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높은 곳에서 가능성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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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퍼포먼스 그룹 ‘프로젝트 날다’ 대표 김경록 인터뷰

공중 퍼포먼스 인프라가 빈약한 국내에서 무려 10년을 우직하게 버텨온 ‘프로젝트 날다’가 올해 신작 <SKY밴드>로 관객들을 만났다. ‘모빌 트러스 모듈’을 활용한 음악 밴드의 공중 퍼포먼스인 <SKY밴드>를 통해 코로나19로 지쳐 있는 시민들을 위로한 것이다. ‘프로젝트 날다’의 김경록 대표를 만나 <SKY밴드> 이야기,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현장 예술가로서의 고민을 들어보았다. 

다채로운 예술 콘텐츠를 위한 기술의 안전성

최근 거리예술축제에서 ‘공중 퍼포먼스’가 비중 있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공중 퍼포먼스의 소개를 부탁한다.
‘에어리얼 퍼포먼스’(Aerial Performance)라고도 하는데, 공중 공간을 무대로 하는 여러 장르를 폭넓게 아우른다. 건물 외벽 공간을 수직으로 디자인하여 무대로 활용하는 버티컬 퍼포먼스, 버티컬 댄스, 크레인을 사용해 공중에서 기예를 펼치는 공중서커스 등이 공중 퍼포먼스에 들어간다.

공중 퍼포먼스 단체마다 추구하는 방향, 집중하는 형식이 조금씩 다를 것 같은데, ‘프로젝트 날다’만의 강점이 있다면?
우리는 대형 오브제를 활용한 공중 퍼포먼스를 주로 해왔다. 공중에서 발생하는 여러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집요하게 연구하는 동안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축적된 것 같다. 지금은 공중에서 활용할 수 있는 공연 기술을 개발해 ‘연극·음악·무용·서커스·영상 등의 예술 장르’나 ‘비예술 장르’를 융합하여 다채로운 예술 콘텐츠를 선보이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하는 단체는 국내에서 ‘프로젝트 날다’가 유일하다.

공연 공간으로서 공중에는 어떤 매력이 있나?
공중 퍼포먼스를 하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그게 정말 가능해?”였다. 무조건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는 경우도 많이 봤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하늘, 공중 공간도 ‘거리’의 한 부분이다. 남들이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더 도전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공중은 인간의 상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크레인의 이동 반경이 제한적이고 기계가 일정한 틀 안에서만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 한계를 기술로 하나씩 극복해가는 과정이 하나의 도전처럼 다가와 굉장히 재밌다.

올해로 창단 10주년이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현장의 기술 전문 인력이 너무나 부족하다. 해외에서는 크레인이 들어가는 공연에 리거(Rigger) 자격증이 없으면 크레인 사용이 불가능하다. 법적으로 그렇다. 반면, 우리나라는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게 관행이다. 공연장의 무대감독·기술감독이 조명봉(Light Batten, 조명을 연결하는 봉)의 적정 하중에 대한 교육을 받는 것처럼, 리거도 전문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
또 공중 퍼포먼스에 대한 경험 및 지식이 거의 없는 행정 공무원들이나 시설 담당자들과 소통하는 일도 굉장히 어렵다. 공연이 아예 취소된 적도 여러 번 있다. 적어도 10년간 공중에서 공연을 해온 만큼 우리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판단하면 좋겠는데, 소통 자체를 거부하고 무조건 “위험해, 빼” 이러는 때가 있다. 물론, 많은 관계자와 기획자들이 중간에서 도움을 주고 있지만.

‘리거’는 어떤 일을 하나?
정확한 용어는 리깅 엔지니어(Rigging Engineer)다. 예를 들면 <SKY밴드>의 경우, 크레인에 연결된 트러스 모듈에 조명·영상·불꽃장치와 특수효과·연주자 등을 태우고 공중으로 올라간다. 이때 크레인은 몇 톤짜리를 사용하는 게 좋은지, 크레인이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는 어느 정도인지, 크레인에 거는 와이어의 종류와 굵기는 어떠해야 하는지, 공연 공간에서 크레인이 어떤 각도로 이동해야 안전한지 등을 수학적으로 계산하고 기술적으로 고려해서 리깅(rigging) 작업 플랜을 세우게 된다.

공연의 안전을 위해 또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
리거 자격증을 가진 해외 전문가 세 명을 초청해 자문을 받았다. 그래서 크레인을 사용하는 공연에서 오브제를 연결할 때 고려해야 하는 중요 포인트에 관한 매뉴얼을 만들고, 그것을 내부 기술팀과 퍼포머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안전한 환경이 만들어져야 퍼포머들이 다양한 고난이도의 동작과 기술을 마음껏 선보일 수 있다. 때문에, 리깅 관련 지식은 새로운 형식의 작품 개발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작년 11월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미국에서 열린 기술 박람회도 다녀왔다. 지금 기술이 어느 정도 발전했느냐 하면, 물체에 하중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를 부착한 후 들어 올리면 하중을 계산한 수치들이 실시간으로 태블릿 PC에 전달된다.
그곳에서 「퍼포머를 위한 리깅 수업」도 듣고 왔다. 퍼포머들도 로프(rope, 줄)나 트라페즈(trapeze, 공중그네) 같은 다양한 오브제를 가지고 동작할 때 움직임의 강도, 바람의 세기와 같은 요인에 따라 하중이 달라지는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날다 <SKY밴드> 공연 장면. 보컬, 키보드, 기타, 드럼으로 구성된 4인조 밴드가 공중에서 펼치는 콘서트다

공중 밴드의 라이브 연주

올해 신작 <SKY밴드>를 선보였다. 어떤 작품인가?
작년에 우리 단체의 공연 기술 개발 프로젝트 ‘모빌 트러스 모듈’(mobile truss module)이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기술연구개발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다. 이것을 어떤 예술 콘텐츠에 적용하면 좋을지 생각해봤는데, 모빌 트러스가 한 곳에 머물러 있는 형태니까 운동성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상하로 움직이고 돌리는 정도로는 몇 번만 반복하면 지루해질 테니, 공중에서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는 형태를 생각하게 됐다. 음악은 누구나 즐길 수 있고, 클래식·재즈·국악 등 다양한 장르 변화도 줄 수 있으니까.

‘모빌 트러스 모듈’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여러 형태의 트러스 모듈을 개발했는데 모빌 형태로 묶어서 활용할 수도 있고, 각각 분리해서 활용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모빌 트러스 모듈에 자체 개발한 무선 배터리 팩을 장착한 것이다. 무선으로 전기를 공급한다는 얘기다.
지금까지는 트러스 모듈을 공중에 띄우려면 최대 5kW 용량의 발전기도 함께 올려야 했다. 해외 공연 팀들은 지금도 거의 그렇게 한다. 그런데 발전기는 석유 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늘 위험하다. 그리고 전깃줄이 바닥부터 올라가다 보면 트러스가 움직이면서 전깃줄이 건물이나 구조물에 걸릴 수도 있고, 퍼포머들이 움직임을 하다가 전깃줄에 걸릴 수 있다. 그런 위험 요소들을 해결하기 위해 무선 배터리 팩을 개발하게 됐다.
재밌는 건, 배터리 팩을 트러스 모듈에 장착하니 공중에서 야간에 특화된 영상 연출이 가능해졌다. 무선으로 작동되는 조명 트러스 모듈이 함께 올라간다.

제작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기술적 문제들이 몇 가지 있었지만, 코로나19로 공연이 계속 미뤄지면서 리허설을 여러 번 하는 동안 해소되었다. 우리 팀은 작년 12월부터 7개월 동안 거의 일을 못했다. 대출을 받아가며 겨우 버텼는데, 거리 두기 단계별로 공연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방안을 국가에서 좀 마련해주면 좋겠다.

김경록 대표는 인터뷰 내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담담하게 응했지만,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선한 웃음이 번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장에서 답을 찾는 사람들

7월 문화비축기지와 8월 의정부음악극축제에서 <SKY밴드>를 공연했다. 코로나19로 오랜만에 관객을 만난 것인데….
문화비축기지 공연은 비대면 방식이었다. 공연하는 동안 영상을 촬영하고 그것을 편집해 온라인으로 송출하기 위해 모듈 세 개를 만들었다. <SKY밴드> 모빌이 문화비축기지에 배치되면, 모빌에 부착된 QR코드를 통해 공연 영상이 연결되도록 할 예정이다.
의정부음악극축제 공연은 사전 예약제였다. 철저하게 방역 지침을 준수하면서 거리 두기로 공연을 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동이 전파되면서 감동도 배가되고 반응이 즉각적이었는데, 이번에는 소수의 관객들이 거리 두기까지 한 상태라 박수나 함성이 확실히 덜했다.
그래도 눈빛과 마음으로 응원하는 에너지는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고, 퍼포머 입장에서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힘든 상황에서도 가까스로 축제가 열려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던 것 같다.

현실적 제약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프로젝트 날다는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가?
공간을 만들고 싶다. 지금은 문래예술공장 외벽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데, 공공기관 건물이라 거리 두기가 강화되면 못 쓸 수도 있다. 그래서 아직은 몇 가지 풀어야 할 문제들이 있지만, 제주도에 ‘프로젝트 날다’ 센터를 지을 계획이다. 물론 투자(대출)를 좀 많이 받아야 한다. (웃음) 연습도 마음껏 할 수 있고 공중 공연도 할 수 있는 10m 높이의 공간을 만들어서 전문 인력도 양성하고, 다양한 작품도 만들고. 그렇게 재미나게 사는 것이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다.

글. 고세진(독립기획자‧거리예술기록작가)
사진. 노승환

‘프로젝트 날다’ 김경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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