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우스 VS. 헤라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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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음악으로 만나는 영웅의 ‘곁다리’ 모험담

올림포스의 제왕 제우스의 여성 편력을 다루었던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신화 속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룬 그림과 음악을 소개한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영웅담보다는 그보다 좀 덜 알려진 일종의 ‘곁다리’가 신화를 다룬 오페라나 기악곡의 소재로 오히려 인기가 높았다는 사실이다. 괴물이나 악당을 죽이는 것보다 사랑 이야기가 가미되었을 때 더 극적인 효과를 노릴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웅담보다는 ‘사랑 이야기’가 제격

아래 그림은 16세기 피렌체 화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의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이다. 그림 속에는 벌거벗은 채 바닷가 바위에 묶인 여인의 사슬을 한 남자가 풀어주고 있는데, 날개 달린 신발을 신은 것으로 보아 전령의 신 헤르메스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바사리는 다른 상징물들을 통해 그 주인공이 다른 인물임을 설명한다. 발아래 놓인 거울과 왼쪽 하단에 조금 드러난 말이 그 상징물이다. 그렇다. 이 남자는 신화 속 페르세우스이고, 그렇다면 구출되는 여인은 에티오피아 공주 안드로메다가 된다.

페르세우스라 하면, 눈을 마주치는 사람마다 돌로 만들어버리는 괴물 메두사의 목을 벤 일화를 누구나 쉽게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연극이나 오페라에서는 그런 끔직한 이야기보다 안드로메다와의 사랑 이야기가 더 좋은 작품 소재가 되었다.

페르세우스는 아르고스의 공주 다나에와 제우스 사이의 아들(지난 호에 소개)이며 ‘영웅의 원형’으로 불린다. 아르고스 왕 아크리시오스는 외손자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신탁에 따라 갓 태어난 페르세우스를 딸과 함께 추방했는데, 그들이 당도한 곳은 세리포스 섬이었다.

그곳 왕은 다나에에게 구애했지만 그녀는 페르세우스가 장성한 다음에도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페르세우스는 왕의 뜻을 꺾기 위해 메두사의 목을 바치겠노라고 약속한다.

하지만 아무리 영웅이라도 메두사 같은 괴물을 처치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과제가 아니었을 터. 페르세우스는 여러 신의 도움으로 거울처럼 비치는 아테나 여신의 방패, 재빨리 날아다니는 헤르메스의 신발, 하데스의 변신 투구 등을 빌려 메두사를 죽일 수 있었고, 그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로부터 탄생한 명마 페가소스를 얻었다. 그림에 날개 신발, 거울(방패), 말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조르조 바사리_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1572년 (베키오 궁전 소장)

르네상스의 화풍과 기법이 망라된 그림

한편 안드로메다와의 일화는 메두사를 처치한 후 귀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다. 에티오피아의 왕비이자 안드로메다의 어머니 카시오페이아는 자신의 미모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어서 자신이 바다의 요정들인 네레이데스보다 아름답다고 자랑을 하고 다녔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내 암피트리테 또한 네레이데스 중 하나였는데, 이 때문에 격노한 포세이돈이 괴물을 보내 에티오피아는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고 있었다.

에티오피아 왕실은 해신의 분노를 진정시키고자 안드로메다 공주를 제물로 바닷가 암초에 묶었고, 마침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혹은 페가소스를 타고) 상공을 날아가던 페르세우스가 이 장면을 목격했다.

안드로메다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목을 자른 낫으로 괴물을 퇴치하고 공주를 구출한다. 공주의 구혼자였던 왕의 동생 피네우스가 반기를 들자 페르세우스는 그에게 메두사의 목을 들이밀어 돌로 만들어버리고는 안드로메다와 결혼한다.

둘 사이에는 페르세스라는 아들이 태어나는데, 플라톤에 따르면 고대 중동의 강국 페르시아의 국명은 페르세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바사리는 화가이자 건축가였으며 많은 성화, 역사화, 인물화, 그리고 신화 소재 그림들을 남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르네상스와 동시대 화가, 조각가, 건축가의 평전을 쓴 최초의 미술사가 중 한 명이다.

따라서 시기적으로는 매너리즘 시대에 속하지만 르네상스의 화풍과 기법이 망라된 그림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원근법, 중심에 안정적으로 집중된 구도, 배경을 통한 상황 설명, 상징물의 사용 등이 그런 장치다.

귀스타브 도레_ 「안드로메다」, 1869년 (개인 소장)

삽화로 만나는 또 다른 안드로메다

한편 19세기 프랑스의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 1832~1883)가 그린 「안드로메다」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바다 괴물의 먹잇감이 될 뻔한 안드로메다의 아슬아슬한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얼굴은 윤곽으로만 느낄 수 있을 뿐 알아보기 힘든데, 아름답지만 공포 상황에서 일그러진 얼굴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본 것 같다.

바위에서 미끄러질 듯 말 듯한 자세는 역동성을 불어넣는 동시에 근육의 긴장으로 육체적 매력을 돋보이게 한다. 멀리서 그녀를 발견한 페르세우스는 얼굴을 볼 필요도 없이 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것이다.

도레는 당대 최고의 삽화가로 명성이 높았다. 삽화답지 않게 굉장히 비싼 가격을 요구했으며 게다가 다작가여서 돈을 많이 벌었다. 하지만 삽화로는 일류 예술가라는 명예를 얻기 힘들었다.

그래서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괴테 등 고전 문호의 작품에 고급스런 삽화를 넣은 작품집으로 차원이 다른 듯 행동했고, 유화까지 그리며 기회를 엿본 끝에 급기야 파리의 살롱전에도 출품하는 화가가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도레는 삽화가로서의 가치만 인정받고 있을 뿐, 문화사나 미술사 책에 주류로 언급된 경우는 거의 찾을 수 없다. 정통 회화에서 높은 평가를 못 받는 것은 대중 장르에서 너무 높은 인기를 누렸다는 족쇄가 작용한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도레가 삽화로 그린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도 찾을 수 있는데, 역시 유화에 비해 차원이 떨어진다.

귀스타브 도레_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삽화

오페라에서도 주목한 페르세우스의 사랑

페르세우스를 주인공으로 한 대표적인 곡은 이탈리아 출신의 프랑스 작곡가 장 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 1632~1687)의 오페라 <페르세>(1682)일 것이다. 제목은 페르세우스의 프랑스식 표기인데, 음악사적으로 <페르세>는 오케스트라 반주를 확장하여 노래에 붙인 최초의 프랑스 오페라에 속한다.

륄리는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프랑스에 귀화하여 루이 14세의 궁정악단을 이끌었다. 지휘 개념이 성립되지 않았던 시기에 륄리는 긴 막대로 바닥을 내려치면서 템포를 잡았는데, 실수로 발등을 찍는 바람에 생긴 상처가 감염되어 죽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삶과 죽음은 영화 <왕의 춤>(2000)에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지만 왜곡과 과장이 심하다. 륄리는 서정 비극(tragédie lyrique) 즉, 프랑스 궁정 오페라와 발레를 개척한 공로로 음악사에서 무척 중요시된다.

오페라 <페르세>의 줄거리는 신화와 좀 차이가 있는데, 안드로메다를 취한 모험담에 메두사를 살짝 등장시킨다. 이런 식의 변형과 발췌 결합은 오페라 역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교만한 에티오피아 왕비 카시오페이아에게 분노한 헤라(유노) 여신이 메두사를 이 땅에 보낸다. 안드로메다(안드로메데)를 사랑하는 페르세우스(페르세)는 메두사와 싸우기로 결심하고 신들이 보낸 칼, 방패, 투구를 얻는다.

메두사의 목을 벤 다음 장면은 신화의 안드로메다 구출 이야기와 대동소이한데, 포세이돈은 물론 헤라까지 카시오페이아에게 분노했다는 점, 왕비의 동생 메로페가 페르세우스를 짝사랑하여 피네우스(피네)와 사각관계를 형성한다는 점 등이 다르다.

 

오페라 <페르세>

관현악 명곡으로 듣는 헤라클레스의 비화

모계(母系)가 페르세우스의 후손인 그리스 신화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 역시 제우스의 아들이다. 그 때문에 헤라의 미움을 받아 가족을 살해하는 광기에 빠지기도 하고, 그 속죄를 위해 일명 ‘12대 과업’을 수행한다. 하지만 12대 과업 역시 음악적 소재로는 별 인기가 없고, 좀 엉뚱한 일화가 관현악 명곡으로 남았다.

명사수인 오이칼리아의 왕 에우리토스는 자신과 활 시합을 해서 이긴 자에게 이올레 공주를 주겠다고 선언한다. 솔깃한 헤라클레스가 도전하여 승리하지만 에우리토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헤라클레스는 앙심을 품고 오이칼리아를 떠났고, 이피토스 왕자가 오해를 풀고자 쫓아갔다가 다시 광기에 사로잡힌 헤라클레스에 의해 티린스의 성벽에서 추락해 죽고 만다. 이에 델포이 신탁은 헤라클레스에게 그 속죄로 3년간 리디아 여왕 옴팔레의 노예로 지내며 영혼을 정화할 것을 명령한다.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Saëns, 1835~1921)의 「옹팔의 물레」(1871)는 프랑스 작곡가의 교향시로는 가장 유명한 곡에 속한다. ‘옹팔’은 옴팔레의 불어 표기이고, 물레는 헤라클레스가 옴팔레를 즐겁게 하기 위해 여자 옷을 입고 물레를 돌려 베를 짰다는 내용에서 나왔다.

이뿐 아니라 여자처럼 노래도 불렀다고 하니, 죄 때문에 최고 영웅의 체면을 구긴 셈이다.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물레가 돌아가는 음형이 지배하면서 옴팔레의 주제, 헤라클레스의 주제라 할 만한 것들이 등장한다.

 

오페라 <옹팔의 물레>

불가사의한 비현실의 세계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enach)는 독일의 부자(父子) 화가 이름인데, 그중 부친인 일명 대(大) 크라나흐(1472~1553)가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신화 소재를 많이 다루었고 특히 비너스와 큐피드를 뚜렷한 윤곽과 투명한 색조로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헤라클레스와 옴팔레의 여인들」은 그의 그림 중에 분위기가 좀 특이한 경우다. 한 남자가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데, 이는 헤라클레스가 여장을 하고 여왕을 즐겁게 했다는 이야기에 해당한다.

그림 속 여인들 중 옴팔레 여왕이 포함되어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대 크라나흐의 그림은 ‘불가사의한 비현실의 세계’라는 평도 종종 듣는데, 왼쪽 상단의 새 두 마리도 그런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

대(大) 루카스 크라나흐_「헤라클레스와 옴팔레의 여인들」,
1537년 (헤르조그 안톤 울리히 미술관 소장)

글. 유형종(음악·무용 칼럼니스트)

음악 칼럼니스트이자 공연 해설가인 필자 유형종은 음악 공동체 ‘무지크바움’과 고양아람누리 등의 문화예술기관, 그리고 대학 등에서 고전음악과 오페라, 발레를 강의하고 있다.
‘명화 속 비밀과 클래식 음악’은 명화 속에서 짚어낸 예술가들의 비밀스럽고 흥미로운 이야기에 클래식 음악 이야기를 더해 눈과 귀를 모두 즐겁게 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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