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과 억압이 만들어낸 시대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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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고골의 <검찰관>과 황제 니콜라이 1세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즉위를 앞둔 1825년 12월 14일,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광장. 일군의 러시아 정예 장교들은 폭압적인 전제정치를 철폐하고 근대적 사회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며 무장 봉기를 시도한다. 하지만, 반란은 하루 만에 진압되며 실패로 끝나고 왕위에 오른 니콜라이 1세는 반란 세력을 억누르고 황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공포정치를 펼친다. 당시 활발히 활동했던 작가 니콜라이 고골은 희곡 <검찰관>을 통해 검열과 억압이 만들어낸 시대의 풍경을 그리며 당대 러시아의 부패한 관료사회와 그 폐단을 신랄하게 고발, 풍자하고 있다.

“우리 마을에 검찰관이 왔다!”

니콜라이 고골(Nikolai Gogol, 1809~1852)의 희극 <검찰관>은 어느 작은 마을에 정부에서 보낸 익명의 검찰관이 도착할 거라는 소식이 들리면서 시작된다. 시장을 비롯해 판사, 병원장, 경찰서장 등 마을의 지도부는 당혹을 감추지 못한 채, 머리를 맞대고 비상 대책 회의를 연다. 그러나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던 그때, 마을의 한 여관에 얼마 전부터 돈을 내지 않고 무전취식 중인 번듯한 청년이 있다는 소문이 들리고, 시장 이하 마을 관리들은 그 사람이야말로 검찰관이라고 확신한 뒤 그를 찾아 간다.

흘레스타코프란 이름의 이 청년은 사실 허우대만 멀쩡할 뿐, 아무 볼품없는 말단 관리에 한심한 인생을 사는 인물이다. 그나마 있는 돈까지 도박으로 다 날려 버린 바람에 여관에서 이제나저제나 하며 끙끙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을 관리들은 흘레스타코프가 검찰관이라 철썩 같이 믿고는 극진하게 대우하며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아양을 떨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던 흘레스타코프도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는 오히려 호의를 이용해 돈을 뜯어내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다가 재빨리 도망쳐 버린다.

성대한 환송회를 하고 흘레스타코프가 떠난 뒤, 마을 사람들은 그가 남긴 편지를 통해 그제야 사기꾼에게 홀라당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진짜’ 검찰관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가 돌처럼 굳어 버린 상태에서 막이 내린다.

흘레스타코프         (으스댄다) 당신이 부하들을 모두 이리로 데려온다 해도 난 가지 않겠어요! … 당신이 뭐요, 당신이 뭐냔 말이오?

시장         (자세를 바로잡고 온 몸을 떨면서) 용서하십시오, 살려 주세요! 저에겐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 불행한 인간으로 만들지 말아 주십쇼.

흘레스타코프         아니 안돼요! 설마,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 내가 도대체 뭘 어쨌다는 겁니까? 당신에게 처자식이 있다고 해서 내가 감옥에 가야 한다고? 그것 잘 됐네!

시장          (벌벌 떨면서) 경험이 없어서, 정말로 경험이 없어섭니다. 사실은… 살림이 넉넉하지 못해서… 제발 관대하게 생각해 주십시오. 정부에서 주는 봉급으론 차와 설탕 값도 모자랍니다. 제가 설사 어떤 뇌물을 받았다 해도 지극히 하찮은 것들뿐입니다…

– <검찰관> 중, 니콜라이 고골 작, 조주관 역, 민음사, 2014년

진실마저 가려 버린 ‘공포’

사실 흘레스타코프는 처음부터 마을 사람들을 속일 생각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돈을 내지 않은 자신을 잡아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의 말과 행동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면 단번에 그가 천하의 비렁뱅이에 사기꾼, 바람둥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그의 사기 행각을 눈치 채지 못한 채, 그가 정부에서 파견된 검찰관이라는 데 추호의 의문도 갖지 않는다. 대체 왜, 이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흘레스타코프 같은 한심한 인간을 똑바로 보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공포’에 있다. 검찰관이 마을에 온다는 소식에 경악하는 첫 장면부터, 흘레스타코프가 떠난 뒤 진짜 검찰관이 도착했단 말을 듣고 모두가 굳어 버리는 마지막 장면까지 <검찰관>의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감정은 바로 공포이며, 등장인물들의 반응 역시 대부분 공포로부터 비롯된다.

이는 흘레스타코프와 시장이 처음 대면하는 장면에서 가장 도드라진다. 시장 일행이 자신을 잡아가기 위해 찾아왔다고 생각한 홀레스타코프는 될 대로 되라는 마음에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고 되레 큰 소리를 친다. 하지만, 이미 겁에 질린 시장은 그의 말을 듣지도 않은 채, 자기 변명을 둘러대기 바쁘다. 시장과 흘레스타코프는 모두 자기 죄를 의식하고 있고, 공통적으로 상대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있다. 바로 이 공포 때문에 두 사람은 진실을 보지 못한다.

일러스트레이션·정유나

부패한 관료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

뿐만 아니다. 모든 사건의 단초가 된 1막 1장, 익명의 검찰관이 온다는 소식에 시장을 비롯한 마을 관리들은 “검찰관이 왜?”, “검찰관이 왜!” 하고 부르짖으며 충격과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이들의 과잉된 흥분과 절망적인 반응은 일단 그들의 죄의식으로부터 비롯되는데, 사실 이 마을은 뇌물과 부정부패, 무능과 태만 등 온갖 관료사회의 폐단으로 가득 차 있다. 중요한 건 스스로 이미 그것을 알고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자신들의 부패한 상황과 추악한 행태를 인지하고 있기에, 그들은 검찰관이 도착한다는 말만 들어도 부들부들 떨 만큼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이들이 흘레스타코프를 검찰관으로 오인하게 되는 이유 역시 이들의 부패함과 관련이 있다. 왜 그들은 ‘여관에 돈을 내지 않고 머무르는 사람이 있다’는 정보에 바로 그를 검찰관이라 믿게 되었을까? 공적인 일을 하는 중임에도 역설적으로 ‘돈을 내지 않고 먹고 지내는 것’이 바로 관리라는 증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자체가 이들이 얼마나 정부와 관리를 불신하는지, 또한 당대의 관리들이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 이처럼 고골의 <검찰관>은 우스꽝스러운 인물 군상을 통해 당대 러시아의 부패한 관료사회와 그 폐단을 신랄하게 고발, 풍자하고 있는 작품이다.

‘데카브리스트’들이 남긴 유산

한편, <검찰관>의 작품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공포’는 단순히 마을 관리들의 죄의식에서 나온 심리일 뿐만 아니라, 당시 러시아 사회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정서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골이 작가로서 활발히 활동했던 시기의 러시아 황제는 니콜라이 1세였다. 니콜라이 1세는 즉위 초기부터 엄격한 통치로 악명이 높았는데, 이는 ‘데카브리스트의 반란’(The Decembrist Revolt)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깊다. 니콜라이 1세가 즉위를 앞두고 있던 1825년 12월 14일,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광장에서 일군의 러시아 정예 장교들이 무장 봉기를 시도한 것이다.

당시 유럽을 휩쓴 자유주의와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이들 엘리트 장교들은 전근대적인 전제정치와 농노제를 폐지하고, 입헌군주 체제를 수립해 근대적 사회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며 정부에 대항했다. 하지만 우왕좌왕하는 사이, 황실 근위대가 대포와 총을 발포하면서 곧바로 진압되어 하루 만에 실패로 끝났다. 결국 주동자 5명은 처형되고, 반란에 참여한 125명의 장교들은 대부분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졌다. 12월에 일어났다 해서 이들은 12월의 사람, 곧 ‘데카브리스트’라 불렸고, 이들의 봉기는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이라 이름 붙여졌다.

비록 짧게 실패로 끝나 버렸지만, 이들의 이상과 신념은 이후 러시아 지식인들에게 깊이, 그리고 오래도록 각인되었다. 사실 이들 데카브리스트는 당시 러시아 사회에서도 특권 계급에 속하는 엘리트 계층이었다. 좋은 집안과 높은 교육 수준을 갖춘 이들이 고위급 장교로서의 안락한 삶과 미래가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통 받는 농노들의 편에 서서 폭압적인 전제정의 철폐를 원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은 많은 러시아인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특히 당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로 하여금 조국과 민족을 향한 자신의 의무를 깨닫게 하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 이후 이들 데카브리스트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귀감이 되어 19세기 러시아 사회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데카브리스트 기념비에는 1826년 7월에 처형된 5명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출처 : WIKIMEDIA COMMONS)

황제 니콜라이 1세의 탄압과 검열

데카브리스트의 난을 진압하면서 황위에 오른 니콜라이 1세는 이러한 반란 세력을 억누르고 황실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 자신의 신성한 의무라 생각하고, 즉위 초기부터 반란 분자들의 뿌리를 뽑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반란과 혁명적 행위를 막기 위해 우선 그 기반이 되는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를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며 엄격한 검열제도를 도입, 당대 모든 작가들에 대한 사상 검증과 감시를 진행했다.

특히 유명한 것이 ‘제3부’라 불린 황제의 비밀경찰 조직인데, 헌병대와 비밀정보원으로 이루어진 이 조직원들은 러시아 전역에 파견되었다. 그들은 주로 반정부적 사상을 지닌 모임이나 조직을 감시했고, 지방의 동향을 살폈으며, 각종 문서들을 읽고 검열했다. 니콜라이 1세는 이들의 보고서를 상세히 읽고 그에 대한 지시를 직접 내릴 만큼, 이 조직을 중시하고 또 신뢰했다고 한다.

이렇듯 황제의 특명을 받은 비밀조직원이 언제, 어디를 방문하고 또 조사할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언제나 입조심, 몸조심을 해야 했다. <검찰관>에서 마을 관리들이 가짜 검찰관인 흘레스타코프에게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을 느끼며 바짝 엎드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분위기와도 연관이 있다. 황제의 이름으로 파견된 검찰관은 그 이름만으로도 공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1850년대에 그려진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1세의 초상화
(출처 : WIKIMEDIA COMMONS)

악행을 비추고 양심을 일깨우는 거울

희곡 <검찰관>의 첫머리에는 “제 낯짝 비뚤어진 줄 모르고, 거울만 탓하다”라는, 작가 고골의 제사(題詞)가 실려 있다. 속담 혹은 우화처럼 들리는 이 문장은 결국 작품에서 고골이 궁극적으로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일단 이 작품에서 표면적으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흘레스타코프라는 사기꾼의 악행이다. 방탕하고 게으른 데다 이 여자 저 여자 가리지 않고 집적대고, 마을 사람들을 속여 돈까지 뜯어 달아나는 그의 행동은 모두에게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 작가 고골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이 사기꾼의 예상치 않은 방문을 통해 드러나는 마을 사람들, 즉 평소에는 아무 일 없이 지내오던 평범한 사람들의 위선과 악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흘레스타코프가 자신들을 속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온갖 욕과 저주를 퍼부으며 그의 악행을 비난하지만, 실제로 그들 자신의 위선과 타락에 대해서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제 낯짝 비뚤어진 줄 모르고, 거울만 탓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 속 ‘검찰관’은 단순히 정부의 관리를 지칭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추악한 실체를 비추고, 이를 바라보는 우리 관객들의 양심을 일깨우는 하나의 ‘거울’ 같은 장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김주연(연극 칼럼니스트)

필자 김주연은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연극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평론가와 드라마투르그, 연극 연구자로 활동하며 강단에 서고 있다.
‘연극으로 떠나는 역사 산책’은 세계 연극사에서 손꼽히는 희곡들을 통해 역사적 사실과 그 사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즉, 시대와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해석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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