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많던 ‘상자’는 어쩌다 ‘낙타’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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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낙타상자>

중국 근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라오서(老舍)의 소설 <낙타상자>가 11월 13일(금)부터 15일(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연극으로 공연된다. 꿈 많고 선량한 한 청년에게 펼쳐지는 1930년대 중국의 가혹한 현실, 그리고 무시당하고 이용당하며 끝없이 추락하는 청년의 삶. 연극 <낙타상자>는 그 절망적이고 부조리한 삶에서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소설 <낙타상자>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이는 상자(祥子)이지 낙타가 아니다. 낙타는 단지 그의 별명일 뿐이다. 그러니 먼저 상자에 대해 이야기한 뒤, 내친 김에 낙타와 상자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지나가면 그만일 것이다.”

– <낙타상자> 중, 라오서 작, 오수경 역, 연극과인간, 2019년

<낙타상자>라는 기묘한 제목은 사람들로 하여금 “뭐지, 낙타 모양의 상자인가? 아니면 낙타가 상자 속에 들어갔나?” 하는 호기심과 의문을 자아내지만, 작가는 첫 문장부터 이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 바로 상자(祥子)이고 낙타는 그의 별명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소설의 첫 구절이 이렇듯 “상자는 낙타가 아니다”로 시작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상자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야, 너 말이야, 이 낙타! ×같은 자식!” 하고 욕을 먹으며 스스로 낙타처럼 변해간다는 사실이다. 즉, ‘상자는 낙타가 아니다’로 시작해서 ‘상자는 낙타다’로 끝나는 변화 과정이 이 작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이 인간임을 잊고 낙타와 같은 동물적 존재로 변해가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날카롭고 세밀한 시선으로 따라가는 작품이다.

상서롭고 복되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상자(祥子)는 이름과 달리 비참하고 억울한 일만 끊임없이 겪게 된다

끝없는 사막처럼 펼쳐지는 불행과 비극

상자는 북평(지금의 북경)의 젊은 인력거꾼이다. 거칠고 더럽기로 소문난 인력거꾼 사회에서도 상자는 체면을 소중히 여기고, 예의 바르고, 부지런한 일꾼으로 손꼽히며 ‘나의 인력거’를 마련하겠다는 건실한 꿈을 향해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청년이다.

그렇게 몇 년을 안 먹고 안 입으면서 열심히 돈을 모아 간신히 꿈을 이룬 것도 잠시, 전쟁 통에 군벌에게 소중한 인력거를 빼앗기고, 부패한 형사에게 걸려 그동안 모은 돈을 갈취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인력거 회사 주인 딸에게 속아 결혼한 뒤 아내와 아이를 동시에 잃고, 마지막으로 인생의 의미를 걸고자 했던 여인 복자마저 사창가에 팔려가 죽는 등 상자의 불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끝없이 밀려오는 삶의 불행과 비극, 그리고 ‘갑질’하는 사람만 바뀔 뿐 끊임없이 착취하고 억압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상자는 점차 자신의 꿈과 노동자로서의 자긍심,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도리까지 잃고, 결국에는 아무 생각도 의지도 없이 하루 벌어 하루 연명하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낙타상자>란 제목은 새삼 흥미롭게 다가오는데, 일단 상자(祥子)라는 이름 자체가 상당히 반어적이다. 상자의 ‘상’은 상서롭고 복되다는 의미의 길할 ‘상(祥)’자를 쓰고 있다. 하지만 상자의 인생은 길하고 복된 것과는 인연이 없는, 아니 오히려 그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비참하고 억울한 일들로 점철되어 있다.

굽은 등에 오르는 삶의 무게

전쟁 통에 인력거를 잃은 대신 얼떨결에 낙타 세 마리를 끌고 돌아온 덕분에 ‘낙타상자’라는 별명을 얻었던 시절, 상자는 돈을 조금 덜 받더라도 불쌍한 낙타를 고깃집에 파는 대신 죽이지 않고 아껴줄 사람에게 팔기로 결심하는 인정 많은 젊은이였다.

그러나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끝없는 사막을 걸어가야 하는 낙타처럼, 인생의 무게와 고통을 짊어지고 힘겨운 삶의 사막을 걸어가던 중에 상자는 자신의 인간다움을 모두 잃은 채, 그저 음식물 부스러기나 담배꽁초를 찾아다니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만다.

극공작소 마방진의 연극 <낙타상자>는 인간에서 낙타로 변해가는 상자의 곡절 많은 인생을 배우의 ‘몸’으로 선명하게 구현해낸다.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상갓집 행렬의 만장을 든 채 걸어가는 상자의 등과 허리가 천천히 고꾸라지는 것이다. 이는 마치 살아있는 상자의 등과 허리가 천천히 굽어 낙타로 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극공작소 마방진의 고선웅 연출은 특유의 속도감 있는 대사와 장면 진행, 비극 속에서도 웃음을 놓치지 않는 연출 감각으로 방대한 원작의 서사와 등장인물들을 간결하고 리드미컬하게 직조한다

가볍고 경쾌한 무대언어의 역설

“인력거꾼은 바람이라네. 바람을 닮아서 바람처럼 된다네.”
“인력거가 멋지니 내 마음도 흐뭇해라.”
“상자야, 죽고 나면 흙 한 줌이야. 그게 다야.”

연극 <낙타상자>는 라오서의 원작소설을 현대 중국 경극으로 각색한 중원눙의 대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때문에 노래하듯 시조를 읊듯, 대구와 운율을 살린 대사들로 이루어졌다.

여기에 극공작소 마방진의 고선웅 연출 특유의 빠르고 속도감 있는 대사 및 장면 진행, 비극적인 이야기임에도 군데군데 웃음 포인트를 놓치지 않는 연출 감각이 더해져, 원작의 방대한 서사와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사연이 간결하고 리드미컬하게 직조되었다. 비극 속에 웃음을, 희극 속에 눈물을 담아내며 모순적인 인생의 결을 무대 위에 생생하게 담아내는 연출가 고선웅의 장점이 원작과도 잘 어우러져 미묘한 여운을 남긴다.

특히 고선웅 연출은 극 중 상자가 자신 있게 외치는 대사인 “인력거만 진짜야, 나머지는 다 가짜야”, “입에 들어가는 것만 진짜야, 나머지는 다 가짜야”, “오직 죽음만이 진짜야. 나머지는 다 가짜야”의 변화 과정을 여러 번 반복, 강조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인간 ‘상자’가 어떻게 삶의 희망과 꿈을 잃은 채 짐승 같은 삶을 살게 되고, 종국에는 그마저도 느끼지 못한 채 죽음을 향해가는 존재로 몰락하고 말았는지를 은유적이고 압축적으로 그려낸다.

이번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 공연에서는 서창호, 박상종, 김정호, 이정훈, 홍의준, 김영노, 김윤아, 박주연, 원경식, 임진구, 홍자경, 최하윤 등 초연 멤버들과 새롭게 합류한 배우들이 어우러져 극공작소 마방진만의 에너지 넘치는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글. 김주연(연극평론가)
사진제공. 극공작소 마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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