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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문화예술계의 전망

‘코로나19’로 인한 불가항력적 변화의 바람은 사회·정치·경제는 물론 문화예술 분야에도 매섭게 불어닥치고 있다.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전망이 유력한 가운데, 낯설디 낯선 길로 나아갈 준비가 필요한 시기이다. 새로운 시대의 문화예술은 어떤 새로운 표준 즉, 뉴 노멀(New Normal)을 제시하게 될까. 그 속에서, 고양문화재단과 같은 공공 문화예술기관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계간 <누리>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특별 좌담 ‘코로나19 이후 문화예술계의 전망’을 개최하여 이 문제를 논의해보았다.

계간 <누리> 특별 좌담
코로나19 이후 문화예술계의 전망
– 공공 문화예술기관의 역할을 중심으로 –

일시
2020.5.18.(월) 11:00am

장소
고양아람누리 아람마슬

사회
정재왈(고양문화재단 대표이사·연극평론가)

좌담
기모란(국립암센터대학원 예방의학과 교수)
김승미(서울예술대학교 예술경영학 교수)
김주영(피아니스트·음악칼럼니스트)
이만훈(前 중앙일보 국장)
* 가나다 순

당연했던 것들의 부재에서 본질을 깨닫다

정재왈 지난 2월 23일 코로나19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많은 문화예술기관들이 휴관 및 폐쇄되었고, 추진 중이던 프로그램들은 취소 혹은 연기되었다. 관객이 감소하고, 사업이 축소되면서 예술가들의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인 타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김승미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면서 극장이 가장 먼저 문을 닫았다. 특히,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산하의 공공 문화예술기관들이 그런 분위기를 선도해야 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감염이 발생할 경우 비난이 더욱 클 것이고, 책임 소재의 문제도 따르니 보수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여파로 공연계의 경우 매출이 90% 이상 줄어드는 등 직격탄을 맞았다.

김주영 대안으로 나온 것이 문화예술의 영상화 서비스인데, 세종문화회관의 경우 세종예술아카데미의 개강이 잠정 연기되면서 지난 4월에 강의 대신 토크 콘서트를 유튜브 라이브로 중계했다. 고양문화재단도 유튜브를 이용해 스트리밍 서비스(랜선상영회)와 무관객 공연 생중계(고양버스커즈 집콕콘서트)를 선보여 호응을 얻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정재왈 대안적 서비스를 실시하면서도 ‘관객과의 만남’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당연히 존재하는 것인 줄 알았던 ‘관객’이 없는 상황에 놓이고 보니, 문화예술의 본질은 관객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다행히 고양시의 방역 대처가 매우 훌륭했고, 고양아람누리와 고양어울림누리 또한 관리가 잘 이루어졌기 때문에 공공 문화예술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서비스를 재개할 수 있었다.

이만훈 아직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었던 4월 7일부터 시간별 관람인원을 제한하는 형태로 전시(브루클린미술관 명작초대전 ‘프렌치모던 : 모네에서 마티스까지’)를 재개하고, 4월 25~26일에는 ‘객석 거리 두기’ 형태로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공연했는데 매우 용기 있는 시도였다. 고양시 내에서는 물론, 문화예술계에서도 칭찬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웃음)

정재왈 무언의 압력도 많았다. 만에 하나라도 감염이 발생하면 책임을 질 수 있느냐는. 하지만, 관람객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신 덕분에 모범적으로 ‘생활 속 거리 두기’를 시행할 수 있었다. 모든 분야가 그러하겠지만, 문화예술계는 특히 감염에 대한 우려가 크다. 예방의학 전문가이신 기모란 교수님께 우선 코로나19가 앞으로 어떻게 예측되는지 들어보고 싶다.

기모란 코로나19는 언제까지 유행하다가 끝난다는 것이 없다. 이제는 우리가 같이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뉴 노멀(New Normal), 새로운 일상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서로 거리를 두면서도 문화예술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들은 무엇인지 긴 안목으로 준비해야 한다.

 “힘든 시기에 문화예술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이번 코로나19의 확진자와 자가격리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기모란(국립암센터대학원 예방의학과 교수)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 안전한 관람 환경을 생각하다

정재왈 현재 우리 재단에서 진행 중인 전시들의 경우, 사전예약제를 통해 관람객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도록 하고 있다. 공연장에서는 객석과 무대 사이의 간격을 넓히는 동시에 관객들이 서로 띄어 앉을 수 있도록 관람 가능한 좌석을 따로 지정하고 있다. 현장의 모든 근무자와 관람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물론이며, 사전에 관람객들이 문진표와 방문 기록을 작성하도록 관리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여러 방역 지침들 가운데,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있어 가장 철저히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

기모란 핵심이 되는 것을 네 가지 말씀드리고 싶다. 첫 번째는 방역에서 가장 중요한 ‘자연 환기’이다. 감염 예방의 관점에서 보자면 야외에서, 소규모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부분은 아마도 시설이나 시스템 면에서 장기적인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두 번째는 ‘관람객 리스트 작성’인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방문자들의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수집된 정보를 어떻게 관리하고 보호할 것인지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감염 관리 담당자의 지정’이다. 전담자가 감염 관리 시스템을 만들고, 정부나 지자체와 원활한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예술가·스태프들 간의 밀접 접촉 관리’이다. 프로그램의 준비 단계에서도 감염을 예방해야 하기때문이다. 특히, 공연은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서 논의하고 연습을 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과정이 있을 텐데, 그 기간에는 다른 만남을 자제함으로써 서로를 보호해야 할 것이다.

이만훈 BC(Before COVID-19, 코로나19 이전), AC(After COVID-19, 코로나19 이후)라는 말도 있는데, 교수님 말씀처럼 지속적으로 감염 관리를 하려면 전담자 1인이 아니라, 전담팀을 꾸려야 한다.

기모란 증상자가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또 위험 분산에 대한 계획이 필요하다. 이미 병원에서는 진료과 전체가 모여서 하는 회의는 없어졌다. 한 진료과의 전원이 감염되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다. 직장 문화가 많이 바뀔 것이다. 회의는 빨리 끝내는 분위기가 되고, 회식 대신 도시락을 먹는 분위기가 될 것 같다.

정재왈 우리 재단에는 소방, 전기, 산업안전 등의 분야를 책임지는 안전시설팀이 있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후 안전시설팀 업무에 ‘보건’ 분야가 추가되었다. 2015년 메르스 발생 때의 경험치가 있었던 덕분에 이번 코로나19 위기가 심각했을 때도 직원들이 우왕좌왕하지 않고, 대처를 잘했다. ‘관람객 리스트’의 경우, 고양시가 QR코드를 이용한 온라인 문진표 작성을 5월 25일부터 시행하는데, 우리 재단을 비롯해 시 전체가 함께 시행에 들어갔다.

“전 세계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지금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문화예술이 지니는 가치를 계속 지켜 나가기 위해서라도 방역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김주영(피아니스트·음악칼럼니스트)

김주영 극장에서는 속도가 중요하다. 특히 공연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 입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매 고객에게 온라인 문진표 링크를 문자로 미리 발송할 수도 있을 것 같고, 극장 로비의 QR코드를 스캔하여 온라인 문진표를 작성하도록 한다면 오프라인으로 문진표를 작성할 때보다 훨씬 신속한 프로세스가 이루어질 것 같다.

기모란 병원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QR코드는 방문자에게 미리 문진표 링크를 보내서 작성하도록 한 후, 개인별 QR코드를 생성해주는 방식이다. 병원에 방문해서는 휴대폰으로 자신의 QR코드만 보여주면 된다. 환자가 이동하는 동선마다 QR코드 스캐너가 있어서 시간대별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속도도 빠르고, 정보 보호의 측면에서도 환자들이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

이만훈 병원은 생명과 건강이 직결된 곳이니, 방문객들이 열심히 할 것 같다. 하지만, 문화예술을 관람하기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면, 조금은 저항이 있지 않을까? 물론, 우리 국민들의 수준이 높아서 잘 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기모란 우리가 지금 마스크 쓰는 문화를 생각해보면 QR코드 문진표 작성도 곧 적응할 것 같다. 초기에 우리가 마스크를 계속 써야 한다고 할 때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이제는 마스크를 써야만 마음이 편하지 않나?

김주영 공공에서 먼저 시작해야 한다. 문화예술을 관람하는 데 있어서 제한받고, 통제받는다는 느낌이 들면 솔직히 반감이 생길 수도 있다. 공공에서 먼저 새로운 시도를 하면, 관람객들의 저항도 점차 줄어들 것이다.

정재왈 관람객들이 현장에서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를 자연스럽게, 거부감 없이 실천할 수 있도록 ‘넛지’(nudge)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안전한 관람 환경을 제공하는 동시에, 새로운 관람 문화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기모란 몇 년 전, 영국에서 생활할 때 영국 왕실의 유물 전시를 관람한 적이 있다. 그런데 특정 유물에 관람객들이 너무 오랫동안 머무는 것이 문제였던 모양이다. (웃음) 관람객들을 레일에 태워서 전시장 내를 이동시키더라. 자연히 거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받아보는 것도 좋다. 현장의 관계자들은 생각해내지 못할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 있다. 평소 같으면 굳이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던 일들도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한번 해볼 만한 일들이 됐다.

“안전한 관람 환경과 관람 문화 조성을 위해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를 현장에서 거부감 없이 실천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넛지’(nudge)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정재왈(고양문화재단 대표이사·연극평론가)

위기 속에서 문화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전망하다

정재왈 코로나19 때문에 당장 먹고 사는 것이 문제인데, 왜 문화예술에 대한 논의를 이렇게까지 하는지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우선의 가치는 ‘공존’과 ‘협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문화예술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문화예술을 감상하고, 향유하고, 체험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에도 극장이 문을 닫고 공연이 취소되자 언택트(untact, 비대면)의 여러 가지 대안 서비스가 시도되기도 했다.

김승미 베를린 필, 내셔널 시어터, 태양의 서커스,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이 일시적으로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여 많은 ‘랜선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특히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영상은 48시간 동안 유튜브에 공개되었는데, 1천만 뷰를 돌파했다. 국내에서는 세종문화회관과 돈화문 국악당 등이 무관객 공연 생중계를 시도했고, 국립극장과 예술의전당도 기존에 영상화해두었던 대표적인 레퍼토리들을 스트리밍 서비스하여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김주영 지난 5월 2일에는 KBS교향악단 특별연주회 ‘우리 함께’가 무관객 라이브로 진행되었는데, KBS FM ‘실황특집 중계방송’의 진행자로 참여해 이 공연을 중계했다. KBS라디오의 어플리케이션과 페이스북, 유튜브를 통해서도 동시에 송출되었다. 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공연장에서 함께하지 못하는 점을 아쉬워하면서 실시간 온라인으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런데 방송 녹화도 아니고, 음반 녹음도 아닌 상황에서 무관객 공연을 하니 지휘자와 연주자들 모두 어색함을 토로했다. 연주 끝에 당연히 터져 나왔던 박수와 환호가 없으니 나도 어색하더라. 무관객 공연이 어느 정도 정착된다면 적응이 되겠지만.

이만훈 문화예술에서는 관객과 함께하는 것 즉, 현장성과 마당성이 중요하다. 현장에서 문화예술을 직접 감상하는 것과 온라인으로 접하는 것은 다른 장르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기모란 같은 생각이다. 책과 영화의 장단점이 다르지 않나. 영화는 시청각적으로 몰입할 수 있게 하는 반면, 책은 내가 직접 상상을 펼칠 수 있다. ‘공연’과 ‘공연 영상’도 우리가 감상하는 방식, 감동하는 방식이 다를 것이다.

김승미 ‘공연의 영상화’는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공연계의 가장 큰 화두였다. 그동안 공연계에서 보조적인 수단으로 여겨지던 영상화 사업이 이번에 크게 늘어났다. 공연 영상이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얻으면서 모든 공연을 영상화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높은 호응을 받은 공연 영상은 세계적인 극장들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일부 대표 레퍼토리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특수한 상황 속에서 관객들이 공연의 영상화라는 새로운 방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단계로 보인다. 공연 영상이 공연 관람을 어느 정도 보완하고, 서로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장르라는 것을 실감한 것이다. 이러한 공연 영상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지 공연계가 더욱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는 것 같다.

“앞으로의 공연은, 관객들이 직접 극장에 와서 경험하는 것의 가치를 깨우쳐줄 수 있는 작품성과 기획력을 갖춰야만 성공할 것이다.”

김승미(서울예술대학교 예술경영학 교수)

정재왈 공연 영상들이 공연계에 안착해 향후에도 큰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는 것 같다. 코로나19 극복 등 사회 공헌 차원에서 무료로 제공되던 공연 영상 서비스가 다시 유료화하고 있는데, 이것이 문화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발전할 수도 있을까?

김승미 공연 영상 유료 서비스의 대표주자로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메트: 라이브 인 HD’, 내셔널 시어터의 ‘NT 라이브’,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디지털 콘서트홀’을 들 수 있다. 베를린 필 ‘디지털 콘서트홀’은 완전 매진이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경우 관객이 영상으로 이동하면서 공연장 매출이 감소하기도 했다. 이런 극소수의 사례를 제외하면, 돈을 내고 공연 영상을 관람할 관객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어떤 공연을 어떻게 영상화할 것인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고,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공연 영상 유료화에 있어서는 선결 과제가 있다. 저작권과 예술가에 대한 보상 체제가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유료화 서비스는 오히려 큰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공연 영상이 본격적인 문화예술 산업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정재왈 콘텐츠의 측면에서도 생각해보자. 지금까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대형 블록버스터가 대세였다면, 앞으로는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소수의 확실한 취향과 눈높이를 만족시키는 콘텐츠들이 더욱 다양하게 생산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김승미 코로나19로 인해 공연 영상을 소비하면서, 관람 문화의 의미와 가치를 오히려 되돌아보게 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결국 공연은 관객을 만나 완성된다. 관객 또한 현장감을 느끼고, 다른 관객들과 공연을 공유하고 공감할 때 진정한 공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공연은, 관객들이 직접 극장에 와서 경험하는 것의 가치를 깨우쳐줄 수 있는 정도의 작품성과 기획력을 갖춰야만 할 것이다.

공공 문화예술기관의 선구적 역할을 모색하다

기모란 힘든 시기에 문화예술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는 이번 코로나19의 확진자와 자가격리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병마와 싸워야 하는 긴 시간, 홀로 외로이 보내야 하는 긴 시간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며 견뎌냈다는 응답이 정말 많았다. 여담이지만 ‘미스터트롯’을 즐긴다는 답변도 많았다. (웃음)

정재왈 ‘코로나 블루(우울증)’라는 말도 있지만, 어려운 시기일수록 문화예술의 감동과 정서적 함양이 중요하다. 공공 문화예술기관으로서 어려운 시기에 문화예술이 지니는 ‘가치’를 재정립하는 노력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가치’를 바탕으로 현장의 예술가들, 민간 문화예술계와 지속 가능한 협력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공연장에서 ‘거리 두기’를 시행하게 되면 수익은 낮아질 수밖에 없는데, 공공 문화예술기관들은 대승적 차원에서 수익성보다 공공성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다.

김주영 어쨌든 지금 전 세계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문화예술이 지니는 가치를 계속 지켜 나가기 위해서라도 방역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김승미 그런 의미에서 고양문화재단이 방역을 철저히 하고 선제적으로 미술관과 공연장을 연 것은 매우 소신 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고양문화재단의 오프라인 공연 재개는 공연계에 화제가 되었고, 다른 국공립 및 지자체 극장들이 재개하는 데에도 자극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만훈 이미 뉴 노멀의 시대로 들어왔다. 앞으로도 이런 감염병 사태가 반복될 거라는 전망이 있는데 임기응변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시설이나 기관에서 의무적으로 감염 관리 전담팀을 만드는 것이 AC 시대의 필수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조직 운영에 있어서도 아주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감염 관리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전담팀을 신설한다는 의지 자체가 공연장을 방문하는 아티스트와 관객들에게 깊은 신뢰감을 주게 될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언택트 기술이 있다 해도 그것이 문화예술 고유의 특성과 충돌하는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만훈 (前 중앙일보 국장)

기모란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각오로, 전향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코로나19 관리를 잘 해왔고, 이제는 자연스럽게 세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놓이게 됐다. 지금까지는 해외의 좋은 사례들을 잘 적용하기만 하면 됐는데, 지금은 우리 앞에 아무도 없는 상황이 됐다. 의료계만 하더라도 그동안은 의료 선진국들의 연구를 따라가는 ‘팔로워’ 입장이었다. 그런데 정신없이 코로나19에 몰두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더 이상 벤치마킹할 것이 없고, 오히려 세계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옛길에 미련을 두면 변화에는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만훈 실제 문화예술에서 언택트 방식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그 기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 있다 해도 그것이 문화예술 고유의 특성, 예를 들면, 현장성과 충돌하는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할 것인지 말이다. 그리고 공연 또는 공연 영상 서비스의 수익성과 공공성 문제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어느 수준까지를 사회 공헌 차원의, 문화 복지 차원의 서비스로 생각할 것인지, 예산의 규모는 가능한 것인지, 다양한 가치들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지혜다.

정재왈 세계화·정보화 이후의 첫 팬데믹(Pandemic, 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라는 점 때문에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길’이 펼쳐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오늘 코로나19 이후 문화예술계에 대하여 ‘컨택트’ 면에서, 그리고 ‘언택트’ 면에서 폭넓게 논의해주셨다. 귀한 시간 내서 함께해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정리. 류민영(고양문화재단 정책기획팀)
사진. 노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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