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2016 아람누리 심포닉시리즈 ‘쇼스타코비치 vs. 프로코피에프’ CONCE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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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고전주의를 이끈 모더니스트

[프로코피에프의 생애와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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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Sergei Prokofiev) 1891년~1953년,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와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두 사람은 나란히 옛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꼽히지만, 그 생애의 노정과 작품의 경향은 사뭇 달랐다. 두 사람 다 일찍부터 음악적 재능을 드러낸 것은 비슷하나, 쇼스타코비치가 일생을 조국에 머무른 반면 청년 프로코피에프는 미국과 유럽에서 20년 가까이 망명생활을 한 후 귀국하였다. 이러한 인생 행보의 차이는 두 사람의 작품세계에도 영향을 미쳐, 각자 독특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예술조차 이념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속에서 특유의 유머와 간결함을 더해 신고전주의를 주도한 프로코피에프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음악평론가 황장원의 글을 통해 살펴보자. 프로코피에프의 대표곡은 오는 1112일 아람누리 심포닉시리즈 두 번째 콘서트에서 직접 감상할 수 있다. [편집자주]

 

 

망명을 택한 모더니스트의 생애

 

1891년 4월 23일 우크라이나의 손초프카에서 태어난 프로코피에프는 제정 러시아의 황혼이 잉태한 모더니스트였던 반면, 1906년 9월 25일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쇼스타코비치는 온전히 러시아 혁명의 아들이었다. 프로코피에프는 지방의 대농장을 관리하는 농노 집안 출신으로 유복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귀족계급과의 차별을 체감하며 성장했고, 그로 인해 형성된 반항아적 기질과 몽상가적 성향이 그 음악의 기저에 자리하게 되었다.쇼스타코비치는 대도시의 기술자 집안 출신으로 혁명기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큰 어려움 없는 유소년기를 보내면서 ‘사회주의적 이상’이라는 시대적 가치관을 뼛속깊이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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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역시 일찍부터 음악적 재능을 드러낸 천재들이었다는 점인데, 프로코피에프는 다섯 살 무렵부터 작곡을 시작해서 열일곱 살에 이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정식 데뷔했을 정도였고, 쇼스타코비치는 조금 늦은 아홉 살부터 정식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는데도 열한 살에 이미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모조리 익히고 즉흥연주에도 능했다. 또 두 사람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시절부터 돋보이는 수재로 명성을 떨쳤고, 음악원 재학 중에 부친이 별세하는 아픔을 겪은 이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면서 인생의 첫 번째 전환기로 접어들게 된 점도 비슷하다.

프로코피에프는 열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은 것을 계기로 작곡 및 연주활동에 박차를 가하면서 빠르게 자신의 앞날을 개척해 나갔다. 쇼스타코비치는 열여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읜 후 어머니와 누이들을 부양하기 위해 학업을 미뤄둔 채 극장에서 반주자로 일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이 시절에 쇼스타코비치는 원체 병약한 몸에 영양실조와 결핵까지 겹치며 고생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한편으론 천부적 재능에 특별한 경험이 더해지면서 훗날 대성할 단초를 마련한 시기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음악원을 최우수로 졸업한 것까지 비슷했지만, 청년기 이후의 삶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무엇보다 프로코피에프는 1917년 러시아에 혁명 정부가 들어서자 망명의 길을 택했다. 그 후 그는 1936년에 영구 귀국할 때까지 20년 가까이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하며 성공과 실패를 두루 맛보았다. 반면에 쇼스타코비치는 중년 이후 잠깐씩 국외로 여행 다녀온 일을 제외하면 일생 내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으로 바뀐 조국에 머물렀다.

프로코피에프가 귀국한 후 두 사람은 ‘소련 음악계의 양대 거두이자 라이벌’로 간주되었는데, 스탈린의 철권통치를 정점으로 수차례 부침을 겪은 소련 문화예술계의 상황은 그들에게 모진 고난을 가져다주었다. 물론 그에 대한 두 사람의 대처 방식, 그리고 그들 작품의 변모상은 그들의 출신과 성향, 이력만큼 다를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점은 두 사람이 공히 러시아 음악의 역사를 20세기에 이어나간 거장들이었고,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들이 겪었던 시대상을 작품에 투영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작품을 대하면서는 작곡 시점을 확인하고 당시의 정황을 헤아려보는 일이 그 어떤 작곡가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하겠다. 프로코피에프는 1953년 3월 5일, 즉 자신을 억압했던 독재자 스탈린과 같은 날 사망했고, 쇼스타코비치는 냉전시대가 지속되던 1975년 8월 9일에 저 세상으로 떠났다.

 

 

앙팡 테리블’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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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코피에프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돋보이는 장르는 사실 오페라, 발레음악, 영화음악과 같은 극음악이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기초한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에 붙인 서정적이면서 개성적인 음악은 오랫동안 폭넓은 호응을 받아왔다. 프로코피에프는 불과 8세 때부터 오페라 작곡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평생 동안 남긴 오페라는 미완성작을 포함하여 14편에 달한다.

그 중 기발한 스토리와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하는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1919), ‘악마 숭배’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룬 환상적 괴작 <불의 천사>(1927), 톨스토이의 동명소설에 기초한 대작 <전쟁과 평화>등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또 메조소프라노 독창자와 합창단이 등장하는 칸타타 <알렉산드르 네프스키>(1939)는 러시아의 역사적 사건을 다룬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의 동명영화를 위해서 썼던 음악을 다시 정리한 것으로 대단히 드라마틱하고 박진감 넘치는 수작이다. 이밖에 역시 영화음악에서 유래한 <키제 중위 모음곡>(1934)과 ‘어린이를 위한 음악이야기’ <피터와 늑대>(1936)도 인기가 높다.

한편 콘서트용 작품들 중에서는 교향곡보다 협주곡이 더 각광받아왔다. 프로코피에프는 망명생활을 마감하기 전까지 다섯 편의 피아노 협주곡을 발표하면서 탁월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자신의 개성과 역량이 아낌없이 투입했다. 그 중에서도 광활하고 다채로우며 생동감이 넘치는 <피아노 협주곡 제3번 C장조>(1921)의 인기는 대단해서, 차이콥스키의 제1번, 라흐마니노프의 제2번과 더불어 ‘러시아의 3대 피아노 협주곡’으로 일컬어질 정도이다.

그런가 하면 한창 혈기왕성했던 청년 시절의 산물인 <피아노 협주곡 제1번 D장조>(1912)와 <피아노 협주곡 제2번 g단조>(1913/1923)는 ‘앙팡 테리블’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급진적인 작품들로 발표 당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반면에 <피아노 협주곡 제5번 G장조>(1932)는 기존 협주곡 개념의 초월을 추구한 완숙기의 역작이다.

바이올린 협주곡과 첼로 협주곡은 각 두 곡씩 남아 있는데, 그 중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D장조>(1917)와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 g단조>(1935)는 공히 작곡가 특유의 서정성과 풍부한 선율미, 그리고 다채로운 악상과 경묘한 터치가 돋보이는 가작들로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또 쇼스타코비치를 자극했던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e단조>(1952)는 사실상 그의 두 번째 첼로 협주곡으로서 역사상 가장 완성도 높은 ‘교향적 협주곡’의 대열에 합류할 만한 만년의 수작이다.

 

 

고전과 현대의 절묘한 융합, 프로코피에프의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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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코피에프는 쇼스타코비치의 절반에 못 미치는 7편의 교향곡을 남겼는데, 그 중 제1번과 제5번이 특히 유명하다. 일명 ‘고전 교향곡’으로 불리는 <교향곡 제1번 D장조>(1917)는 ‘하이든이 20세기에 살았다면 작곡했을 법한 교향곡’을 표방한 흥미로운 작품이고, <교향곡 제5번 B장조>는 소련 당국이 제시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의식하며 고심 끝에 탄생시킨 역작이다.

특히 후자는 그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데, 그의 선배인 차이콥스키, 보로딘 등을 떠올리게 만드는 전통적 면모를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발레음악 <로미오와 줄리엣>과 연계된 서정성, 그리고 특유의 쾌활함과 웅장한 서사적 스케일까지를 절묘하게 아우르고 있다. 다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 대표작보다는 다분히 정제된 흐름 속에 귀국 후의 파란만장했던 시간들에 대한 소회가 어려 있는 듯한 <교향곡 제7번 c단조>(1952)가 좀 더 친숙해지기 쉬운 작품이 아닌가 한다.

끝으로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독주곡 중 유명한 ‘전쟁 소나타 3부작’, 독창적 소품집 ‘순간의 환영’, 그리고 우아하고 매혹적인 <바이올린 소나타 제2번 D장조>(‘플루트 소나타 D장조의 편곡판) 등도 놓칠 수 없는 명작들이다.

 

+

 

11월 12일 아람누리 심포닉시리즈 두 번째 콘서트여성 지휘자 성시연과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그리고 서울대 음대 교수이기도 한 피아니스트 박종화의 연주로 프로코피에프를 만난다.프로코피에프 음악세계의 정수라 할 만한 그의 교향곡 제1번과 제7번, 그리고 ‘러시아 3대 피아노협주곡’ 중 하나로 손꼽히는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이 연주될 예정이니, 러시아 국보급 작곡가의 음악세계를 아람음악당에서 직접 느껴봄이 어떨까.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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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아람누리 심포닉시리즈

[쇼스타코비치 vs. 프로코피에프]

CONCERT 2

 

일시 : 2016. 11. 12(토) 7:00pm

장소 :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하이든 홀)

대상 : 만 7세 이상

입장료 : R 5만원, S 4만원, A 3만원, B 2만원

문의·예매 : 1577-7766 / 예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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