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은 트로트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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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없는 인기, 그 인기는?

요즘 어디를 가나 온통 트로트 얘기로 넘쳐난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방송에서 보기 힘들었던 트로트가 이제 TV를 틀기만 하면 나온다.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 등장한 트로트 스타들의 인기는 아이돌을 능가해 얼굴만 비춰도 시청률 10~20%는 보장받을 정도다. 포맷 상으로는 트로트와 전혀 관련 없는 방송(‘뭉쳐야 산다’, ‘미운 우리 새끼’, ‘끼리끼리’, ‘전지적 참견 시점’, ‘슈퍼맨이 돌아왔다’, ‘아는 형님’ 등)에서도 이들을 볼 수 있는 까닭이다. 여기에다 이들 덕분에 한물갔던(?) 기존 트로트 가수들도 여기 저기 불려 다니며 ‘레전드’ 대접을 받는다. 바야흐로 트로트 전성시대다. 

#트로트 #양식 #폭스트로트 #뽕짝

트로트는 “‘라-시-도-미-파’의 단조 5음계를 사용하거나, ‘도-레-미-솔-라’의 장조 5음계를 ‘라’의 비중을 높여 사용하는 독특한 음계를 지닌 노래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 대중가요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양식”(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다. 트로트가 생겨날 당시에는 특별한 양식명 없이 ‘유행가’, ‘유행소곡’ 등으로 불렸다.

트로트란 이름은 1914~17년 미국에서 생겨난 4분의 2박 계열의 댄스 리듬 ‘폭스트로트(Fox-Trot)’에서 비롯됐다. 트로트는 스탠더드 팝이 대중화된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양식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굳어지는데 한편에선 비하의 의미로 ‘뽕짝’이라 불리기도 했다.

#최초의_대중가요 #낙화유수 #황성옛터 #꺾기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요는 1929년 이정숙이 부른 「낙화유수」(현재의 「강남달」)로 동명의 영화 주제가였다. 영화는 기생을 테마로 한 것이었지만 주제가는 양반집 딸들도 즐겨 불러 젊은이들이 낮에는 「봄노래 부르자」(현재의 「봄노래」)를, 밤에는 「낙화유수」를 불렀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정숙이 가요 전문 가수가 아니었던 탓에 동요처럼 꾸밈없이 불러, 전문가들 사이에선 1932년에 이애리수가 부른 「황성의 적」(「황성옛터」의 본명)이 최초의 대중가요로 꼽히기도 한다.

이어 이태 뒤에 나온 고복수의 「타향」(현재의 「타향살이」)를 비롯해 수많은 명곡들이 쏟아져 나와 대중가요 황금기의 시작을 알렸다. 이 시기에 고복수, 이난영, 장세정, 남인수, 백년설, 김정구, 이인권 등의 가수들이 등장해 인기를 모았다.

1935년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은 트로트 가요의 정형(定型)으로 오늘날까지 국민 애창곡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이때부터 트로트는 단조 5음계를 바탕으로 주로 2박자에 특유의 ‘꺾기’ 등 꾸밈음을 지닌 노래로 정착됐고, 이 같은 음악적 관행은 1970년대까지도 어느 정도 유지됐다.

#60년대 #동백아가씨_이미자 #나훈아 #남진

트로트는 해방 직후의 혼란과 심지어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이 땅의 애환을 달래 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모든 영역에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유행이 변하듯이 대중가요도 마찬가지여서 트로트 역시 부침을 거듭해왔다. 특히 시대상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중가요의 특성을 감안하면 트로트의 성쇠는 우리의 근현대사를 비춰주는 잘 닦인 거울이라 할 수 있다.

미군의 주둔과 더불어 1950년대 후반부터 미국 대중음악의 영향을 받기 시작해 1960년대 초 새로운 미국식 대중가요인 「노란 샤쓰의 사나이」 등 스탠더드 팝 계열의 노래가 강세를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트로트는 쇠락하는 조짐을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1964년 이미자가 부른 「동백아가씨」가 연속 35주 1위를 하며 공전의 히트를 치자 트로트가 다시 가요계의 대세가 됐다.

이듬해 한일기본조약 조인으로 인해 반일 감정이 높아진 가운데 「동백아가씨」가 왜색이라는 이유로 방송금지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자는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트로트의 부활을 이끌었다. 이미자 외에 「돌아가는 삼각지」의 배호, 「바다가 육지라면」의 조미미, 「가슴 아프게」의 남진, 「사랑은 눈물의 씨앗」의 나훈아, 「물새 한 마리」의 하춘화 등도 눈부신 활약을 했다.

작곡가로는 이미자, 남진, 문주란, 하춘화, 나훈아 등을 멤버로 이른바 ‘박춘석 사단’을 만들어 활동한 박춘석과 백영호가 인기곡 제조기의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9년 연말 가수청백전에서 「커피 한 잔」 「님아」 등을 부른 펄시스터즈가 가수왕이 됨으로써 대중가요의 판세 교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외국에서 활동하던 팝 계열의 패티김과 윤복희도 귀국해 이 같은 흐름에 가세했다.

#70년대 #돌아와요_부산항에_조용필 #송대관

1970년대는 초반부터 세계적인 반전운동의 영향을 받아 대학가를 중심으로 히피로 상징되는 저항문화와 함께 포크, 록 음악이 크게 유행하면서 트로트가 위축됐다.

하지만 1975년 말 불어 닥친 대마초 파동으로 윤형주, 신중현, 이장희, 김추자 등 20여 명이 구속되고, 11명이 불구속, 10명이 훈방조치 되었다. 대부분 몇 달 뒤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났지만 일체의 방송과 무대에 ‘출연금지’ 처분이 내려졌다. 여기에 퇴폐풍조를 없앤다는 명목 아래 무려 227곡이나 ‘금지곡 딱지’를 붙여 퇴출시켰다.

이 때문에 청년문화의 첨병 노릇을 하던 포크음악과 록 밴드가 직격탄을 맞아 퇴조하고, 대신 당시 이미 한물갔었던 트로트와 스탠더드 팝 계열의 음악이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금지곡에는 이미자를 비롯해 남진, 나훈아, 하춘화 등 잘 나가던 트로트 가수들의 노래들도 포함됐으나, 대마초 사건에 연루된 가수들은 아예 가수로서의 활동을 못 하게 해 결국 ‘빈 공간’을 트로트로 채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금지곡이 너무 많아 방송사 PD들이 “틀 곡이 없다”고 푸념할 정도(1975년 12월 26일자 일간스포츠)였다. 빈자리를 흘러간(?) 노래들로 채울 수밖에 없었고, 가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등장한 것이 1975년 말에 나온 송대관의 「해뜰날」이다. 당시 상황(오일쇼크 위기이기도 했다)을 그대로 반영한 듯한 가사로 졸지에 스타가 됐고, 역시 무명이었던 조용필은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다시 발표(1차 1972년)해 무명에서 일약 스타로 점프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남진-나훈아의 라이벌 쌍두마차가 각자 ‘오빠부대’를 동원해가며 계속해 트로트를 이끌고 있던 터라 상승효과가 대단했다. 최헌, 윤수일 등 록그룹 출신가수가 록 사운드와 트로트 선율을 결합한 「앵두」 「사랑만은 않겠어요」 등 ‘록 트로트’를 선보이며 새롭게 인기몰이를 한 것도 이 때다.

#80년대이후 #고속도로여왕_주현미 #장윤정_어머나

1980년대 들어 발라드가 풍미하는 가운데에서도 방송금지가 풀린 조용필이 「창밖의 여자」「미워 미워 미워」「허공」 등을 들고 나오며 화려한 컴백을 했고, 트로트메들리 「쌍쌍파티」로 ‘고속도로 여왕’이라 불리던 주현미가 「비 내리는 영동교」를 시작으로 잇단 히트를 하면서 트로트를 이끌었다.

특히 주현미는 ‘한이 서린’ 트로트를 불렀던 이미자와는 달리 청량하고 밝은 음색과 고난도의 ‘꺾기’로 간드러진 창법을 구사함으로써 세련된 이미지를 주는 데 성공했다. 주현미뿐만 아니라 문희옥, 현철 등도 가사에서는 관행적으로 슬픔의 표현이 남아 있기는 하나 기교를 강화한 꾸밈음으로 가사를 압도해 슬픔의 감정은 드러나지 않게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미 트로트는 ‘촌스럽다’거나 ‘중년, 노년만 즐기는 장르’라고 각인돼 좀체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이 때문에 1993년 발표한 「하여가」로 폭발적 인기를 누리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돌풍 속에서 김수희가 「애모」로 인기가요 순위 1위를 차지할 때나 SM, YG, JYP 등 대형 기획사를 통해 등장한 숱한 아이돌의 바람을 헤치고 장윤정, 박상철, 박현빈 등이 「어머나」「무조건」「곤드레만드레」 등의 트로트로 2000년대 가요계에서 주목을 받을 때도, 그리고 원로가수 김연자가 EDM 트로트 「아모르 파티」로 장안의 화제가 됐을 대도 한결같이 ‘반짝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트로트_열풍_전망_1 #흥의_민족 #삶의_애환

하지만 이번 트로트 열풍은 뭔가 다르다. 중장년층은 물론 1020세대들도 트로트를 즐긴다. 트로트 하면 촌스럽다며 ‘트로트=고속도로 가요’로나 치부하던 공식이 깨진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이 상당 기간 지속되리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그 전망의 근거는 무엇일까?

우선, 트로트에 대한 수요가 늘 차고 넘친다는 점이다. 우리 민족은 자고로 노래 부르고 춤추기를 즐겨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고구려 편’에 ‘그 백성들은 노래 부르고 춤추기를 좋아해 마을마다 해가 저물고 밤이 되면 남녀가 떼 지어 노래하며 놀았다(其民喜歌舞 國中邑落 暮夜男女聚 相就歌戱)’고 돼 있을 정도다.

일본산 가라오케를 노래방 문화로 압도하고 있는 거나, 관광 철이면 히스테리에 가까울 정도로 전국을 들썩이게 하는 힘이 그 증거다. 한마디로 흥이 많다.

그런데 한편으론 역사적으로 우리만큼 전쟁을 많이 겪은 민족도 흔치 않다. 기록된 외침(外侵)만 938번이고 크고 작은 내전(內戰)까지 치면 줄잡아 2,000여 번이나 된다니…, 가깝게 6.25전쟁을 상기할 필요도 없이 민중의 가슴에 쌓인 한(恨) 또한 민족의 무의식에 각인돼 있지 않을까?

이 땅에 태어난 이들은 웃으면서도 슬프고, 울다가도 웃지 않으면 살아 버틸 수가 없었을 터. 때문에 슬프면 슬픔을 잊으려 노래를 부르고, 즐거우면 또 즐거워 노래를 불러왔다.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목도하듯이 이때 부르는 노래가 바로 트로트다. 트로트를 우리 삶의 애환(哀歡)이 담긴 노래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심지어 ‘고무신 뽕짝’이라고까지 비하되고 무시되면서도 ‘가요무대’와 ‘전국노래자랑’이 지금까지 35년, 40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야말로 트로트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큰지 잘 보여주고 있다.

#트로트_열풍_전망_2 #보는_트로트 #송가인 #톱7

이번 트로트 열풍은 TV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촉발됐고, 또 방송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가요의 특성상 가장 영향력을 갖는 게 방송, 그중에서도 특히 TV 방송의 지지 여부인데 2019년 TV조선에서 ‘내일은 미스트롯’을 방영하며 35%라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해 1등 한 송가인이 인기몰이를 한 데다, 때마침 MBC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에게 ‘유산슬’이라는 트로트가수 ‘부캐’(부캐릭터)를 부여하며 트로트 붐을 일으켰다.

이어 올해 1월부터 11부작으로 방송된 ‘미스터트롯’이 전작을 넘어서는 공전의 인기몰이를 하자 지상파 방송들까지 합세해 분위기를 한껏 달구고 있다. SBS의 ‘트롯신이 떴다’, MBC ‘나는 트로트 가수다’, ‘최애 엔터테인먼트’, ‘트로트의 민족’, KBS ‘트롯 전국체전’ 등이 이미 시작했거나 방송 예정이다.

여기에다 TV조선이 ‘미스터트롯 톱7’을 앞세워 ‘사랑의 콜센타’, ‘뽕숭아학당’으로 열기를 이어 가는 데 이어 ‘미스트롯 시즌2’를 준비 중이고, MBN도 ‘보이스트롯’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경연 프로그램의 경우 억대 상금에다 음원 발표와 전국 콘서트 지원 등을 내걸고 있어 일반인은 물론 기존 트로트 가수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가수, 스포츠 스타, 개그맨, 배우 등 여러 분야의 셀럽들이 지원해 트로트 확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미스터트롯 톱7’의 경우에서 보듯이 방송사가 나서서 홍보는 물론 전문적으로 프로듀싱하면서 단순히 노래만이 아닌 ‘보는 트로트’를 세련되게 구사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동안 트로트를 외면했던 10~20대까지 전 연령층에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방송이 트로트 붐을 촉발시켰고, 그로 인한 열풍이 다시 방송을 끌어들이면서 트로트의 ‘선순환 확장’이 지속되고 있는 형국이다.

#트로트_열풍_전망_3 #세계화_가능성 #트로트의_변신

트로트는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까지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2017 음악산업백서》에 따르면 국내 음악산업 시장은 5조 원 규모로 이 중 트로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인 5,000억 원밖에 안 된다. 이는 트로트가 장르별 분류에서 100위권 안에 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온 수치로, 노력 정도에 따라 역으로 그만큼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현재 매년 국내에서 열리는 지자체 축제만 어림잡아 800회가 넘고 기업이나 학교 등 행사까지 합치면 트로트 가수들이 활동할 공간과 기회는 결코 작지 않다. 거기에다 유튜브나 음원 시장도 열려 있다. 오늘날의 트로트는 더 이상 눈물만 쥐어짜는 그런 노래가 아니다.

사랑과 이별,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과 애수가 담긴 내용이더라도 대체로 노래 분위기는 아주 신나며, 음악적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트로트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변신을 하고 있다. 록 트로트, 발라드 트로트, 댄스 트로트 등등.

예를 들어 장윤정의 경우 「어머나」 「짠짜라」는 음악적으로도 트로트 색깔이 강한 ‘세미 트로트’지만, 「장윤정 트위스트」 「올레」 같은 곡들은 창법만 빼고 보면 일반적인 댄스, 「어부바」 「사랑아」 같은 곡은 ‘트랜스’와 가깝다. 이는 K-POP과 마찬가지로 해외에서도 먹힐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TV방송의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마다 어린이부터 80대 배우까지 수만 명씩 몰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글. 이만훈(前 중앙일보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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