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스포트라이트 속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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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예술가 열전 ⑤
주디 갈란드 : <주디>(2019)

가끔씩 충격적으로 접하게 되는 연예인들의 극단적 선택 소식은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속 그늘에서 그들이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준다. 20세기 최고의 여배우 주디 갈란드 역시 뛰어난 재능이 있었지만, 짧은 생을 마감하고 무지개 저편으로 사라졌다.

‘연예인’이란 직업군의 실체는 무엇일까

특정한 직업군을 일컫는 우리말 중에 외국어로는 딱히 번역이 잘 되지 않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연예인’이라는 말이다. ‘연극, 공연’ 할 때 쓰는 연(演) 자와 ‘예술, 예능’ 할 때 쓰는 예(藝) 자를 합쳐 연예(演藝)라는 말이 되었고(일본에선 ‘엥-게’라고 한다), 거기에 사람 인(人)자를 붙인 것이다.

영어로는 엔터테이너(entertainer)쯤 될 것 같은데 우리는 거기에 유명인(celebrity)의 개념을 더해 이제는 친숙하게 쓰는 용어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을 하면 예전에는 과학자나 대통령 같은 답이 많았는데 요즘엔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답이 압도적이라고 하니, 한두 세대 전만 해도 ‘딴따라’라고 폄하해 부르며 부모들이 질색하던 그 직업이 맞나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연예인이란 직업군의 실체는 무엇일까? 국어사전에는 ‘연예에 종사하는 배우, 가수, 무용가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예술인, 예능인, 아티스트라는 말의 뉘앙스가 조금씩 다른데, 그중에서도 연예인은 좀 더 포괄적이고도 구체적인 개념이다.

요컨대, 연예인이란 TV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가수, 배우, 개그맨들을 칭하는 말쯤 될 것 같다. 개그맨인 후배에게 연예인을 정의해 보라고 했더니 “연예인이요? 연예인은 방송 3개, 광고 3개쯤을 늘 하고 있는 사람이죠”라고 촌철살인의 현답을 내놓는다.

‘틴에이저 아이돌’의 원조, 주디 갈란드

어쨌거나 내 기준에서 연예인이란 춤, 노래, 연기 중 적어도 한두 개 이상을 수준 있게 보여주는, 재능 있는 사람이다. 이 콘셉트에 가장 어울렸던 전설적인 인물이 있다. 바로 ‘틴에이저 아이돌’의 원조였던 주디 갈란드.

그녀의 전성기가 우리에겐 일제강점기-내전의 격동기였으니 국내에선 상대적으로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주디 갈란드는 이미 두 살 때부터 관객 앞에서 춤과 노래를 선보이기 시작했고, 여섯 살에 언니들과 ‘검(Gumm) 시스터즈’란 이름으로 지역 순회공연을 다녔으며, 1939년 그 유명한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주인공 도로시로 출연해 일약 톱스타로 떠오른 연예인의 전범이었다.

영화 속 갈란드가 부른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는 역사상 가장 히트한 영화 주제가이자 수백, 수천 개의 리메이크가 지금도 만들어져 20세기를 대표하는 음악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노래와 갈래머리를 한 도로시 캐릭터는 주디 갈란드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언제나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이미지가 되었다.

영화 <주디>의 타이틀 롤을 맡은 배우 르네 젤위거

화려한 커리어와 대조적인 씁쓸한 말년

그는 47년의 짧은 삶을 살면서 30여 편의 영화, 10장의 앨범, 수백 회의 콘서트, 다수의 TV쇼, 4번의 결혼, 3번의 출산을 하는 등 매우 생산적인(?) 커리어를 쌓았지만 말년엔 심각한 불면증과 조울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약물과용으로 생을 마감했다.

게다가 경제적으로도 파산 상태여서 큰딸인 라이자 미넬리와 친구 프랭크 시나트라가 빚의 상당 부분을 갚아주었다고도 한다. 아니, 어릴 적부터 만인의 사랑을 받았고 출연료 등으로 엄청난 돈도 벌었을 텐데 왜 그렇게 세상을 떠났을까?

2019년, 이런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영화가 드디어 나왔다. 루퍼트 굴드 감독, 르네 젤위거 주연의 영화 <주디>는 100년 전에 태어나 요즘 세대에겐 거의 잊힌 한 연예인의 이야기로 제작비 다섯 배의 흥행 수익을 낸 히트작이 되었고, 46세의 주디 갈란드 역을 맡아 노래까지 훌륭하게 소화한 50세 배우 르네 젤위거에게 두 번째 오스카 트로피까지 선사했다.

영화는 1968년 주디 갈란드의 마지막 영국 런던 공연을 쫓아가는 동시에 MGM영화사의 스튜디오로 플래시백, 열다섯 살 주디의 모습도 보여준다.

이 검은 머리의 백인 소녀는 마음대로 케이크와 햄버거도 먹지 못하고, 끊임없이 촬영과 연습에 내몰리는 불행한 틴에이저로 묘사된다. 특히, 매니저가 식욕억제제와 수면제를 주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그가 심각한 약물 의존으로 죽음에 이른 정황이 영화에 잘 나타나 있다.

실제로 갈란드의 키는 150cm 정도로 서양여성치고는 매우 작은 키. 어떤 이들은 어릴 적부터 강제로 시킨 다이어트와 각종 약물들 때문에 키가 자라지 않았다는 주장도 한다(참고로 큰딸인 라이자 미넬리의 키는 165cm, 작은딸 로나 러프트의 키는 163cm이었다).

그가 성인이 된 이후로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40대 후반의 주디 역시 돈 때문에 사랑하는 아이들을 미국에 두고 가기 싫은 파리 공연을 억지로 떠난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그는 여전히 열정과 재능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선 르네 젤위거의 목소리로 「트롤리 송」(The Trolley Song), 「컴 레인 오어 샤인」(Come Rain or Shine),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오버 더 레인보우」를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열렬한 팬인 한 게이 커플의 집에서 고즈넉이 부르는 「겟 해피」(Get Happy)가 있다. 피아노를 치소니도스다가 서러움에 흐느끼는 댄(앤디 나이먼 扮)을 말없이 위로하는 주디. 다수 대중이 절대 이해 못 하는 소수자들끼리 나누는 공감의 정서가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영화의 백미다.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그 이면의 눈물

영화사와 기획사, 남편들과 매니저들에게 평생 ‘재주 부리는 곰’처럼 이용만 당하고 대중들의 선입견, 예전 같지 않은 유명세와 생활고, 악성 팬들에게 시달리다가 절명한 가수이자 배우, 댄서였던 주디 갈란드.

이런 연예인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가끔씩 충격적으로 접하게 되는 연예인들의 극단적 선택 소식은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속 그늘에서 이들이 남모르게 흘리는 눈물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지 않는가.

주디 갈란드. 「무지개 저편에」(오버 더 레인보우)란 노래만 남고 정작 본인은 무지개 저편으로 사라지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영화가 나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권오섭

글. 권오섭(영화 칼럼니스트)

필자 권오섭은 그룹 ‘웬즈데이’로 데뷔하였으며, 다수의 뮤지컬과 TV 드라마 음악의 작사·작곡을 맡았다. 현재 영화를 주제로 한 팟캐스트 방송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를 7년째 진행하며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영화 속 예술가 열전’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예술가들의 삶을 권오섭 작가의 독특한 시선으로 풀어내, 그가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보여주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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