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대, 새로운 습관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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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빅체인지 전망 ① new consumer

코로나19로 인한 급격한 변화의 바람 속에서 이제 문화예술계도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에 주목해야 할 때다. 새로운 소비 트렌드의 주체로 떠오른 MZ세대는 누구일까. 이전 세대와는 어떻게 다를까.

명품 브랜드 구찌가 보여준 새로운 길

<끝나지 않은 무언가의 서막>(OVERTURE of Something that never ended).
명품 브랜드 구찌가 지난 11월 16일부터 7일간 디지털 영화제 ‘구찌 페스트’(Gucci Fest)를 통해 공개한 7편의 미니시리즈 제목이다. 유명 영화감독 구스 반 산트가 연출을 하고, 이탈리아의 행위예술가이자 배우인 실비아 칼데로니가 주연을 맡았다. 빌리 아일리시와 해리 스타일스 등 구찌를 대표하는 스타들이 카메오로도 출연했다. 초현실적인 드라마 속에서 배우들은 자연스럽게 구찌 의상을 입고, 구찌의 세상을 구축한다.

구찌를 이끄는 총괄 디자이너이자 이번 미니시리즈의 공동 연출을 맡은 알렉산드로 미켈레는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옷을 자유롭게 하고 싶었다. 패션이 매장 안에 갇혀 있는 일은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1편당 10~20분짜리 에피소드로 공개된 이 시리즈는 수십 년간 이어져온 패션쇼의 종말이자, 런웨이의 미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으로 패션업의 컬렉션이 소비자들에게 어떤 언어로 전달될지 보여준 강력한 예고편이랄까.

 

구찌의 미니시리즈 영상 <끝나지 않은 무언가의 서막> 첫 번째 에피소드 : At Home

 

구찌의 미니시리즈 영상 <끝나지 않은 무언가의 서막> 다섯 번째 에피소드 : The Neighbours

 

구찌의 움직임은 단순히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 때문만은 아니다. 구찌는 MZ세대를 사로잡은 가장 강력한 브랜드다. 위기에 빠졌던 2015년 구찌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며 MZ세대와 소통했다. 명품 업계에서 상상도 못할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와 손잡고, 온라인에 투자하고 로고를 (당시엔 우스꽝스럽게) 변형했다.

기존 구찌의 충성 고객들은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하지만, B급 정서를 겨냥한 구찌는 고고하고 우아하던 이미지에서 톡톡 튀고 발랄한, 쿨한 브랜드로 단숨에 바뀌었다. 명품 브랜드 중 가장 앞서 모피 등 동물 가죽으로 옷을 만들지 않겠다는 선언도 했다. 이 모든 건 조직 내부의 ‘밀레니얼 위원회’(30세 이하 밀레니얼세대 직원들로 구성)가 최고 경영진과 소통한 결과다.

창립한 지 110년 된 이 명품 브랜드는 더 이상 ‘할머니의 옷장 속 브랜드’가 아니라 1020세대가 가장 열광하는 브랜드가 됐다. 명품 브랜드가 이제 대부분 ‘구찌의 길’을 걷고 있다. 구찌의 트랜스폼 과정을 보면 기업은 물론 문화예술계가 어떻게 MZ세대와 대화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던진다.

보고, 듣고, 느끼고, 공유하는 MZ세대의 ‘정체성’

MZ세대는 현재 인구의 44%를 차지하는 세대다. MZ세대는 부모 세대인 베이비붐세대(전쟁 후 사회경제적 안정 속에서 태어난 세대,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1955~1963년에 태어난 세대)와 X세대(1960~70년대에 태어나 경제적 풍요 속에서 성장한 세대)와 확연히 다르다. 그 다름을 만들어내는 건 바로 ‘온라인’이다.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얼세대는 인터넷과 함께 성장했다. 싸이월드, 프리챌 등의 온라인 커뮤니티 기반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했고 원하는 정보는 검색을 통해 언제든 얻을 수 있게 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는 ‘젖병보다 먼저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자란 세대’로 불린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이 물과 공기처럼 생활의 일부로 느껴지는 세대라는 뜻이다.

24시간 온라인 세상으로의 접속이 가능한 환경에서 자란 MZ세대는 온라인으로 세상을 바꾸는 ‘체인저’이자 동시에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챌린저’들이기도 하다.

365일 24시간 개방된 네트워크 속에 사는 MZ세대들은 엄청난 정보력을 가진 동시에 역사상 가장 불안한 세대이기도 하다. 100만 명이 모이면 100만 개의 취향이 존재할 정도로 사회는 다양화, 개인화 됐다.

성공의 공식도 사라졌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 갖는 사회적 함의가 흐릿해진 데다 원한다고 다 이룰 수도 없다. 미래에 대한 무기력 속에 빠져 있는 동시에 SNS를 통해 남들과 의 비교, 평판에 대한 구속력은 더 강력해졌다. 이 때문에 MZ세대들은 ‘지금’이 중요하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일상의 행복), 숏확행(짧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것. 짧은 동영상을 지향하는 틱톡(TikTok)의 홍보 문구이기도 하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Work-life balance’의 줄임말) 등의 신조어는 MZ세대들의 성향을 잘 나타낸다.

온라인 세상에서의 평판이 무엇보다 중요한 세대이기 때문에 MZ세대는 모든 물질적, 문화적 소비를 곧 정체성으로 인식한다. ‘개념 있는 브랜드’나 ‘선한 영향력을 위한 예술 활동’에 대한 지지는 아끼지 않는다. 악덕 기업이나 나쁜 일을 저지른 개인에 대한 평가는 그만큼 빠르고 냉정하다.

문화예술의 소비 패턴도 마찬가지다. MZ세대에게는 예술 그 자체가 존재의 증명 수단이다. 단지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MZ세대는 자신의 모든 소비 활동을 페이스북 또는 인스타그램에 게시하고 공유하였을 때 소비의 여정이 끝났다고 믿는다.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기록하는 수단으로서 문화예술을 인식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온라인으로 통할까. 그 생각은 틀렸다. ‘오프라인 카리스마’는 여전히 유효하다. 24시간 365일을 ‘온’(ON)으로 살고 있는 MZ세대들은 디지털 피로감도 더 크게 느낀다. 아날로그와 레트로 감성에 열광하고, 압도적인 오프라인 공간에 몇 시간씩 줄을 서서 입장하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구찌가 90년대 레트로 감성으로 발표한 2020 홀리데이 기프트 캠페인

밀착하고 함께 성장하는 MZ세대의 ‘팬덤’

MZ세대가 이전 세대와 다른 점을 가장 잘 비유할 수 있는 건 ‘고양이’다. 이전 세대는 ‘개’의 특징을 갖고 있다. 개인보다 집단이 중요했고, 가족보다 사회의 책임에 더 집중했다. 조직과 학교, 가정 등 울타리에 소속돼 그 안에서 인정받고 길들여지는 것에 의미 부여를 많이 했던 세대라고 할 수 있다.

MZ세대는 반대로 고양이를 닮았다. 집단보다는 개인이 더 중요하다. 외로운 건 싫지만 그렇다고 어딘가에 얽매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마음에 드는 것에는 적극 참여하고 상황을 주도하고 싶어 하는 집요함이 있다. 길들여지기보다는 끊임없이 유혹하는 것들에 잘 빠져든다.

이런 MZ세대를 겨냥해 성공한 브랜드는 많다. 구찌처럼 오래된 기업의 변화 외에도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몇 년간 MZ세대의 지지를 등에 업고 성장했다. 이들의 결정적 차이를 만든 건 ‘더 세심하게 밀착해 MZ세대의 습관을 성형한 것’이다. 스타벅스가 “아침에는 스타벅스 컵을 들고 출근해야 하루가 시작된다”는 글로벌 클리셰를 만든 것처럼.

자산관리앱 ‘뱅크샐러드’는 MZ세대의 소비 습관을 깊게 파헤쳤다. 기존 자산 관리가 수십 억대 자산가들에게만 초점을 맞췄다면 뱅크샐러드는 중고차 시세까지 자산의 일부로 인식한다. MZ세대의 소비 패턴에 맞는 상품도 추천한다. “한 달 택시비가 월급의 20%네요. 그럴 거면 그냥 소형차를 사세요”라는 팩트 폭격도 서슴지 않는다.

보험의 패러다임을 바꾼 ‘보맵’도 있다. 결혼하는 친구에게 ‘웨딩 보험’을, 집에 가는 여자친구에게 ‘귀갓길 보험’을 들어 선물하는 것. 보맵은 보험을 복잡한 약관을 읽고 장기간 돈을 내야 하는 상품이 아닌 ‘내 생활 곳곳에 필요한 무엇’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신선식품 유통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한 온라인몰 ‘마켓컬리’ 역시 성공의 핵심은 빠른 배송시간이 아니다. 스토리텔링 작가들이 MD들과 직접 산지를 찾아가고, 생산자를 인터뷰해 싣는 제품 설명, 그리고 밀레니얼세대가 대다수인 마켓컬리 회원들의 상품 후기를 정성 들여 읽고 이에 답해주는 경영진의 소통 능력이 결국 강력한 팬덤을 만들었다.

MD보다 더 까다로운 평가를 보내기도, 엄청난 칭찬으로 입소문을 내주기도 하는 팬덤. 새벽배송이라는 시스템을 수많은 대기업들이 따라하고 있지만 여전히 마켓컬리가 견고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MZ세대는 나의 삶을 조금 나아질 수 있게 하는 어떤 것에 한번 빠져들면 가장 강력한 지원군이 된다. MZ세대를 충성고객으로 갖고 있는 기업들에겐 “손님은 왕이다”가 아니라 “손님은 인재다”라는 말이 더 어울리게 된 시대다.

MZ세대를 겨냥해 성공한 브랜드들. 왼쪽부터 마켓컬리, 뱅크샐러드, 보맵

예술의 민주주의를 이루는 MZ세대의 ‘습관’

MZ세대의 소비 성향을 잘 분석한 기업들은 권위를 벗어던지고, 솔직함을 택했다. 한번 빠져들면 끊임없이 재미있는 장난감을 던져주는 ‘지루할 틈 없는 브랜드’라는 이미지도 구축해 나가고 있다. MZ세대가 여러 스타트업을 성장시킨 것처럼 비슷한 일들이 문화예술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로 정체됐던 미술 시장에는 이미 MZ세대를 겨냥한 마케팅 연구가 한창이다. 베이비붐세대와 X세대보다 보유하고 있는 자산 규모는 작지만 예술에 대한 관심과 소비 의지는 훨씬 더 높기 때문이다.

MZ세대 소비자들은 자신의 취향을 잘 설계하고 재단해줄 수 있는 예술을 찾아 헤맨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MZ세대의 85%는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가를 SNS채널을 통해 스스로 팔로우하고 있다.

미국의 포브스지는 “인스타그램 등 SNS가 예술의 민주주의를 이루고 있다”면서 “35세 이하의 MZ세대 중 79%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예술가를 발굴, 지지하면서 예술 시장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자산 규모와 상관없이 좋아하는 예술가를 언제든 팔로우할 수 있고, 평론가들도 작가의 이름이나 작품의 가격에 기대기보다 예술 그 자체로 평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뜻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세계 유명 교향악단과 예술가들의 공연 실황은 온라인으로 수없이 생중계됐다. 이를 소비하는 주요층은 온라인 세계에 익숙한 MZ세대들이다.

앞으로의 문화예술계가 그들의 콘텐츠를 MZ세대의 생활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더 가깝게 밀착한다면 어떨까. MZ세대들에게 축적된 사소한 예술적 경험들은 10년 뒤, 100년 뒤 우리 문화예술계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정체됐던 미술 시장은 이미 MZ세대를 겨냥한 마케팅 연구가 한창이다

글. 김보라(한국경제신문 기자)

필자 김보라는 한국경제신문 생활경제부 기자이며, 한양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학과 겸임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최근 베스트셀러 <지금 팔리는 것들의 비밀> (웅진지식하우스 출판)의 저자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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