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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31일

 

20161019일 부터 1113일까지 제 5회 고양신진작가발굴전이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미술관에서 전시된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네 개의 작품들,

아트 텔레스코프(전문가의 눈을 빌려 제대로 들여다보는 전시 이야기)를 통해

멀게만 느꼈던 예술의 세계에 한 걸음 다가서 보자.

 

 

[신진작가발굴전_고양문화재단이 주목하는 네 명의 작가]

– 네 번째 작가. 한석경

 

 

한석경의 낯선 곳에서 이방인의 살기의 의미

 

글. 심상용(미술사학 박사, 동덕여자대학교)

 

이방인은 자신의 의도와 가치를 타인을 판단하는 척도로

사용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박탈당한 사람

 

 11-1 2-1 한석경-1[한석경_ 5회 고양신진작가 발굴참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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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석경의 작업은 장소 선택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다음은 선택된 지역이나 장소에서 일정 기간 머문다. 아니 ‘머문다’기 보다는 ‘산다’고 하는 편이 더 옳다. 그곳에서 그는 먹고, 자고, 경험하고, 관계를 맺는다. 작업은 그 낯선 일상으로부터 시작되고, 또 시작되어야만 한다. 한 석경은 의도적으로 가능한 한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자신이 더 이방인일 수 있는 곳, 더 많은 생활의 불편을 견디도록 요구받는 환경을 택한다. 이것이 그가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택할 때도 동일한 기준이 된다. 한 석경은 정주(定住)를 거부한다. 정주적 삶이 제공하는 정주감, 곧 인지적 낯익음과 관계가 형성된 이웃이 제공하는 존재적, 심리적 안정을 선호하지 않는다. 왜인가?

 

낮선 곳에서 인간은 훨씬 더 무력하다. 타지(他地)에서의 삶은 그때까지 길들여진 행태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다. 새로운 적응과정은 그에 상응하는 시간과 비용을 요한다. 이방인은 자신의 의도와 가치를 타인을 판단하는 척도로 사용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박탈당한 사람이다. 역으로 그는 타인의 척도를 존중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위치에 놓인 사람이다. 헨리 나우엔(Henri J. M. Nouwen, 1932-1996)에 의하면 이방인은 “타인에 군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서 죽어야 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그것, 곧 타인에 대한 주체의 죽음으로부터 ‘공감(共感)’이라는, 하나의 결정적인 미덕이 싹튼다. 왜 현대인은 공감 결핍의 단절과 외로움의 삶을 사는가. 오로지 자신의 계몽주의적 주체성에만 매달리고, 타인에 대한 판단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나우엔의 말처럼 판단하는 것은 타인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판단은 거리와 구분을 만들 뿐 아니라, 우리가 진실로 다른 사람과 함께 존재하는 것을 막는다.”

 

타인에 대한 주체의 죽음인 공감은 결코 주체적 판단과 공존할 수 없다. 공감은 판단의 정지로부터만 도래하는데, 판단의 정지는 주체의 죽음이나 현저한 약화가 아니고선 결코 주어지지 않는 가치요 미덕이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을 때에만 자유롭게 공감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크 엘륄(Jacques Ellul, 1912~1994) 이 공감이 획득되는 존재적 상태에 대해 탁월한 해설을 내놓은 바 있다. 엘륄은 공간으로 나아가는 존재적 상태를 ‘선택된 비능력(non-puissance)’이라 했다. ‘선택된 비능력(non-puissance)’은 무능력(impuissance)과는 다른 것으로, 그것은 “힘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생명을 방어하기 위해서조차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사람에 의해 내려진 결단이다.” 이는 한 석경의 태도를 이해하는데 의미 있는 참조가 될 수 있다.

 

정주의 수혜자가 되는 대신, 잠정적 이방인의 삶 선택

의지적인 주체성 포기를 통해 공감의 경험 안으로 들어가다

 

11-1 2-1 한석경-2

[한석경_ 불어라 열풍아,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6]

 

한 석경은 정주의 수혜자가 되는 대신 잠정적 이방인이 되기를 선택함으로써, 즉 의지적으로 자신의 주체성을 포기함으로써 한결 더 공감의 경험 안으로 들어가기를 희망해 왔다. 이 경험에 오롯이 집중하기 위해 정주의 안정과 안락은 자주 뒤로 미뤄져야만 했다. 현대적 삶에 대한 치열한 반성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태도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극장 같은 TV 프로그램에 감동받고 즐겨본다. 하지만 정작 직접 대면하게 되면 반대가 된다. 살기 바쁘기 때문에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결국 타인에 대한 관심은 스스로가 편할 때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정도이다. 나는 불편한 부분까지 알게 된다면 어떨까하고 생각했다.” 타인을 판단하는 주체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한, 공감은 허울 좋은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공감의 경험이 낯선 환경으로부터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자신의 아틀리에가 위치한 성산동에서도 ‘폐지를 줍는 이웃’에 대한 공감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을 부단히 이방인으로 낮추는 경험을 통해 축적되는 어떤 내적 힘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낯설음은 또한 인간의 인지적 이성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시인(詩人)은 낯선 곳에서 더 영감을 얻는다. 익숙한 실내를 박차고 미지의 세계로 나갔을 때 근대회화의 여명이 밝았다. 칸트의 ‘무사무욕(désintéressement)이나 쇼펜하우어의 ‘미적 거리’가 바로 그것 아니던가. 판에 박은 인식에 도전하는 낯설음이야말로 새로운 인식이 싹트는 옥토가 되곤 했던 것이다. 한 석경이 지금 해나가고 있는 것도 이 유서 깊은 맥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같은 길을 하루에 12번 씩 걸었던 적이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4km12, 거진 50km를 걸었다. 중간에 밥 먹고 담배피고 물 마시는 때를 제외하고 계속 걷다보면 어느 순간 보행명상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걷는다는 반복행위로 낯선 곳을 익숙하게 하고, 또 그것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방식을 택한다.”(한석경)

 

자의적 이방인으로 그가 겪었던 삶의 경험은 고스란히 그의 작업으로 스며든다. 그가 가졌던 새로운 시각적 자극은 예술의 소재가 되고, 재료가 되고, 이야기가 된다. 그 삶의 함축된 일부가 회화로 표현되기도 하고, 오브제의 형태로 기록되기도 한다.

 

여기서 장소는 단지 미학적인 대상이 아니다. 영감의 출처인 것만도 아니다. 장소와 장소로부터 주어지는 경험은 일부가 아니라 전체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별도의 해석이나 소화과정 없이 작업으로 투영된다. 삶이 없다면 예술은 성립되지 않는다. 삶과 예술의 이분법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삶의 경험과 유리된 탐미의 자리는 없다. 그런데 그 삶, 그 경험은 다름 아닌 이방인으로서의 삶이요 오만한 정주자의 주체가 반납되는 경험이다. 한 석경과 그의 작업에 적지 않은 기대를 갖게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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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작가발굴전_고양문화재단이 주목하는 네 명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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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오유경 – 균형, 서로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존재하기
03.이마리아 – 심리적 공간, <몽상의 방>에 들다
04.한석경 – ‘낯선 곳에서 이방인의 살기’의 의미

 

        

INFO.

writer-poster

5회 고양신진작가 발굴

일 시 : 10.19(수)~11.13(일) 10am~6pm, 월요일 휴관

장 소 :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미술관

관 람 료 : 1천원

대 상 : 제한 없음

참여작가 : 박지혜, 오유경, 이마리아, 한석경

문 의 : (031)960-9730 / www.artg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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