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가 거부된 이들의 치열한 고민

미학적 논리의 확장을 고민하다
2020년 10월 26일
살아 있는 공원을 만들어낸 수평적 협업
2020년 11월 25일
42020년 11월 25일
2020 경기창작센터 입주큐레이터 초대전
‘초대 거부 – 파트 1.’

지난 10월 14일(수)부터 11월 28일(토)까지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에서 2020 경기창작센터 입주큐레이터 초대전 ‘초대 거부 – 파트1.’이 개최되었다. 예술가와 관객 모두 미술의 현장으로부터 물리적으로 초대가 거부되고 있는 비대면 시대에, 예술적 교류를 치열하게 고민한 큐레이터와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업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호 접촉과 만남이 ‘단절’된 순간 시작된 ‘교류’

최근 미술 전시의 경향은 각각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을 넘어 전체적인 방향성과 기획 의도 안에서 작가와 작품, 미술관이 서로 긴밀하게 의존하여 구성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큐레이터의 전시 기획 의도에 따라 작가의 작품 해석 방향이 달라지고, 작업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하나의 완전한 전시를 구현하기 위해 작가와 기획자 간의 교류가 그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경기창작레지던시는 지난 1월, 레지던시에 입주할 큐레이터를 새로이 모집하였다. 작가뿐 아니라 기획자의 역량 강화를 도모하고 입주 기간 동안 상호 간 예술적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황아람, 이문석 등 두 명의 큐레이터가 선정되어 약 10개월간 경기창작센터에서 전시를 기획하고 그 성과를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과 안산 단원미술관에서 선보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작가와 기획자들의 교류는 코로나19로 인해 상호 접촉과 만남이 단절된 순간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물리적 교류가 불가능하니 작가와 기획자는 단체 메시지, 메일, 통화, 화상회의 등 동원 가능한 비대면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서로 소통했다.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진행되다 보니, 서로를 거의 모르는 상태로 작업을 진행하는, 교류 아닌 교류(?)가 이루어졌다. 여기에 첫 번째 전시 공간인 아람미술관은 10월 전시 개최 전까지 총 세 번 휴관하는 등 가장 궁극적인 관람객과의 교류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획자들의 최대 고민은 ‘교류’였다.

왼쪽부터 오민수의 「제자리 구르기」, 조문희의 작품들

불가피한 ‘초대 거부’의 상황에서 이어진 ‘소통’

불가항력적으로 상호 소통이 어려운 이 상황을 관객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어떨까? 

‘부득이하게’ 당신은 초대가 거부되었습니다.
우리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당신은 우리로부터 초대가 거부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술관이 관람객에게, 작가에게, 큐레이터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단초로 2020 경기창작센터 입주큐레이터 초대전의 이름이 ‘초대 거부 – 파트 1.’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초대 거부’된 상황 속에서도 예술적 소통을 이어 나가고자 한 노력, 그 소통의 과정과 방법이 작가들에게 미친 영향을 작품을 통해 관람객에게 보여드리고자 했다.

아람미술관의 ‘초대 거부-파트1.’에서는 교류 초기의 작가들의 작업 과정을 볼 수 있다. 갑작스럽게 소통이 단절된 상황에서 시도된 비대면적 요소의 소통 방식이 작가들의 작업에 아직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여, 각자의 작업 성향이 독립적으로 드러나는 단계의 작품들이다.

김수나 작가는 자연 풍경의 사진 이미지를 출력해 칼로 긁어 떼어낸 작업을 진행했다. 사진을 이미지 전달의 매체로 보기도 했지만, 사진을 담은 종이의 물질적 특성으로도 바라보는 복합적인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작품에 담긴 안개, 불, 구름 등의 자연 현상들과 여러 방향으로 접히고 겹쳐지는 이미지, 종이 표면은 물질로서 겪는 사건의 입체성과 복합성을 느끼게 한다.

엄유정 작가는 2018~2019년 국립생태원, 국립식물원, 부천식물원, 제주, 한강 일대에서 관찰한 식물의 형태를 그림으로 담아냈다. 아라우카리아, 덤불, 그리고 둥근 잎 식물들의 부서지고 흔들리는 형태로부터 자연의 기이하고 계획되지 않은, 그러나 단단한 리듬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각각의 식물들을 독립된 개성을 가진 개체로 바라본 작가는, 저마다에게 어울릴 회화적 방식을 고민하여 선, 색의 교차, 붓질의 속도, 물감의 두께, 묘사의 정도, 배경의 깊이 등을 다양하게 그려냈다.

안무가이자 퍼포머인 조선경 작가의 「침묵의 소리」는 작가의 경험과 그 경험 안에서 수집한 감각을 담은 영상과 설치 작업이다. 「침묵의 소리 2020」은 작가가 대부도에서 마주한 어민들의 그물 작업, 그들의 손길, 그리고 그물의 모양들에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침묵의 소리 2019」는 광주ACC에서 진행된 안무가랩 작업 기간 동안의 기록과 퍼포먼스 영상을 재편집한 작품이다.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시간을 타고 가다가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천천히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침묵의 모습을 보여주며, 오늘의 삶에서 시간이 갖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자 했다.

조문희 작가는 서울 외곽에 형성된 기획도시와 공간을 주제로 작업하였다. 작품 속 도시들은 서로 다른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복사해놓은 듯 유사한 모습이다. 어디선가 이미 경험한 듯한, 영화나 드라마 등의 매체에서 본 듯 모호한 공간들을 통해 동일한 형태 안에서 획일적인 도시 공간이 개인의 개별적인 행복에 얼마나 가까운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오민수 작가는 2018년 택배 상하차 일을 하면서 경험한 노동 현장, 노래, 사람들의 모습을 모티브로 하여 작업을 진행했다. 소위 ‘폭파’는 택배기사가 파업, 결근 시 다른 택배기사가 그것을 대신 처리하는 작업의 명칭이다. 작가는 노동자들의 장갑에 낀 때를 도트화 하여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보이게 만들고, 반복하여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관람객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 소리는 택배 트럭의 후진음으로, 역추적하면 1970년대 타이완 대학가에서 불리던 「난화초」라는 가요의 멜로디로 이어지고, 또 그 가요의 가사는 1920년대 중국 시인 후스의 시 「희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대 한국, 1970년대 타이완, 1920년대 베이징의 물류 자본주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 뒤에는 누군가의 지나간 노동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임철민 작가의 수묵화로 된 풍경화는 인사동, 익선동, 종로 일대의 골목을 모티브로 어두운 골목과 그곳을 비추는 희미한 빛을 표현한다. 어두운 골목을 빛에 의지하여 걸어가고, 그렇게 어두운 거리를 걸을수록 빛에 대한 갈망은 커지고, 그 밝은 곳에서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여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과 사건 사이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번 2020 경기창작센터 입주큐레이터 초대전 ‘초대 거부 – 파트 1.’은 팬데믹 상황을 맞아 관객과 대면하기 어려워진 작가들이 저마다의 소통 방식을 고민하는 과정을 각자의 관심 분야를 통해 담아낸 것이다. 많은 것들이 차단되고 자유롭지 못한 상황 속에서, 예술을 통해 조금이나마 새로운 환기와 에너지를 전달하고자 자신들의 작업 범위를 확장시켜나간 첫 전시라 할 수 있겠다.

왼쪽부터 조선경의 「침묵의 소리」, 오민수의「폭파」

글. 박유진(고양문화재단 교육전시팀)
사진. 노승환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