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공원을 만들어낸 수평적 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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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고양예술인 레퍼토리 개발 공동제작 프로젝트
김가은 댄스 컬렉티브 <모호한 경계 Ⅲ – SPACE : Park>

우리가 머무는 공간(Space)을 탐색하는 김가은 댄스 컬렉티브의 연작 시리즈 <모호한 경계 Ⅲ – SPACE : Park>가 지난 11월 5~6일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실제 경험으로 바탕으로 한 작업 과정이나 일곱 명 모두를 솔리스트로 다룬 안무 면에서 수평적 협업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안전한 공연 관람을 위하여 한 자리 띄어 앉기로 진행되었으며,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 실황 중계되었다.

대중성이 취약한 무용 장르에 대한 배려

이번 공연은 고양문화재단의 ‘2020 고양예술인 레퍼토리 개발 공동제작 프로젝트’ 공모를 통해 탄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고양문화재단은 발굴에만 그치지 않고 레퍼토리의 지속 개발을 위한 동기 부여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에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번 공모에 당선된 두 단체 중 하나가 무용단이라는 점에서 크게 반가운데, 여전히 대중성에 취약한 무용 장르에 대한 배려와 단체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김가은 댄스 컬렉티브’는 2006년 창단한 ‘크레용 댄스 프로젝트’(이대건, 김가은 공동대표) 산하 단체로, 춤을 기반으로 다양한 예술장르와 협업하는 복합 예술 그룹이다. 이번 공연 역시 김가은 안무, 이대건 예술감독 외에 드라마트루기, 미술, 영상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작품 <모호한 경계 Ⅲ – SPACE : Park>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모호한 경계’ 연작의 세 번째 편이다. 임의의 공간(SPACE)을 설정하고 그 장소를 콘셉트로 안무자와 무용수의 경험을 춤과 대사로 풀어내는 옴니버스식 스토리텔링 작업으로, 1편 ‘카페’(café), 2편 ‘룸’(Room)에 이어 이번 세 번째 주제가 바로 ‘공원’(Park)이다.

밀고 당기는 관객과의 거리

안무 과정은 ‘그 공간의 무엇이 자신의 경험을 기억하게 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되고, 무용수들은 그 답을 풀어가며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내밀한 사연들을 몸 밖으로 꺼내게 된다. 춤 작품이지만 무용수들은 많은 대사를 해야 하는데, 전문 배우 같은 발성이 아니라는 점에서 오히려 자연스럽고 친근한 인상을 준다. 물론 더 숙련시켜 전달력을 높이는 것도 연작을 이어가는 데 발전적인 방법일 것이다.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서 장소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같은 장소를 두고 서로 다른 기억을 갖기도 하고, 어떤 관계 맺음에서는 장소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리고 타인이 경험한 장소의 이야기는 늘 흥미로운 대화의 소재이다. 화자(話者)에게는 추억의 소환이 되고 청자(聽者)에게는 대리 경험과 생각거리가 된다.

<모호한 경계 Ⅲ – SPACE : Park> 역시 공원이라는 공간 설정 안에 무용수들의 경험을 풀어 놓고 관객으로 하여금 듣고 즐기고 공감하게 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일상에서 나온 아주 세세한 것들이며, 어떤 교훈이나 유익한 결말보다는 친숙하고 솔직한 이야기 속에서 관객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열린 결말을 제시한다.

무대에서 한 발 떨어진 객석은 작품으로부터 아주 먼 거리가 되기도 하고 가까운 거리가 되기도 한다. 스타벅스와 SNS, 침대 옆의 작은 창문, 안식의 담배 같은 현실적 이야기에서는 마치 옆집 청년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가까운 거리였다가, 춤의 깊이가 깊어지고 영상이 (풀과 나무, 새와 나비로 장식된) 초현실주의 회화를 만들어내면 관객은 멀리 있는 감상자가 된다. 사람 사는 현실의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지만 전문 창작자와 퍼포머가 만드는 예술 작품이기에 가능한 밀고 당기기이다.

‘살아 있는’ 공원을 만들어낸 수평적 협업

앞선 연작들을 보지 못했어도 전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카페와 방의 이야기를 넣은 것이나, 무용수들의 기량이 우수함에도 획일적 테크닉의 춤을 만들지 않은 안무 의도는 세련된 발상이다. 특히 자유롭게 서로 다른 동작을 하고 있음에도 통일성이 느껴지는 무용수 간의 조화를 이끌어낸 점은 일회성 용병(?)으로 수급되는 무용 공연과 차별되는 전문성으로 읽혀졌다. 일곱 명의 무용수 모두가 솔리스트로 다뤄진 수평적 작품이었다.

한편, 길게 늘어트린 전등의 흔들림으로 빛의 즉흥적 생동감을 실어내고, 벤치를 눕히고 세우면서  여러 조형미를 만들어낸 것은 무대 세트를 평면적 장식이 아니라 입체적이고 유기적인 존재로 해석한 것이다. 여기에 영상과 음악까지 살아 있는 ‘공원’을 만들어냄으로써 예술 장르 간의 협업이 안무자의 주문에 맞춰 제작하는 일방적 용역이어서는 안 된다는 좋은 예를 보여주었다.

자기 이름의 무용단을 선택한 그에게

김가은은 이제 출발선에서 한 걸음 내딛은 젊은 무용가이다. 동문 단체가 주류를 이루던 90년대를 지나 무용가 개인의 자생력을 요하는 독립 무용가의 시대를 맞은 지금, 간섭으로부터는 자유로우나 그 자유보다 더 큰 책임과 희생을 담보해야 하는 자기 이름의 무용단을 선택한 그에게 응원과 기대의 박수를 보낸다.

특히 이번 공연을 통해 공공기금을 수혜한 예술가가 보여주어야 할 성의와 실력, 공공성의 이해는 박수를 받을 만한 것이며, 앞으로 고양시의 무용 관객 저변 확대에 일조할 무용가의 등장이 반갑다고 하겠다.

2004년 출범해 올해 16년차를 맞은 고양문화재단은 규모와 역사 면에서 타 지역의 문화재단보다 앞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개관 초기 굴지의 공연과 축제들을 유치하면서 화려하게 출발했던 기획력과 규모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최근 그 위상의 재정립을 위한 노력이 보이는 만큼 107만 대도시의 문화재단으로 우뚝 서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더불어, 이미 검증된 흥행작의 유치뿐 아니라 이번 김가은의 무대처럼 미래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발굴과 육성에도 관심을 지속해주길 무용계의 한 사람으로 바라본다.

글. 김예림(무용평론가)
사진. 노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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