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사생대회에서 즉흥 주제를 가지고 하얀 도화지를 채우던 순간의 나는, 멋진 화가였고 아티스트였었다. 피카소의 추상화나 반 고흐의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예술, 그거 별거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무식해서 용감했을지언정 그래도 그때의 내게 있어 ‘그림’ 또는 ‘작품’은 그리 멀지 않았었다. 색연필, 물감, 파스텔, 때로는 흙, 풀잎들을 재료로 그림이나 콜라주를 만들던 순수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자 미술관으로의 발길을 끊었다. 박물관만큼이나 미술관은 ‘배움’을 위해 가야 하는, 교양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곳으로 인지하게 되었다. 시험공부를 하러 들어간 도서관의 엄숙함 속에서 공부에 집중하지 않으면 못 배길 것처럼, 미술관 하면 커다랗고 어려운 그림이 그려진 액자가 머릿속에 각인된 것이다.
사실 우리의 삶 속에 정보가 넘쳐나고,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세상은 점점 더 일상 속에 예술을 끌어들이고 있다. 같은 광고라도 멋지고, 감각적이게. 같은 제품이라도 더 아름답고 특별해 보이게. 때로는 예술영화라는 이름으로, 작품성 있는 웹툰으로, 감동적인 스냅사진으로 우리의 눈에 잘 띄는 곳 여기저기에 놓여있는 것이 대중예술이다. 쉽고도 친숙한 장르와 매체를 통하여 다가오는 예술은 반면에 순수예술, 순수회화를 보는 우리의 시선을 더욱 더 낯설게 만들기도 한다. 장벽 없는 세계화에 놓여 있는 우리에게 작품해설은 얼마든지 번역되어 전달 될 수 있겠지만 작품은 그렇지 않다. 전시된 ‘작품’들은 이미 그 작가의 고유한 언어로 표현된 작품이기에, 관람객의 물음을 기다리며-그제야 비로소 대화가 시작되는 듯. 세상에 대한 저마다의 ‘고백’을 가지고 친숙해질 준비를 하고 그렇게 전시장에 놓여 있는 것이다.
장르가 뒤섞인 예술작품들로 ‘소통’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전시회도 있다. 음악이 흐르거나, 움직이는 조형물, 현란한 스크린 등 다양한 도구와 방법을 통해 관객에게 다가가고, 더 나아가 관객의 직접 참여를 통해 감흥을 이끌어내는 전시의 형태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마치 ‘전시’에 대한 편견을 깨부술 것처럼 소란스럽게 눈부시게, 단정한 모양새는 벗어던지고, 적극적으로 소통을 시도하는 전시관의 모습은 재미있으면서도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분명 킬링타임으로 제격인 코미디 프로를 보면서 배꼽 잡게 웃는 시간도 즐겁지만, 코를 간질이는 바람에 문득 들어간 미술관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아무도 몰래 작가와의 독대를 즐기며 조용히 사색하는 시간도 꾀나 낭만적인 것이다.
예술을 주제로한 전시관은 책을 보러 가는 서점이 아니다. 유물을 보러 마음 먹고 가는 박물관도 아니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을 찾아 가는 꽃밭도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모든 것이 되기도 한다. 손을 잡으면 비로소 전해 오는 온기처럼, 눈을 마주 보고 대화하면 느껴지는 미묘한 감정의 떨림처럼. “날 보러 와요-“ 속삭이고 있는 전시관에 들러 특별한 당신만의 메시지를 발견하고, 마주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 온라인누리는 다채로운 전시 소식들로 가득하다. 봄이 구렁이 담 넘듯이 여름으로 넘어가는 이때, 전시 소식들을 놓치지 말고 정독하고, 시원한 전시관에서 작품 속으로 피서를 떠나는 계획을 잡아 보기 바란다.
01. 2017 한영 상호교류의 해를 맞이하여 영국과 한국의 최근 현대 회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전시
02. 동시대 미술에 있어 회화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전시
03. 시민이 주도하고 함께 참여해 만들어가는 새로운 가능성의 전시
04. 예술이 미술관 담을 넘어 어린이박물관으로 찾아왔다?! 경계를 허문 체험형 예술전시