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주는 바람둥이의 애정 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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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비밀과 클래식 음악 ④
그림과 오페라로 만나는 제우스의 여성 편력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신 제우스는 천하의 바람둥이로 유명하다. 여신과 요정은 물론 인간들과도 거침없이 사랑을 나누며, 아내 헤라를 질투의 화신으로 만들었다. 자신이 사랑하고픈 여인을 만나기 위해 황소나 백조로 변신하기도 하고, 황금비로 스며들기도 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그의 애정 행각은 꽤나 흥미롭다.

황금비로 스며들어 쟁취한 사랑

세기 전환기 오스트리아 빈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다나에」(1907)는 가장 선정적인 그림 중 하나다. 한 여인이 좁고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는데, 고귀한 신분을 상징하는 보라색 베일에 휘감겨 있다. 밑에 깔린 천과 베일 탓에 첫눈에 인식하기 힘들 수 있지만 여인은 완전히 누드다.

풍만한 허벅지와 가느다란 종아리만으로도 아주 육감적인 데다가, 민망스럽게도 사타구니 사이로 마치 금화가 쏟아져 내리는 듯하다. 여인의 표정과 손 위치도 에로틱하기 그지없다. 엑스타시에 빠져 눈을 지그시 감았고, 입은 주의력이 풀려 살짝 벌어졌다. 오른손은 자신의 젖가슴을 잡은 것도 같고 쏟아지는 황금 속의 무언가를 움켜쥔 듯도 싶다. 왼손이 향한 곳은 그냥 상상에 맡기겠다.

이 매혹적인 여인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의 딸 다나에다. 아크리시오스는 다나에를 아무도 드나들 수 없는 청동의 방에 가두었다. 딸이 낳은 아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예언에 놀라 아예 남자의 접근이 불가능하도록 차단한 것이다.

한편, 제우스는 아름다운 여인 얘기만 들으면 어디라도 날아갔다. 다만 자신의 속성인 번개, 벼락의 모습으로 나타나면 인간을 태워 버릴 위험이 있으므로 상대의 취향과 상황에 맞게 변신하여 목적을 달성했다.

다나에의 방 앞에서 철통같은 봉쇄에 봉착한 제우스는 액체로 변신하여 스며들어 마침내 다나에의 사타구니를 파고든다. 따라서 그림 속의 황금은 금화가 아니라 황금의 비다. 제우스의 정액이란 상징이니 어찌 더 야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영웅 페르세우스다.

구스타프 클림트_ 「다나에」, 1907년 (레오폴트 미술관 소장)

오페라 속 ‘다나에’의 사랑 이야기

제우스의 남다른 애정사는 오페라 작품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에 명맥이 끊긴 신화 오페라를 20세기에 부활시킨 일등공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는 <다나에의 사랑> (1940)에서 ‘황금의 손’ 미다스 왕의 신화를 결합해서 원래 신화 내용을 상당히 바꾸어 버렸다.

다나에의 부친 폴룩스 왕은 파산 지경에 이르자 딸의 남편감으로 부유한 미다스를 점찍어 결혼을 추진한다. 하지만 다나에에게 반한 제우스가 미다스로 변신하면서 폴룩스 왕의 궁전에는 진짜 미다스와 미다스로 변신한 제우스가 모두 도착한다.

제우스는 미다스에게 초야권을 요구하며, 손에 닿는 무엇이든 황금으로 만들 수 있는 그의 능력을 평생 보장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런데 다나에에게 매료된 미다스가 주문 푸는 것을 잊은 채 그녀를 안는 바람에 다나에는 황금 조각상이 되어 버린다.

제우스는 다나에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고, 미다스가 가진 황금 손의 능력을 빼앗아 간다. 결국 가난한 노새몰이꾼이 되고 마는 미다스. 하지만 다나에는 전능한 신 대신 미다스를 남편으로 삼아 누추한 오두막에서 살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우리가 알던 내용과 다르지만 기존의 이야기가 합쳐지거나 변형되어 또 다른 신화를 만들었던 그리스 신화의 속성을 이해하는 감상자라면 그 묘미를 즐길 수 있다.

 

오페라 <다나에의 사랑> 전곡

화염에 휩싸여 타버린 사랑

신과 신이 결합하면 그 자식은 신이다. 반면 신과 인간 사이의 자식은 인간으로 간주된다. 물론 보통의 인간을 뛰어넘는 영웅이거나 절세미녀로 묘사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인간 여인의 자궁에 잉태되었음에도 신으로 태어난 예외가 있다. 세멜레의 아들, 술의 신 디오니소스(로마 신화의 바쿠스)다.

테바이의 공주 세멜레는 제우스와 사랑하여 임신한다. 이를 안 헤라는 세멜레의 마음에 의심을 심어 놓는다. 제우스의 진정한 사랑을 받으려면 신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 것이다. 제우스는 세멜레가 조르기 시작하자 화들짝 놀라며 만류하지만 이미 모든 걸 들어주기로 약속한 상태였기에 어쩔 수 없이 번개에 휩싸인 모습으로 세멜레 앞에 나타난다.

세멜레는 제우스를 보는 즉시 화염에 휩싸였고 제우스는 재빨리 그녀의 뱃속에서 아이를 꺼내 자신의 넓적다리에 넣었다. 디오니소스는 그렇게 제우스의 넓적다리에서 산달을 모두 채운 후 신으로 탄생한다. 즉, 모친은 인간이었으되 최고신 제우스의 몸에서 나왔으니 신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크 시대의 베네치아 화가 세바스티아노 리치(Sebas tiano Ricci, 1659~1734)의 「요베와 세멜레」(1695)는 불타기 직전의 세멜레를 그렸다. ‘요베’(Jove)는 로마 신화에서 제우스를 가리키는 유피테르의 별칭이다.

제우스가 구름을 거두고 세멜레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침대 위의 세멜레는 예상과 다른 위험한 상황에 놀라 몸을 비튼다. 왼쪽 아래의 독수리는 제우스의 상징물이다. 오른쪽 구석의 어린아이는 ‘사랑의 신’ 에로스이겠는데 세멜레가 죽게 된 상황에서 공포에 질렸다.

세바스티아노 리치_ 「요베와 세멜레」, 1695년 (우피치 미술관 소장)

‘세멜레’를 위한 노래, ‘세멜레’의 노래

세멜레의 이야기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 1685~1759)의 <세멜레>(1744)에서 다루어졌다. 헨델은 독일 출신이지만 이탈리아에서 공부했고, 1712년 이후 영국에 정착하여 활동했다. 런던 시절 헨델의 주 분야는 이탈리아 오페라였고,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작곡가로 대단한 명성을 누렸다.

그런데 이탈리아 본토 작곡가들이 영국으로 오면서 경쟁이 격화되고, ‘거지 오페라’로 대표되는 대중적 영어 음악극도 등장하자 헨델은 탈출구를 모색해야 했다. 그래서 영어 대본을 사용한 극음악을 쓰기 시작한다. 영어 대본인 경우 당시엔 오페라로 인정받지 못했고 아무리 격식을 차려도 오라토리오로 불렸는데, 지금은 영어 오페라로 간주하는 데 별 이견이 없다. <세멜레>도 그렇다.

제우스는 세멜레를 산 위의 비밀 궁전에 숨겼다가 쓸쓸해 하는 그녀를 위해 언니 이노의 방문을 허락한다. 이 틈에 이노로 변신한 헤라가 나타나 신의 반열에 오르고 싶다면 제우스가 진짜 신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까지 사랑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꼬드긴다. 이후 세멜레가 바가지 긁는 모습은 강력하게 묘사된 반면 그 죽음은 덜 자극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 오페라엔 아주 유명한 노래 두 곡이 있다. 우선 세상 만물이 세멜레를 받들게 하겠다고 제우스가 약속하는 「당신이 걷는 곳마다」(Where’er you walk)가 있다. 더 유명해진 곡은 마법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스스로 감탄하는 세멜레의 노래 「나 자신을 숭배하게 되네」(Myself I shall adore)다. 거울 속의 자신을 자화자찬하는 세멜레의 모습은 현대인들의 ‘셀카’와 정서적으로 아주 흡사하다. <세멜레>에서 올림포스 신은 전부 로마 신화로, 그것도 영어식으로 표기된다. 제우스는 주피터, 헤라는 주노, 디오니소스는 바커스로 말이다.

 

오라토리오 <세멜레> 중 「당신이 걷는 곳마다」

 

오라토리오 <세멜레> 중 「나 자신을 숭배하게 되네」

최악의 유혹이 빚어낸 그릇된 사랑

한편, 아르카디아의 님프 칼리스토는 제우스에 어울릴 만한 신분은 아니었다. 그녀는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흠모하여 숲에서 그녀를 모시며 처녀로 지낼 것을 맹세했다. 이런 칼리스토를 유혹하기 힘들겠다고 생각한 제우스는 그녀가 숭배하는 아르테미스로 변신하여 사랑을 나눈다. 동성애 코드가 풍기는 장면이다. 게다가 유혹을 위해 자기 딸 아르테미스의 모습마저 훔쳤으니 그 후안무치한 행위에 경악할 수밖에 없다.

얼마 후 아르테미스와 부하들이 함께 목욕을 하던 중에 임신한 칼리스토는 사실을 들켜 무리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아르카디아의 건국영웅 아르카스를 낳지만 헤라의 노여움을 사서 곰이 되고 만다.

수년 후 숲에서 아르카스는 곰이 된 어머니 칼리스토를 마주치게 된다. 칼리스토는 한눈에 아들을 알아보지만 겁에 질린 아르카스는 칼리스토에게 화살을 쏘아 죽이려고 한다. 이 비극적인 상황을 본 제우스는 둘을 하늘로 올려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로 만들었다.

그냥 티치아노라고 불리는 경우가 더 많은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 1488?~1576)는 세바스티아노 리치에 앞서 르네상스 시기의 베네치아를 대표한 화가다. 르네상스의 대가답게 종교화, 역사화, 초상화뿐 아니라 신화와 관련된 그림도 많이 그렸는데 「디아나와 칼리스토」(1556~1559) 역시 그중 하나다.

로마 신화의 ‘사냥의 여신’ 디아나(그리스 신화의 아르테미스) 무리가 샘에서 목욕을 하는 중인데, 디아나가 칼리스토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그녀의 배가 불러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가만히 보면 무리 중에 칼리스토를 동정하는 이는 없다. 칼리스토를 붙잡고 있거나, 디아나를 둘러싸 모시고 있거나, 아직 옷을 벗지 않은 몇몇은 조롱하듯 쳐다본다. 심지어 디아나의 사냥개마저 벌어진 상황에 무신경하고, 에로스는 목욕물을 뿌리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고립무원 신세가 된 칼리스토의 상황이 잘 그려져 있다.

티치아노 베첼리오_ 「디아나와 칼리스토」, 1556~1559년 (내셔널 갤러리 소장)

고풍스러운 오페라로 만나는 ‘칼리스토’

오페라 초창기의 위대한 바로크 작곡가 프란체스코 카발리(Francesco Cavalli, 1602~1676)는 바흐가 태어나기도 전에 <라 칼리스토>(1651)란 오페라를 썼다. 물론 음악도 무척 고풍스럽다. 줄거리는 두 개의 신화를 묶어 변형한 것이다. 제우스가 칼리스토를 유혹한 내용이 중심이지만 아르테미스가 잘 생긴 목동 엔디미온을 사랑하는 이야기도 곁들여졌다.

칼리스토는 제우스와의 달콤했던 사랑이 아직도 아르테미스와의 순간이라고 믿고 있다. 헤라가 비난하자 칼리스토는 그럴 리 없다고 반박하는데, 화가 치민 헤라는 칼리스토를 곰으로 만든다. 제우스는 헤라에게 제발 저주를 풀어달라고 사정하지만 헤라는 요지부동이다. 그러자 제우스는 칼리스토가 곰의 삶을 마친 후에는 반드시 별자리로 만들어 주겠다고 다짐한다.

 

오페라 <라 칼리스토> 1막

 

제우스의 애정 행각이 그리스는 물론 지중해 전역에 퍼져 있는 것은, 각 지역마다 그곳 지배 계층이 제우스의 후손임을 주장하기 위해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화마다 왕이나 영웅 탄생과 관계된다. 다나에, 세멜레, 칼리스토 말고도 아르고스의 처녀 이오, 소아시아의 공주 에우로페, 테바이 공주 안티오페, 스파르타 왕비 레다, 펠로폰네소스의 용장 암피트리온의 아내 알크메네 등이 제우스의 편력 대상이 된 여인들이다.

글. 유형종(음악·무용 칼럼니스트)

음악 칼럼니스트이자 공연 해설가인 필자 유형종은 음악 공동체 ‘무지크바움’과 고양아람누리 등의 문화예술기관, 그리고 대학 등에서 고전음악과 오페라, 발레를 강의하고 있다.
‘명화 속 비밀과 클래식 음악’은 명화 속에서 짚어낸 예술가들의 비밀스럽고 흥미로운 이야기에 클래식 음악 이야기를 더해 눈과 귀를 모두 즐겁게 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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