국악 퓨전 그룹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영상. ‘힙한’ 전통음악에 대한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깨는’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음악, 몸, 삶에 대한 전율― 바디콘서트

<바디콘서트>는 앰비규어스의 대표 레퍼토리라 할 수 있다.
2010년 초연이니까 거의 10년 됐다. ‘음악 콘서트처럼 몸으로도 콘서트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좋아하는 음악들을 찾고, 그 음악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움직임과 이야기들을 담았다. 10개의 음악과 10개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열 번째까지 다 하게 되면 무용수들은 그런 질문을 하게 된다. ‘아, 도대체 무용수의 삶은 무엇인가!’ (웃음)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아서. (웃음)

<바디콘서트>뿐만 아니라 앰비규어스의 공연 중에는 배경음악이나 장면의 분위기와 상반되게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광경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이 또한 현대무용 공연에서는 드문 광경이다.
웃음을 주려는 의도는 별로 없다. 보통 현대무용을 ‘저게 무슨 내용이지?’ 하면서 보니까 웃음이 잘 안 나오는 것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춤 자체를 보게 하니까 관객들이 좀 더 마음을 열고, 작은 것도 더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2010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서울댄스컬렉션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공존>이라는 작품 초연 때, 공연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들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공연이 끝나고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고민했었다. 굉장히 힘든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고, 무용수들은 무대 위에서 죽을 것 같이 힘든데 관객들은 왜 그렇게 웃지? 그런데 이유를 물어보면 “너희들이 웃기게 만들었다”고들 하시고. (웃음)
하지만, 어느 공연에서나 한두 분씩은 꼭 찾아온다. 다른 사람들은 다 웃는데 자기는 너무 슬펐다면서. 작품을 향한 관객들의 시선은 긍정 또는 긍정과 부정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는데, 자기 자신이 뭔가 외롭거나 힘들거나 상처가 있을 때 긍정과 부정이 싸우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계신 분들에게는 우리 작품이 슬프게 다가가는 것 같다. 우리는 관객들까지 퍼포머(performer)라고 생각해서 작품을 통해 긍정, 부정, 그리고 제3자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담고자 한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바디 콘서트>

 

지난해에는 해외 공연도 많았다. <인간의 리듬>은 네덜란드에서, <바디콘서트>는 호주와 독일에서 공연했다.
해외에서도 많이 좋아해주신다. 네덜란드와 독일 베를린 공연은 모두 매진되었다. 심지어 밖에서 암표도 팔고 있더라. 그 암표상이 공연 둘째 날 경찰에 잡혀 갔다. (웃음) 그래서 매진임에도 불구하고 2층 좌석이 좀 비어 있어서 아쉽긴 했지만, 암표상을 봤다는 건 좀 신세계였다. 또 베를린 공연이 끝나고 연락이 와서 내년(2021년)에 한 달간 <바디콘서트>의 프랑스 5개 도시 투어가 확정되었다. 이 작품은 워낙 많은 디테일이 있어서 어떤 무용수가 해도 6개월 이상 연습해야 하는데, 초연 때는 6개월 연습하고 단 한 번 공연해서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매년 10회 이상 공연을 하고 있기 때문에 무용수들도 계속 뽑아서 연습하고 있다.

앰비규어스는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우리는 계속 발전하기 위한 춤을 춘다. 어떤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 또는 우리들의 생계 문제 등을 다 배제하고 우리가 하려는 춤에 대한 발전을 지속하기 위한 단체다. 누군가 ‘예술이란 예술이라는 울타리 밖에 있다’는 말을 했는데,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정말 여러 가지 작업을 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하는 것이 현대무용일까’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작업하기 때문에 계속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나의 레퍼토리를 계속 공연하는 단체도 별로 없다 보니 우리가 좀 더 잘해서 <바디콘서트>가 한국을 대표하는 무용 작품이 되기를, 우리도 계속 발전하는 단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글. 황선아(공연 칼럼니스트)
인터뷰 사진. 하경준(캐치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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