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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그리고 전쟁과 분단. 참혹한 세월이었고, 이후 우리는 분단의 짙은 그림자 밑에서 오랫동안 억압의 탁한 공기를 마시며 살았다. 그 시절에 러시아 음악은 한국의 음악계에, 그리고 음악 애호가들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밀도 높은 세계였다. 차디찬 겨울 나라의 우울하고 창백한 선율은 20세기 내내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던 우리들에게 미묘한 감정 이입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의미에서 혁명기 러시아의 두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에프를 만나는 2016 아람누리 심포닉시리즈는 뜻 깊은 시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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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윤수(한신대 교수, <클래식 시대를 듣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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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코피에프는 어떤 면에서 더욱 비극적이었다. 다만, 리히테르가 ‘거칠 것 없는 풍모의 거장’이라고 추모하는 것처럼, 그는 희극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며 비극의 시대를 살았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승전국 러시아의 문화계는 조금은 들뜬 상태로 다양한 실험을 모색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에 스탈린의 통치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즈다노프는 강력한 문화 통제를 실시했다. 즈다노프는 문화의 전 영역에 걸쳐 당 문화 건설의 지침을 내렸고, 이에 따라 모든 장르에 걸친 비판 작업이 전개되었다. 1948년 1월에 진행된 당 중앙위원회의 음악 분야 비판에 의해 전쟁 이후 서유럽에서 도입된 형식주의 실험이나 사상에 대한 대대적인 투쟁이 선언되었고, 그 대상자로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하차투리안 등이 지목되었다.
이에 광인의 기질을 타고난 프로코피에프는 “당신이 무슨 권리로 나한테 그따위 말을 하는 거요?”하며 맞섰다.
1891년생인 프로코피에프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일시적으로 미국으로 망명을 떠난 사람이다. 그는, 체제 선전 방침에 따라 당국이 집요하게 귀국을 종용하자 일종의 신분보장과 약간의 자유로운 창작환경을 약속 받고 귀국하게 되는데, 그러나 1934년 이후의 당 문화정책은 일체의 자유로운 형식 실험에 대한 통제였다. 그 와중에 2차 대전까지 터지면서 프로코피에프는 음악 대신 술과 체스에 몰두했다. 리히테르가 기억하듯이, 그는 거인다운 풍모를 지녔기에 수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그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밤이든 새벽이든, 프로코프에프는 술을 마시러 찾아오는 후배 음악가들을 환대했다. 그것이 반드시 술 때문에 찾아오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서로 잘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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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코피에프는, 스탈린 시대를 고통스럽게 살다간 (그리고 스탈린이 세상을 떠나던 날에, 역사적인 우연처럼 사망한) 예술가다. 그가 그 시대를 견뎌낸 방식은, 그 자신의 내면이 지향하는 자유를 (음악으로든 행동으로든) 거침없이 표현하고, 그로 인하여 받게 되는 당국의 비판을 호방하게 또는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응대함으로써 아예 대놓고 스스로 눈 밖에 나는 것이었다. 6살 때, 음악보다 더 일찍 체스를 익혔고 체스의 본고장인 러시아의 당대 챔피언들과 겨룰 만큼 아마추어 강자였던 프로코피에프는, 적어도 자신의 예술에 대한 당의 간섭이나 탄압에 자유분방한 태도로 응전했다.
그렇다고 프로코프에프가 당의 주문을 막무가내로 거부한 것은 아니다. 그는 스탈린의 생일을 기념하여 스탈린의 영광을 기리는 곡을 쓰기도 했다. 가사의 일부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 스탈린에게 영광을’ 하는 식이다. 이 작품에 대하여 프로코피에프는 이렇게 말했다. “스탈린? 그게 누군데? 좋아, 하지 뭐. 스탈린이 누구든 못 할 이유가 없잖아?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어. 그런 일이라고 예외는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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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인물이 작곡한 광기어린 피아노 소나타들을 한창 나이의 리히테르가 초연했다. 7번 소나타의 경우 모스크바의 노동조합회관 ‘10월 홀’에서 청중의 뜨거운 반응 속에 초연이 이뤄졌는데, 그날 밤 청중이 모두 물러간 후 몇몇 음악가와 프로코피에프 앞에서 리히테르는 이 곡을 다시 연주했다. 그만큼 작곡가와 연주가의 영혼이 어우러진 곡이라 할 수 있는데, 앞서 소개한 <리히테르, 회고담과 음악수첩>에서 리히테르는, 이 곡을 아래와 같이 기억한다.
“이 소나타를 듣고 있으면, 우리는 평형을 잃은 어떤 세계의 불안한 분위기 속으로 빠져든다. 혼돈과 미지가 지배하는 분위기다. 힘들이 광란한다. 이 힘들은 위협적이고 때로 살인적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 힘들이 있기에 살아간다. 이 힘들은 계속 존재하며, 인간은 느끼고 사랑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이제 인간에게는 세상 만물이 인간을 충만하게 하기 위한 대상이다. 인간은 서로 힘을 합쳐 항의의 목소리를 내고 만인의 비탄을 서로 나누어 가진다. 그리고 승리하려는 욕구에 불타서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휩쓸어간다. 인간은 그 대대적인 투쟁을 통해서 생명의 억누를 수 없는 힘을 확인한다.” (<리히테르, 회고담과 음악수첩>, 정원,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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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러시아를 대표하는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에프는 1997년도 다큐멘터리 <스탈린에 저항한 쇼스타코비치>에서, 쇼스타코비치가 독재자 스탈린에 저항한 작곡가이며 스탈린의 지속적인 탄압이 쇼스타코비치를 더욱 위대한 작곡가고 만들었다고 말한다. 지나치게 ‘공식적인 해석’이지만, 그리고 때로는 동료들을 배반해야만 했던 쇼스타코비치의 행적을 너무 일방적으로 해석한 것이지만, 일반적 차원에서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해석이다. 동시에 프로코피에프 또한 같은 맥락의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모순적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하여 그들은 작품을 썼지만, 그것이 기회주의적인 엿보기가 아니었음을, 억압과 모순의 외적상황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자기 내면과의 싸움이기도 했음을 우리는 쇼스타코비치의 격렬하면서도 이중적인 교향곡을 통해(7월 9일 아람누리 심포닉시리즈 1), 프로코피에프의 천진하면서도 위악적인 교향곡을 통해(11월 12일 아람누리 심포닉시리즈 2)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혁명기 러시아를 겪은 두 작곡가의 음악이 곧 우리가 겪은 20세기의 파란과 닮아 있음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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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기의 러시아를 겪은 두 작곡가 Ⅰ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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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6.11.12(토) 7:00pm
장소 :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하이든 홀)
연주 : 성시연 &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협연 : 박종화 피아니스트)
대상 : 만7세 이상
입장료 : R 5만원, S 4만원, A 3만원, B 2만원
문의·예매 : 1577-7766 / 예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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