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환경에 놓인 음악가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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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인터뷰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9월 6일(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듀오 리사이틀을 개최한다. 학창시절부터 서로에 대한 믿음이 남달랐던 두 사람의 환상적인 호흡은 코로나19로 인한 ‘새로운 환경’에서 더욱 뜨거운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독일에 머물고 있는 클라라 주미 강을 서면으로 만나보았다.

클라라 주미 강 & 손열음 듀오 리사이틀 프로그램
라벨_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a단조
스트라빈스키_ 디베르티멘토
프로코피예프_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멜로디
슈트라우스_ 바이올린 소나타 E♭장조

인간 ‘클라라’를 스스로 알아가는 시간

사는 곳과 머무는 곳, 일하는 곳이 서로 다를지언정 음악가들의 일과는 대부분 비슷하다. 때론 음악과 완전히 동떨어진 시공간에서 휴식이나 재충전을 할 때도 있겠지만, 그들의 평범한 일상은 의무이든 습관이든 호기심이든 생계활동이든 대부분 음악활동 속에 놓이게 마련이다. 참으로 얄밉고 무서운, 코로나19 시대에도 그 패턴에 많은 변화는 있을 수 없다.

“가장 크게 달라진 것 한 가지를 말하자면 모든 끼니를 스스로 만들어 먹고 있다는 점이죠. 평소 연주 여행 할 때 제 자신을 호텔에 가둬두면서 연주 준비만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게 오히려 답답하지만은 않고 좋은 점도 있다고 느껴지네요. 밥을 먹으면서 음악 하는 내가 아닌, 인간 클라라를 스스로 알아가는 시간인 것 같기도 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의 일상도 ‘굳이 따져 봐야’ 그 변화를 스스로 느낄 수 있다. 답변 속에 들어있는 긍정의 느낌은 분명 진실이다. 어느 호텔의 객실에서 외롭게 바이올린과 은밀한 승부를 벌이는 시간보다 불현듯 찾아온 이 ‘멈춤’이 그에겐 더 유익한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미리 알고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프로 연주자에게 새로운 레퍼토리를 익히고 자신의 몸에 최적화하여 장착시키는,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일에 이 짧은 휴지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현명해 보인다.

“이번 가을 투어 때 제일 넣고 싶었던 곡은 스트라빈스키의 디베르티멘토였어요. 프로코피예프는 손열음 씨랑 외국에서 몇 번 호흡을 맞췄는데, 저희 둘이랑 잘 맞는 곡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국에서도 꼭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라벨의 첫 번째 소나타(유작)는 이번에 처음 다뤄보는 곡이라 더 설레네요. 한 악장으로 된 짧은 곡이지만 여러 가지 색깔의 신비스러움으로 가득 찬 곡입니다.”

새로 만나는 곡이 있는가 하면 오랜만에 다루는 작품도 있을 것이고, 무대에 올릴 때마다 특별한 신선함으로 다가오는 음악도 있기 마련이다. 결국 믿을 사람은 나의 예술적 생명을 모두 맡기고 의지할 파트너뿐이다.

“열음 언니와 함께 무대에서 호흡을 처음 맞춘 게 2010년이니까 올해로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호흡을 맞추는 방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늘 함께 준비하는 과정이 편하고, 리허설 때 서로 말을 많이 주고받지 않아도 음악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이에요. 매번 무대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굉장히 기대가 돼요. 둘 다 무대에서 귀로 예민하게 서로를 들어주며 어떤 해석이 나와도 즉시 반응하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연주 때마다 다른 해석을 할 여유가 있죠.”

 

클라라 주미 강과 손열음의 2013년 듀오 공연 실황 영상

‘음악가’와 ‘바이올리니스트’는 나에게 같은 뜻

어차피 서로 타인인, 그것도 예술적 자아로 똘똘 뭉친 뛰어난 두뇌의 음악가들끼리 이심전심으로 통할 수 있는 이유가 여러 가지겠지만, 예민한 음악적 순발력을 타고나게 해준 성악가 부모님과 어릴 적 자연스럽게 형성된 가정의 ‘음악 살롱’ 분위기도 한 몫 했음이 분명하다. 짜릿한 활 놀림으로 초절 기교의 난곡들을 요리하는 바이올린 비르투오소의 면모와 동시에 균형 잡힌 ‘음악가’의 모습이 그에게 묻어나는 것은, 바이로이트의 거장 필립 강(강병운 교수)과 절친했던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연주자들을 ‘아빠의 동료’로서 늘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공한 선생님들 사이에서 자신도 대성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을까?

“부담은 없었습니다. 제 가족이 다 음악을 하셔서 그런지 저에게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환경이었어요. 부모님들은 두 분 다 성악을 하셨는데, 저랑 전공이 겹치지 않아서 그런지, 제가 바이올린을 시작했던 순간부터 적당히 서로 거리가 유지된 것 같아요. 중학교 때부터는 아예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았죠. 20대였을 때는 음악가로 성장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제 자신에게 바이올리니스트보다 더 큰 그림을 그려주는 것 같았거든요. 지금은 음악가와 바이올리니스트는 다른 단어이지만 저에게는 결국 같은 뜻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현명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멘토를 가까이 만나고 수시로 대화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젊은 음악가의 성장을 고려해볼 때 부러운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문득 세상을 떠난 음악가 중 만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저는 작곡가들을 만나보고 싶어요. 함께 그들이 작곡한 곡에 대한 스스로의 관점을 들으면서 배우고 싶네요. 예를 들자면, 알반 베르크를 만나서 바이올린 콘체르토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슈만과는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을 함께 연주해보면 멋질 것 같아요.”

 

4년 만에 손열음과 함께 듀오 리사이틀을 펼치는 클라라 주미 강

새로운 환경, 새로운 소통, 그래도…

2019년 여름 평창대관령음악제 인터뷰 때 만난 클라라와 필자는, 날씨 변화에 민감하고 관리가 까다로운 옛 악기로 연주하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연속 이틀 동안 바이올린의 줄이 풀리거나 끊어지는 ‘기술적인’ 돌발 상황을 청중들이 목격한 직후였다.

“모던 악기에 대한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아직까지 모던 악기를 제대로 (야외 연주회 때 말고는) 사용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연주 때 주로 사용하는 바이올린도 1900년대 초에 만들어진 악기이니까요. 제 동료들 중 일부는 올드 악기, 모던 악기를 다 사용하는데 대부분 모던 악기를 가지고 여행한다고 하더라고요. 모던 악기가 새로운 환경에 덜 예민하고, 요즘 지어진 큰 홀에서 소리도 더 잘 뻗어 나간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변화된 환경과 청중들의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고민 중 악기의 관리나 유지도 매우 큰 부분이죠.”

이른바 ‘새로운 환경’에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떨어트리는 몹쓸 바이러스도 있다. ‘비포 코로나’(Before Corona), ‘애프터 코로나’(After Corona)로 설명되는 일상의 전환을 겪어야 할지 모른다는 우울한 예상도 많이 들린다. 음악회장에 청중이 사라진 상황에서 내 음악을 들어줄 대상과 소통하기 위한 안간힘도 필요한 시기다.

“3월에 말레이시아에서 연주 당일 갑작스럽게 협연이 취소되면서, 청중 없이 카메라를 보고 연주를 했어요. 그때, 음악가들한테 라이브 청중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 깨닫게 됐습니다. 지난 두 달 동안 인터넷을 통해 몇 차례 비대면 연주회를 했는데, 라이브 음악회를 못 오시는 분들에게는 무척 좋은 대책이고 잠시 음악회를 대신해주는 용도로는 위로가 되지만, 라이브 음악회를 온전히 대신해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해서 우리의 미래가 되지는 않길 희망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모두 사라진다면 하고 싶은 일을 많이 상상했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갈 곳은 콘서트홀인 것 같아요. 정말 간절히 공연장의 라이브 음악을 듣고 싶습니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음악칼럼니스트)
사진제공. 크레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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