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적 감성의 베토벤 후기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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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욱 피아노 리사이틀

2020년은 ‘악성(樂聖)’ 베토벤(1770~1827)의 해다. 그의 탄생 250주년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가장 많이 연주되는 클래식 작곡가 중 하나지만,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베토벤 레퍼토리를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9월 10일(목)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펼쳐지는 김선욱 피아노 리사이틀 또한 베토벤 소나타(30, 31, 32번)로만 채워진다. [편집자주]

프로그램

베토벤 L.v.Beethoven
피아노 소나타 제30번 E장조 Op.109
피아노 소나타 제31번 A♭장조 Op.110
피아노 소나타 제32번 c단조 Op.111

돌아보면 김선욱의 서두름은 옳았다

열여덟의 나이로 2006년 리즈 콩쿠르에서 대회 40년 역사상 최연소이자 아시아 출신 첫 우승자로 주목받으며 본격적인 연주자 생활을 한 김선욱은 유독 베토벤 작품에 천착해왔다. 2009년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 2012~2013년 8회에 걸친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 2013년 피아노 협주곡 5번 앨범 발매, 2016년 디아벨리 변주곡 완주 등 꾸준히 베토벤을 연주하고 또 연구해왔다. 새삼스럽지만, 2012년 불과 스물넷의 나이로 베토벤 소나타 전곡에 도전할 당시 그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베토벤 사이클은, 도전하는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수밖에 없어요.
저는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는 심정으로 도전합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

 

필자 개인적으로는, 피아니스트가 품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레퍼토리의 숲을 앞에 두고 지나치게 서두르는 도전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과정을 지나고 지금까지 김선욱이 거둔 성과들을 돌아보면 그가 베토벤을 서두른 데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협연과 독주 무대, 개성이 뚜렷이 드러난 레코딩 작업과 더불어 최근 여러 페스티벌에서 보여준 실내악 주자로서의 원숙미. 악보를 분석하는 시각뿐 아니라 작곡가에 대한 총체적 관점이 구체적인 목적의식을 띄고 현명하게 넓어져 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또 다른 ‘권위’도 주어졌다. 2013년 베토벤의 고향인 독일 본에 위치한 ‘베토벤 하우스’ 멘토링 프로그램의 첫 번째 수혜자로 선정돼 베토벤 하우스의 소장품을 독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이다. 베토벤을 사랑하고 연구하는 음악가에게 주어진 이 커다란 선물이 앞으로 계속 무대를 이어갈 김선욱에게 얼마나 큰 응원이 될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처럼 꾸준한 베토벤 연구로 독보적인 베토벤 감성을 보여주고 있는 김선욱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인 올해 선택한 작품은, 베토벤 피아노 작품 중에서도 난곡으로 알려진 ‘3대 후기 피아노 소나타’ 30번, 31번, 32번이다. 베토벤 피아니즘 전체의 시금석이라 할 이 작품들은 젊은 베토벤 스페셜리스트가 준비한 야심작이 아닐 수 없다.

 

피아니스트 김선욱

광대한 벌판에 숨겨진 비밀상자를 찾다

필자가 이른바 베토벤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 5곡을 만난 건, 그래도 피아노 치는 요령이 조금은 생긴 고등학교 시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전히 철없는 나이였지만. 가만히 피아노 앞에 앉아만 있어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악보를 보면 너무나도 광대한 벌판에 하나하나 풀어 보고픈 비밀상자가 지천으로 깔려 있는 것 같았다. 다 돌아다니면서 열어보고 싶은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 건반에서 손을 떼고 숨 고르기를 해야 하는….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능력 부족으로 늘 버겁게 느껴지는 곡이라고 하겠다.

시험을 위해, 콩쿠르를 위해 이리저리 들었던 공부 겸 감상이 진지하고 여유롭게 이루어졌을 리는 없지만, 참으로 난해한 이 곡들을 음반으로 처음 접했던 것도 이 즈음이다. 당시의 스타는 단연 마우리치오 폴리니(1942~ )와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1937~ )였다. 두 대가의 연주는 지금 들어도 극명한 사실성과 탁월한 상상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거대한 교향악을 연상하게 만드는 아슈케나지의 큰 그림은 다섯 소나타 중 어느 곡이나 농후한 낭만성의 매력적인 외피를 자랑한다. 빛나는 음색과 깔끔한 아고긱으로 먼지 하나 찾아낼 수 없는 완벽함의 폴리니는 시크함 그 자체였다.

대학생이 된 후 접한 루돌프 제르킨(1903~1991)의 라이브 영상은 작품이 지닌 관념적이고 묵시적인 메시지를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르도록 만들어 준 고마운 자료였다. 손은 젊은 시절보다 어눌해졌으나 그가 추구하는 베토벤의 세계는 당당하고 찬란했다. 적확한 프레이징과 지적으로 조절된 다이내믹은 자칫 노년의 해석이 만들어낼 수 있는 지루한 경험치의 나열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가의 여유는 작품을 끝내고 난 후 진정하게 느껴지는 법, 마지막 세 곡인 30, 31, 32번 소나타를 내리닫이로 연주한 제르킨이 우리에게 보여준 뒷맛은 ‘흐뭇함’이었다.

제르킨과 사제지간이라는 것을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인 이경숙(1944~ ). 그가 연주하는 베토벤은 스승 제르킨의 스타일과 다른 듯 닮아있다. 제르킨과 비슷한 시기인 1980년대 후반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를 시도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경숙은, 단단한 질감의 터치와 자연스럽게 형성된 스케일 위에서 이루어지는 절묘한 연출로 한결같은 신뢰감을 주었다. 수많은 연주 가운데 2008년 무대에 올렸던 마지막 소나타 세 곡의 연주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커다란 굴곡이 느껴지는 드라마의 진행, 그 안에서 풍기는 긍정적인 에너지와 건강미는 바람직한 베토벤의 전형을 제시하고 있었다.

최근 독주 무대를 만나기 쉽지 않아 더욱 반가운 피아니스트 김대진(1962~ )의 2018년 베토벤 독주회 역시 후기 소나타 세 곡으로 꾸며졌다. 어떤 곡이든 지적인 다듬새가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김대진의 스타일은 베토벤에서도 매끈한 모양새로 적용되지만, 그 안에 작품이 지닌 고유의 기질이 과장 없이 드러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외유내강이 느껴지는 타건으로 수놓아지는 당당한 음향은 남성적인 매력과 우아함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었다. 악장 간의 균형감각과 파우제(휴식)의 세심한 조절에서 김대진다운 철두철미함이 드러나는 호연이기도 했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인 올해 김선욱이 선택한 작품은, 베토벤 피아노 작품 중에서도 난곡으로 알려진 ‘3대 후기 피아노 소나타’ 30번, 31번, 32번이다.

올해, 독보적인 베토벤 감성을 기억하라

피아노 음악을 사랑하는 애호가들이라면 연주 스타일과 베토벤에 대한 존경까지 스승 김대진을 빼닮은 김선욱의 새로운 행보와 무대에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수많은 선배들이 영광의 길을 닦아 온 바로 이 작품들을 김선욱은 9월, 고양아람누리에서 연주한다. 오랫동안 베토벤 연구에 몰두해온 김선욱이기에, 매해 무르익어가는 그의 독보적인 베토벤 감성이 더욱 기대되는 공연이다.

전 세계 수많은 연주자들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해오고 있지만, 관객들은 늘 기대를 안고 극장에 모여든다. 그건 피아니스트마다, (같은 피아니스트라 할지라도) 무대마다 내놓는 여러 다른 해석들이 짜릿하기 때문 아닐까. 베토벤 탄생 250주년인 올해, 전 세계의 음악가들은 더욱 자주 베토벤을 연주할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도약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자신의 베토벤 여정 중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또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청중들에게도 2020년은 매우 특별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다채로운 베토벤 프로그램 가운데 젊은 거장 김선욱의 무대는 올해의 콘서트 가운데 단연 하이라이트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음악칼럼니스트)
사진제공. 빈체로

고양문화재단에서 알려드립니다

이 포스트에 소개된 프로그램 가운데 일부 혹은 전부는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 (포스트 제작 당시와 달리) 일정이 변경되었을 수 있으며, 추후에도 진행 여부 및 일정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이 점 널리 양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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