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된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가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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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무용수나 체조선수가 착용하는, 다리 부분이 없고 몸에 꼭 끼는 옷 ‘레오타드’와 패션 브랜드 ‘안나수이’. 조합하기 어려운 단어들의 연결이다. 과도한 입시 경쟁 속에서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일상을 조명하는 연극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이야기이다.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연극’, ‘어른들이 꼭 봐야 할 청소년 이야기’로 평가받는 이 작품이 8월 21일(금)부터 23일(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공연된다.

모범생 준호의 은밀한 취미

중간결론부터 말하면,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은 레오타드 입기를 좋아하는 남자에 대한 편견을 다룬 연극이다. 연극의 주인공은 공부도 곧잘 하고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모범생 준호다. 그런 준호의 은밀한 취미는 XXL레오타드를 입는 것. 아마도 준호는 레오타드를 입을 때 심리적 안정감을 찾는 듯하다. 그러나 레오타드를 입을 때, 준호는 불안감도 느낀다. 은밀한 취미가 드러났을 때 조리돌림 당할 건 불 보듯 빤한 일 아닌가.

연극에선 바로 그 상황이 일어난다. 누군가 학교 홈페이지에 준호가 레오타드를 입고 있는 사진을 올린 것이다. 모자이크 처리로 얼굴이 가려진 게 불행 중 다행이랄까. 그가 자기 남자친구라고는 생각지 않은 민지는 준호 앞에서 ‘미친놈’, ‘정신병자’라며 ‘소름 돋는다’라고, ‘토 나온다’라고 거침없는 비난을 쏟아 놓는다. 친구들도 근거 없는 선입견을 드러낸다. 그들은 남자가 레오타드를 입는 것을 ‘의상 도착증’이라 단정하고, 소돔과 고모라로 가는 길이라며 맹폭한다. 한 친구의 대사다.

“이런 게 다 동성애 초기 단계야. 여자 옷 보면 막 흥분하고 여자 속옷 입으면서 행복해 하는 애들 보면, 나중에 다 게이 짓하고 성전환하고. (…) 우리 부모님부터 목사님, 전도사님, 집사님, 권사님까지 다 그러더라. (…) 이딴 걸 개취로 인정하면 대한민국 소돔과 고모라 돼.”

잠깐의 촌극으로 지나가면 좋았겠지만, 친구들은 사진의 배경과 체형 등을 두고 남자의 정체를 추리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한 친구가 사진 속 방에 걸려 있던 문장과 준호의 핸드폰 배경화면 문구가 같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준호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준호가 아끼던 문장은 이것이다. ‘니가 망가졌을 때 너의 절망을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이 결핍된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가치다.’

여기까지는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가운데 ‘XXL레오타드’에 관한 내용이다. 아직 ‘안나수이 손거울’이 남아 있다.

 

‘소문난 왕따’ 희주와의 거래

‘안나수이 손거울’의 주인공은 준호의 동급생 희주다. 희주 역시 편견의 희생자로 ‘전교에서 소문난 왕따’다. 부모의 이혼 후 생활고에 시달리며 방과 후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던 희주는 우연히 발견한 준호의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리며 준호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비밀을 지키는 대신, 체육 수행평가의 짝을 해달라는 제안이다.

평소 준호는 희주에 대해 ‘메르스보다 훨씬 살 떨리는 애’라 폄훼하곤 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여자친구 민지가 희주를 탐탁지 않아 한다는 것이다. 한때는 절친이었지만, 한부모 가정이 된 희주가 민지에 대해 거짓 험담을 퍼뜨리면서 둘의 관계는 파탄이 났다. 자신에게 없는 것 아니, 없어진 것에 대한 질투였을까? 희주는 민지의 안나수이 손거울에까지 손을 댔었다.

결국 준호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 마지못해 희주의 거래에 응한다. 그러자 둘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퍼진다.

“강희주, 걔 예전처럼 민지 엿 먹이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홍준호, 걔가 강희주랑 잤다는 얘기도 있고.”

“걔 잘못 먹으면 소화 안 될 텐데.”

“홍준호, 졸라 불쌍하다 어떻게 하다가 그런 미친개한테 물려 가지고.”

두 사람은 무사히 수행평가를 마무리할 수 있을까? 희주는 끝까지 준호의 비밀을 지켜줄까? 준호는 남다른 취미를 들키지 않고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까? 준호와 민지의 관계는 유지될 수 있을까? 나아가 희주에 대한 준호의 편견은 없어졌을까? 준호는 편견의 피해자 처지를 이해하게 되었을까?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까닭은

전문가 소견에 따르면, 어떤 이들은 스트레스나 긴장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이성의 옷을 입는다고 한다. 그런데 꼭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또 어떤가? 남성이 치마를 입고, 머리를 기르고, 화장을 하면 어떤가? 반대로 여성이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삭발하고, 화장하지 않으면 또 어떤가? 나아가 한부모 가정이면 어떻고, 미혼모라면 어떻단 말인가?

우리는 너무 많은 고정관념 속에 살고 있다. 고정관념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 그러나 고정관념을 버리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매순간 자신의 상식을 의심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을 아닐 테니. 문제는 그 고정관념을 폭력적으로 드러낼 때가 아닐까? 소돔과 고모라는 거기 있을 듯하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이유는 그들이 손님 즉, 자신과 다른 타자를 환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대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글. 김일송(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 극단 돌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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